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굴곡이 심한
역사를 살아왔다는 의미도 있을것이고
그 과정들을 통해
누적된 피해의식과 부정적인 심성을
이르는 말 일수도 있다.
우리들이 쓰는 일상용어 에서도
恨 에대한 표현이 많다.
대표적인 몇가지만
살펴봐도,
한많은 세상,
천추의 한이되어,
한이 맺히다,
한을 풀었다 등이 있다.
한국인 특유의 이 정서는
한문자 恨(한) 으로 그 뜻을 풀어내고
있다.
恨은,
마음심(心) 변에
그칠간(艮) 으로 짜여져 있다.
그칠간은 匕 와 目 을 따르고 있으며
匕目 은
눈을 서로 나란히 함(目相匕) 과 같으니
서로 낮추지 않음이다.
곧 피차
노한눈으로 낮추지 않고 봄이니
노여움을 품고 서로 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恨) 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나간 일이
원망스럽거나
원통하거나
억울하게 생각되어 응어리진 마음'
이다.
그리고
한(恨) 은
원한과 한탄의 준말 이기도 하다.
원망(怨望)
은,
남이 내게 한 일에 대해
억울하게 여겨 탓하거나
분하게 여겨져 미워하는 것이고,
원통(寃痛) 은,
분하고 억울함, 애석하고 안타까운 것이며,
억울(抑鬱) 은,
억눌리어 마음이 답답하고
불공평한 일을 당해 속이 상하고
분한것이다.
응어리는,
마음에 가시지 않고 남아있는 맺힌 감정이며
무언가 한데엉키어 뭉쳐있는
것이다.
恨 이 가지는
이 모든 뜻은 한마디로,
'가슴속 깊은곳에 감추어져 있는 분노' 라고
정의할수 있다.
恨 을
한국인의 원형질이며
대표적인 정서라고 한다면
우리처럼
불행한 민족이 어디 있겠는가.
'분노' 는
분해서 성을 내는것이다.
그러니
그 얼굴에는 표정이 없고
항상
싸운사람들 처럼 굳은 모습을 하고있다.
그리고
그런 마음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도
거칠수 밖에 없으며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내고 싸우게 된다.
우리의
최근세사에서 대표적인 공동체의 恨은
'일제의 식민지' 생활일 것이다.
광복이 된지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집요하게 '일본의 사과' 를 요구하고 있다.
이경우,
꼭
한가지 살펴야 하는 과제는
일본의 한,일합방,
즉
조선을 식민화 한것은
우리로서는 용서할수 없는 일이지만
세계열강이
식민지 지배로 세력을 확장하던
세계사적
안목에서는 그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냉정하게 말해,
우리가 약했기 때문에
강자인 일본에 먹힌것이다.
恨 이 가지는
아주 부정적인 내용이 바로 이
점이다.
원망스럽고 원통하고 억울한 지난일이
왜 내게
일어났는가 하는 공정성에서
자기 약점을 얘기하지 않고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강한자가 약한자를 먹는것은
원통할것도
원망스러울것도
억울할것도 없는,
그 모두가
'자신의 문제' 임을 간과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선이 일본보다 강했는데도
일본이 조선을 합방할수 있었을까.
같은시대
이웃인 일본은 강했는데
(그들은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에서 모두
승리했다.)
우리는
왜 그들에게 먹힐만큼 약했는가.
아무도
그 얘긴 하지
않는다.
그때
우리는 한 나라의 임금이
러시아 대사관으로 몸을 피해야 했으며
왕비가
일본의 낭인들에게 시해 당할만큼
무능한 왕실의 허약한
국가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중학생 이었을 때부터
이 恨 이란 말이 아주 듣기 싫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건 '열등감' 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강한자 에게는 恨의 감정이 없다.
게임에 졌으면
자기의 실력이 부족했다고 인정할
뿐이다.
그래서
재기가 가능하다.
지고나서
자기의 부족은 생각 안하고
이긴사람을 탓하고 원망하는 인간이
어떻게 발전할수 있겠는가.
현실에서는 지고
생각으로 이기려는 그릇된 마음이 恨 이
아닐까.
그건
패자의 망상일 뿐이다.
졌으면
진것을 깨끗이 인정해야
다시
일어설수 있고 성공할수 있다.
허구한날
제 부족은 생각안하고
남만
탓하고 원망하고 원통하게 생각한다면
앞날이 없다.
그래서
恨 의 정서는
이 지구촌 시대에는 맞지않는,
반드시 버려야할
국민정서다.
또한가지는,
恨 - 분노를 마음에 품고 살면
생활이 건강하고 건전해 지지 못한다.
가정에서,
대인관계에서,
사회공동체 생활에서
그건
아주 나쁜 부정적 기능을 하게된다.
사회전체가
'분노' 를 안에 감추고
살벌하게 사는 것이다.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각종 '시위' 를 보면 그건 자명해
진다.
크고작은 문제에 관계없이
무조건 '결사반대' 이며,
너무나
쉽게 '삭발'들을 하고 '혈서'를 쓴다.
그 모두가
얼마나 격렬한 모습들인가.
그렇게
우리는 매사에 너무 극단적이다.
흑백논리에 강하고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하며
그만큼
타협을 이루어 내는 '중간지대' 가 부족하다.
사회적인 모든 '쏠림현상' 도
그 속내를 드려다 보면
바로
이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의 큰 단점으로 지적받는
'냄비기질'
도 恨 의 심성에
그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 특유의 기질중
하나가
외화내빈(外華內貧) 이다.
겉은 화려한데
그 속은 빈곤한, 속빈강정이다.
온갖
사회적인 인프라의 하드웨어는
세계 일류급 이지만
소프트웨어는 그대로 후진국이다.
기백만원 짜리 옷을 걸치고
한줄에 천원하는
김밥을 사 먹는 형국이 그렇다.
총론에 강하고 각론에 약한,
명분만 찾다가
실속은 다 놓치는 어리석음이 그렇다.
인간이
그 겉을 꾸미고, 보이는 것으로
자기를 과시하려는 것은
그 바닥에 '열등감' 이 있어서 그렇다.
상대적인 보상심리가
그런것이다.
상식을 벗어나는
고가(高價) 의 상품들이 더 잘 팔리는것도
열등감을 자극하는 상술에
쉽게 뇌화부동하기 때문이다.
어느쪽을 살펴봐도
恨 은 긍정적인 면이 없다.
자기의 부족,
실력없음을 덮어둔채 남만 원망하는,
모든 탓을
남에게만 돌리는 잘못된 이기심이
그 바닥에 깔려있다.
우리도 이제는
이 부정적 심성을 버릴때가
됐다.
그것은 하나도
이익이 없는, 세습된 국민정서다.
적어도
자라나는 2세들 에게는
이 나쁜정서를 물려 줘서는 안된다.
그들은
이미 '지구촌'이 된
세상을 사는 새 세대들이다.
자기들 시대,
세상에 맞는 긍정적 마음을 가지도록 교육해야
한다.
우리들 처럼
가슴속 깊이 분노를 품고 사는
세대가 되게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들이 恨 을 버려야
한다.
恨 을
버릴수 있는 첩경은
자기자신에 대해 정직해 지는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처지와
수준, 실력을 인정하면 된다.
그렇게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해야 발전할수
있다.
첫댓글 우리의 국민성을 잘 애기 해주시네요...
싸움에서 지고도 속으로는 이기고 싶은 분노가 항상 가슴에 있어온 민족 우리.
좋은 면도 있지만 경쟁사회에서는 인정 할건 인정하고 살아야 더 강해질수 있다니...
약자임을 인정하고 강해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