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표제는 이 카페에서 방언의 유효성 문제로 줄기차게 토론해왔던 방향성에 관한 것이다.
한 쪽 진영에서는 방언은 기도하는데 유용하다고 주장을 펼치고
다른 진영에서는 방언은 복음 선포하는데 사용하는 외국어다 라고 한다.
우리가 토론을 함에 있어서 자기의 주장이 관철되는게 중요하기보다는 이 문제가 정말 성경적으로 하자가 없고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과 맞추어지는가를 계속해서 자문해야 된다. 만약 중도에서 자기의 주장이 틀린점이 발견되면 지체없이 돌이키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왜냐면 말씀을 증거하는데 '참과 거짓'에 대한 문제는 '거짓선지자'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계시록에서 거짓선지자는 사단 마귀보다 천년이나 앞서서 벌을 받는다. 어쩌면 지금 거짓선지자들의 운명이 목전에 와 있을 수 있다. 성경은 분명히 거짓선지자들을 불구덩이에 던져 넣고 무려 천년 기간동안 고통을 받은 후에야 심판의 상황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보면 거짓선지자들에게 최우선적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방언이 기도하는데 사용되는 것이 맞는가?'하는 문제는 매우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다. 예의 이 문제에 대하여 제시하는 구절은 고린도전서 14장 14절이다.
01 고전 14장 14절은 바울이 방언으로 기도하라는 표현인가?
성경의 번역 문제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필자가 문제 삼고자 하는 이 14절의 번역에서 바울이 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몇개의 역본을 살펴보도록 하자(흔히 번역 상황에서는 번역자의 개인적 성경관이 개입되는 일이 흔하다).
왜 이 구절을 토론의 중심으로 가져오냐면 성경에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장면의 예가 단 하나도 없고 '방언기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들고 나오는 구절이 바로 이 14절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문을 여러 역본으로 나열해본다.
개역개정 :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개역 :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쉬운성경 : 혹시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게 된다면 내 영은 기도하지만, 내 마음은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공동번역 : 만일 내가 이상한 언어로 기도한다면, 기도하는 것은 내 심령뿐이고 내 이성은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한다면 내 영은 기도하지만 내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흠정역 :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이해하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NIV : For if I pray in a tongue, my spirit prays, but my mind is unfruitful.
E-ASV : For if I pray in a tongue, my spirit prayeth, but my understanding is unfruitful.
E-KJV : For if I pray in an unknown tongue, my spirit prayeth, but my understanding is unfruitful.
이상의 역본들에서 우리가 주의할 점은 이것이 단순 사실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if(가정)와 for(앞의 서술에 대한 긍정 또는 부정적 이유를 부연)문을 사용했다.
통상 if를 사용할 때는 '내가 만약에 ~ 한다고 치자'의 용법으로 사용하며 사실을 서술하는게 아니라 어떤 상황을 가정하고 말을 이어갈 때 쓴다. 지금 이 14절은 통역과 관련된 방언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 연속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For~ 문법은 앞 문장에서 서술된 것을 부정하거나 강조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사용한다. 위 영어 역본에서는 모두 명확히 for ~로 서술 됨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14절은 앞의 통역에 관한 설명과 한 묶음 문장이다. 그리고 바울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아 만약에 내가 방언으로 기도한다 치자 그런데 통역 없이 남들 앞에서 방언으로 대표기도를 해서 축복을 빌어준다고 하면 그것을 사람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아멘을 하겠냐?"라는 뜻이다. 그래서 성경은 한구절만 떼내서 쓰지 말고 앞뒷절을 분석하고 대상이 누군가를 보고 왜 그 말씀을 했는지를 자꾸 생각해야 한다(자명하게 이해가 안 될 때).
지금 이 14절을 다음처럼 곡해 해서는 안된다.
앞에 통역이 없이 방언 하면 안된다는 제거해 버리고 if도 제거하고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많이 해야 하고 그러려면 방언으로 기도하자. 뒤에 아멘을 못하는 이유도 거추장 스러우니까 떼어내 버리자.
특히 이런 것이 한국의 예배당에서 목사들이 하는 설교에서 자주 써먹는 수법이다. 앞뒤 다 떼어내고 특정 구절만 쏙 빼내서 써먹는다. 대표적으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라든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십일조를)'와 같은 예다.
02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이 상황은 어떤 상황인가?
성경을 해석 할 때 선뜻 이해가 어려울 경우는 그 말씀의 대상이 어떤 시점,상황과 누구를 향해 왜 쓰여졌는가를 이해하면 좀 더 쉽게 의미에 접근 할 수 있다. 지금 고린도 교회에 바울이 이 서신을 보낸 이유는 뭘까?
고린도 지역은 물류와 상인들의 왕래가 집중되는 교차로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런 까닭으로 고린도 교회는 쪼들리는 가난한 지역이 아니라 잘먹고 잘사는 동네다. 으례 이런곳은 신앙의 양상도 뜨듯 미지근하여 자극적인 것을 찾는 경향이 있다. 또한 당연 이방인들의 문화가 쉽게 뒤섞인다. 그런 상황에서 고린도 교회는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되었으며 바울은 그런것에 대해 바로잡고자 편지를 쓰게 된다.
그 문제 중 하나가 방언문제 였다. 다른 신약 성경에서의 방언 사용 사례를 보면 모두 타지역 언어 사용자들의 대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복음 전파를 위해 사용되어졌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성경 어디에도 위 고린도전서 14절을 제외하고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장면에 관해 서술된 곳이 없다.
지금 고린도교회에서는 다른 곳과 다르게 방언 사용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 14절의 서술을 가만히 살펴보면 13~16절 까지 한묶음 상황인데 고린도 지역도 이방인들이 많이 뒤섞여 있는 관계로 교회가 모일때 그들도 섞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가피하게 대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방언으로 대표기도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 바울은 그런 상황을 가정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것이다.
왜 이 상황이 맞냐면 13절부터 바울이 말하기를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타 언어권 사람들과 뒤섞여 있을때 방언으로 기도하게 되면 거기 모인 무리 중에서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으므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듣는 사람들이 아멘 할수 있겠냐?" 이것은 니가 대중들 모인 자리에서 기도하며 축복을 빌어주는데 그 사람이 알아듣질 못하니 어떻게 아멘 하겠냐? 이런 뜻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방언은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기도하는데 사용한다'는 주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묘사인 것이다.
지금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쓴 서신에서 고린도전서 14장은 이런 정황에서 쓰여진 것이다.
03 방언은 하나님께 대하여 말한다는 뜻은?
고린도전서 14장 1절과 2절도 한묶음 묘사다. 역시 2절의 문장도 for ~ 문장으로 앞 절을 부연하는 서술이다. 1절은 예언을 하도록 사모하라(그렇지만 그것이 이웃을 섬기는 사랑의 행위여야 한다)고 하면서 그와 관련되어 예언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지만 방언은 하나님께 대하여 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것을 보고 아 방언은 하나님께 하는 것이니까 기도를 말하는 거구나 하고 속단한다.
그러나 이것은 방언으로 기도하라는 서술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방언이 성령께서 주신 은사라 하더라도 이것이 사용되는 용도는 '하나님께 대하여 하는 복음 증거의 일환'이며 사람이 일상 생활에서 복음 증거와 관련이 없는 잡다한 일상 다반사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사용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복음증거와 관련이 없이 일상생활에서 타 언어권 사람들에게 성령이 주신 방언을 남용하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4장 2절과 14절을 잘못 오해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오류 추정이 가능하다.
2절 방언은 하나님께 대하여 하는 것이고
14절 방언으로 기도하는 장면이 서술되어 있으니까
결론 ▶ 방언은 하나님께 대하여 기도하라는 것이로구나가 된다. 짬뽕이 되고 섞어찌게가 되는 것이다(하기야 별미기는 하지).
04 본 글을 쓰는 의도
어떤이의 주장이 관철 되는 것이 중요한가?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시면서 진리가 곳곳에서 선포되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항상 긍정 반응자와 부정 반응자가 발생한다. 그것이 복음의 속성이다. 빛과 어둠으로 나뉘어지는 계기가 되는 것 뿐이다.
당사자가 어떤 방향을 선택하든지 그것은 선택자의 몫이다. 내가 고집스럽게 어떤 주장을 펼친다고 해서 꼭 그것이 진리가 된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다만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위해 내가 도구로 사용되어졌는가의 확신이 든다면 그것으로 이미 상급은 주어졌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것이 언쟁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각자가 방언이라는 현상을 생각할때 참고 사항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그만이지 이것으로 해서 나에게 돌아오는 유익이라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된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이 글은 내 이익과 무관하다.
방언이라는 현상은 성령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작금 굉장히 많은 우려스러운 현상들이 성경의 가이드라인으로부터 벗어나 발생하고 있으며 고린도교회처럼 이방문화가 뒤섞여 무엇이 진위인지 판별하기 어려운 혼잡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투브의 영상들을 보면 (성경은 분명히 통역이 없으면 방언 기도를 하지 말라고 제안하고 있음에도) 와글와글 무엇을 위해 하는지도 모르는체로 의미없는 이상한 말들을 마이크로 쏟아낸다. 목사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마이크로 마음껏 떠들고 기도하는 대중들은 더러는 자기가 방언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마구 쏟아내어 혼란스러운 장면이 연출된다. 바울이 과연 이런 장면을 기대하고 고린도전서 14장을 썼겠는가?
첫댓글 말씀을 조각내어 자기 필요로 써먹는 자는 가룟유다의 영을 받은 자요 마귀가 그 속에 들어간 자입니다
방언한다고 씨부렁거리는 소리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현혹하고 혼란스럽게.하시 위하여 마귀가 쇼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주는 방언은 하나님의.뜻 영의 뜻을 말하고 있고 영의 뜻 하나님의 뜻을 해석 통역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씨부렁거리는 방언을 성령이 하게 한다고요
성령의 대하여 아시기 바랍니다
@sudo2000 씨부렁거리는 방언 은사는 마귀가 주었다면
성령이 준 방언의 은사는 어떻게 합니까?
성경의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것이 가장 정답일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 처럼 방언으로 기도할 때는 통역을 붙여 알아듣게 한 다음 청중이 '아멘' 할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가라고 하면 가고
멈추라고 하면 멈추면 됩니다.
여기에 자기 생각을 끼워 넣어 더하거나 빼는 것을 성경은 금지하고 있지요.
사울이 선지자들(사무엘의 생도들?)을 만났을때(삼상10:10),
또 다윗을 잡으려고 라마나욧에 갔다가 사무엘을 만났을 때(삼상19:23) 하루 밤낮 옷을 벗고
예언을 했다고 했는데,
방언을 한 것이 아닐까요?
@종 여호수아 [나바]의두번째 모음 <아>가 길면 "예언했다"는 뜻이지만,
그것이 짧으면 "뿜어냈다" "선포했다"란 말이 됩니다.
물론 마지막 자음이 전자는 알렙이고 후자는 아인이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발음은 아주 비슷하죠.
무엇보다도 사울이 예언했다면 그 내용이 기록되었을텐데,
그것이 없다는 것이 의아스럽습니다.
좀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4)."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19:6)."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10:45~46)."
""저자가 하느님을 안다고 누구를 가르칠 셈인가? 되지 못하게 계시를 받았다고 누구를 깨우쳐줄 셈인가? 겨우 젖뗀 아기에게나, 금방 젖꼭지 놓은 아기에게나 해보시라지!
저자가 하는 소리를 좀 들어보세. '사울라사우, 사울라사우! 카울라카우, 카울라카우! 즈에르삼, 즈에르삼!"(사28:9~10)"
방언은 전도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방언으로는 전도할 수 없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찌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고전14:21~23)."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말하는 자들을 통해서 말을 해줘도 이 백성이 깨우치지 못했다고 하지 않더냐!
온 교회가 방언으로 외친다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무식한 자들이 깨우치겠느냐?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깨우치게 하지 못하느니라!
이런 말씀입니다.
방언은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은사가 아니라
개인의 신앙을 세우는데 유익한 은사입니다.
님 선교사라는걸 어떻게 믿습니까??
어디가서 절대 선교사라고 명함 내밀지마쇼
방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건데
성경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례를 따질 필요 있어요??
마누라가 여의도순복음교회??
오산리금식기도원?? 어쩌구 저쩌구 자랑하는거 같던데
그 교회 목사님들은 방언하던데..??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
만일 사랑이가 미녀라면
나는 사랑이와 결혼하겠다
==>
실제로는 추녀라서 결혼 하지 않겠다는 뜻
즉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열매가 없으므로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겠다는 뜻
방언으로 해봐야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집회에서는 방언(교인들에게는 외국어)으로 말하지 말라
꼭 하려면 통역을 두어
복음의 비밀은 설명할때 알아듣게해라
그래야 열매가 열리것이 아니겠느냐
@관찰자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다른방언은 앗수르어를 가리킨다
앗수르어가 라랄라 따따다다 같은것은 아니고 이스라엘에게 다른민족의 언어 즉 오늘날의 말로 하면 외국어가 된다
방언의 의미 자체가 외국어나
지역언어라는 뜻이다
@관찰자 가서 학원이나 등록해 무식한 챨쟈야
이건 갈켜줘도 소용없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