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계곡 누리길을 걸어
오월 중순 월요일 새벽잠을 깨 전날 반송 소하천에서 본 흰뺨검둥오리 새끼들을 소재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봄이면 북향 대열 나래짓 펼칠 철새 / 귀향을 단념하고 텃새로 눌러살며 / 암수컷 인연을 맺어 짝이 되어 만났다 // 소하천 냇바닥에 둥지 튼 오리 한 쌍 / 알 놓아 품에 품어 새끼 쳐 데려 나와 / 궁둥이 졸졸 따르며 먹이 찾아 나선다” ‘흰뺨검둥오리 가족’ 전문이다.
아침나절 내가 속한 문학회 동인들과 걷기 행사가 있어 길을 나서게 되었다. 회원들과 떠나는 1차 집결지인 옛 도지사 관사 앞으로 나가기 전 아파트 이웃 동 꽃대감 꽃밭으로 나가 봤다. 친구는 아침마다 문안 인사를 드리듯 가꾸는 꽃밭에 정성 다했다. 간밤 안부를 나누고 나는 용지호수 곁의 작은도서관을 찾아가 월요일은 휴무였지만 무인 반납기에 대출 도서를 넣어두었다.
그곳으로 나간 김에 호숫가 산책로를 한 바퀴 걸었다. 호수 수면에는 잎사귀를 불려 키운 수련이 하얀 꽃송이를 펼치기 시작했다. 수련의 개화 특성은 저녁에는 꽃잎을 닫아 봉오리를 오므리고 아침에 다시 펼치기에 ‘잠잘 수(睡)’를 쓰는 연꽃이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노랑꽃창포도 시퍼런 잎줄기에서 꽃잎을 펼쳤다. 덩치가 큰 잉어들이 어슬렁거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용지호수에서 도지사 관사 앞으로 가서 문학회 봄 기행을 대신하는 걷기 행사장 가는 일행의 차에 동승했다. 한 회원이 운전대를 잡아 창원터널을 통과해 장유계곡으로 내려가 행사에 참여한 회원들을 만났다. 지난 사월 모임에 이은 반가운 얼굴을 뵈었다. 집행부에서 생수와 따뜻한 떡을 준비한 수고가 고마웠다. 참석 회원을 모두 열다섯 명으로 낯익은 모습에 인사를 나누었다.
계곡 들머리 명태명가 식당에서 대청계곡 누리길로 들었다. 당국에서 근년에 장유사로 오르는 자동찻길 계곡 건너편 누리길을 조성해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았다. 이번 걷기 행사는 주로 창원에서 넘어간 문우들인데 장유에 살거나 함안에서 온 분들도 있었다. 나는 작년 가을에 이어 지난겨울에도 걸었기에 주변 풍광이 익숙했지만 그때보다 물이 많이 흐르고 녹음이 우거졌다.
일행들과 장유사로 오르는 계곡 건너편으로 데크가 설치되고 일부 구역은 야자매트를 깔아 놓은 대청계곡 누리길을 따라 걸었다. 도중 쉼터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회장 인사말과 시집을 새로 낸 회원의 동정 소개가 있었다. 계곡 누리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왔던 길을 되돌아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발을 담갔다. 맨발에 느껴지는 시원함과 눈앞의 명경지수 선경이 황홀했다.
출발 전 차를 세워둔 식당에서 점심상을 받기 전 아까 소개된 회원의 작품집을 건네받고 표제 시 낭송이 있었다. 깔끔하게 차려져 나온 명태조림으로 점심을 먹고 야외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었다. 회원들과 가까운 찻집으로 이동해 팥죽과 팥빙수로 못다 나눈 정담이 오가다 헤어졌다. 창원에서 동승해 넘어간 이들은 대청계곡 가야 왕도 누리길 구간을 더 걸었다.
같은 차를 타고 창원터널을 넘어온 다섯 명은 오후 시간이 느긋해 옛 도지사 관사의 배경이 되는 언덕의 숲길을 걸었다. 인근 단독 주택에 사는 선배는 먼저 귀가하고 나머지 넷은 용지호수로 이동했다. 지압 보도 산책로 들머리에는 할머니들이 흥겨운 음악에 맞춰 에어로빅으로 건강을 다졌다. 편백나무 숲이 우거져 그늘을 드리운 쉼터에 신발을 벗고 오르니 호수가 바라보였다.
한 회원이 노인대학에 나가 칠순 팔순 할머니 대상 시문학 강의 경험담을 들었는데 우리 지역이 낳은 작고 문인 이은상과 이원수의 생애와 작품 세계에 훤했다. 할머니들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강의에 앞서 사전에 준비하고 연구한 본인의 성취와 봉사에서 보람을 찾는 듯했다. 성큼 여름이 다가온 듯 더위가 느끼지는 날씨였지만 간간이 상쾌한 바람이 불어와 시원함이 더했다. 23.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