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과거 군 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중에 인접부대에 근무하는 한 친구가 월남으로 떠나려는 내게 자기 여자친구와 나와서 커피를 같이 마셨습니다.
그 친구는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며 최고의 초긴장감으로 지낼텐데 펜팔을 할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지 않겠냐?
하면서 자기 여자 친구에게 한명 소개를 해주라고 하여, 한명 소개를 받았습니다.
해외펜팔은 고교시절에 해 봤지만 국내 펜팔은 해본적도 없어서 주소를 적은 성냥갑을 그냥 주머니에 구겨넣고 왔는데
월남에 가서 보따리를 펴보니, 그 주소를 적은 성냥갑이 들어 있네요. 당시 종이가 없어서 성냥갑에 적어 주었습니다.
과연 월남에 오니 느닷없는 총성과 포탄소리에 잔뜩 긴장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죽고 다치는 일은 비일비재 하였습니다.
월남에서 부대에 배치 받은지 이틀만에 적의 기습으로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는대, 그 때 늘비한 적군 시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디서 모여드는지 시체에 달려드는 파란 파리떼와 구더기떼에 역겨움과 인간 가치의 상실을 보면서
전쟁의 비극을 참담하게 경험을 하고는 나도 모르게 친구가 건네준 그 주소지로 편지를 썼습니다.
당시 편지가 갔다 오려면 약 한달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달여쯤 기대도 별로 안 했는데 답장이 왔습니다.
당시 그 대상자는 수유리에 살고 있었으며 우석대학교 식품공학과 2학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답장 내용이 너무 과도하게 생기발랄하여 나와는 성격상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한달에 한번 정도로 편지를 받으면 보내는 생활을 하다가, 귀국 한달전쯤엔 귀국하니 편지 하지 말라...
하곤 귀국해서는 전혀 소식을 알리지 않고 끊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만난 그 친구가 그 펜팔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 고 묻습니다. ㅎㅎ
그래서 자초지종 이야기를 하면서 편지는 주고 받았는데 성격이 너무 현대적으로 앞장서 나가 있어서 감당이 안되어
귀국전에 귀국한다 하고는 연락을 주지 않았다고 하였지요.
그래도 그 친구는 전쟁터로 나가는 내게 뭔가라도 도움을 주려고 했던 친구여서, 그 일 만큼은 고마웠다고 말했습니다.
펜팔이라 하여도 어렸다고 해도 상대에게 배려가 있어야 했는데, 자기 자랑과 더 즐기지 못하는 불평만 적어보내다니....
그렇게 국내 펜팔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첫댓글 위문의 글을 안보내고
자기자랑만 하다니요.
지금도 오직 자기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별로입니다.
정 떨어져요
당시 어려서인지 맨 놀러갔다온 이야기와 더 잘 놀지 못하는 불평만
푸념하는 호소하는 글이였습니다. 이해가 가면서도 속이 상하더군요.
한동안 편지를 끊었는데도 계속오기에 내버려 두었다가
귀국후 연락을 주지 않았지요. 감사합니다.
과연 키 하나는 큽니다 ㅋ
물론 체구가 크니
다 크겠지만요 ㅋ
사선을 넘는 전선에서
고약한 펜팔을 경험하셨군요.
감당 안되는 일
잘 접으셨지요.
인연을 이어갈 마음이 전혀 없더군요.
그래도 전선에서 몸 조심하라며 안부나 걱정의 말을 좀 써야 되는데
그런 말은 한강에 가져다 버렸는지 없고, 새내기들의 신나는 놀이 이야기만...
그래서 더 마음이 없어서 끝을 맺었습니다. ㅎ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펜팔이 유행했습니다
저도
펜팔하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한번 만난 적이 있지만
인연이 되지는 못 했답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옛날 월남에는 위문 편지가 제법 많이 왔었습니다.
우리 소대원중 한명은 꽤 여러명과 펜팔을 하였는데
작전에서 돌아오면 하루종일 편지 쓰는 것이 일이였죠.
그래서 그 병사에게는 볼펜도 더 주고 편지지도 많이 보태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몫의 위문대를 모두 병사들에게 나눠주고 갖지 않았습니다.
어제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나 펜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