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지난번 실시된 대학수학능력시험장에서 휴대폰과 MP3플레이어를 소지했다가 부정행위자로 간주된 수험생 중 고의성이 없는 수험생은 구제할 방침이라 한다. 당연한 조치이다. 당정은 MP3플레이어 소지 수험생으로 구제 범위를 정한 모양이나, 휴대폰 소지자 중에도 고의적인 휴대가 아닌 경우에 까지 구제 범위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차제에 수능시험 부정행위자로 적발된 수험생에 대해서 고의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별도의 심의기구를 법제화 할 것을 제안한다. 현재의 규정상 수능 부정행위자는 시험 자체가 0점 처리 될 뿐 아니라 향후 2년간 응시 기회가 박탈된다. 이 규정 자체에 시비를 걸수는 없다. 학벌을 중시하는 우리의 사회 풍토에서 수능부정은 타인의 기회를 가로채는 반사회적 범죄에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에 발생한 대규모 휴대폰 수능부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규정만을 앞세워 억울한 희생자를 낳아서도 안될 것이다. 올해 수능에만 50만명 이상이 시험을 치렀다. 이 정도 규모의 인원이면 불가항력적인 우연에 의해 휴대가 금지된 물품을 시험장에 가지고 들어가는 수험생이 올해와 비슷한 규모로 발생할 확률이 높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한순간의 부주의를 이유로 부정행위자로 낙인찍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 아무리 본인 부주의의 결과라지만 그 처벌이 너무 가혹하고 비교육적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부터 사교육에 내몰려 대학 진학의 첫 관문인 수능 때 까지 7~8년을 준비해온 수험생에게 시험 무효와 2년간 응시 금지는 사실상 사형선고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부정행위자로 간주된 학생의 소명 기회가 있어야 하고 이를 심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번 처럼 정치권의 온정에 의해 구제자의 범위를 결정할 경우 형평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법의 안정성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근 통과된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수능 부정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만 있고 부정행위자에 대한 정의는 정부 시행령으로만 돼있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가 자의적 기준으로 시험 부정을 막겠다는 것은 지나친 행정편의주의로 보인다. 이런 문제를 포함해서 부정행위 간주자들에 대한 심사기구를 설치하는 방향으로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