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 庚寅일 월요일--나를 행복하게 하는 5가지
1. 오늘은 대공원 산에 갔습니다. 박물관에서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왔죠.
50분정도의 길이라 짧지는 않았습니다.
오늘은 절에서 좀 늦게 출발했거든요.
발인 시간이 7시인데 절에서 50분에 출발했으니 좀 늦었습니다.
룸에서 발인실까지 사진을 옮기는 것을 10분전에 하더라구요.
그러니 50분까지 룸에 가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발인에는 거의 참석 안하는데요, 그 이유는 요즘 장례지도사들이 그 역할을 잘 해주기 때문에 구지 스님이 하지 않아도 되겠더라구요.
스님이 주도가 되어서 발인 의식을 전부 총괄하면 좋은데 그럴려면 여러번 지도해본 경험이 있어야 하죠. 그리고 장례식장 마다 발인 분위기가 약간 다른 것도 변수가 되고요.
불교상조회사를 이용하면 불교식으로 스님까지 팀으로 연결되면 그것이 제일 좋긴합니다.
발인이나 입관, 화장 등의 의식에 스님들이 다 동참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가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저는 절 스케줄이 꽉차서 시간을 내기 쉽지 않습니다. 오늘도 49재 막재가 있는 날이죠, 이번 장례식장은 가까워서 5분밖에 안걸리지만 다른 장례식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막재는 일찍부터 시작하죠.
포교당에서 혼자 있으면서 그 모든 것을 다 동참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번 장례는 확실히 다른 장례들과 차별이 심했습니다. 모든 장례가 다 이렇게 스님도 자주가고 신도들도 많이 동참하면 좋으련만....
황룡사에서 요양원 운영하면 그 요양원에서 돌아가시는 분은 좀 더 촘촘히 기도해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발인에 참석하고 그 분들과 다시 절에 와서 몇사람을 더 태우고 등산엘 갔습니다.
난 입화산엘 가려했는데 보살님들끼리 입을 맞춰서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대공원으로 씽씽 달려 갔습니다.
2. 대공원의 길은 단순하고 넓습니다. 숲이 우거져 전부 그늘이기도 합니다.
박물관 뒤로 올라가서 충혼탑 쪽으로 내려와서 동문으로 이동했죠.
충혼탑까지는 산길이지만 그 후론 공원입니다.
높이 33미터의 어마무시한 규모의 충혼탑은 주위를 압도합니다. 괴목 가로수가 많이 자라서 굉장히 높은데다가 가을 바람속에 아침 햇살이 비추니 탄성이 아니 나올 수 없었습니다.
절에 돌아오니 9시 10분이네요.
3, 바로 법당에 올라가 49재 막재를 모셨습니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분인데 초재와 막재만 지내다보니 재자들과 소통이 많이 부족합니다. 49재를 매주 지내면 아무래도 재자들도 매주 보기 때문에 마음 가는 정도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정성을 다해 지내드렸는데요, 다 끝나갈 무렵 박보라 영가가 화장과 납골당 안치를 마치고 절에 왔습니다.
그래서 49재 막재 후에 바로 반혼재를 지냈죠.
공양간에서는 스님들이 공양 후에 지내는 줄 아시고 그리 준비했는데 재 지내는 우리는 아예 반혼재를 다 지내고 밥을 먹어야 우리 스님들도 편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4. 경조사에 함께 해주는 것만큼 좋은 도반은 없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수행할 때나 도반이 함께하면 큰힘이 됩니다. 기도 잘하고, 봉사도 잘하고, 공부도 좋아하며, 남 얘기(뒷담화)나 불평불만 안하고, 밥과 음료도 잘 사주는 도반이 있다면 천복을 타고 난 것입니다. 그런 도반이 없다면 내가 그런 도반이 되면 됩니다.
이번에 도솔행 보살님 큰 일을 치루면서 장례식장에 여러번 가서 도와주고 있어준 분들 너무 훌륭한 도반입니다.
발인에 화장터와 봉안당, 사찰까지 따라 다닌 분들은 진정 큰 위로가 됩니다. 운구차 뒤에 장의버스를 타고 가주셨습니다.
우리 황룡사 불자들의 성숙한 인격을 보니 자랑스럽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점점 더 각박해질 것입니다. 노령화는 어마무시해지고, 젊은이는 빛의 속도로 줄어들 것입니다. 대가족 시대에서 핵가족, 이제는 무가족시대로 접어드는 초입에 와 있습니다.
장례식장 문화도 엄청 변화가 심해질 것입니다. 가족과 이웃의 해체....
그런 가운데 우리 황룡사는 굳굳하게 전통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우리 도반들이 가족이 되어 경조사를 함께할 것입니다.
8~90이 되어도 절에 다니게 하고, 절에 못다니면 요양원에 있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도반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노후에도 친한 도반이 많아 든든하고,
병들었을 때도 도반들이 위로가 되어줄 것이며, 임종과 장례도 도반들이 치뤄줄 것입니다. 49재와 기일 챙기는 것도 도반들이 해주는 황룡사가 되어갈 것입니다.
5. 세등행 보살님이 이번 가을 칠성탱화 불사하면서 뭐 필요한 것 없냐고 물어보길래 고민하다가 간판이 필요하다고 했죠.
황룡사는 대불상이 옥상에 모셔져 있어 많은 분이 부처님은 알고 있으나 황룡사는 모릅니다. 그래서 간판을 좀 크게 해서 다는 것이 숙원이었습니다.
다행히 간판 불사를 해주신다는 분이 계십니다.
주택을 빨리 지어서 달아야겠습니다.
주택 도면이 나와서 거창 정말하 거사님께 전화하니 거사님이 지금 바쁘신 모양입니다. 어든가에서 2000평 공장을 지어달라고 해서 그것도 해야되는 등등,,,그래도 황룡사껀 도와주신다는데 밀착해서 꼼꼼히 체크해 줄 상황은 안되나 봅니다.
6. 울산 청소년 상담 복지센터에서 매월 1회 황룡사에 오셔서 요리를 하십니다.
소외받는 청소년들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제공해준다는데 마땅히 요리를 할 만한 장소가 없다며 요청들어온지 7~8년은 된듯 하네요., 흔쾌히 허락은 했는데 봉사 하시는 분들이 저녁에 하다보니 그 시간에 불자들은 집에 간 시간이니 문단속이 어렵고, 게다가 우리 하수시설이 잘못되어 있어서 자꾸 막히는데 그 주범이 기름때입니다.
이 단체에서는 기름진 음식을 많이 합니다. 사찰에서는 고기와 오신채를 쓰지 말아야는데 무료급식 때문에 조금씩 쓰고는 있지만 이 봉사단체에서는 양이 어마무시하니 그만하면 안되냐는 요청이 꾸준히 들어옵니다.
가스와 전기, 물 등은 우리가 무료로 다 제공 하고 있는데 하수까지 막히니까...
그리고 음식하는 그 순간에 냄새가 너무나 심하기도 하긴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계속 제공해드려야 한다고 고수하고는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7. 요즘 쌀 값을 세일하고 있습니다. 쌀을 많이 쓰는 우리 입장에서는 오천원 만원이 아쉽죠.
동문회장은 쌀값을 계속 주시하는지 싸게 나온 쌀이 있다면서 50포를 구입했습니다. 지난주도 그랬는데요..
그거 이성열*김명진거사와 재희*나원*도은*민심보살 그리고 제가 다 올렸습니다. 나중에 리안이와 가민이가 두포씩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저녁엔 양장식 거사님이 오셔서 부처님전에 올려져 있던 쌀을 새 쌀로 교체해주셨죠. 대단해요~~
쌀은 올리기도 힘들고 내리기도 힘들죠. 거사님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힘든 일을 해주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