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서관 체제
황제는 ‘칼리굴라’가 저렇게 빨리 종말을 고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황제의 꿈도 없었고 신체
적 결함까지 가진 그냥 역사학자로서 얼떨결에 황제가 된 뒤 私的 조직이나 ‘00빠’ 처럼 “클라
우디우스 빠”도 없는 상태에서 솔직 담백하게 원로원 의 협조를 구하면서 일을 꾸려 나갔다.
그러면서 집안의 노예나 해방노예, 기타 고용인들 중에 우수한 사람을 관저로 끌어와서 비서
관 체제를 만들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人이었다.
- 이들은 문서작성, 수/발신, 검토, 건의를 총괄했다. 중요한 것은 ‘황제입법’의 형태로 법안이 되는
내용들도 이들이 검토하고 작성했다는 사실이다. 총무처 장관인 셈이다.
- 국세담당부서도 만들었다. 속주 稅, 노예해방 稅, 相續稅, 매상 稅, 기타를 총괄했다.
- 청원 부서 : 제국의 모든 진정서, 청원서가 이곳 책임자를 거쳐야 황제에게 전달된다. 회신 담당부서도
따로 두었다.
- 법무부 문서실 같은 곳도 있었다.
- 포고문 담당부서도 있었다.
이런 체제는 위험할 수도 있었으나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 현대의 한국 사회에서도 비서관
등 대통령의 측근들이 문제를 야기하는 것을 흔히 보아 왔다. 독일의 역사가 ‘몸젠’은 금석문
(金石文)을 수집, 연구한 인물인데 이 사람의 업적으로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수 많은 실질적
인 행정과 성과가 밝혀졌다. “껀수”만 좋아하는 과거 역사가들에게 욕만 먹었던 ‘티베리우스’
나 ‘클라우디우스’는 수많은 공적을 남긴 것이 근자에 와서 확인되었고 그들의 업적이 재평가
된 것은 그 덕이다.
‘클라우디우스’도 가도(街道) 건설, 식민도시 건설, 동맹국 재 편성, 동맹국 속주화 등등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50년간의 공부와 지식의 축적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내공(內功)”이 빛을
발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장 경험이 약한 황제를 크게 도와준 것은 비서실장 격인 그리스 출신
해방 노예 ‘나르키소스’였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비서진이 훌륭하게 일을 했지만 황제에게 장막이 되고 원로원,
사령관, 속지의 재무관 같은 사람들의 황제접견의 길을 막는 데는 문제가 있었다. 더구나 그들
이 하층계급인 해방노예나 노예 출신들이기 때문이다. 비서진 들의 오만한 태도와 축재(蓄財)
였다. “믿을 것은 돈”이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황제는 황제이지만 무섭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 메살리나 황후
로마 역사에서 입에 올리기도 참 낯부끄러운 사람이다. 역사서에 언급하기도 주저될 만큼 색
(色)에 빠졌던 여자다. 최고의 지위에 있던 大帝國의 황후가 스스로 part time으로 (엉터리
영어로 아르바이트) “창녀 촌”에 가서 손님을 받은 여자다.
‘클라우디우스’는 50살에 황제가 될 때까지 세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다. 첫 아내-이혼, 두
번째-딸 하나 두고 이혼, 세 번째가 ‘메살리나’다. 명문귀족 집안 출신이다. 35살 차이가 난다.
황제 집안과 얽힌 혈통이다. 이 여자의 외할머니가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 (‘아우구스투스’
의 누나) 사이에서 낳은 두 딸 중 하나다. 남편 ‘클라우디우스’ 황제와 ‘메살리나’의 어머니는
4촌간이다. ‘메살리나’는 외종숙(外從叔)과 결혼한 것이다. 촌수계산 하지 않는 것이 편하다.
그런데 ‘칼리굴라’의 누이인 ‘小아그리피나’는 ‘메살리나’의 외삼촌과 첫 결혼에서 ‘네로’를 낳
았다. 소생도 촌수는 잘 센다고 자부하는데 로마제국 초기의 넝쿨 같은 촌수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꿈도 꾸지 않던 황후가 되었을 때 ‘메살리나’는 16살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고등 학생이다.
‘클라우디우스’ 의 아들도 낳아 주었다. 나댈 수 있는 토대가 잡혔다. 황제는 집안일을 등한시
했고 방치한 셈이다. 그러니 허영과 물욕에다 성욕까지 더한 이 혈기 방장한 여자의 앞을
누가 막겠는가?
▶ 나대기 1 : 개선식에 뛰어들었다. 황제가 브리타니아에 갔다가 돌아와 개선식을 할 때 19살
의 황후가 끼어든 것이다. 여자들은 원래 포로 외에는 개선식에 끼지 않는다. 無知한 여자다.
▶ 나대기 2 : 물욕이 엄청나다 못해 홍수다. 간통죄와 국가반역죄를 동원해서 남의 재산을
훑었다. 이런 짓은 무관심한 남편 황제와 나서서 도와 준 비서진들의 역할이 컸다.
▶ 나대기 3 : 허약한 체질과 학문과 정무에만 몰두하는 황제 때문에 성욕이 유달리 강한 젊은
황후가 사고를 친다. 창녀 짓은 자제심 부족의 극치다. 황제의 잘못도 크지만 애초
35살 차이도 문제였다. 세월이 흘러 이탈리아에서 ‘메살리나’라는 이름은 성욕이 넘치고
아무하고나 섹스를 하는 여자를 말하게 되었다.
※ 이런 여자와 관련된 말 중에 “살로메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유대 왕국의 헤롯 대왕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녀가 살로메(Salome)다. 가히 미모나 성적 매력이 특급이었다고 한다. 재혼
한 왕비가 데려온 딸이다. 왕비는 자신의 재혼을 비난한 선지자(세례자) ‘요한’을 죽이려고 딸
인 ‘살로메’에게 요염 극상의 춤(현대의 스트립 쇼와 비슷한 것)을 추게 해서 ‘헤롯’ 대왕이 취
하게 만들었고 소원을 빙자해서 요한의 목을 요구했다고 한다(쟁반 위의 목).
聖書에는 ‘살로메’가 나오지 않는다. ‘살로메’가 워낙 요염하게 스트립 댄서같이 춤을 추어
의붓딸이지만 ‘헤롯’ 왕이 맛이 갔다는 얘기가 있다. 실질적으로는 예수의 사도 두 명의 어머
니 이름이 같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성욕이 강하고 성욕에 매여있는 여자들을 “살로메
증후군”환자라고 한다.
위의 장면은 수 많은 그림의 재료로 또 명화로 남아있다(시카고 미술관, 우피치 미술관, 프라
도 미술관 등). 물론 영화에도 많이 나온다. ‘살로메’는 나쁘지 않은 여자로도 묘사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 황후로 인해 황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 국세조사(인구 센서스)
AD48년 34년만에 국세조사가 실시되었다. (예수 탄생 때 국세조사로 마리아가 남편과 고향으
로 돌아가다 예수를 마구간에서 낳았다는 얘기하고는 맞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국가의
힘인 人口, 특히 이 시대는 병력가능인구가 상당히 중요하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 17세이상 병역가능 시민권 자 : 5,984,072명(34년동안 약 100만명이 늘었다. 속주의 증가
율이 더 높았다.)
지금과 비교할 때 당시의 열악한 장비와 체계로 그 넓은 땅의 인구를 조사했다는 것은 대단
하다고 보아야 한다. (※ AD48년 그때 우리 조상들은 3국시대 초반부이었는데 기록이 남아있
지 않으니 어떤 활동과 업적과 성과를 거두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당시 로마의 국력과 병력은 게르만을 다 평정할 수 있었지만 황제는 절제하며 현상유지를
고수했다. 훌륭한 사령관들이 帝國의 변방을 잘 지켜주었다. 그들 중에는 검투사 출신도 있었
다고 한다. 참 별난 민족과 국가가 로마라고 할 수 있다. ‘티베리우스’ 황제가 천거한 이 검투
사는(‘루프스’) 아프리카 회계감사관-로마의 법무관-라인 江 高地 게르마니아 군 사령관이
되었다. 이러니 인류역사에서 가장 장수하고 빛나는 문명과 문화를 남긴 로마가 아니겠는가?
● 우편제도
알면 알수록 로마의 사회체계는 참 대단하다. 원래 고속도로 식 街道나 우편은 페르시아 황제
가 개발했으나 Network(網)로 만든 것은 로마다. 로마는 제국 전체에 공용 우편국을 설치해서
당시로는 엄청나게 빠른 우편체계(정보전달)를 갖추었다. 로마 街道 연변에 10~15km마다
역참(驛站)을 두었다. 거기에는 역관(驛館)이 설치되었는데 숙소(여관), 마구간, 수리소, 우체국
직원을 두었다. 역관은 ‘만시오네스’ 라고 하는데 이는 현대의 ‘맨션’의 어원이다. 이곳은 정보
교환의 장소이기도 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이 우편체계를 민간에게도 개방했다. 공화정
때는 민간우체국에 의뢰했다.
흥미로운 것은 前代 황제가 하다만 로마市 외항(外港)을 건설했다. 한국에서 서해안 방조제를
건설할 때 대형 폐선에 돌을 채워서 가라앉혀 활용한 적이 있었다. 꽤 기발하다고 칭찬했는데
황제는 이때 이미 이 방법을 썼다. ‘칼리굴라’가 만든 대형선에 돌을 채워 가라앉히고 그 위에
등대를 세웠다. 지금 거기 가보면 토사 (土沙)로 인해 흙으로 덮여있다.
첫댓글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서는 헤로데의 의붓딸이 왕에게 무슨 상을 달라고 했으면 좋겠냐고, 그 춤값에 대해 어머니와 상의했는데 어머니가 요한의 목을 요구했다고 나온다. 다만 많이들 알려진 이야기와는 달리 성경에선 단편적으로만 나온다. 그녀의 이름도 안 나오고 '헤로디아의 딸'이라고 지칭된다. 못된 짓을 했지만, 인과응보 같은 건 없어서 그녀는 헤로데 가의 일원인 아리스토불로스와 혼인하여 세 아들을 낳았고, 이들은 헤로데 왕가가 망하기 전에 시리아로 이주하였다. 이들의 후손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헤로데 가문 중에서 유일하게 자손을 남겼으니, 이게 신의 섭리일까? '메살리나' 얘기가 참 재미있구먼..
신약성경에 나오는 살로메는 마리아 살로메라고도 불린다. 제베대오의 아내이자 사도 요한과 대(大) 야고보의 어머니이며, 마리아 막달레나, 소(小)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더불어 예수를 따르던 복음서의 마리아 트리오세 여인으로 등장한다 .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태 20,21) 하고 부탁하였다. 또한 살로메는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 현장에도 있었고(마태 27,56; 마르 15,40), 빈 무덤을 발견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마르 16,1 이하).
옛날 족보는 참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지저분하다. 위에 나오는 살로메가 마릴린 몬로 10배 쯤 야한 여자로 묘사되고 죄없이 욕먹는 사람이었겠네. 아래 나오는 살로메는 그냥 평범한 여자들인데 기독교와 관련된 활동에 많이 나오고 위에 나오는 살로메하고 이름이 같아서 민망하니까 입에 담지 못하게 했나 보네...ㅎㅎㅎㅎㅎ
오랜 세월 예수쟁이로 살아왔고, 신앙 글도 많이 썼지만,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헷갈리는 게 많아. 상선벌악이 아닌 것도 많고, 하느님이 사랑이 많은 분이 아닌 것도 같고, 전지전능한 분이 아닌 것도 같고...이런 의문을 풀어줄 성직자도 없고...성직자들도 나와 그다지 다른 것 같지도 않고. 나이들어 가며 신앙에 관한한, 길에서 길을 잃었다네. 성경, 특히 구약성경을 보면 지저분하기 짝이 없지만, 성직자들은 그런 기록에 대해 궤변으로 합리화하는 것만 같고...난 아무래도 죽으면 (만약 있다면) 천당에 못 갈 것이네.
나는 집사람이 15년간 시집살이 세게 겪고 신혼 초에 아이 하나 낳고 백일 쯤에 중동에 파견나가 3년 만에 귀국한 죄로(중간에 휴가 두 번) 억지로(?) 교회에 끌려 다닌 것이 20년 쯤 된 것 같네. 안 사람은 독실한 신자이지만 나는 사실 신앙심도 한 쪼가리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엉터리 신자이지. 세월이 지나다 보니 한 동네에서 오래 살고 한 교회에 오래 다니 덕에 연로한(70세 이상) 댓가로 명예 권사가 되어 있다네. 형기 군은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고민하지만 나는 솔직히 교회에 나가 앉아 있는 것이 죄를 짓는 기분이지. 믿지도 않고 거부도 못하는 이런 신자는 오히려 믿지 않는 신자만도 못한 것은 아닌가 매 번 고민한다네. 그래도 그나마 교회는 나쁜 길을 말하지는 않으니까 근처에서 배회하는 못난(?) 교회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