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민병태 교수 사모님의 쾌거!
엊그제 9월17일 저녁, 나는 오래간만에 아주 흐뭇한 광경을 목격하였다. 다른 것이 아니고 서울대 문리대 교수이시던 고(故) 민병태 교수님의 미망인인 김희경 여사가 미수인 88세 생일을 맞이한 것이다.
88세라는 나이도 많은 연세였지만 본인의 일생이 우리나라의 어려운 때를 반영하고 이를 극복한 분으로 기록이 되어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 미수에 초청이 된 것이다,
본인은 22년생으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해방되면서 20세가 넘어 북한으로 귀국하였지만, 이미 이때는 북한에서 소련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 체제가 시작되어, 다시 부산으로 어쩔 수 없이 남하, 한국전쟁을 치른 후에 다행스럽게도 서울대 민병태 교수님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대학교수로서 돈을 모르던 분과 결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현재의 부를 이루게 되었고, 그 부를 슬하의 4남매에게 한 푼도 물려 주지 않고, 「유럽 정신문화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현재 23명의 국내외 소외된 분야의 박사학위 연구자들에게 생활비는 물론 책값까지도 장학금으로 지급하여 주고 있다는 훈훈한 이야기였다.
그 장학재단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내가 대사를 하였다고 합류하라고 하여 합류한 것이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이런 높은 뜻을 도와주셨던 민 교수의 후배 겸 동료인 서울대 C 전임총장이 그 동안의 어려웠던 사정을 이야기하고, 당시 문하생 대표로 동아 일보의 고문을 맡고 있는 김학준 박사가 김여사께서 과거 고생하던 이야기를 하며, 또한 그 수혜를 받은 김 박사라는 분이그 동안의 혜택을 받았던 5명의 박사 대표로서 인사를 하여, 나는 마침내 「아~, 대~한민국」하고 감격하였다. 그러느라 김정욱 교수의 가족대표 연설도 청취하지 못하였다.
그리고는 재 다짐하였다. “이런 나라라면 우리나라는 번성해 나갈 나라라고! 앞으로 얼마든지 봉사할 가치가 있는 나라라고!”
「왜 그리 이 나라의 각계각층에서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야기가 많은가? 어디 내가 다닌 나라에서도 이런 나라를 보았는가? 선진국이라던 유럽의 어느 나라가 이런 나라가 있단 말인가? 이 한국에서는 물론 잘 살아보자고 불협화음이 날 때도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나자 국제통화에 버금가는 금이 중요하다고 정부에서 이야기 하자, 일반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손자의 돌 반지와 자신의 금비녀 등을 꽁꽁 숨겨 두었던 장롱 속에서 갖고 나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어제 저녁엔 장학재단을 위한 노부인의 훈훈한 그런 이야기를 접하였다. 「당신은 41년간 공직에 있었다고 꺼덕거리면서, 이렇게 훌륭한 국민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자학을 하면서 말이다. 솔직히 이에대해 나는 할 이야기를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보라. 이 “장학재단”만도 명년도에 10여명의 박사학위 취득자를 배출할 것이라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비 인기과목으로서 유럽의 역사, 문학, 철학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는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유럽에서 마냥, 이들 과목은 우리나라에서도 정치학, 법학 등 사회과학분야의 석사학위와 연계되어, 가장 인기 있는 분야로 곧 번성해 나갈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들 학과의 학사학위가 인기 충천하여 나가고 있다.
“아~ 이렇게도 깊은 뜻이 있었단 말인가?” 본인이 그렇게도 어렵게 키운 재산을, 그것도 여인으로서 키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이렇게 뜻있게 쓰여 지는 나라라면 장래를 걸어 볼만도 하지 않은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