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해의 시작을 맞이하는 기념으로 책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음, 원래는 추리물을 추천할 계획이었는데요. 신정 연휴로 쉬는 동안 이변이 생겼지 뭡니까.
제가 우연히 새로운 작품을 만났고, 그 책에 확 꽂혀버린 거죠.
그래서 이번 작품은 역사 시대물 + 힐링 성장물 + 로맨스 한 스푼입니다.
도서명: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
저자: 이은소
* 이 소설은 넓은마을 도서관 1번 소설에 5번 역사물 코너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나는 매디컬 드라마를 참 좋아한다. 내가 건강이 별로라서 그런가, 장애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의학 부문에 관심도 많다. 또 그만큼 사극 드라마도 즐긴다. 양방보다 한방을 선호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이 둘이 결합한 의학 사극이라면 그야말로 껌뻑 죽는다. 소설이고 드라마고 가리지 않고 일단 내 취향을 저격하면 본방 사수나 도서 신청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그런 의미로 이 소설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을 보고 귀가 솔깃했던 건 당연했다. 딱 하루만에 완독하고 서평을 작성하는 것 역시 지극히 대수롭지 않았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평범했다. 그래서 가슴에 짙은 여운이 남았다.
이 작품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역사 시대극 and 힐링 성장물 and 로맨스 한 스푼’의 소설이다.
“사람들은 기억 때문에 괴로워한단다. 하여 세월이 요술을 부려서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었지. 한데 세월이 그만 실수를 해 버렸단다. 좋은 추억마저 희미하게 만들어 버린 게지. 사람들은 추억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을까 걱정했어. 그때 세월이 말했단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대신에 사랑은 짙어질 거야. 네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소설의 서두는 다소 괴기적으로 시작한다. 소락산을 지나는 의원과 의생, 그들은 왕진을 다녀오던 참이다. 한 명은 소락현 계수 의원에 심의 유세풍이요, 다른 한 사람은 고을 수령의 딸이자 계수 의원의 여자 의생 유은우이다. 그러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 온 사내들과 마주친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구미호한테 당한 시체를 봤다는 것이 아닌가!
최근 소락산을 낀 산골 고을 소락현의 밤을 들썩이게 하는 괴기 사건이 되시겠다. 그러나 시체 검시를 한 의원 유세풍은 딱 잘라 구미호의 소행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의 제보로 ‘구미호’라고 추정되는 소녀가 고을 수령 앞에 서게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녀 연희는 몽유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 세풍에 의해 밝혀진다. 그를 기점으로 현재 심의 유세풍이라 불리고 있는 주인공이 어쩌다 소락현에 자리를 잡게 됐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의원이 병자를 돌보는 데 가장 우선시할 건 병자의 마음이고, 병을 낫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병자의 마음을 고치는 거지. 침술이나 진맥, 약 처방은 기술이야.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지. 하나 심의가 되는 길은 배울 수도 없을 뿐더러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야. 병자의 마음에 관심을 두고 돌보려는 마음이 있어야 해.”
심의 유세풍의 본명은 유세엽이다. 그는 성균관 유생 출신이자 의과 장원에 급제한 전도유망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부친까지 내의원 어의니, 정말 요즘 말로 하면 ‘금수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잘 나가는 의관이었으나 왕에게 침을 놓는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얻고 ‘살인죄’의 멍에를 가슴에 품는다. 그 죄책감에 의관직을 내려놓고 소락현 산골 마을에 계지한 의원을 찾아간다.
계지한 의원, 별명은 개지랄 의원인 계의원은 ‘그날’ 이후로 침을 놓지 못하게 된 세엽을 툴툴대면서도 거둔다. 그리고 세엽은 계수 의원에서 머물며 다양한 병자와 사연과 아픔을 보고 심의의 길에 발을 내딛게 된다. 의원이라는 게 단지 환자의 몸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을 치료하는 것도 의원의 소임이라는 것. 병자의 병은 몸이 아닌 마음에도 그 근원이 있음을.
처음에는 양반 신분인지라 체면을 차리고 뻣뻣하게 굴던 세풍이 측은지심을 갖고, 병자들에게, 아니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 그런 변화가 참 보기 좋았다. 양반 신분에, 그것도 남자 체면에 우울증에 걸린 병자를 위해 그네를 타기도 하고 나중에 가서는 환자와 공감하고자 머리에 해당화를 꽂기까지 한다. 어쩌면 그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고, 겪어봤기에, 아픔이 뭔지 알고 있기에 환자들에게 마음을 쓸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파 본 사람이 비록 종류는 다를지라도, 아픈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으니까. 심의, 그 길의 첫발은 사람에 대한 측은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곱고 귀한 사람이야. 기억하렴. 혹 길을 가다가 네 뜻과 상관없이 흙비를 맞아도, 잿물을 뒤집어써도, 똥물에 빠져도, 개똥을 밟아도 이 사실은 변치 않는단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환자, 즉 마음이 다친 인물들은 정말 다양하다. 그리고 구구절절 기구한 사연이 아닌 이들이 없다. 그나마 서두에 등장했던 몽유병 소녀 연희의 사연이 제일 부드러운 축에 속한다. 조선 후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병자호란 중에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온 ‘화냥년’ 치매 할머니의 이야기부터 정실 마님에게 학대받고 오줌싸개로 놀림을 받는 꼬마 서자, 매품을 팔다 장애를 얻은 전쟁고아, 거식증에 시달리는 시각장애인 점복인, 장원급제에 매달려 속병을 얻은 고시생 양반, 괄시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술에 빠진 광대까지. 거의 전부 당시 조선 사회에서 가장 말단에 위치하며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이들이다.
물론 귀한 양반이라 해서 심병이 없는 건 또 아니었다. 일단 배경이 조선이다 보니 남존여비의 사상적 악습이 있고, 그 탓에 희생되었던 여성들이 등장한다. 시집을 가서 초야에 남편을 잃고 ‘남편 잡아 먹은 년’이라는 시어머니의 구박을 견디다 못해 자살기도를 하는 여인, 남편의 매질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부인, 의붓아비에게 성폭행을 당한 ‘향첩’의 딸까지. 이렇듯 심병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소외와 차별로 인해 치매, 히스테리, 우울증, 화병, 알코올 중독, 결벽증 등을 앓는 각계각층의 사람들. 이들의 병증과 사연은 현대인도 많이 겪고 있는 증상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은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그들이 생각났다. 그때와 지금, 많이 달라졌고 나아진 건 맞는데, 왜 이렇게 사연이 다 멀게 느껴지지 않는 건지. 왜 이렇게 다 내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이야기처럼 들리는지. 그렇기 때문인지 “불행을 겪어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라는 은우 아씨의 대사가 참 깊게 남는다.
심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물론 내적인 요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인 인식으로 인한 원인도 있다. 차별이니 인권이니가 대두되고 나름 발전한 문명 사회인 오늘날에도 사회적인 인식이라는 잣대로 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왕왕 벌어지니까. 그 탓인지 작품에서 심의 유세풍이 병자들에게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저 소설 속 인물의 대사로 여겨지지 않았다. 독자인 나에게도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세풍이 점점 환자들을 헤아리고 공감하며 교감을 나누고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을 보며 나도 위로를 받고, 같이 안타까워하고, 또 화를 내며 억울해하다가, 결국에는 웃었다. 이 책은 비록 소설일 뿐이지만 심리 치유서를 읽는 것만큼의 힐링을 받을 수 있었다.
“힘들겠지만 그때 일을 말해 주겠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 심정이 어땠는지 말이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많은 명의들을 만나왔다. 먼저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과 그의 스승 유의태가 떠오른다. 그밖에 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도 있고, 여성으로서 최초로 왕의 어의가 된 장금이도 있다. 이들 전부 내가 책으로 읽고 드라마로 본 의사들이다. 이 작품에서도 실제 인물이 갑자기 톡 등장한다. 바로 드라마 ‘마의’의 주인공 백광현이다. 미천한 신분의 마의에서 어의의 자리에까지 오른 조선 최초의 한방 외과의가 된 인물이다.
이런 실제 인물이 등장하니 조선에 진짜 정신과 의사 심의 유세풍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공상까지 솟았다. 아니, 이건 진짜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역사에 남지 않았을 뿐 유세풍 같은 심의가 그 옛날 조선에 살았고, 많은 심병 앓는 이들을 다독였다고, 그랬다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도,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심의가 있었으면 싶다.
과학과 의학은 발달했고, 100세 시대니 뭐니 하지만, 정작 의료는 기술화가 됐고, 그래서 의사들도 기술자처럼 돼버린 감이 없지 않다. 그렇기에 의사를 의로운 인술을 행하는 사람이 아닌, 그저 의료를 기술로 행하는 사람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런 이 시대에 심의가 필요한 건 당연하다. 배가 아프면 내과를 찾고 목이 아프면 이비인후과를 찾는다. 또 다리가 아프면 정형외과에 간다. 그리고 마음이 아프면 마음을 고치는 의사, 심의에게 찾아가야 한다. 요즘에는 그나마 심의, 정신과에 대해 거부감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정신과는 정말 ‘미친 사람’이 가는 곳으로만 여겨졌다. 물론 지금은 우울하거나 자신의 감정에 대해 회의와 불안을 느낄 때 얼마든지 정신과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래서 인식이 아주 살짝 나아진 편이다. 물론 아주 살작이다. 지금도 ‘정신과’는 당당하게 진료를 받으러 간다고 밝히기에는 좀 꺼림칙한 면이 없지 않으니까.
사람 심리는 과거에도 비슷했던지 조선 시대 때도 오늘날의 현대인과 엇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심병을 부정하고, 주변에서는 체면 때문에 병을 앓는 걸 알면서도 쉬쉬하는 모습들. 그런 게 심병을 더 키우는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은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좋지 않으니. 어디 사는 누가, 혹은 어떤 작가가 무슨 책에서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정은 칼과 같아 자신에게 향하면 자신을 죽이게 되고, 타인에게 겨누어지면 그를 해치게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 우리는 부정을 당하면 그렇게 분노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풍은 심병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해하려고 하고 들으려고 한다. 그러므로써 환자의 마음을 덜어내고 일으켜 세운다. 어쩌면 심의란 그리 거창한 게 아닐지 모르겠다. 그저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이해하려 하고, 소통하며 공감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심의가 될 수 있지 안을까. 비록 곁에 심의는 없지만 대신 심의가 등장하는 이 소설을 만나 다행이다 싶다. 소락현 계수 의원에 심의 유세풍, 그는 마음이 힘든 내게 이렇게 말한다. 혹은 우리에게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라고, 행복을 선택하라고. 지금도 난 내가 원하는 것이 뭘까 궁리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행복해질 작정이다. 그러려고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지난 일은 아무리 애써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나 오늘과 내일, 앞으로 어떻게 살지는 소망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지 불행하게 살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니 행복을 염원하고 선택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