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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아무나 글을 써도 된다 하기에 몽골에서 발표한 논문을 참고 자료로 올립니다. 이 글을 작성하는 데 도움을 주신 구중회 원장님께 감사 드립니다.
한국과 몽골의 자연 인식 및 풍속의 비교
조 동 길(소설가/공주대교수)
1. 들어가며
2. 양국의 자연 인식 비교
3. 양국의 자연에 대한 풍속 비교
4. 나오며
1. 들어가며
최근에 방영된 “기황후”라는 드라마는 고려 시대에 공녀(貢女)로 원나라에 끌려간 한 여인이 숱한 파란곡절의 권력 투쟁을 거쳐 마침내 황후의 지위에 오르는 과정을 다루어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내용 가운데 역사 기록과 차이가 나는 부분 때문에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희소한 역사 기록과 작가의 상상력을 결합하여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한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을 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드라마의 중심 스토리 라인은 한 마디로 미천한 신분의 여인이 최고 권력의 핵심 지위까지 신분 상승을 하는 과정이다. 이런 신분 상승의 성공은 “춘향전”처럼 서민 대중들의 평소 꿈을 상상 속에서나마 실현시킨 효과로 연결될 수 있고, 또한 고난 끝의 승리라는 인류 보편적 모델을 구체화한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도 충분한 동감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7백여 년 전의 원나라가 그 배경으로 되어 있지만, 당시 고려와의 갈등 관계 등에서 볼 때 한국과 몽골의 관계를 다시 되돌아보게 해 준 면에서 현재 시점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듯 원나라는 고려를 수차례 침공함으로써 고려는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기도 했고, 황룡사탑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가 소실되기도 했으며, 그들의 실질적 지배로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었다.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기는 하나 고려는 그들의 침략에 맞서 끈질긴 항쟁을 계속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곳곳의 원나라에 대항한 삼별초 유적들, 예컨대 강화도, 진도, 제주도의 항몽 유적 등은 지금도 우리에게 주요한 역사적 자산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처럼 두 나라는 오랜 기간 동안 갈등과 대결의 관계를 이어 갔으나 자의든 타의든 유형무형의 교류를 지속함으로써 우리 민족에게 오늘날까지 적지 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것은 몽골 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몽골과 우리나라의 친연성은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가령 인류학적으로 인종을 분류할 때 ‘몽골반점’이라는 용어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점이나 언어학적으로 보아도 몽골어와 한국어는 계통적으로 이웃해 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고려 시대에는 두 나라 왕실 간에 정략적인 혼인 관계가 이어져 수시로 사람들이 왕래하며 문명과 문화를 교류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몽골의 풍속이 우리나라에 유입되기도 했을 것이고, 반대로 우리나라의 풍속이 몽골에 흘러들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원나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없어져 버렸어도 그 문화의 잔영은 민중 속에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이 적지 않다.
현재 시점에서 볼 때 두 나라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은 말할 것도 없고, 학술과 교육, 문화와 기술 등 여러 방면에서 두 나라는 서로 협력 내지 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런 관계는 앞으로 점점 더 확대되고 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교류와 협력에는 당연히 상호 이해가 필수적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결여된 교류는 지속가능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이 글에서는 두 나라의 자연 인식과 풍속에 관한 비교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양국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데 작게나마 기여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두 나라의 친선 관계를 넓혀가는 데 조그만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2. 양국의 자연 인식 비교
‘자연’이라는 말은 사전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저절로 생겨난 산, 강, 바다, 식물, 동물 따위의 존재, 또는 그것들이 이루는 지리적, 지질적 환경’으로 정의된다. 이 개념에 따를 때 자연의 범주는 매우 포괄적이고 광범위하여 인간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인위적이지 않은 거의 모든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명료하게 범주를 정해 논의해야 하는 학문적 영역에서 이를 다루는 데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은 자연 인식 내지 자연관을 다루는 데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 양적 방대함은 물론 시각과 관점에 따라 의견이 엇갈릴 수도 있고, 또 서로 다른 견해가 충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네티즌들이 많이 활용하는 구글 포털에서 ‘한국인의 자연 인식’을 입력하면 약 120만 건의 자료가 검색된다. ‘한국인의 자연관’으로 검색해도 약 13만 건의 자료가 제공되고 있다. 이들 자료의 영역은 지리학, 식물학, 동물학, 사회학, 조경학, 건축학, 지질학 등의 학문은 말할 것도 없고 인문학이나 풍수지리까지 실로 관련 안 되는 쪽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전 방위적이다. 타 학문에서 다루는 자연 인식이야 그 쪽 분야 학자들의 관심사일 것이고, 문학 작품을 창작하고 공부하는 우리의 관심은 문학 쪽의 자연 인식이다. 그래서 범위를 문학 쪽으로 좁혀 학술 자료 전문 검색 포털인 RISS에 ‘문학에 나타난 자연’으로 검색해 보아도 약 3천 5백 건이나 되는 자료가 나온다. 이 많은 자료들을 일일이 수집하고 검토하여,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매우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런 작업은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 둘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이 글에서는 그런 전문적인 자료들은 일단 접어두고,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하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수준에서 두 나라의 자연 인식을 정리한 다음 둘의 비교를 통해 어떤 공통점과 차이가 있는지 간략히 살피고자 한다.
1) 한국인의 자연 인식
반만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인의 자연 인식을 몇 마디 말로 요약한다는 것은 만용에 가까운 무모한 일일 수 있다. 문학 작품으로 범주를 제한한다 해도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에 관한 한국인들의 공통된 정서나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자연 인식 및 문학 작품에 나타난 자연을 소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랜 세월 중국과 교섭을 맺어온 까닭에 중국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그를 따르는 것을 몸에 익혀왔다. 특히 산이 많고, 사계절이 분명하며, 맑고 청명한 날씨로 계절에 따른 다양한 생활 습관 및 놀이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계절과 자연에 순응하는 생활 태도는 열두 달 동안 정교하게 짜인 각종 놀이나 축제에 잘 나타난다. 예를 들면, 설날, 한식(寒食), 초파일, 단오, 유두일(流頭日), 칠석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놀이들은 단순한 오락적 차원을 넘어 종교적 행사와 결합되면서 고유한 민족문화를 형성해 왔다. 또한 여러 자연적 요소를 신격화해 숭배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즉 하늘, 별, 바람, 비 등의 천체 현상과 땅, 산천, 바다 등 지상의 온갖 현상들을 신앙적 차원에서 신성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자연물 배후에 어떠한 거룩한 힘이 존재하고 있다는 인식과 연결된다. 이런 인식은 심리적인 지향성과 사회관계로 확장되고, 나아가 예술적 감각을 발전시켜 한국적인 미를 형성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런 자연 인식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삼국시대에는 세 나라 모두 산천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1393년 정월에 산천과 성황신들에게 호국백(護國伯)이란 봉호를 내리기까지 하였다. 많이 사라지기는 했으나 현재도 전국 곳곳에 산신당이나 성황당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8세기경 풍수지리설이 도입되어 들어와 도선(道詵) 등에 의해 크게 유포된 이후 왕실의 능묘 조성이나 사찰 건립, 민간 주거지 선정 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런 태도는 자연과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인간과 자연 및 신과의 밀접한 연결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문학 작품에 나타난 자연 인식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신화를 보면, 단군 신화나 주몽 신화 등에 나오는 신은 서양의 경우처럼 초월적 절대자로서의 신이 아니라 자연 안에 존재하는 자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신을 자연의 일부로 인식하면서, 이 세계를 창조주의 피조물로 보지 않고 자연의 생기현상으로 파악하는 동시에 자연은 에너지의 수지균형으로 바라보는 감성적 사고와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자연이 곧 신이고 신이 바로 자연이 된다.
이런 자연 숭배 사상은 신라 향가에도 계승되면서 일부 변화도 일어난다. ‘찬기파랑가’의 ‘물’이나 ‘원가’의 ‘잣나무’ 등은 기원과 서약의 대상으로 신령스러운 자연물이다. 즉 자연에 영적인 힘이 들어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자연 인식은 인간과 자연의 교감 혹은 등질적(等質的)인 것으로 바라보는 것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구체화한 것이 바로 산천에 대한 제사 의식이다. 신라 사람들은 중국의 전례에 따라 명산대천에 크고 작은 제사를 올렸는데, 그런 중에도 탈해 신화의 본산인 토함산을 동악대왕으로 선도성모신화의 본산인 선도산을 서악대왕으로 봉작하여 제사를 올림으로써 그들의 고유한 자연 신앙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이런 제사의식화로 인해 신라인들의 자연 인식에 일부 변화가 일어나고, 또 불교 의식과의 결합으로 더 큰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연 인식이 변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 시대 속요에 나타나는 자연은 숭배의 그것이라기보다는 개인감정과 상당 부분 관련되어 있다. ‘동동’의 물이나 얼음, ‘청산별곡’의 청산이나 새 등의 자연물은 숭배의 대상 또는 교감의 매개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개인감정을 더욱 절실하게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자연물이다. 전 시대의 자연이 집단 감정의 대상이었다면 고려 속요의 자연은 개인감정 표현의 대상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 개인감정은 자연 친애적인 것이 아니라 다분히 허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이 노래들이 정든 사람과의 이별을 제재로 하고 있는 것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나 불교의 제행무상이라는 무상관과도 연관이 있을 듯하다.
시조와 가사에는 자연을 즐기고 예찬하는 것들이 유독 많다. 정극인의 ‘상춘곡’을 비롯하여 퇴계와 율곡의 시조, 송강과 노계의 가사, 고산의 시조 등에는 다양한 모습의 자연이 등장한다. 이들 작품에 나타나는 자연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유가적 자연관으로 자연을 ‘이(理)’의 표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고, 또 하나는 ‘흥’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다. 성리학에서의 ‘이(理)’는 사물의 질료적 측면을 ‘기(氣)’라고 하는 것에 대응하여 원리적 측면을 가리키는데, 이에 따르면 자연물은 바로 ‘기(氣)’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연은 단순한 완상의 대상이 아니고 우주 만물의 도리가 현실화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자연과 개인의 성품은 기와 이의 관계로 대응이 되고, 그것은 곧 물아일체의 경지로 환치되어 인성 도야와도 직결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자연은 신비나 허무의 대상이 아니라 합일과 조화의 매개물인 셈이다. 당연히 도가의 무위자연 같은 자연 인식은 이들에게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자연을 ‘흥’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도 단순하게 즐기는 것을 넘어서는 뜻을 담고 있다. 자연을 즐기되 감정이입을 통해 격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은근하게 완상함으로써 금욕주의적 안빈낙도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유가의 교육 또는 수양과 연관이 된다 할 것이다. 시조와 가사의 자연관은 결국 자연 친애의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문학에 나타난 자연은 민요나 소설 등 더 많이 있을 것이나 여기에서 논의한 것들과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어 생략하기로 하며, 이 내용을 종합해 보면 한국인의 자연 인식은 대체로 자연에 대한 외경심, 생태적 조화, 교훈을 얻는 대상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겠다.
2) 몽골인의 자연 인식
몽골 사람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땅과 생활 방식의 특성에 따라 독특한 자연 인식을 형성하여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척박한 땅과 목축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 방식에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자연은 개발이나 대결의 그것이 아니라 공생과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은 그들의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몽골 사람들은 예로부터 하늘 아버지, 땅 어머니라고 하여 태양과 별, 땅과 산, 강, 동식물들을 종합된 것으로 인식하여 존중하며 살아왔다. 그리하여 “몽골 비사” 등의 자료를 보면 오래 전부터 자연을 보호하는 내용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기도 하다.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은 자연보호가 권장 사항이 아니라 그것을 어겼을 때 처벌이 따르는 강제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몽골에서는 이처럼 강력한 규제를 통해 절대로 자연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 나름의 고유한 자연 인식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균형을 생각하면 여기서도 몽골의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거기에 나타난 자연 인식을 다루어야 하겠으나 필자의 역량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므로 여기서는 주로 보편적인 차원에서 몇 가지 자연 인식의 실상을 살피고자 한다.
‘이해 차사게’라는 고대 몽골 법에는 ‘땅에 음식물을 흘리거나 가축의 우리 안에서 오줌 누는 것을 금하며 이를 어길 때 사형에 처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또 ‘땅을 함부로 파헤치고 불을 놓아 목초지를 태우면 사형에 처한다.’는 조항도 있다. 모두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생존 조건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런 정신은 현대 법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1996년 국가최고회의에서 제정된 ‘산불보호법’ 같은 것이 그것이다.
17세기에 호탁타이 왕자가 제출한 동물 보호에 관한 법에는 동물을 죽였을 때 내야 하는 동물 몇 마리 식의 벌금이 규정되어 있으며, ‘몽골 어이라드 법’에는 이동할 때 불을 잘 꺼야 하고, 산불이 나지 않게 예방함은 물론 산불 진화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할흐 조르마’에는 수질을 오염 시킨 사람에게 내리는 벌금이 규정되어 있는데, 물을 오염시킨 사람은 말이나 소를 벌금으로 내야 하며, 남의 물을 빼앗으려고 다투기만 해도 말을 벌금으로 내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는 물을 구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적절하게 같이 사용하거나 초원에서 목축을 하는 사람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양반 차세게(10권)’에는 지하자원에 대한 보호가 규정되어 있다. 각 지역의 우두머리는 그 지역의 금이나 모래 등을 보호하여야 하며 이를 어겼을 때 벌금을 내거나, 일정 기간 월급을 깎거나, 매를 맞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 ‘세관 및 관세(13권)’에는 외국인이 몽골에서 집을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면 그 규모에 맞는 세금을 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와 같이 몽골에서는 오래 전부터 산천, 식물, 가축, 수질, 지하자원 등 자연을 보호하는 일을 법으로 정해 규제했는데, 이는 열악한 자연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생존 전략 또는 삶의 지혜가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법을 통한 자연 보호의 전통 외에도 몽골에는 자연 인식을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들이 꽤 있다. 몽골의 신화 및 전설 등을 모아 놓은 책에는 옛 몽골 사람들의 자연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가 잘 드러나 있고, 또한 선사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몽골의 문화를 역사적으로 정리해 놓은 책에도 자연환경과 암각화를 비롯한 예술 부문에서 자연 인식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몽골의 자연 지리에 관해서 산과 강, 호수, 동식물 등의 자료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자료도 간접적으로 참고할 수 있다. 이런 자료들을 종합해서 살펴볼 때 몽골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 및 인식은 크게 자연에 대한 신성성 부여,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 그리고 생존을 위한 지혜의 대상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3) 비교
몽골과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자연적 조건이 많이 달라서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것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상호 문물 교류가 오래 이어져 온 결과 동질적인 면 또한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두 나라 사람들의 자연 인식으로 범위를 좁혀 보았을 때도 이런 양면성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자연을 신성시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태도는 두 나라에 공통되는 인식인 반면, 자연을 그 원형대로 보존하려는 강력한 규제 및 법제화와 자연을 즐기고 완상하며 거기서 삶의 교훈을 얻으려는 태도는 차이점이라 하겠다. 이는 두 나라 사람들의 민족적 기질과도 관련되겠으나 더 크게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여하튼 자연을 통해 현재의 삶을 더 안전하고 또 오래 지속하게 하려는 인식이나 태도는 비단 두 나라뿐만 아니라 인류 공통의 보편적 자연 인식이기도 할 것이다.
3. 양국의 자연에 대한 풍속 비교
인류가 이 땅에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에 대한 여러 풍속도 함께 비롯되었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 그런가. 예나 지금이나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수시로 생존을 위협하는 갖가지 불안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그 가운데 가장 직접적이고 심각한 불안은 아마도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자연 재해였을 것이다. 이런 불안을 감소하고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자연재해를 유발하는 원인을 생각해야 하는데, 미개한 상태에서는 정확한 해결책을 찾기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선의 방책으로 생각해 낸 것은 자연 재해의 주체를 설정하고, 그에 대한 신격화와 동시에 기도와 제사를 올리는 일이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게 바로 원시 종교인 정령 숭배 사상이고, 고대 사회의 제천 의식으로 대표되는 샤머니즘이다. 이런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의 대상은 바로 하늘, 땅, 산천, 강, 나무, 바위, 동식물 등의 자연물들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바로 자연에 대한 풍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범주가 광범하듯 자연에 대한 풍속 또한 마찬가지로 그 범주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많다. 이를 모두 살피기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과 몽골의 경우로 한정해도 그 작업은 녹록한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이 글에서는 지극히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 두 나라의 자연에 대한 풍속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 대상은 자연물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땅(흙)과 물이다. 이 둘은 자연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질료이자 생명을 탄생시키고 유지하는 필수적 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느 민족이든 이에 대한 풍속이 가장 다양하고, 또 이는 오래 지속되며 전승되는 속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는 양국의 땅과 물에 대한 풍속을 정리한 후 간략한 비교를 통해 공통점과 차이점 및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1) 한국의 땅과 물에 대한 풍속
대부분의 천지창조 신화나 건국 신화에는 대개 땅이나 물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이 둘이 세상 만물의 구성과 국가의 성립에 필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건국 신화인 단군신화에도 단군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하늘의 존재이고, 그 아들인 단군은 땅의 존재로 되어 있다. 여기서 하늘은 신령의 영역이고 땅은 사람과 짐승의 영역이 된다. 이런 구분은 신과 인간, 거룩함과 세속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 인간 세상의 절대적인 삶의 조건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하늘과 땅의 관계가 바로 인간의 남녀, 부자, 군신의 관계로 환치되어 일상생활의 도덕 내지 규범에 영향을 미쳐 사회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질서와 위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땅에 관한 풍속을 몇 가지 예시해 보기로 하자. 아이를 낳는 여성으로 상징되는 땅은 곧 생명 유지에 필요한 곡식을 생산하는 터전이며 그것은 여성을 밭, 남성을 씨앗으로 상징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런 생각은 바로 땅을 신성화하는 것으로 연결되어 토지 신에 대한 의식으로 구체화된다. 국가에서도 곡식 신과 토지 신을 중요하게 여겨 이를 사직(社稷)이라 일컬으며 국왕이 주재하는 나라 의식으로 매우 중시했음은 서울의 사직동이라는 지명이 실증한다. 국가의 토지 신에 대한 경배는 지역에서 성황신으로 변이된다. 각 지역의 성황신은 군사적 목적도 있었지만 그 지역을 주재하는 신령으로서의 성격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리하여 그 지역 사람들은 성황당을 신성시하며, 여기에 자신의 소원을 빌고 병과 고난을 물리치기를 기원하는 종교적 위상을 부여하였던 것이다.
불교의 지옥은 인간 삶의 터전인 땅의 아래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이며, “최고운전”에 나오는 지하 세계 또한 이와 동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지하 세계의 상정(想定)은 지상 세계의 질서 유지를 위한 상상의 소산이라 할 것이며, 이와 연관된 다양한 풍속 또한 그것에 힘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서사 무가나 굿에 나오는 천지창조 신화에서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내용은 흙이 인간의 시원이자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대변한다. 흙을 신성시하는 풍속은 이밖에도 많이 있다. 붉은 흙을 벽사(辟邪)의 용도로 사용하는 일은 아주 흔했고, 불에 덴 화상에 벽의 붉은 흙을 긁어 물에 타서 복용하는 것, 상사병에 황토를 은단처럼 만들어 먹는 것, 각기병에 고향의 흙을 먹게 한 것, 유행성 감기에 황토에 똥을 섞어 환으로 만들어 먹게 한 것,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선비들이 성균관이나 문묘의 흙을 먹는 것,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병에는 조상의 무덤 흙을 먹게 한 것 등 흙에 관한 풍속은 민간 신앙 및 민간요법에 수없이 많다. 이는 대체로 색깔의 상징성을 활용하거나 소망 실현을 기대하는 유감주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물에 관한 풍속 또한 흙에 관한 것 못지않게 다양하게 존재한다. 물이 존재하는 형태가 비, 이슬, 눈, 서리, 샘, 우물, 시내, 강, 바다 등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흙에 관한 것보다 양적으로는 오히려 더 많을 수도 있다. 물 또한 인간 생명 탄생과 유지에 필수적이므로 이를 신성시하는 풍속이 많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제주도 천지왕 본풀이 신화의 천지창조 과정, 동명왕 신화에서 그 어머니인 유화부인의 아들 출산, 박혁거세 부인 알영의 탄생 과정 등은 모두 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의 바다나 연못, 샘 등은 물이 가진 풍요성과 생명력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일부 신성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나중에 신성한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바리공주 신화에서 물은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재생의 기능을 갖고 있다. 이런 물의 기능은 곳곳의 약수 신앙으로 현실화되기도 하고, 백제 무왕의 탄생 설화에서 보듯 생명 탄생의 원천으로 상징화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물이 가진 또 다른 주요한 기능은 재생력 내지 생명력이다. 이런 기능을 구체환 것이 바로 용 신앙인데, 농경 풍요 기원의 용왕 먹이기, 샘이나 우물을 이용한 집안의 재앙 물리기 민속 등은 그런 사례가 된다 할 수 있다. 물의 정화력도 여러 풍속을 만들어냈다. 여인들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정결한 곳에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하는 것이나 제사나 마을 공동 행사 때 제주들이 목욕재계하는 것 등이 물이 가진 정화력을 활용하는 풍속이라고 할 수 있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 우물을 치우고 거기 비치는 달을 보면 행운이 있다고 한다거나 이 달 그림자를 용의 알이라 하여 아이를 못 가진 여인들이 마시면 아이를 낳는다는 풍속도 있었다.
종교의식에서도 물은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불교에서는 계욕이나 부처님 탄생일에 행하는 관욕을 통해 물의 정화력을 활용한 수도를 강조하고, 부처님 앞에 청결한 물을 공양으로 올리기도 한다. 천도교에서는 기도를 할 때 반드시 청수를 앞에 놓고 한다. 이는 물의 부정을 쫓는 힘, 병을 치유하는 힘,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힘 등을 활용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간에서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현수라는 물을 올렸는데 나중에 이것이 술로 대체되었다.
문학 작품에서도 물이 작품의 주요 제재가 되거나 혹은 핵심적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공후인’에서 물은 죽음의 매개물이며, ‘구지가’나 ‘해가’에서 수로 부인과 연관된 물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매체, 혹은 인간과 신성한 자연을 연결해 주는 주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가사나 시조 등에도 물을 제재로 활용한 것이 꽤 많은데, 자연을 즐기면서 동시에 그것을 스승 삼아 본인의 수양을 위한 계기로 활용하는 지혜를 보여 주고 있다. 현대문학 작품에도 죽음을 상징하는 ‘무녀도’의 물을 비롯하여 다양한 물의 형태를 제재로 한 작품은 수없이 많다. 이런 문학 작품 속의 물을 모두 살피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땅과 물에 관한 풍속은 그 양적 방대함은 물론 다양성에서도 한이 없을 정도이므로 주마간산 격의 이 글에서는 극히 부분적인 몇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하여 소략하게 살피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혜량해 주기 바란다. 위 내용을 종합하여 마무리하자면 한국인의 땅과 물에 관한 풍속은 자연을 대결과 개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존과 화합의 상대로 설정하여 생태적인 조화를 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우리 민족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가치관이며 한국인의 독특한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몽골의 땅과 물에 관한 풍속
몽골 사람들이 땅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가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몽골 최초의 국가인 흉 누의 시조 마오든 시아뇨라는 왕은 이웃 나라에서 말을 달라고 하면 주고, 왕비를 달라고 했을 때도 그대로 주었는데, 국경 지역의 땅을 달라고 했을 때는 신하들과 논의하다가 넘겨주자고 주장한 사람의 목을 베어 버리며 ‘땅은 그 나라 존재의 기본 조건’이라고 말한 다음 그 이웃 나라를 침공하여 점령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몽골 사람들은 땅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관념이 예전부터 있었다.
이런 관념은 곧 그들의 땅에 대한 나름의 인식을 형성하게 되는데, 땅을 생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인체와 동일시하는 생각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땅과 강과 산을 인체의 육신과 혈관으로 인식하여 마치 그것이 끊어지면 사람이 죽듯이 강산을 훼손하면 땅이 죽는다고 생각하였다. 이 때문에 함부로 땅을 파는 것을 금하고, 구멍을 팠으면 반드시 다시 메워야 하며, 못 같은 것을 꽂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풍속이 생겨났다. 살다가 보면 부득이 우물을 파는 등 땅을 파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땅을 향해 덕담을 하며 향을 피우고 경을 읊어 예경을 표한 다음에야 행했다. 이러한 땅에 대한 풍속들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해야 한다는 여러 규제로 현실화되었는데, 몽골 사람들은 그런 법을 어기는 데서 받아야 하는 불이익 때문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생존의 필요성 때문에 그것을 오래 지키면서 살아온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몽골에는 총 6만 9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3천 8백여 개의 강과 3천 5백 개의 호수, 7천여 개의 생물, 130여 개의 약수가 있다고 한다. 총 물 보유량으로 보면 세계에서 27위에 해당된다. 그러나 전체 국토 면적이 넓어 지역적으로 물이 부족한 곳도 많다. 특히 몽골의 주생활 양식인 유목민의 경우 계속 이동해야 하므로 정착민이 고정적으로 물을 이용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를 경우가 많기도 하다. 따라서 몽골 사람들이 목축이나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물을 소중히 여기고, 그에 따른 여러 풍속이 생겨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할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이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몽골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물을 원래 모습대로 지키고 오염시키지 않는 전통을 만들어 유지해 왔다. 약수터나 시내 등지에 푸른 천을 걸어 놓아 불필요한 접근을 통제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나 빨래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다. 또 인간이나 가축에 병이 나면 약수에 안 좋은 것을 버려 신이 화를 냈다고 생각하여, 유제품이 묻은 국자나 그릇 같은 것을 그 물에 담가 오염시키는 것을 철저히 금했다.
봄철에 흐르는 강물은 생물이라고 하여 몸을 씻지 않았는데, 이는 얼음이 녹는 시기에 익사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기도 했고,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지 않으려는 뜻과 함께 새로 돋아나는 어린 풀이나 꽃을 밟지 않게 하려는 보호 때문이기도 했다. 항 헹타이 산에서 내려오는 어닝, 밍지, 예러의 온수는 13세기부터 약수로 이용되어 왔는데, 이 약수의 치료 효과 때문에 이 근처에서 가축을 도살하거나 그 상류 혹은 바람 부는 방향에는 집을 짓지 못하게 하고, 쓰레기 버리는 것이나 오줌 누는 것도 엄격히 금지했다.
이 외에도 물에 관한 풍습이나 금기가 상당히 많은데, 예를 들면 약수 물을 귀중히 여겨 거기에 푸른 천이나 가축 뼈를 걸어 놓는 것, 강을 건널 때 말에서 내려 이마에 물을 바르는 것, 바가지 없는 우물에서 물을 먹을 때 양말을 벗어 물어 적셔 먹거나 양말을 물에 담그는 척하고 모자에 담아 먹는 것, 제사를 지낼 때 서낭당을 쌓고 세 번 돈 다음 물을 향해 기도하는 것, 빗물을 손으로 받아먹는 것을 금하는 것, 불에 물을 뿌리지 않는 것,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이 집에 들어갈 때 불을 피우고 약수로 세수를 하는 것, 임산부의 출산 후 피 묻은 것을 물과 멀리 떨어진 곳에 묻는 것 등이다.
이런 물과 관련된 금기나 풍속들은 개인의 안전한 생존은 물론 공동체 생활을 위한 조화와 타인 배려를 위한 것으로서 이는 몽골 사람들에게 과거 그들 조상들의 체험이 온축되어 내려오는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런 것들을 통해 일상의 위험을 피하고, 생존을 지속하며, 나아가 후대를 위한 예비까지 하게 되니 여기에는 몽골 사람들의 역사와 전통은 물론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살아 있는 지혜가 축적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 비교
두 나라의 땅과 물에 관한 풍속을 간략하게 살펴본 결과 상당 부분에서 공통점도 있고 동시에 차이점도 있었다. 공통점은 자연을 잘 보호하고 아껴서 후손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두 나라의 자연 환경이나 생활양식이 서로 다른 데서 오는 것으로 생존 조건 및 현상적 차원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통점은 과거 두 나라의 오랜 교류와 교섭에서 주고받은 영향관계가 큰 비중을 차지하겠으나 생존을 위한 자연의 보호 및 숭배 사상은 인류 보편적인 성격도 아울러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차이점은 서로 다른 지형과 기후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잘 활용하는 오랜 경험의 축적 및 지혜의 소산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상통하는 점도 있다고 볼 수 있다.
4. 나오며
한국과 몽골 두 나라는 과거 오랜 교류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근대에 접어들어 단절된 채 지내오다가 1900년대에야 다시 교류를 시작하였다.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같은 아시아권에 속해 있기는 하나 거리도 멀고, 또 문화와 생활 여건이 달라서 이웃해 있는 나라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두 나라는 오랜 세월 동안 협력과 교류, 또는 대결과 갈등의 관계를 지속해 왔다. 고려 시대에는 침략을 통해 지배와 피지배의 갈등을 겪은 반면 왕실의 혼인과 더불어 인적, 물적 교류가 이어져 상호 문화와 문명의 교섭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 결과 두 나라 사이에는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여러 영향 관계가 적지 않다.
두 나라 사이의 교류는 앞으로 다방면에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교류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이해관계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게 뻔하다. 따라서 상호 이해는 두 나라의 교류에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이 글에서는 상호 이해의 전제 차원에서 두 나라의 자연에 대한 인식 및 풍속에 관해서 극히 제한적인 범위의 자료를 통해 살펴보았다.
자연에 대한 인식을 비교해 본 결과 두 나라는 동일하게 자연을 보호하고, 아껴서 후대에 잘 전해 주어야 한다는 인식을 공통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이렇게 자연을 신성시하고 외경심의 대상으로 보거나 또는 생태적으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한다는 인식, 그리고 자연이 인간에게 말없는 교훈을 주고 있다는 인식은 인간이 주어진 자연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인류 보편적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차이가 나는 자연 인식은 각각 주어진 생존 환경이나 삶의 조건에 따라 형성된 것으로 이 또한 두 나라 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땅과 물을 중심으로 한 자연에 대한 풍속 역시 두 나라 사이에 공통점과 차이점이 발견되었는데,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거기에 동화되어 자연을 닮아가려는 태도는 서양 사람들처럼 자연을 개발과 이용의 대상으로 보아 파괴, 변형, 소실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서로 공통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두 나라는 땅과 물에 관해 다양한 풍속을 형성하고 존속해 왔다. 차이가 나는 점은 대부분 두 나라가 처해 있는 환경이나 생활 방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현상적으로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경험의 온축이나 전승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차원의 것으로 이해가 가능하며, 이는 결국 생존을 위한 지혜의 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근대 사회의 특성상 인간들이 자연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최소한으로 그쳐야 한다. 마구잡이로 자연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이상 기후 현상 등에서 보다시피 악영향을 끼치지만 후대들에게는 돌이키기 어려운 재앙일 수도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았을 때 한국과 몽골 사람들의 자연을 보호하고 그를 닮으려는 인식은 매우 소중한 교훈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그런 인식을 구체화한 자연에 대한 두 나라의 다양한 풍속들도 현재와 미래에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관한 태도와 시각에 아주 유효한 지침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끝으로 이 작은 글이 한 방울의 물이나 한 줌의 흙처럼 그 비중은 미미하겠으나, 두 나라의 향후 상호 이해와 교류를 위한 긍정적 관점을 형성하는 데 조그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 참고문헌은 각주로 대신함.
A Recognize on the Nature of Korea and Mongolia,
and a Comparison of Custom
Cho Dong Keel(novelist/ KNU professor)
Korea and Mongolia, the two countries are geographically belong in Asia, however it is difficult to say neighboring countries. Because these two countries are far away and different on the culture and living conditions.
Nevertheless, the two countries have continued for a long time cooperation, exchanges and the relationship of confrontation and conflict historically. As a result, there are still remaining interesting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this article, I investigated a recognize on the nature of Korea and Mongolia, and a comparison of custom, On the basis of mutual understanding through the very limited range of materials. The difference of a recognize on the nature is due to the given survival environment and life condition. This is reflected in the wisdom of the two countries.
The two countries also have been discovered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in recognition on the natural custom with a focus on land and water. The attitude of preservation and assimilation on the nature is different from recognition of western people, thinking as the object of development and use, destroyed and transformed.
To this end, the two countries have been retained to form a customs on a variety of land and water. Most of the differences between the two countries, due to the environment and life method.
Essentially, though having the differences of phenomena, the two countries have the same point of view, such as the maintenance of tradition and experience. Which in turn can be seen as the expression of wisdom for surv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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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꼭 몽골을 다녀온 느낌입니다. 사진도 넣어주시면 더욱 실감이 더하였을 것인데.... 하여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