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해석학에 대해서
* 지금은 1997년도이고, 성경의 완성은 200-400년 정도이고, 공관복음은 70년경으로 본다. 자, 그러면 성경책이 여기에 있는데, [ 두 지평 ] 의 저자 씨슬튼에 의하면, 현대에 놓여있는 우리에게 성경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이 성경을 어떻게 해석을 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의 해석을 달랑 들고 현대로 와서 집어넣으면 된다는 것이다.
* 즉, "네만 신앙이 있나, 나도 신앙이 있다" 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다머의 주장이고, 리꿰르의 주장인 것이다. 성경의 계시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그 당시 사람들의 언어를 해석을 해서 그래서 지금으로 가지고 와서 해석을 하면, 같은 인간끼리 통한다는 것이다.
* 해석학 - 성경은 이미 종결이 되었으니까, 그 당시의 것을 그대로 끄집어내면 되는데, 이렇게 끄집어내는 것을 바로 해석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예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있으니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의 능력을 발휘해서 성경을 제대로 해석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성경은 하나의 문학작품이 때문에, 그 당시의 '삶의 정황' 을 파악해서 그들이 어떻게 해석을 했는지를 살펴보면 끝난다는 것이다.
* 그러면 어떻게 끄집어내는가? 그것은 생각보다 쉽다. 성경은 언어로 되어 있는데, 이 언어 속에는 대화가 있는 것이다. 신과 인간의 대화인데, 신은 보이지 않으니까 언어의 영역에서 제외를 시키고, 선지자나 사도들이 백성들과 양쪽이 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것이 되는 것이다.
* 여기서 화자(話者)와 발화자(發話者)가 생기는데, 화자는 무시해도 괜찮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내가 설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중요한 것은 발화자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살펴보면 되는 것이다. 이 발화자의 증거물이 바로 성경이라는 것이다.
* 기호학 - 성경이 언어로 되어 있으니, 발화자의 구조를 파악하면 되는 것이다. 콜롬보 탐정이 되어서 추적을 하는 것이다. 귀납법적, 혹은 가정법적으로 말이다. 이렇게 구조를 파악하는 학문을 기호학이라고 한다. 언어학은 또 다른 것이다. 이 기호학만 알아 버리면 모든 염려는 다 붙들어 매어 두라는 것이 바로 씨슬튼이 적은 [ 두 지평 ]의 내용인 것이다.
* 그런데 이 씨슬튼이 사도바울의 서신들을 살펴보니까,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해놓고, 어떤 경우에는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관성이 없는 것을 하나로 합치려고 하면, 기호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 기호학은 연역법이 아니기에, 어떤 실제를 가지고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고, 증거와 증거들을 가지고 원래의 진리를 끄집어내는 것이기에, 모순되면 모순이 되는 데로 그냥 두자는 것이다. 이것이 샌더스의 주장이기도 하다.
*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이미), 행함으로 구원을 받습니다(아직)" 를 둘 다 말해 버리면 우리의 임무는 끝이라는 것이다.
* 이것이 김지찬이 그렇게 주장을 하는 것인데, 그는 칼빈주의이고, 뭐고 기존의 교리는 다 부수라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를 정당화하는 것이기에 주석학에 어긋나는 것이고, 성경은 오직 성경으로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너무 멋있다! 오직 성경만을 주장하는 것인가?
* 그래서 성경 신학자들은 조직신학을 싫어하는 것이다. - [ 총신 신대원, 과연 칼빈주의인가? ] 참고
◈ [ 총신 신대원, 과연 칼빈주의인가? ] 에서
키 크고 성숙미가 풍기는 한 아가씨가 구멍가게에 들어선다.
"아저씨 담배 있어요?"
그러나 주인 아저씨는 침착하게 행동한다.
"아가씨, 혹시 고등 학생 아냐?"
그 순간 아가씨는 자기 행동에서 혹시 허점을 보였을까 싶어 안정을 유지하려 한다.
"아저씨 무슨 말이에요? 이래봬도 저 대학생이에요. 알 것 다 알아요"
하지만 주인 아저씨는 빙그레 웃음을 띠면서 다음과 같이 대꾸한다.
"그래 요즈음 아이들 모르는 게 없지. 그런데 말이야 너 고등 학생 맞지 그지?"
* 이러한 내용들이 계속 이 글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이제 성경 해석학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교리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성경 자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면 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호학, 구조주의 등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들은 너무나 자신 만만해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수준을 아니까 말이다.
◈ 기호학의 세 가지 요소 - ① 기호 설화 구조
② 담화 구조
③ 텍스트 구조
* 목회자는 이러한 것을 알아야 한다. 기호학자아 철학자들이 이러한 것을 말할 때에는, 이것이 인간 심성에 다 들어있는 것이기에, 죄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에, 목회자가 민중들의 죄를 모르고서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겠는가?
(1) 기호 설화 구조
* 이것은 인간의 의식이 어떠한 구조로 되어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관계가 있다.
① 반대관계 - 예를 들어, 남성이라고 해보면, 남자는 여성과 대비되고, 이것을 변별성이라고 하는데, 인간에게는 이러한 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② 모순관계 - 여기에는 비(非)가 들어간다. 남성은 비남성, 여성은 비여성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대 관계는 항상 있어서 공존을 하는데, 그런데 이 모순 관계는 비공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없지만은 사고 속에서 생각이 나는 것이다. 비남성은 하나님이나, 천사 등이 될 수도 있는데, 눈에 보이지는 않고 의식 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③ 함축관계 - 이 비남성은 여성을 함축하게 되는데, 이것을 함축관계라고 하는 것이다.
* 남자를 다시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면, 남자의 반대관계는 여자이고, 모순관계는 호모이고, 그리고 이 호모의 함축관계는 여자라는 것이다. 즉, 여성이 되고 싶은 모습을 함축하고 잇는 것이다.
* 이 세 가지 관계 외에는 성립하지를 않는다. 이 세 가지 관계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호학의 전부이다.
* 여기에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은 언어로 되어 있고, 이 언어는 변별성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언어로 된 성경을 가지고 이 세 가지 관계에 집어넣으면 변별성이 파악이 되니까 해석이 끝났다는 것이다.
* 예를 들어서, "악인은 흥왕치 못하다" 라는 본문으로 설교를 하면, 첫째로, 악인은 변별성이니까, 반대관계로 받쳐주어야 하니까, "의인은 흥왕한다" 라고 나오고, 둘째로,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의인인가?"(함축관계), 셋째로, "어떤 사람이 악인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런 사람이 악인이다" 라고 얼마든지 설교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을 예로 들면, 하나님의 반대관계는 인간이고, 모순관계는 비하나님이고, 함축관계는 비인간이 되는데, 오히려 이 비인간이라는 말은 신적인 느낌마저 주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를 작성하면 첫째, 인간은 비하나님이니까 죄인이고, 둘째,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면 우리도 구원받을 수가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모든 의미라고 하는 것은 개체에 담겨있는 것이 아니고,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 그래서 이 관계는 세 가지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만 파악을 하면 언어로 된 성경은 얼마든지 그 계시를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 성경 해석학의 치명적인 문제점 -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성경책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인간의 언어만을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다 엉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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