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특집 │ 이정원
순간경經 외 2편
이정원
순간경經이라니!
금강경도 아니고 화엄경, 법화경도 아니고 순간경이라니
파란 눈의 현각 스님이 인터뷰에서 이 경전을 들고 나왔다
할喝!
벼락 맞은 듯 움찔했다
수없이 놓친 순간순간이 경전이라니 나는
얼마나 많은 경들을 깔보았나
구시렁거리고 패대기치고 밟아 뭉개고 잘근잘근 씹고 살았나
순간이 금빛 와불臥佛처럼 늘 앞에 누워있는 걸 모르고
새벽마다 금강경 읽는답시고 입만 나불거렸다
어제는 가버린 거북이털,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토끼뿔?
이제 순간을 몽땅 바쳐 순간경을 염송해야겠다
빈둥거리던 중이니 마냥 빈둥빈둥
빈둥경 삼매에나 흠뻑 빠져야겠다
구멍 뚫린 시계
카페 <미네르바>에 갔네 벽에서 걸어나온 어느 여가수가 노래하고 있었지 총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다네 정말 총 맞았는지 애절하게도,
카페 <미네르바>엔 창문마다 총구가 번뜩였지 가슴을 겨냥하고 있었어 검은 구명에서 날아온 탄환이 소리없이 박히곤 했네 구멍난 가슴에 추억이 흘러넘쳤네 흘러넘친 추억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잡아보려 해도 가슴을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슬픈 합일合一,
벽시계는 열 번 울었어 부엉부엉 울었어 두 눈에 구멍이 난 게 분명해 퀭한 눈에 눈물 가득한 게 분명해 창밖으론 바람이 마구 뛰어다녔지 달아나고 싶어 안달이 난 너는 바람 속으로 당당히 사라져 버렸네 if you go away, if you go away, 당신은 내 가을을 통째로 가져가는 거야 가을의 속살을 모조리 발라먹은 거야 어두운 귀퉁이 탁자로 수수수 달빛지는 소리,
총 맞은 것처럼 뻥 뚫려 텅 비었는데 가슴이 왜 아픈지 이상해 달처럼 기운 나는 모딜리아니의 여자女子 쟌느 에뷔테른, 목이 한 뼘쯤 길
어졌어 부엉이가 한 번 더 울면 나는 그냥 총구를 향해 걸어나가야 하는데 총·맞·은·것처럼 비틀비틀……,
실종
왜 안 보이는 거야 어제까지 앉아있던 소슬한 집 한 채, 갈대숲에 깃들어 수상가옥처럼 아찔했지만 까르르 웃음기 번져나던 오두막, 왜 사라진 거야
이소離巢할 새도 없이
누가 거두어간 거야 개개비 둥지 속 젖니 같던 배냇짓
흙탕물의 긴 혓바닥 사정없이 숲을 핥고 있는데 무릎 꺾인 갈대들 끌려가지 않으려 갯바닥 붙들고 늘어지는데
둥지가 있던 주위를 돌고 돌다 갈대꽃 끄트머리에 몸을 부린 어미개개비, 망연히 먼 숲 바라보다 부리 떨구는데 젖은 깃털 우주처럼 무거운데
개개비 실종신고는 개개개 비비비, 자지러지는 울음 뿐
허공에 길 내는 법 일러주지 못해 제 가슴 쪼고 있는 거야
누가 서둘러 저 수상한 폭풍우 갈피 샅샅이 뒤져봐야 되지 않겠어?
달빛 길어올리기
빛이면서 어둠인, 어둠이면서 빛인 달빛의 동시성을 생각합니다. 아무리 휘황한 보름달이라도 달빛만큼 그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게 또 있을까요. 내 유년은 달빛과의 동행이었지요. 시골 소도시, 시오리 귀갓길엔 달빛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달빛은 먼 듯 가까이에서 무섬증을 달래주었고, 가슴 속에 무한한 정감을 건네주었습니다. 또한 달빛 어스름한 밤 툇마루에 나가 앉으면 만상이 달빛이 만든 실루엣처럼 흐느적흐느적 아릿하고 모호했지요. 그 아리고 모호한 마음이 내 시심의 본향이라고 해야 할까요. 달빛이 투영해낸 대상의 세계는 실상인데도 그 이면을 넘겨다보게 하는 매혹이 있습니다.
얼마 전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라서 101번째란 숫자에 꽂힌 건 사실입니다. <101번째 프러포즈>란 영화도 드라마도, 책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보다도 101번째라는 숫자는 어떤 경지를 가늠하게 되는 저울추 같습니다. 무수한 집념의 산물이자 장인匠人이 쌓은 예술혼의 극점에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새로운 세계의 현현顯現를 보게 될 듯 싶어서지요. 마치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깨달음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될 듯 싶어서지요. 우리 것에 대한 끊임없는 천착을 통해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시킨 거장으로서 <서편제>, <축제>, <취화선>에 이어 어떤 기발한 작품을 내놓았을까 하는 기대감이 작용했다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달빛에 이끌렸답니다. 더구나 달빛을 길어 올리다니! 이런 시적詩的 발상이 가능한 그의 예술적 재능이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내 모든 추억을 동원해 내게 잠들어 있던 달빛들을 꺼내 보았지요. 영화도 보기 전에 나는 흥건하게 달빛에 젖어 베갯머리에 그들을 불러 앉히고 밤새 통음을 했습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권주가를 부르면서 말이지요.
영화는 한지이야기입니다. 박중훈, 예지원이 부부로, 강수연이 다큐작가로 분한 영화입니다. 한지의 고장 전주에서 <조선왕조실록> 중 전주사고보관본 복원을 위해 한지 담당부서에 배속된 필용과 뇌경색을 앓는 그의 아내 효경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이야기지요. 아내의 한지공예에 무심했던 필용은 한지에 대해 배워가며 아내와의 간극을 좁히고, 아내 효경은 잃어버린 고향의 뿌리를 찾고 뇌경색도 치유된다는, 화해와 치유의 메시지를 담아냈습니다. 흡사 조선 백자처럼 은은하고 담백한, 달빛처럼 담담한 서정성 짙은 영화입니다. 지천년견오백紙千年絹五百이라는 말처럼 은은하고 장구한 한지의 우수성과 깊은 내구성을 새삼 되새겨보게 됩니다.
무주구천동 월하탄의 달빛 유려한 밤, 맑은 계곡물에서 전통적 방법으로 한지를 뜨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그들은 종이를 뜨는 게 아니라 종이를 길어 올리더군요. 아니, 정말로 달빛을 취해서 긷고 있더군요.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너무나 경건하고 정성껏 말이지요. 어떤 장엄미까지 느껴졌지요. “달빛은 길어 올린다고 길어 올려지는 게 아니예요. 달빛은 그대로 두고 마음으로 그 빛을 보듬을 때 비로소 한가득 길어 올려지는 거예요.” 극중, 예지원의 독백이 그 풍경의 속살을 좀 더 환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규보의 시 「영정중월詠井中月」은 더욱 그렇습니다.
달빛이 너무 탐나 물 길으러 갔다가
달도 함께 담았네
돌아와서 응당 깨달았네
물을 비우면 달빛도 사라진다는 것을
달은 천강인들 머무르지 않겠습니까마는 또 홀연 그 자취를 거두고 마는 허무함 때문에 달빛을 떠 종이에 머무르게 한 게 아닐까요. 달빛과 물, 달빛과 종이와의 절묘한 함수관계는 천년을 살아남을 수 있는 한지의 비기임에 틀림없습니다.
아, 무언가 가슴을 치는 게 있군요. ‘시詩 길어 올리기!’ 시는 그냥 길어올린다고 길어 올려지는 게 아니라는 걸, 마음으로 보듬을 때, 달빛을 떠내듯 심상을 떠내는 것이 생명력 질긴 명품 시라는 걸.
영화관을 나오면서 맑아진 나를 느꼈습니다. 어릴 적 새로 바른 창호지에 내리는 가을볕에 나앉은 것처럼 말이지요. 그 창호에 어리던 달빛처럼 말이지요. 내 시詩도 그렇게 맑고 오롯했으면 좋겠습니다. 달빛 길어올리 듯 깍듯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정원 /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으며 2002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2005년 『시작』으로 등단했다. 시집 『내 영혼 21그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