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발레리나
배윤주
분홍빛 토슈즈 속에 온몸의 뿌리를 담고
한 점을 딛고 하나의 점으로 선다
비무장지대의 꽃으로 피는 순간이다
무음으로 보여지는 발차기의 소란한 채찍질 속에
핑그르르 시린 눈빛으로 풍요로워지는 팽이처럼
중심축의 시선은 수십 번을 돌아도
망설임 없이 한 지점만을 붙들고 있다
흔들림 없는 길을 지나온 몸짓은
수천만 번의 잔근육질로 칼날이 되었다
보다 더 아픈 것은 무딘 날로 생살을 찢는 것
문드러지는 꿈들이 터져 나온다면
울음 같은 수액은
진득한 딱쟁이로 남아 흉터가 될 테니까
빛을 뚫고 뻗치는 손끝이 얼음을 깨듯 날카롭다
예리하게 슥 - (‘아라베스크 하게 ......’)
현실의 소리 쓸어 올린다
단칼에 잘리는 면에서는 어지럼증이 투명하게 흐른다
좌회전하는 우주에서
우회전하는 발레리나
더 크게 돌고 있는 무대에서
발끝으로 돌리는 세상은
대롱 끝에서 퍼져나오는 환상의 원형인가
한 발로 서는 꽃대에도 오롯이 아득해지는 외길
발끝으로 서기 위해 지은 리본의 매듭 속에
이 순간을 향해 달려온 오랜 잔상이 하얀 꽃잎으로 흩날린다
발등이 일자로 뻗칠 때마다
낡은 아치 속으로 발끝을 세우는 고요
리본 없는 신발로 어린 발레리나 지켜보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3월호 발표
배윤주 시인
충북 영동에서 출생. 경인교육대학 및 한국교원대학 교육대학원 졸업. 2019년 《시와 경계》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2022년 시집 『옆으로 누운 말들』 출간. 현재 『시와경계』 회원, 『시산맥』 회원, 『현대시학』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