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태풍
태풍 이동속도 20% 느려져…
바람 약해졌지만 폭우 늘었죠
태풍은 열 운송하는 특급열차… 적도·극 지방 에너지 격차 없애죠
남태평양 미국령 괌 인근에서 발생한 제8호 태풍(typhoon) '마리아'가 북상하고 있어요. 대만은 바짝 긴장해 9일 해상 태풍경보를 발령했죠. 제주도도 마리아의 간접 영향권에 들어 물결이 높게 일고 있어요.
지난달 6일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에 지구온난화로 태풍의 이동속도가 느려지면서 한국이 그 피해를 가장 많이 받게 될 것이란 연구 결과가 발표됐어요. 태풍의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은 어떤 뜻이며, 왜 한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거라는 분석이 나왔을까요?
◇태풍은 열적 불균형 없애는 특급열차
미국 해양대기청(NOAA) 국가환경정보센터(NCEI)의 제임스 코신 박사팀이 인공위성 관측 데이터를 활용해 1949~2016년 사이 발생한 전 세계 열대성저기압(태풍)의 평균 이동속도를 분석했어요. 그 결과 지난 68년 동안 태풍의 이동속도가 지구 전체적으로 10% 이상 느려진 것이 확인됐어요. 특히 한국과 일본이 속한 북서태평양에서는 이동속도가 20% 줄어 다른 지역보다 더 느려진 것으로 나타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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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이동속도가 이렇게 느려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지구온난화 때문이에요.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적도 지방과 극지방 사이의 에너지 격차가 줄었어요. 원래 적도 부근은 태양열을 많이 받아 에너지가 많고, 극지방은 태양열을 적게 받아 에너지가 적어 격차가 발생해요.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진 채 태양을 돌고 있기 때문에 위도에 따라 태양에너지를 받는 양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열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지구는 자정작용을 한답니다. 바로 저위도의 열을 고위도로 운송하는 태풍이라는 특급열차를 편성하는 거죠. 태풍의 속도가 빠를수록 지구의 에너지 불균형이 금세 사라질 수 있어요.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적도 지방과 극지방의 온도 차가 줄어들면서 기압 차도 줄었어요. 바람은 이동하는 두 지점 사이 기압 차이가 클수록 세게 부는데 그 격차가 줄어들면서 태풍의 이동속도도 줄어들고 있다는 설명이에요.
◇태풍에너지의 근원인 습도 높아진다
남태평양 열대 바다에서는 한 해 평균 25개 태풍이 생겨나요.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은 한 해 평균 3개이고, 주로 7~10월 사이에 많이 발생하죠.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태풍의 개수는 많지 않더라도 태풍이 주는 피해는 매우 커요.
지난 4일 한반도를 피해 동해로 빠져나간 제7호 태풍 '쁘라삐룬'으로 6명이 숨지거나 다치고 1명이 실종됐죠. 또 8500㏊가 넘는 농경지가 침수됐어요. 그런데 코신 박사팀의 주장대로 태풍의 이동속도가 느려지고 바람도 약해진다면 우리가 입는 피해는 줄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 대기 중의 습도가 올라가요. 해수면의 온도가 1℃ 올라가면 습도는 7%가량 더 높아져요. 태풍을 형성하는 구름 덩어리는 수증기를 에너지원으로 삼아요. 따라서 수증기량이 증가하는 데다 태풍의 이동속도까지 느려지면 태풍이 지나는 지역에서 지금보다 훨씬 많은 폭우를 쏟아내게 되는 거죠. 즉 태풍의 이동속도가 느려지면 거센 바람으로 인한 피해는 줄어들 수 있어도 호우 피해가 더 심해진다는 거예요.
해수면 온도가 1℃ 올라갈 때 해양에너지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약 10만 배 크기로 상승해요. 다행히도 이 가운데 일부만이 태풍에너지로 쓰여요. 태풍의 이동속도가 느려져 바람의 세기가 약해지는 효과보다 구름의 형성과 발달이 더 강해진다는 이야기예요.
우리나라 주변의 해수면 온도는 지난 30년 동안 1℃가량 상승했어요. 지구의 해수면 온도가 100년 동안 평균 0.3~0.6℃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은 수치예요. 태풍의 이동속도가 느려져 한반도에 머무는 기간이 늘어난다면 한반도는 가장 빠르게 태풍에 취약한 지역으로 바뀌게 될 거예요.
◇지구온난화, 한반도를 조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경고'는 이뿐만이 아니에요. 코신 박사팀이 1980~2013년 사이의 세계 태풍의 이동 경로를 살펴본 결과, 태풍이 최대 강도에 도달한 위도가 매년 북반구는 5.3㎞씩, 남반구는 6.2㎞씩 극지방 쪽으로 옮겨 가고 있어요.
지난 30년간 북반구에서 태풍의 세력이 가장 강력한 지점은 적도 부근에서 약 160㎞ 올라갔다는 의미예요. 북반구의 경우 그 영향을 직접 받는 위치가 한반도 부근이에요. 그러므로 느려진 태풍 이동속도에 경로 변화까지 영향을 받아 한반도가 태풍의 가장 큰 피해 지역이 될 가능성이 커졌어요.
최근 울산과학기술원 연구팀도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추세가 유지될 경우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하는 태풍의 발생 빈도가 늘고 강도가 세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어요. 연구팀이 기후 모델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남중국해 남쪽과 필리핀해 동쪽 지역에서 태풍의 발생 빈도가 19.7개에서 20.7개로 늘어났고,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의 수가 17%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이제껏 지구는 스스로 열적 불균형을 없애기 위해 태풍을 만들어왔어요. 하지만 인류가 화석연료를 과도하게 쓰면서 지구의 자정작용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요. 더 강력한 수퍼 태풍이 몰려오기 전에 화석연료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서금영 과학 칼럼니스트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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