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병 補 充 兵
나는 제일 보충병 1기생이다 당시 군입대 수요가 팽창하면서 멀정한 놈들을 보충병이라는 해괴한 이름을 붙여 병신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장 먹기는 곶감이라고 우선은 군인을 가지 않는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보충병이라는 이름으로 인하여 불리한 대우를 받는예가 나 아닌 다른이 들에게도 있었던것 같다 내가 몸담아있던 KG회사에도 보충병으로 편입된채 근무하는 직원이 20여명이 넘었다
1968년 1월 21일 북괴무장간첩 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4월 1일 처음으로 예비군이 창설되면서 우리 직장에도 예비군 직장중대가 설립되었고 직장내 예비군 중대본부 사무실이 새로 생기면서 매직이나 가리방으로 해서 틈틈이 시간을내어 중대장을 도와주는 중대본부 서무일까지 겸직하다보니 눈코 뜰새없이 바뻣으며 중대본부일이 O T 로 인정되면서 다른이에 비해 두배가까이 되는 많은 급료의 혜택을 받고 있었다
어느 무더운 6월 부평소재 예비사단으로부터 우리회사 직원중 나를 포함해 14명에게 보충병 제1기 군사교육 훈련 통보서가 전달되어 두달간의 이수교육을 받게되였다 경리과의 연락을 받고 찾아가니 뜻밖에도 14명을 위한 격려금이라며 내놓는다 중대장 또한 나에게 어려울때 쓰라며 두둑한 봉투를 내민다
우리가 배치된 예비중대에는 무섭게 눈을 번득이는 현역 중령 휘하 교관이 다섯이나 있었다 생각보다 훈련은 아주 혹독했다 하루종일 8시간동안 잠시의 점심식사 시간을 빼고는 거의 쉴틈없이 커다란 M1장총을 끼고 제식훈련에 뛰고 기고 굴르고 철조망 통과에 산등성을 기어 오르내리는 그야말로 흙범벅이 땀범벅이였다
- 너희들은 지금 적군과 대치하여 전쟁을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안일한 생각을 하거나 눈팔이 하는 순간 적의 총알은 너희들의 심장을 향하여 날라올것이다 - 커다란 덩치에 무섭게 생긴 중령은 까만 안경너머로 큰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지휘봉을 흔들었다 저 무서운 지휘봉이 언제 내머리통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주먹을 불끈 쥐고 긴장하였다
[ 5551번 ] 무섭게 생긴 김교관이 나의 번호를 호명하드니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막사 안으로 불러 들인다 무슨 잘못이라도 있나하여 가뜩이나 긴장의 끈을 풀지 못한채 불려갔다 - 어려우면 말해요 억지로 참지 말고 - 뜻밖에도 형님처럼 부드러운 말로 어깨를 두드린다 어인 일인지 김교관의 갑작스런 따스함에 눈시울이 뜨거워 옴을 느낀다
아마도 회사 중대장이 손을 쓴 모양이다 우리회사 중대장은 예비역 중령출신이고 예비사단 중대장과는 막역한 사이란것도 그곳에서 처음으로 알았다 남들은 뙤약볕에서 기고 구르고 뛰는 혹독한 훈련중에도 환자아닌 환자라는 이름으로 하루걸러 한번씩 막사내 서늘한 침대에서 딩굴었다 때론 제식훈련 철조망 통과 웅덩이 포복 사격 줄타기등의 훈련도 어려웠지만 그런대로 재미도 있었다
고등학교때 매주 화요일에 한번씩 돌아오는 교련시간이면 소령출신 호랑이 교관의 엄격한 훈련이 조금은 도움이 된것같다 다리목에는 두꺼운 가죽으로된 각반을 차고 체육복위에 무거운 구명조끼를 입고 허리에는 두꺼운 가죽반도를 찼으며 참나무로 만든 무거운 목총을 어깨에 메기도 했다 한명만 발이 맞지 않아도 전원이 공동으로 빳다 열대는 보통이고 운동장 열바퀴 도는것은 다반사였다 짧은 학창시절이였지만 공동훈련을 통하여 공동의식을 심어준 김대희 예비역 소령은 무섭기로 소문이있었지만 교련시간이 지나면 수도가에 불러 모아 놓고 물장난치는 개구쟁이 같은 멋쟁이 이기도 했다
나뿐이 아니고 우리 회사 직원들도 돌려가면서 휴식을 제공해주는 교관에게 무엇이라도 입질을 시키라는 것이 바로 회사와 중대장이 주는 격려금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훈련이 끝나면 우리직원들과 함께 교관들과 같이 부평 구석진 술집을 찾아 막걸리 통채로 들여 놓고 돼지고기 삼겹살을 구워놓고 푸짐하게 한잔했고 술집주인의 배려로 젊고 예쁜 아가씨들까지 등장했다 슬며시 지페한장씩 쥐어주면 죽자사자 비위 마추려는 아가씨들의 애교는 상위에서 술잔위에 가득히 떨어진다 단골술집에서는 삼일이 멀다고 찾아주는 젊은 오빠가 되였고 어느새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매일같이 계산은 나의 몫이라는 것을 아는 술집 주인의 나에대한 배려는 그야말로 최고의 vip였다 술한번 싫컨먹고 예쁜아가씨의 치마폭에 감싸여 젊은 오빠 사장님 소리를 들으며 수료증을 받고 군사교육 두달은 그렇게 흘러갔다 힘들고 아쉬운 두달간의 군사교육은 이렇게 지나고 이제는 나도 군번을 받고 떳떳한 제대군인이 되였다 보충병 만세 ! 이렇게 해서 보충병의 멍에를 벗었으나 여전히 군대도 못간 덜떨어진 존재였다
똑순이 나의 아내 그리고 잊혀진 소영이 !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지내왔다 눈뜨면 아침이고 허둥거리며 보내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다 아내는 세 아이들 데리고 가게일을 보느라 눈코 뜰새없이 방방거리며 잠시도 쉴틈이 없다 아이들 데리고 놀러도 다니고 아침 출근한 남편의 저녁식사를 준비도 하면서 여유롭고 한가하게지내야할 아내 ! 그러지 못하고 아이들 치닥거리 하면서 꾀제제한 차림으로 조그마한 구멍가게에 매달려있다
내가 다니는 직장 월급 가지고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아내의 어거지로 구멍가게가 있고 방이 여러개가 딸려있는 집을 여기저기 알만한 곳을 찾아 다니며 구걸하듯 사정하여 빚을얻고 계번호를 세개나 우선하여 땡기고 전세를 끼어 구하였으니 말만 내집이고 거죽만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내이름의 문패가 걸려있다 억척 아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였다
큰부잣집 딸은 아니지만 어려운게 무엇이고 배고픔이 무언지 모르고 살아온 아내였다 이름뿐인 집일망정 내생전 처음으로 가저보는 내집의 문서를 들고 아내와 나는 기쁨에 밤을새우며 들떠있기도 했다 그럴적마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이 떠오른다 여자는 건강하고 착하며 살림 잘하고 애기들 쑥쑥 잘나면 그게 최곤거라
어느일요일 큰길가에 있는 우리가게 앞에서 새까만 자가용을 세우더니 두사람이 내리어 가게로 들어온다 연한 부루칼라 투피스를 입고 까만 안경을 쓰고 작은 손가방을든 40대 여성과 늙수레한 기사이다 시원한 사이다 한병을 둘이서 나누어 마시드니 돌아선다 돈을 받는 순간 하마터면 소리지를번 했다 손소영 틀림없는 바로 그녀였다 손소영 ! 안경을 벗어든 소영이는 깜짝 놀라 주춤 하드니 기사에개 손을 젓는다 먼저 가라는 표시인것 같다
- 아니 우리가 얼마만이야 죽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드니 - 부천시내 번화한 골목 맥주집에서 둘이는 테이불에 마주앉았다 - 우리 가게를 열고 처음 오시는 손님이라 특별히 드리는 써비스입니다 - 하얀 나비 넥타이를 맨 웨이터가 맥주세병과 간단한 마른안주 를 내려놓으며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인사이다 - 안주 좋은걸로 가저다 주세요 - 소영이가 웨이터에게 지페한장을 쥐어준다
조용한 다방에서 차나 한잔 하고 지나간 이야기나 나누자는것을 소영이가 이곳으로 안내한것이다 무슨말로 시작해야할지 한참을 마주하다가 갑자기 생각이나서 지갑속에 아내도 모르게 숨겨두었던 지숙엄마가 정열이 유품에서 나왔다는 다낡은 소영이 증명 사진을 꺼내였다 별로 놀라는 기색없이 사진을 받아든 소영이는 슬며시 구기어 발아래로 집어 던진다
아마도 나몰래 그냥 버리는것 같아 모르는척 눈길을 돌렸다 왜 그사진이 정열이가 가지고 있었으며 무슨인연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냥 지나첬다 지금와서 알아야될 이유도 없고 굳이 물어볼 필요를 느끼지도 않았다 - 맥주 세병만 더주세요- 할말을 찾지 못하고 둘이는 연거푸 맥주잔을 비우고 있었다
- 행복 하겠지 ! - 한참만에 얼굴을 들고 말을 꺼내며 바라보는 소영이의 얼굴에서 눈물이 불빛에 반짝인다 갑자기 연민의 정에 어쩌지 못하고 바싹 다가가 어깨를 살며시 감싸주었다 어깨가 들먹이는것 같아 슬며시 물러앉아 넘처흐르는 맥주잔을 기울였다 - 응 -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소영이는 유통업을 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래로 두 사내동생이 비교적 여유있는 가정에서 고생이 무엇인지 모르고 행복하게 살았다 적어도 소영이가 우리집에 왔을때 까지만해도 소영이는 부잣집 공주처럼 어려움이 무엇인지 몰랐다 방학이 끝날무렵 갑자기 들이닥친 빚쟁이들이 집안곳곳에 빨강 딱지를 붙이고 난리이다 이게 무슨 난리라는 것일가 처음으로 당하는 일에 그냥 손을 놓고 어리둥절할 뿐이였다
한참이나 고개를 들지 못하고 흐느끼는듯 어깨를 의자에 기대있던 소영이가 입을 열었다 -지나간 얘기가 무슨 소용이있어 -머리를 들고 억지웃음을 짓는다 아마도 그런일이 없었드라면 우리는 즐겁게 서로 마주하고 있지 않았을가 하는 표정이다 둘이는 더이상의 말을 잇지 못한채 거듭 잔만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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