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따스한 햇살이 비치니 천지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겨우내 방치해 두었던 휘장을 걷고 먼지를 털어내니
방 안 가득히 포근한 봄기운이 들이차는 느낌이다.
복도와 계단의 청문도 열고 오랜만에 물걸레로 바닥을 닦아본다.
남의 집에 주택에 무단침입, 슬며시 구석에 숨어 겨울을 웅크리며 지낸
먼지와 자잘한 거미줄과 흙부스래기들이 씻겨나가며 돌이 빛깔을 찾는다
딸이 모처럼 쉬는 날을 맞아 온천엘 데려다 주는 것도 생활의 즐거움이며
막내딸이 사용할 차를 사라고 걸려오는 안내전화를 받는 일도 흐뭇한 일이다.
따스한 봄날임에도 율암온천엔 한 겨울처럼 주차장이 뻬곡하다.
봄이라 하지만 아직도 가시지 않은 추위가 사람들을 온천으로 부르나보다.
가까운 곳에 여러 곳의 온천이 있기에 요즘은 온천욕 하는 일이 마치
도시에서 동네 목욕탕 가는 것만틈 수월해졌음도 시골에 사는 즐거움이다.
엊그제 온천을 다녀았음에도 아내는 굳이 또 온천욕을 해야겠단다.
어린 나이에 가깝지 않은 길을 통근하랴, 친구를 만나랴 바쁘게 살가가는
딸과 모처럼 함께 지내며 딸의 들이라도 밀어줘야만 맘이 놓이는 엄마의 정
- 우리나라의 엄마들은 예나 이제나 정으로 살고, 그러기에 사람들은 어리나
늙으나, 여자나 남자나간에 어머니를 찾고 그리워 하는가보다.
반면에 아버지는 언제나 묵묵히 일하고 스스로의 계획에 의하여 가정을 꾸리기에
여념이 없다. 평일에는 직장에 가서 늦도록 일하고 휴일엔 안식구가 미처 하지 못한
일들을 꼼꼼하진 못하나마 술렁술렁 해치우며 나날을 보낸다. 이 나라의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가족을 먹여살리는 일도 옥상을 청소하는 일도 거미줄을 거두는 일도, 벽에
못 한 개 박는 일도, 심지어는 국경일에 태극기 다는 일도 몽땅 아버지 고유의 일이다.
옥상에 널려진 집기와 물건들을 치운 뒤에 호스에 꼭지를 달아 애벌청소를 하곤
양말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그리곤 벽에 걸어 둔 청소용 츄리닝으로 갈아
입는다. 준비 끝. 장독과 평상 아래 뭉친 때를 벗기려 세제로 닦고 솔로 긁는다.
빌어먹을...사순절에 결별하기로 결심했던 담배를 여태 즐기다보니 벌써 숨이 차다.
스테파니아님은 발냄새 없애는 것, 아토피 고치는 법, 체중 줄이는 법을 알려주셨지만
끝내 담배 끊는 법은 알려주지 않으시는구나! 흡연엔 특효약이 없나? 괜시리 이래저래
사순저금통 배만 불리고 담배 태우는 습관은 그대로이니 안드레아는 손해만..ㅋㅋ
청소로 깨끗해진 의자에 앉아 맛있게 담배연기를 내뿜는데 다시 또 뜨르르르..♪
집 앞인데, 빈 방있느냔다. 내려가보니 아직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부부다.
살림을 하는데 맞벌이라서 평일에는 밤에만 집에 있는단다. 왜 묻지도 않는 말을..?
방 얻기가 어려웠는가? 아님 다른 이유가 있을까? 저녁에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다시 청소 계속....옥상 청소를마치고 계단을 정리하려는데 다시 뜨르르르르...♪
목욕 끝났으니 데려가라고..드릉드릉~~나는야 삼삼빌딩의 유능한 운전사..♬
비록 봄맞이(?) 감기를 앓고있긴 하지만 Cuswon님들이 염려해주신 덕에 아직 팔팔하다구!
청소를 마친 후에 들른 Cuswon에는 여전한 적막이 흐르는데....
이리저리 쏘다니면서 배꼽들을 치우고 숱한 배꼽들 틈에서 건져낸(?) 그림들을
이삭 줍듯이 모으면서 언젠가 돌쇠아범이 던져놓고 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본다.
가연(지금 이름은 *****)님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오늘도 즐거운 하루!
주님, 저에게 가정과 일과 Cuswon과 고객과 벗을 주심에 감사하나이다!
구두쇠 영감의 최후
<벽성·용두리>
아주 먼 예날, 황해도 벽성군 동운마을에 곽씨라는 부자 영감이 살고 있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수많은 하인을 거느리고 호의호식하는 등
세상에 부러울 게 없이 사는 곽노인이었으나 웬일인지 그에게는 소생이 없었다.
그래선지 곽영감은 매일 기생들을 불러 마시고 노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
그는 이렇게 돈을 물쓰듯 하면서도 동네 사람이나 일꾼,
그리고 걸인들에게는 어찌나 인색했던지 마을 사람들은 그를 구두쇠라고 불렀다.
김매던 일꾼이 잠시 쉬거나, 머슴이 병들어 누워 일을 못하면
품삯이나 새경을 감할 만큼 곽영감은 박정했다.
그의 집에선 거문고소리와 기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일 사이가 없었다.
인근 고을 걸인들은 이 소리에 솔깃해서 뭘 좀 얻어갈까 해서 매일 곽영감 집 앞에 몰려들었다.
구두쇠 곽영감은 이 걸인들을 제일 골치 아프게 여겼다.
『주인 어른, 한푼 줍쇼.』
『뭐, 한푼 달라구? 한푼은 커녕 반푼도 없다.』
기생들의 가무에 취해 정신이 없던 곽영감은
걸인들의 구걸 소리에 흥을 잃은 듯 버럭 화를 내며 하인을 불렀다.
『이놈들아, 저놈을 썩 내쫓지 못하고 뭣들 하는 거냐?』
분부받은 하인은 걸인의 행색이 하두 초라해 차마 밀어내질 못했다.
『주인 어른, 한푼이 없으시거든 밥 한술을 주시든지 그도 안되면 막걸리나 한사발 줍쇼.』
『여봐라, 저놈의 목이 컬컬한 모양이니 돼지막에 가서 뜨물이나 퍼다 얼굴에 끼얹어 줘라.』
뜨물세례를 받은 걸인은 욕설을 퍼부으며 달아났다.
그 후 곽영감 집에서는 걸인이 오기만 하면 으레 돼지 뜨물을 퍼다가 끼얹었다.
『허허, 다음에는 뜨물도 아까우니 똥물을 퍼다가 안겨 주도록 해라. 하하하.』
곽영감은 날이 갈수록 걸인 박대가 심해졌고 그 소문은 널리 퍼져 걸인들의 내왕이 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웬 탁발승이 곽영감 집 앞에서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하고 있었다.
『에이, 저 빌어먹을 녀석이 똥물 맛을 보려고 또 왔군.』
곽영감은 걸인이 왔는 줄 알고 소리를 치며 뛰쳐 나갔으나 의젓한 스님의 모습을 보고 주춤했다.
그는 문득 스님을 골려주고 싶어 나직한 목소리로 하인을 불렀다.
『여봐라, 저 중의 걸망에다 똥 한 사발을 퍼다 부어라.』
『예? 스님 걸망에 똥을요?』
『쉬이, 들을라. 어서 퍼다 주지 뭘 꾸물대고 있느냐?』
하인은 하는 수 없이 똥을 퍼 가지고 스님 앞으로 다가갔다.
눈을 감고 열심히 염불삼매에 든 스님은
걸망에 똥을 넣어주자 합장한 채 정중하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주인장, 대단히 고맙소.
걸인들이 자주 찾아와 몹시 귀찮게 구는 모양인데 내 좋은 비법을 알려 주리다.』
곽영감은 귀가 번쩍 뜨였다.
『좋은 비법이라고? 무슨 비법인지 어서 알려 주십시오.』
『뒷산에 가 보면 용머리처럼 생긴 바위가 있을 것입니다.』
『예, 있지요. 있고 말고요.』
『그 바위 머리 부분을 자르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걸인이 얼씬도 안 할 것입니다.』
곽영감은 기뻐 어쩔 줄 몰랐다.
노발대발 욕이나 퍼부을 줄 알았는데 똥을 받고도
걸인이 찾아오지 않을 비법을 일러주다니 곽영감은 마치 금을 캔 듯 신바람이 났다.
한시가 급한 곽영감은 즉시 일꾼들을 모아 뒷산으로 올라갔다.
일꾼들은 바위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바위가 워낙 크고 단단해서 작업이 수월치 않자 곽영감은 안달이 났다.
아무리 재촉을 하고 성화를 부려도 좀체로 구멍이 뚫리질 않았다.
한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는 동안 곽영감은 인부를 들볶다가
다시 술과 돈을 주며 달래면서 불철주야 일을 했다.
만 3개을 그렇게 계속 한 끝에 바위는 반쯤 갈라졌다.
곽영감은 더욱 인부를 독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인부 한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와 숨넘어가는 소리를 했다.
『저어 영감님, 크- 크- 큰일났습니다.』
『아니, 웬 수선이냐?』
『반쯤 갈라진 바위 목줄기에서 피가 흘러내립니다.』
『뭐 피가 흐른다고?』
곽영감은 놀란 인부를 앞세우고 용머리 바위로 달려갔다.
인부들은 놀라서 모두 일손을 놓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반쯤 갈라진 바위 목줄기에선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곽영감은 왈칵 두려운 생각이 들었으나
스님의 말이 떠올라 길조일 것이라 짐작하고 일을 계속토록 지시했다.
그러나 인부들은 얼른 나서려 하지 않았다.
『영감님, 이는 예삿일이 아닌 듯하옵니다. 곧 산신제를 지내고 공사를 중단함이 좋을 듯합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일을 계속해라.』
『아니옵니다. 소인들은 더이상 일을 못하겠습니다.』
『어허, 어서 저 바위 머리를 싹둑 잘라 내거라. 수고비는 내 두 곱으로 주마.』
인부들은 불길한 징조인 줄 알면서도 곽영감의 고집에 하는 수 없이 다시 바위를 자르기 시작했다.
바위가 피를 흘리기 시작한 지 사흘이 되던 날. 남은 부분에 금이 가면서 피가 철철 흐르더니,
동아줄을 걸어 잡아당기자 바위의 목이 힘없이 뚝 부러졌다.
그때, 하늘이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덮이더니 번개와 벼락이 떨어지면서 불바다를 이루었다.
곽영감은 고래고래 소리치며 하인을 부르다 벼락에 맞아 죽었다.
뿐 아니라 고래등 같은 곽영감의 집도 씻은듯 불타 없어졌다.
이 천지개벽이 있은 다음 동리 사람들은 사동리라는 옛마을 이름을 버리고
용의 머리라는 뜻에서 「용두리」라고 마을 이름을 고쳐 불렀다.
그 후 이 동네 사람들은 구두쇠 곽영감의 비참한 최후를 교훈삼아
이웃끼리 서로 도우면서 살기 좋은 마을을 이루었다.
또 효자 열녀를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묘를 쓰다 생긴 이변
<칠곡·송림사>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며 바람마저 세차게 부는 추운 겨울 점심 무렵.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성한 얕은 산에 화려한 상여 하나가 다다랐다.
관이 내려지자 상주들의 곡성이 더욱 구슬퍼졌다.
땅을 치고 우는 사람, 관을 잡고 우는 사람 등 각양 각색으로 슬픔을 못이겨 하는데
오직 맏상주만은 전혀 슬픈 기색조차 보이질 않았다.
40세쯤 되어 보이는 그는 울기는 커녕 뭘 감시하는 듯 연신 사방을 둘러보며 두 눈을 번득였다.
마을 사람들과 일꾼들은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죄송합니다. 오늘 장례식에서는 떡 한 쪽, 술 한 잔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또 새끼 한 뼘, 거적 한 장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 대신 일꾼 여러분에게는 장례식이 끝난 뒤 마을에 내려가 품삯을 곱으로 드리겠습니다.』
곡도 하지 않고 두리번거리기만 하던 맏상주가 당연히 나눠 먹어야 할 음식을
줄 수 없다는 까닭 모를 말을 하자 사람들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간밤이었다. 돌아가신 부친 옆에서 꼬박 이틀밤을 새운 그는 몹시 고단해 잠시 졸았다.
그때 그에게 선조인 듯한 백발의 노인 한 분이 다가와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맏상주는 명심해서 듣거라.
그대 부친의 묘자리는 길흉이 함께 앉았으니
잘하면 복을 누리고 잘못하면 패가망신할 것이니라.』
깜짝 놀란 그는 노인에게 매달렸다.
『어떻게 하면 길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내 말을 잘 듣고 명심해서 실천하면 되느니라.
좀 어렵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장례를 지낼 때
술 한 잔은 물론 물 한 모금도 남에게 줘서는 안되느니라.
만약 새끼줄 한 토막이라도 적선하게 되면 가세가 기울고
대가 끊길 것이며 이르는 대로 잘 지키면 가세가 번창할 것이다.』
단단히 일러주고 노인은 사라졌다.
맏상주는 아무에게도 이 사연을 공개할 수가 없었다.
행여 누가 음식을 먹을까 아니면
새끼 한 토막이라도 집어갈까 열심히 주위를 살피기만 할 뿐이었다.
주린 배가 움켜쥐고 부지런히 삽질을 하는 일꾼들은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나 보다며 수군거렸다.
이때 걸인들 한 패가 몰려왔다.
그러나 떡 한 쪽 얻지 못한 패거리들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세상에 막걸리 한 잔 안주는 초상집은 생전 처음이구만.
어디 요놈의 집구석 잘사나 봐라. 에이 툇.』
그러나 맏상주는 못들은 척했다.
혹시 걸인들이 행패라도 놓으며 음식을 먹을까 염려된 그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음식을 모두 집으로 가져가게 하고는 머슴에게 다시 단단히 일렀다.
아무도 음식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고. 그 광경을 본 걸인들은 상소리를 퍼부으며 돌아갔다.
맏상주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허나 그는 다시 걱정이 시작됐다.
「집으로 보낸 음식을 누가 남은 음식인 줄 알고 퍼가거나 먹으면 어쩌나.」
그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내 품삯을 세곱 네곱, 아니 그 이상이라도 줄 테니
묘를 다 쓰거든 거적과 새끼줄, 지푸라기 하나 남지 않게 모조리 태워 주시오.』
『아무래도 말 못할 깊은 사연이 있으신가 본데, 염려 마십시오.
이왕 물 한 모금 안 먹고 시작한 일 부탁대로 잘해 드리리다.』
두번 세번 다집받은 맏상주는 황급히 집으로 달려갔다.
막 대문안으로 들어서는데 아낙들과 걸인들이 시비를 하고 있었다.
맏상주는 미친 듯 두 팔을 내저으며 사람들을 내몰았다.
한편 산에서는 묘가 다 되자 썩은 새끼 하나 남기지 않고
흩어진 새끼줄을 긁어모아 태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깡마른 거지 소년 하나가 달달 떨며 모닥불 곁으로 다가왔다.
『이 녀석아, 저리 비켜라.』
『에이 아저씨, 거지는 모닥불에 살이 찌는 걸 모르시는군요.』
『잔소리 말고 어서 저리 비켜!』
일꾼 한 사람이 맏상주 부탁이 생각나 거지아이를 떠밀었다.
아이는 맥없이 땅바닥에 나가 뒹굴었다. 소년은 앙앙 울어댔다.
『불쌍한 아이를 말로 쫓을 것이지 밀기는 왜 미나?』
『글쎄, 가엾군.』
거지 소년은 일꾼들이 달래주자 더 소리 높여 울더니
막 불이 붙으려는 거적 하나만 달라고 애원했다.
『추워 죽겠어요. 그 거적 태우지 말고 나 주세요, 아저씨.』
『안된다.』
『태우는 것보다 내가 덮으면 좋잖아요. 네? 아저씨』
마치 사시나무 떨 듯 몸을 움츠리며 사정하는 거지아이를 보다 못해
일꾼들은 맏상주와 약속을 저버린 채 인정을 베풀고 말았다.
『얘야, 이걸 갖고 사람들이 보지 않게 저 소나무 숲으로 빠져나가거라.
누가 보면 우린 큰일난다. 알았지?』
『네, 이 은혜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거적을 뒤집어 쓴 거지 소년은 쏜살같이 소나무 숲으로 달아났다.
일군들은 적선을 했다는 기분에서 흐뭇한 얼굴로 연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꽝」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바로 거지 소년이 사라진 소나무 숲에서 난 소리였다.
놀란 일꾼들이 소나무 숲으로 달려가 보니 참으로 묘한 정경이 생겼다.
거지아이는 간 곳이 없고 숲속에는 보지 못한 절 한 채가 솟아나 있는 것이 아닌가.
일꾼들은 겁을 먹고 마을로 내려왔다.
그 후 묘를 쓴 집안은 날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거지에게 거적을 준 일꾼들은 차차 형편이 피면서 큰 부자가 됐다.
마을 사람들은 소나무 숲에서 솟아난 절을 송림사라 불렀고
가난한 이웃에게 적선을 베풀 때 복을 받는다는 교훈을 되새겨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살았다.
지금도 대구에서 안동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30리쯤 가면 경북 칠곡군 동명면에 이르게 되는데
면소재지서 동쪽으로 5리쯤 가면 신라 내물왕 때 창건됐다는 송림사가 있다.
이 절에는 국보 전탑과 순금의 불감 등 보물이 있다.
거지청년의 죗값
<공주·도척이바위>
사람들이 흔히 몹시 악한 사람을 일러 「도척이 같은 놈」이라고 말한다.
이는 옛날 중국 춘추시대에 9천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나라 안을 휩쓸며
악한 짓을 한 유명한 도둑 도척에 비유하여 생긴 일종의 욕이다.
엣날 백제의 도읍지 공주에 한 게으름뱅이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끼니를 굶기가 예사였다.
그러나 일할 생각은 안하고 때가 되면 이집 저집 문전걸식을 하면서 자란 탓인지
그는 청년이 되어서도 놀면서 얻어먹으며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다 그는 마음씨까지 아주 고약했다.
어느 날 아침 게으름뱅이 청년은 늦잠을 자고 난 뒤
밥 얻으러 가는 일마저 귀찮아 엊저녁에 먹다 남은 찬밥 덩이를 먹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스님 한 분이 찾아와 시주를 구했다.
『지나가는 객승입니다.
아침밥을 굶어 몹시 시장해서 그러니 밥을 좀 나눠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흥! 딴 데 가서 알아보슈. 남는 밥이 있으면 뒀다가 점심에 내가 먹겠소.』
욕심쟁이 청년은 자기도 배고픔을 겪고 있으면서도
남의 배고픈 심정은 조금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욕설을 퍼부었다.
스님은 돌아가면서 뭔가 주문을 외우듯 입 속으로 외웠다.
그러자 밥을 먹던 청년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뒹굴기 시작했다.
『아이구 배야! 아이구 배야! 사람 좀 살려주세요.』
스님은 이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이 마을 의원 박노인이 청년의 집앞을 지나게 됐다.
인정이 많은 박노인은 얼른 청년의 집으로 들어가 그에게 침을 놓고 약을 먹였다.
얼마 후 배아픈 것이 가라앉고 몸이 거뜬해지자 마음씨 고약한 청년은 엉큼한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 그 영감 돈을 울궈내면 평생 동안 편히 먹을 수 있을 거야, 히히.』
청년은 박영감 집으로 찾아갔다.
『영감, 당신은 내 병을 고쳐준다고 내게 약을 먹이고
침을 놓아준 뒤 우리 집에 모아 둔 돈 1만냥을 훔쳐갔지?
만약 내놓지 않으면 관가에 알려 혼을 내줄 테니 좋게 말할 때 얼른 내놓으시오.』
『이런 고얀 녀석 봤나. 목숨을 구해 줬더니 이제 와서 고맙다고 인사는 커녕 날 도둑으로 몰다니….』
박노인은 하도 어이가 없어 더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게으름뱅이 청년은 원님한테로 갔다.
『저는 비록 구걸을 해서 먹을지언정 얻은 돈을 아끼고 아껴
그간 일만냥을 저축해서 저의 집 항아리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한데 이 사실을 안 박노인이 제가 아픈 틈을 타서 제게 약을 주는 등
친절을 베풀고는 정신을 잃은 사이에 제 돈을 모두 훔쳐갔습니다.』
『소인은 평생 동안 의술을 인술로 삼아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도왔지
한 번도 누구를 해친 일이 없습니다. 이번 일은 참으로 억울하오니
사또께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박노인이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청년이 먹다 남은 약을 내놓고
그럴 듯하게 꾸며대니 원님은 그만 속고 말았다.
『의원 박씨는 청년에게 만냥을 돌려주도록 하라.』
박노인은 좋은 일을 하고도 하루 아침에 거지가 됐다.
반면에 게으름뱅이 못된 청년은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됐다.
청년은 좋은 집으로 옮겨 거드름을 피우며 살기 시작했다.
어려운 이웃에게 선심을 쓰는 척 이잣돈을 빌려주고는
제 날짜에 갚지 않으면 가산을 빼앗아 오는 등 날이 갈수록 심한 횡포를 부렸다.
좋은 집에서 잘 입고 잘살게 된 게으름뱅이는 이제 장가가 들고 싶었다.
청년은 가세가 기울어져 가는 이생원집 딸 달래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성질이 급한 그는 직접 생원집을 찾아갔다.
『소인 가진 것은 많지 않으나 이제부터 좋은 일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제가 가을 농사를 거둘 때까지 댁에서 필요한 식량을 대어드릴 터이니 부담없이 받아주시지요.』
이웃 마을까지 평이 좋지 않은 청년이 찾아와 뜻밖의 선심을 베풀자 이생원은 어안이벙벙했다.
『제가 그냥 드린다면 어른께서 받지 않으실 테니
이자는 그만두시고 가을에 능력껏 상환하도록 하시지요.』
무슨 속셈인가 싶어 사양하던 이생원은 살림이 워낙 궁색한지라
그만 청년 집에서 쌀 한 섬을 가져왔다.
보릿고개를 넘기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니 청년은 빌려준 쌀 한섬을 독촉했다.
그러나 워낙 어려운 살림에다 흉년까지 들어 생원 집에서는 갚을 길이 없어 내년으로 미뤘다.
『정 안되시면 댁의 따님을 저와 혼인토록 하여 주십시오.』
막무가내인 청년의 생떼에 이생원은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때였다. 밖에서 시주를 구하는 염불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얼마전 청년 집에 왔던 노스님이 서 있었다.
놀란 청년은 주인을 제쳐 놓고 스님 앞으로 달려갔다.
『잘 만났소. 지난번 당신이 다녀간 뒤로 내가 죽을 뻔했는데
이번엔 또 나를 어떻게 해치려고 예까지 쫓아왔소?』
『소승 몹시 시장하여 한 끼 식사를 좀 부탁하려는 참이오.』
『거짓말 마시오.』
청년은 재빨리 몽둥이를 높이 쳐들고는 스님을 향해 내리쳤다.
스님은 피할 생각도 않고 태연히 염불만 욀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님을 향해 높이 쳐든 청년의 팔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 청년은 서서히 바위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마음을 쓰지 않으면 개 돼지나 다름없는 법.
게으름뱅이 청년 너는 네 죗값으로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착한 마음으로 살아갈 때까지 그렇게 바위로 서 있거라.』
스님은 이 말을 남기고는 어디론가 훌쩍 가 버렸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도척이 바위」라 불렀는데 지금도 공주에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