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포천 아우름길
오월 셋째 수요일은 ‘뚜벅이’라는 이름으로 트레킹을 나서는 문우들과 같이 보낼 일정이 잡힌 날이다. 혼자가 아닌 일행이 있기에 배낭엔 간식거리로 전날 반송시장에서 사다 둔 족발을 담았다. 지난주 지인과 거제 국사봉에 올라 따온 곰취잎도 챙겼다. 곰취는 구운 목살이나 삼겹살로 싸 먹으면 좋으나 야외인지라 족발로 대신할 셈이다.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로 갔다.
꽃대감은 언제나 그렇듯 그가 가꾸는 꽃밭으로 일찍 내려와 꽃을 돌보고 있었다. 누구든 은퇴 후 어느 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몰입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입하가 지났고 며칠 뒤 소만을 앞둔 절기라 봄꽃은 거의 퇴장하고 여름꽃은 아직 철이 일러 꽃밭에 피는 꽃은 적은 편이었다. 그러함에도 친구의 꽃밭과 아래층 할머니가 가꾸는 꽃밭에는 아름답게 핀 장미가 제자리를 지켰다.
꽃밭에서 트레킹을 함께 나설 진해에서 찾아온 문우를 만났다. 꽃대감은 그에게 주말이면 서북동 전원주택에 머물며 가꾸는 꽃밭에 심을 꽃을 하나 챙겨 주었다. 엷은 보라색 꽃이 지고 나면 넝쿨로 뻗어 자라는 무늬 빈카였다. 빈카는 꽃을 감상하고 난 뒤 지표면을 싱그럽게 덮어주어 지피식물로도 알맞았다. 꽃대감과 헤어진 뒤 문우와 함께 건너편 아파트로 가 한 문우를 만났다.
간밤 늦은 시각에 인근 주택에 사는 한 고령의 선배는 밀린 청탁 원고를 해결하느라 무리해서인지 동행이 어렵다는 통보가 왔다고 해 아쉬웠다. 일단 셋은 자동차로 창원중앙역으로 이동해 마산에서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를 탔더니 창원역에서 먼저 타고 온 문우와 합류해서 완전체가 되었다. 우리가 가려는 행선지는 화포천 아우름길이라 십여 분 남짓 타고 간 진영역에 내렸다.
역사를 빠져나가 광장 쉼터에서 문우가 가져온 커피를 들면서 환담을 나누었다. 나는 진영역에는 며칠 뒤 노 대통령 기일이 되면 전국 각처에서 그를 추모하는 참배객이 몰린다고 지난날 분위기를 전했다. 진영과 한림정 일대 지형지물에 익숙해 트레킹을 나서는 일행의 가이드 역을 맡았다. 진영역에서 봉하마을로 가는 길과 반대편 화포천 생태학습박물관으로 가는 길로 안내했다.
근년에 개설된 부산 외곽고속도로 교각 아래를 지나자 화포천 배후의 광활한 습지 풀밭이 나왔다. 저만치 봉하마을에서 가까운 봉화산 사자바위가 드러났다. 화포천에 가로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탐방로를 따라 걸으니 이즈음 피는 야생화가 눈길을 끌었다. 지칭개와 석잠풀이 피운 꽃이었다. 유월 장마철에 절정인 찔레꽃이 철을 당겨 하얗게 피어 뿜는 진한 향기가 코끝에 와 닿았다.
탐방로에서 삼미마을을 비켜 둑으로 올라 생태학습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에서 전망대를 둘러 나오니 문화해설사는 전세버스로 온 탐방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해설사는 예전의 화포천 습지는 쓰레기더미였는데 고인이 된 노 대통령이 귀향해 환경에 관심을 가져 이처럼 유지한다는 공적을 빠뜨리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벚나무가 드리운 그늘 둑길을 따라 걸어 습지로 내려갔다.
갯버들이 무성하고 움이 돋은 갈대와 물억새는 왕성한 세력으로 자랐다. 습지 탐방로를 따라 걸으니 덤불을 이룬 찔레꽃 향기는 여전했다. 쉼터에서 배낭을 풀어 곰취잎으로 족발을 싸 먹는 식도락을 즐겼다. 이후 장방리 갈대집을 둘러 초여름 햇살로 느껴질 뜨거운 햇볕에도 나머지 탐방로를 마저 걸어 한림면 소재지까지 진출했다. 찻집에서 망고스무디와 냉커피로 더위를 잊었다.
찻집에서 가까운 골목길 주택은 주인이 정성 들여 가꾼 정원이 나왔다. 규모가 큰 화원에 못지않을 목본과 초본이 아름답게 피운 꽃을 구경했다. 이후 한림정역으로 가서 동대구에서 내려온 무궁화호를 타고 창원중앙역에 내려 신월동 어느 식당에서 초밥과 함께 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해가 길어진 때라 식후 용지호수 편백 숲으로 이동해 평상에서 세상 사는 얘기를 나누다 왔다. 23.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