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선물
책(수필집)을 펴내고 아내의 친구와 제자로부터 받았던 특별한 선물의 되새김이다. 매번 출간할 때마다 나와 아내의 지인들에게 의례적으로 보낸다. 책을 받은 뒤에 받는 인사 즉 반응은 참으로 다양하다. 같은 방법의 덕담이나 격려의 표현이라도 보내는 이에 따라서 맛과 멋이 천차만별이다.
책을 받은 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열에 여덟이나 아홉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음성통화나 문자 메시지 또는 이메일(E-Mail) 혹은 우편 따위이다. 나머지 한 둘은 이런저런 선물을 보내준다. 그런데 또 하나 다른 유형의 선물을 전해주는 유일무이한 분이 있다. 부산의 명지에 사시는 K 박사님으로 나와 갑장(甲長)이며 해방둥이다. 책을 전할 때마다 정성스레 친필로 쓴 축하 문구의 메모지와 현금을 넣은 봉투를 손에 쥐어 주어 보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한편 아내의 동창이나 제자들은 대부분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처지이다. 그런 까닭에 음성통화나 문자 메시지로 고맙다는 인사를 아내에게 보내오면 내게 구두로 알리거나 전송 내용을 직접 보여준다. 매번 어김없이 응원과 감사의 뜻을 보내준 대표적인 경우가 아내의 대학 동창인 진해 출신의 K 여사 부부이다. 부군은 미술을 전공하고 청파동에 자리한 자기 아내의 모교인 S 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사무처장 ‧ 미술대학장 ‧ 문화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한편 직접적인 유대 관계가 없는 내게 선물을 보내와 당황케 만들었던 아내의 친구들과 제자 중에 아주 특별한 경우가 둘이 떠오른다.
먼저 아내의 고등학교 동창인 L 및 K 여사에 대한 일화이다. 둘은 현재 서울과 성남에 거주하며 70대 말에 이른 지금까지 아내와 세 차례에 걸쳐 강화도(江華島)와 부산을 며칠씩 함께 여행했던 각별한 사이인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직접 대면했던 적이 없다. 그래도 책이 출간될 때마다 서명하여 한권씩 보내드린다. 의례적인 체면치레인지 아니면 진정인지 갈피를 잡기어렵지만 책을 받을 때마다 “감사히 잘 읽겠다.”는 인사를 보내오면 아내가 빠짐없이 전해준다. 그러다가 지지난 해 연말(2023년) 무렵에 출간을 축하한다며 둘이서 함께 뜻을 담아 상당한 상품권을 보내왔다. 그 마음이 고마워 아껴 두었다가 지난해 연말(2024년)에 그를 기반으로 정장 한 벌을 구입했다. 일터에서 물러난 뒤에 십 년이 훌쩍 넘어 외출복을 새로 하나 장만해야 할 계제이었는데.
아내는 처녀 시절에 중고교 교사로 재직했었다. 그 시절 담임을 맡았던 제자들 몇몇은 지금도 이따금 소식이나 선물을 보내온다. 당시 아내의 제자 A가 우리 가족이 마산으로 이사 왔을 때 군의관(대위)이 되어 진해에서 근무하던 시절 우리 집에 한 두 차례 놀러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다(1980년대 중후반). 지금은 성남에서 개업의로 병원을 경영하고 있는데, 새 책이 나올 때마다 한 권씩 보내고 있다. 아내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지독한 독서 마니아(mania)로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않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런 때문인지 아내에게 보내오는 문자 메시지 내용을 건네다 보면 저자인 내가 놀랄 정도로 책의 세세한 내용까지 꿰고 있기도 했다. 얼마 전(2025년 9월 30일) 출간한 ‘고린자비의 노래’를 보냈다. 책의 머리말 속에 올해 동짓달 초여드레 날이 우리 부부의 혼인 50주년이라는 내용이 적시되어 있다. 이를 정확하게 기억해 두고 있었던가 보다. 그날에 맞춰 우리 내외에게 행복하고 건강하시라며 아내에겐 스카프를, 내겐 겨울용 고급 장갑을 보내왔다. 자기 스승이 아닌 내게까지 신경을 써줬다는 사실이 더할 수 없이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히 송구하다.
솔직히 내 자신을 고백한다. 여태까지 나와 직접 연(緣)이 닿은 지인은 나름대로 챙겨왔다. 하지만 아내의 지인이나 제자들에 대해 배려하거나 제대로 신경을 썼던 적이 전혀 없다. 이런 처신을 해온 내게 아내의 고교동창인 L 여사와 K 여사를 위시해 제자인 A 원장은 많은 자성과 성찰을 하도록 일깨우고 있다. 뒤늦게 깨우쳐가는 처지인데 과연 나잇값을 해왔을까?
책을 보낼 때마다 숱한 지인들이 나를 감동시켜 일깨우며 자성(自省)에 이르게 한다. 여러 매체와 방법을 통해 각자가 전하는 진솔한 성원과 충고는 내게 용기와 자존감을 갖도록 고무한다. 또한 과분할 정도로 장문의 평이나 감상 내용 따위는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게기에는 글의 얼개를 위시해서 전개의 미숙이나 지나친 비약, 심지어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까지 꼼꼼하게 지적해주는 살뜰한 경우도 꽤나 많다. 이런 애정 어린 충고와 덕담을 글쓰기의 길라잡이나 나침반 삼아 보다 나은 글을 쓰기위한 밑거름이 된다.
글의 주제에서 다소 벗어난 소회의 첨언 하나이다. 책을 우송할 때마다 아쉽고 언짢은 구석의 숨김없는 고백이다. 평소 언행과 전혀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묘한 성격의 인사들의 행태 때문이다. 아무리 허접할지라도 저자의 철학이나 가치관이 담긴 책을 받으면 입에 발린 빈말일지라도 “잘 받았다. 고맙다.”라는 간단한 문자 메시지 정도는 보내 주는 게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평소 대면 과정에서 수인사를 나누는 사이임에도 책을 여러 차례 보내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무뢰한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런 부류들 중에는 특히 문학 단체의 장(長)이나 임원의 자리를 꿰차고 대문호라도 된 듯이 중뿔나게 설쳐대는 경우가 숱하다. 이 덜돼먹은 이들에게는 의례상 몇 차례 보내다가 루비콘(Rubicon) 강을 건넌 것으로 판단해 발송자 명단에서 제외시키고 교류를 단절한다. 자고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라는데 말이다.
나이와 인격의 폭과 깊이는 비례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여태까지 삶을 꾸리면서 직접적인 연이 닿던 쪽에만 생각이 머물렀다. 그러다가 아내의 친구인 L 여사와 K 여사를 비롯해 제자인 A 원장이 보여준 헙헙하고 열린 마음 씀씀이는 여든을 넘긴 내가 넘기 어려운 화두를 던져주며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줬다. 이제부터라도 거시적인 열린 사고(思考)를 바탕으로 처신한다면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져 한결 승화된 차원의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세상을 두루 아우를 재목으로 변신을 할 수 있을까.
한맥문학가협회사화집, 2026년(제20호), 2026년 4월 10일
(2025년 11월 18일 화요일)
첫댓글 사모님 친구분과
제자인 원장님까지
교수님의 수필집을 받은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삶의 동반자와같은
교수님의 수필 쓰기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길
응원합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