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글로 달다가 글이 길어질듯 해서 답글로 달아봅니다.
애지중지 키우던 작물이 하루아침에 고사했으니 많이 속상하시겠습니다. 농사라는 것이 한번 실패하면 한해를 망치는 것이니 허탈한 마음 이루 말할수 없지요.
달내마을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하는 시대입니다. 정말 유용한 정보들도 많지만 잘못된 혹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도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 카페를 운영하면서 많은 정보들을 찾아 올리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이 제 자신이 검증하지 못한 자료들이라 조심스럽습니다. 그저 상식적인 수준에서 타당성이 있다고 보이는 정보들을 선별합니다만 문제를 야기할 위험성은 늘 내포되어있다고 봅니다.
달내마을님처럼 인터넷에 올려진 정보를 이용하여 실패를 본 경우를 간혹 봅니다. 정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환경의 차이라고 판단됩니다. 농사라는 것이 기후, 시기, 토질, 일조량, 고도, 종자 등 주변환경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정보가 작성된 상황과 같은 조건이 얻어지기 매우 어렵고 정보의 내용과 다른 결과가 얻어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똑같은 정보를 보고 시도한 다른사람들은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런 효과를 어디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따라서 한번 적용 해보고 잘 안되면 그냥 잘못된 정보로 버리기 쉽지만 그보다는 조심스러운 검증과정과 다양한 실험을 통해 나의 환경에 맞는 지혜로 발전시키는 과정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달내마을님이 사용하셨다는 문제의 빙초산입니다. 빙초산은 석유정제과정 등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아세틸렌이나 공업용 알코홀을 화학적으로 처리하여 얻어지는 아세트산이라는 공업용 화학물질입니다. 순도에 따라 변하지만 녹는 점이 실온 부근이므로 기온이 조금 낮으면 얼음처럼 고체가된다고 해서 "氷酢酸" 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빙초산 및 이의 수용액은 피부에 묻으면 염증과 화상을 일으키는 강산성의 물질이구요 (황산이나 염산과 같은), 발암물질로 의심되는 독성 물질입니다. (과거 어렵던 시절에 빙초산을 희석해서 식초의 대용으로 사용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아주 위험한 일이었지요. 지금도 합성식초는 빙초산을 원료로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순수 빙초산은 10배 희석한 10% 수용액이라도 손에 묻으면 통증을 나타낼 정도의 위험한 강산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그런 말씀은 없으셨으니 구입하신 빙초산은 순 빙초산은 아니고 희석하여 농도를 낮춘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구입하신 약병의 빙초산 농도를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전통적 의미의 식초(食醋)는 글자 그대로 먹을수 있는 초로서 과실이나 곡류를 발효시켜 만든 것을 의미합니다. (식초와 빙초산을 혼동하면 안됩니다. 물론 화학적으로는 발효 단계에서 생성된 알코올이 아세트산균의 작용으로 이차로 발효되면서 만들어지는 아세트산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신맛을 내게됩니다.) 이 식초도 원액으로는 산도가 충분히 높기 때문에 조리할 때는 소량을 이용하여 희석하여 조미료로 사용합니다.
살포 목적이 살충제로 사용하셨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고추가 고사할만큼 산성이 강했던 만큼 적정 희석비율을 맞추지 못한 듯 합니다. 달내마을님도 언급하셨습니다만 조금씩 시험적용을 해보며 적정농도를 확인했어야 합니다. 오두막에도 자료가 있습니다만 초산 용액을 억센 잡초를 제거하는 제초제로 활용한 사례가 있으니 농도가 높은 용액이라면 작물이 고사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입니다.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화학물질인 빙초산이냐 자연발효 식초냐,
혹은 고농도냐 저농도냐가 아니라
작물을 포함한 또한 인간을 포함한 농사짓기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문제는 고추가 고사한 것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강한 산 용액은 곤충과 균들을 포함한 지상의 생태계를 무너뜨립니다. 땅으로 흡수된 용액은 흙의 산성화와 함께 흙속의 생태계도 무너뜨립니다.
벌레들을, 병원균을 모두 죽이겠다는 “殺”의 마음으로 뿌리는 것이라면 그것이 식초이건 빙초산이건 화학농약이건 다르지 않습니다. 살의 마음은 곧 작물에, 또 인간에 대한 살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작물을 살리겠다는 “生”의 마음으로 뿌리는 것이라면 그것 또한 식초이건 빙초산이건 화학농약이건 다르지 않습니다. 살림의 마음이라면 곧 작물에, 또 인간에 대한 살림으로 돌아옵니다.
자연농업에서 충이나 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자재를 살충제, 살균제라고 하지 않고 기피제라고 부르는 데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듯 합니다. 충이나 균을 죽이기 보다는 쫒아내는 정도의 역할로 족하다고 나름대로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