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박씨[咸陽朴氏]시조(始祖)
함양박씨 시조는 박선(朴善)이 시다.
함양박씨(咸陽朴氏)는 신라(新羅) 시조왕(始祖王)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後孫)으로 고려조(高麗朝) 인종(仁宗.1123)~의종(毅宗.1170)때 문과(文科)조청대부(朝請大夫)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내고 증(贈)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와 함양(咸陽)에 살았기 때문에 함양군(咸陽君)으로 봉작(封爵)되셨으니 박선(朴善)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본관(本貫)을 함양(咸陽)으로 해서 세계(世系)가 시작(始作)이 되었다.
함양박씨(咸陽朴氏)는 고려조(高麗朝)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1世 박선(朴善)1112년생으로 예부상서(禮部尙書) 2世 인정(仁挺)1137년생으로 예부상서(禮部尙書), 3世 신청(信淸)1162년생으로 禮部尙書, 檢校神虎衛武德將軍, 4世 윤정(允禎)1187년생으로 判戶部尙書 太府卿, 5世 신유(臣蕤)는 1212년생으로 1237년 25歲의 약관(弱冠)으로 고려(高麗) 고종조(高宗朝)에 김경손(金慶孫)과 함께 호남에서 일어난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졌고 증금자광록대부(贈金紫光祿大夫)상주국판삼사사(上柱國判三司事)이고 시호(諡號)는 충질(忠質)이다.
여섯 아들을 두어서 6之派로 갈리는데 1파는 검교군기소감(檢校軍器少監)을 지낸 지문(之文)이 군기소감공파를 이루고, 2파는 위위윤(尉衛尹)을 지냈으며 문원공(文元公)의 시호를 받은 지빈(之彬)이 문원공파를 이루고, 3파의 지량(之亮)은 고려 원종 15년 (1247년)과 충렬왕 7년(1281년)2차에 걸쳐 麗,元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때 연합군의 고려군 도독사 김방경(金方慶)의 휘하에서 지중군병마사(知中軍兵馬使)로 출전, 대마도와 日本九州지방을 공략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때의 공으로 元나라로 부터 무덕장군관군천호(武德將軍管軍千戶)라는 벼슬을 받았고 上將軍으로 승진, 금페인(金牌印)을 받았다. 그 후 좌익만호,동북면병마경상전라도순문사(左翼萬戶. 東北面兵馬慶尙全羅都巡問使) 判三司事 등을 지냈으며 충렬왕 16년(1290년)이천현(伊川縣)에 침입한 합단적(哈丹賊)을 격퇴하여 外侵을 막았다. 뒤에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이르렀으며 판삼사사공파(判三司事公派)를 이루었다. 4파는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낸 지수(之秀)가 부사공파를, 5파는 감찰어사(監察御史) 지온(之溫)이 감찰어사공파를, 6파는 금오위중랑장(金吾衛中郞將)을 역임한 지영(之穎)이 중랑장공파를 이루었다. 아들 6지파(之派)에서 2파문원공파의 수가 제일 많고, 4파 부사공파와 함께 많은 인물을 배출 하였다.
[출처] 함양박씨[咸陽朴氏]시조(始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