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사태 현상수배 강도 전과자 김현장도 원주(카톨릭 교구)서 검거 조선일보 1982/04/03
문 방화사진 찍어 위에 보고 하겠다 …배후 추궁
모 수사기관은 2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배후 조종자로 광주사태 가담지명 수배자 김현장(32 전남 강진군 칠량읍 영동리 469)을 검거 범행 내용을 추궁 중이다.
김은 문부식과 마찬가지로 카톨릭 원주 교구에 은신해 있다가 이날 오후 4시 한신불로 부터 모기관에 신병이 인계되어 검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은 방화 주범으로 검거된 문부식을 추궁한 끝에 문을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가 드러나, 이날 오후 전국에 지명 수배 된후 검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 광주사태 이후 현상금 20만원에 현상수배 됐었으며 강도 전과자 였다.
경찰이 문의 배후 조종세력이 있다고 본 근거는 문이 범행 직전 문화원 부근 [마로니에] 다방에 방화조와 불온전단 살포조를 모아놓고 각자의 임무를 재 확인 시킨 뒤
{나는 현장을 지키며 사진을 찍어 위에 알리겠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아내 문이 그의 범행 내용등을 보고해야 할 [배후]가 있음을 암시했다는 검거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새 공범 유승렬도 - 한편 부산시경은 방화 주범 문으로 부터 사건 당일 유나 백화점에서 불온전단을 뿌린 공범이 부산대 공대 기계공학과 3년 유승렬(21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1동 130의 1)이란 자백을 받았다는 통보에 따라 유를 전국에 지명수배 했다.
유는 18일 오후 2시 5분쯤 미국 문화원에 불길이 치솟자 유나 백화점 6층 화장실 창문을 통해 문으로 부터 받은 불온전단 1백여 장을 뿌린후 달아 났었다.
☞ 최기식 신부등 5명 구속 조선일보 1982/04/09
범인은닉 도피자금 제공 「좌경의식」교재와 장소도 - 최신부 혐의 김현장 등엔 국가보안법적용 부산 수감
치안본부는 8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과 관련 가톨릭 원주교구 교육원 최기식 신부(39) 방화 교사범 김현장(320 교육원 관리인 문길호나(37) 치악산 서점주인 김영애(25 여) 가톨릭 농민회 조사부원 오상근(29 충북 청원군 가덕면 상대리 288)등 5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에게는 국가보안법, 범인은닉죄 등이 적용 됐으며 구속영장은 부산지점 김두수 공안부장이 신청, 부산지법 이찬효 판사가 발부했다.
치안본부 제 4부장 박배근 치안감이 발표한 최신부의 혐의 내용은 80년 5우러 대전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강사 유진훈씨(45)의 소개로 알게 된 김현장을 22개월간 교육원에 은신 시켰고 지난 3월 19일 김으로 부터 방화교사 사실을 고백받고 도피자금 50만원을 주었으며 3울 28일 부터 4일간 문부식 김은숙을 숨겨준 것등이다.
또 김현장에게 6차례에 걸쳐 27명의 대학생을 교육원에 합숙 시키며 의식화 교육을 실시토록 하고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각종 진정서 민청학련 재판기록등 15종의 유인물을 학습 교재로 제공 했으며 공주사대 「금강회」사건으로 도피 중인 이상헌(23)에게 은신처를 알선해 주었다는 것이다.
교육원 관리인 문길환은 김현장으로 부터 의식화 교육을 받고 반국가단체 활동에 동조해 왔으며 김이 방화 교사범 인줄 알면서도 교육원 보일러실 창고에 밀실을 만들어 김과 문부식 김은숙을 숨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
치악서점 주인 김영애는 김현장으로 부터 의식화 교육을 받고 반국가 활동에 동조 작년 12월 김의 지시로 경북 원주역에서 문부식등으 교육원까지 안내했고 4차례에 걸쳐 12명의 대학생을 김에게 알선, 의식화 교육을 받게 했으며, 문길환, 정인재등과 공동 출자로 책방을 개업해 교육원과의 연락 아지트로 사용했었다.
또 김현장에게 도피자금 30만원을 제공하고 지난 3월 22일 문과 김은숙을 원주 교육원에서 서울까지 호송했으며 3월 28일에는 이들을 책방에 숨겨준 혐의이다.
카톨릭 농민회 조사부원 오상근은 80년 5월 대전의 카톨릭 농민회 본부 사무실에서 사무국장 이길재씨로 부터 김현장을 소개받아 김이 수배 된줄 알면서도 9차례 숙식을 제공하며 숨겨 주었다는 것이다.
방화 교사범 김현장은 학생들을 좌경 의식화 시켜 지하조직을 결성, 사회 혼란을 조정하기 위해 미국 문화원에 방화토록 문부식에게 지시했고 지난 3월 20일 원주 교육원으로 도망온 문등으로 부터 범행 보고를 받고 최신부로 부터 받은 도피자금을 주고 부산으로 내려가 알리바이를 만들도록 했었다.
김은 방화에 앞서 문과 함께 부산 미국문화원 현장을 사전 답사하기도 했으며 방화후 3월 20일에는 두번째로 교육원을 찾아온 문에게 「방화사건은 우리가 신앙의 양심에 따라 한 것이다」는 내용의 천주교 서울 대교구에 보내는 편지를 쓰게 했었다.
김은 이 편지를 최신부에게 주었고 최신부는 함세웅 신부를 통해 편지를 서울대 교구에 전달 했었다.
☞ 지하 폭력교실 [샛별] 부산 미문화원 방화 - 이념 서클의 정체 조선일보 1982/04/01
신입생 뽑아 5단계 훈련 함께 자면서 독서 토론…좌익 혁명의식 주입 회원 20여명 … 소요 주동 두차레 교내 방화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주범으로 수배중인 문부식은 [샛별]이라는 지하이념 서클을 조직 이를 주축으로 범행을 저질렀음이 밝혀지고 있다.
문의 애인이며 이번사건의 행동대원 이었던 김은숙을 비롯 방화조 3명도 모두 이 클럽의 멤버였다는 점이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4명의 사상자를 낸 엄청난 범행의 뒤에 도사린 [샛별]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 형성 과정은 어떠 했던가가 경찰 수사결과 차차 드러나고 있다.
부산지역 대학가에 소위 의식화 운동이 번지기 시작한 것은 80년 5월 대학생들의 대규모 소요사태가 가라 앉으면서 부터였다.
이것은 또한 순수한 모임이었던 [양서조합]이 이념화 되면서 해체되고 그 뒤를 이어 [스터디 그룹(독서그룹)]이 대학가에 음성적으로 조직되기 시작한 것과 때를 같이하고 있다.
독서그룹과 때 맞춰 - 당시 일부 급진적인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형성된 [스터디 그룹]은 반정부 선동을 위한 의식화 운동을 벌였는데 부산대학교에서 두차례나 학원소요를 선동했고 교내 방화까지 저질렀다.
이번 검거된 이호철, 방화사건의 주범 문과 김화석등이 모든 이클럽의 핵심 멤버들 이었다.
이 클럽이 학교당국으로 부터 해체 지시를 받자 회원들은 지하로 숨어들어 각 대학에 별도의 지하 서클을 조직, 학생들을 규합해 의식화 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문이 직접 회원 모집 - 문도 [스터디 클럽]이 해체 된 뒤 스스로 고신대 내에서 학생들을 모아 클럽을 조직 고신대 학생들의 의식화 운동을 주도해 왔다.
문의 클럽은 [스터디 클럽]의 파생적 지하조직으로 시작된 셈이다. 회원모집은 문이 직접 담당, 지연 동창관계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문은 주로 성격이 차분하고 학업에 열중하는 학생들을 골랐는데 그런 학생만이 고정회원이 될수 있으며 의식화 과정이 빠르다는 판단에서 였다.
이번 검거 된 이미옥, 박원식, 최충언등은 80년 6월 대학 입학후 얼마되지 않아 이 서클에 가입 의식화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문의 하숙집과 핵심 회원집을 돌아다니며 이론서적을 탐독하고 토론 발표 하면서 좌경사상에 깊이 물들어 갔다. 문인 [노동 전사상]이라는 그림이 붙은 잡기장에 자기나름대로 기록해 놓은 내용도 온통 선동적인 글귀들 뿐이었다.
20페이지에 달하는 이 잡기장은 깨알같은 글씨로 유물 사관적 변증법에 의한 폭력 혁명을 주장하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혁명주체는 우리- 문의 클럽 회원들은 이 잡기장을 통독, 겉장이 헤어질 정도로 돌려가며 읽었다고 한다.
[혁명은 정치의 원동력이다 혁명 주체세력은 우리 젊은이들 이어야 한다]로 시작되는 이 잡기장의 격렬한 주장 부분마다 빨간줄이 쳐 있었다.
이들이 탐독한 서적들은 [역사란 무엇인가] [러시아 혁명사] [헤겔의 역사철학]등 번역본 9권과 [한국사의 인식] [한국 농민문제와 농민운동] 등 국내 학자들의 저서 7권등 모두 16권 인데 이들은 이 저서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폭력 혁명을 이끄는 길잡이로 사용해 왔다.
문은 평소에도 [혁명] [노동자 계급]등의 용어를 즐겨 사용하며 회원들에게 나름대로 용어 해설까지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체계적이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문의 얄팟한 지식이 회원들에게는 대학교수의 강의 이상으로 돋보였다고 한다.
문은 회원들에게 {의식화는 좌경화와 같다}는 등식을 심어주기에 애를 썼다
- 즉 문은 사회주의 사상에 탐닉한 나머지 무산대중의 폭력 혁명만이 사회를 개혁할수 있다고 제멋대로 해석을 내리고 나이어린 후배들과 여학생들을 의식화 시켜 엄창난 범행으로 몰고간 것이다.
이 클럽은 작년 6월부터 부산시내 각 대학에 세력을 확장, 회원수가 20여 명에 이르렀고 그 중 반수가 철저한 좌경의식 분자였다. 이들은 [샛별]이라는 명칭을 붙였고 이 클럽은 좌경화 된 이념 서클의 길을 줄달음 쳤다.
문은 회원끼리 [오빠] [형]등의 호칭을 사용케 함으로써 회원들을 가족과 같은 결속력으로 묶으려 하기도 했다.
작년에 교육 끝내 - 이들은 [샛별] 서클의 의식화 운동을 3개월 걸쳐 5단계로 실시 함께 자며 토론 발표를 되풀이 하며 여학생들의 의식화 교육을 작년에 끝냈다.
이들은 의식화 운동의 마지막 단계를 [무산 대중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가 3월에 문으로 부터 실질적인 행동 명령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명령이 행동화 한 것이 바로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으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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