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 날의 동선
일기 예보는 하루 내내 간간이 비가 올 것이라는 오월 중순 목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전날 다녀온 화포천 탐방기를 쓰면서 거기서 본 석잠풀을 소재로 시조도 한 수 남겼다. 아침 식후 산행이나 산책은 강수가 예보된 관계로 나서질 못했다. 집안에 미적대다가 국수를 끓여 이른 점심을 해결했다. 면은 수산 제면소 국수였고 고명은 여항산 미산령에서 따온 영아자를 생채로 썼다.
비가 와 우산을 받쳐 쓰고 반송시장으로 나가 볼 일이 한 가지 있었다. 그간 쓰고 있는 휴대폰 문자 자판에서 한자 변환 키가 보이질 않아 대리점으로 가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어렵지 않게 풀렸다. 이후 원이대로를 따라 걸어 시청 광장 근처로 나갔더니 우중에도 무슨 단체에서 확성기로 왕왕거리는 시위를 펼쳐 소음 공해였다. 시위 현장을 비켜 용지 문화공원으로 진출했다.
내가 용지 문화공원으로 나감에는 거기서 하나 확인해 볼 게 있었다. 용지호수에서 도청을 기준으로 중앙 분리대가 설치된 넓은 도로 건너편이 용지 문화공원이다. 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도 많은 사람이 모인 행사가 열렸다. 야외무대에는 119 구조대서 실시하는 어린이 소방 안전 동요 경연대회가 진행 중이었다. 도내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여러 팀이 참가한 경연이었다.
사회자와 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옷차림을 예쁘게 꾸민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귀여운 율동으로 소방 관련 주제가를 부르고 청중으로 모여든 부모와 119대원들이 손뼉으로 화답했다. 나는 그 행사와 무관하게 용지공원에 세워져 있다는 최명학 시인 시비를 찾아 나섰다. 엊그제 장유 대청계곡에서 문학회 동인들과 걷기 행사 때 동행한 회장으로부터 최 시인 시비가 거기 있다고 들었다.
나와 최 시인과는 그가 와병 직전 짧게 스친 인연이었고 그동안 잊고 지냈다. 최 시인은 나보다 예닐곱 연상으로 중년에 뇌졸중이 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2000년대 초 안타깝게 생을 마쳤다. 최 시인의 작품을 언뜻언뜻 접했는데 영혼이 맑았던 시들로 기억에 남았다. 그간 용지 문화공원으로 가끔 산책해도 최 시인 시비를 모르고 그냥 스쳐 지나 살펴보고 싶어 현장을 찾아갔다.
최 시인 시비는 산책로 길섶 소나무 아래 자연석에 새겨 눕혀진 상태였다. 소록도에서 본 커다란 바위 더미의 한하운 ‘보리피리’ 시비를 보는 듯했다. 최 시인은 강원도 출신으로 마산이 수출자유지역으로 도시화가 이루어지던 청년기 우리 지역에서 생업의 터를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 시인의 ‘소곡’이라는 시를 바위에 새겨두었는데 글자가 희미해 판독이 어려워 아쉬웠다.
시비 앞에서 최 시인이 남겼던 많지 않은 시에서 맑은 영혼이 드러난 ‘칡의 노래’도 같이 떠올랐다. 용지 문화공원에서 KBS와 성산아트홀을 거쳐 용지호수로 왔다. 성근 빗방울이 듣는 호숫가 산책로를 한 바퀴 걷고 지압 보도가 설치된 편백 숲의 정자로 올라 한동안 명상에 잠겼다. 눈앞 호수 수면에는 빗방울이 떨어지자 연속해서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파문이 금방 사라졌다.
쉼터 평상에 멀지 않은 용지호수 작은 어울림도서관으로 갔다. 안면을 트고 지내는 서서는 점심시간 이후 찾아간 열람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서가의 책을 고르기 전 오늘 자 지방지를 펼쳐 기사를 살폈다. 그 가운데 내가 익히 아는 시조 문단 고수의 작품을 해설한 ‘시가 있는 간이역’을 유심히 살폈다. ‘어느 비둘기의 독백’에 대한 평설이었는데 평소 교류가 있는 분이 썼더랬다.
신문을 접고 서가로 다가가 읽고자 하는 책을 몇 권 가려 뽑았다. 창가의 테이블에 고른 책을 쌓아두고 한 권을 펼쳤는데 한때 강사로 명성을 날렸고 지금은 유튜브로 구독자를 만나는 여성이 쓴 책이었다. 어느 부분은 공감이 가기도 했지만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은 그냥 건너뛰며 책장을 넘겨 읽었다. 창밖에 가는 빗줄기는 그치질 않고 계속 내렸다. 날이 저물기 전 도서관을 나왔다. 23.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