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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금융빅뱅
1. 은행권 대형화·겸업화로 질주
‘조·상·제·한·서’ 역사 속으로
이를 기폭제로 1998년 상업·한일(7월 31일), 하나·보람(9월 8일), 국민·장기신용(9월 11일), 조흥·강원(12월 17일)의 합병이 발표되는 등 은행의 짝짓기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이듬해인
우리에게 친숙했던 5대 은행을 줄여서 ‘조·상·제·한·서’라고 불러왔지만
국가 재건과 수출입국에 한 몫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해 모두 구조조정된 것입니다. 상업과 한일은 합쳐져 우리은행으로 바뀌었고, 제일은행은 SC제일은행으로 간판을 새로 달았으며, 서울은행은 하나은행에 흡수됐습니다.
여기에는 기아차, 한보철강, 대우, 동아건설 등 대기업들의 잇따른 도산이 주 요인이었습니다. 대그룹 기업들의 선단식 경영에 자금을 지원했던 은행들이 기업과 운명을 함께 한 것입니다. 지난 달 관치금융에 길들어 스스로 기업의 신용도를 평가해 대출을 해주기보다는 정책적 고려나 권력자들의 로비에 의해 돈을 빌려준 업보였습니다.
당시 은행원의 구조조정은 외환위기를 겪는 국민적 고통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금융시장 현실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화이트칼라의 대명사로 불리던 은행원들은 졸지에 실업자로 전락했습니다. 이 중 많은 이가 지난 10년 간 재기에 성공했지만 가정이 깨어지고 거리를 헤매는 노숙자들도 여전히 많은 게 현실입니다.
끝없는 대형화·대형화 통해 총성 없는 금융대전
대형화와 겸업화는 정부 당국과 IMF 프로그램에 의해 추진된 구조조정, 업계 차원의 자발적인 노력 등으로 급속히 진행됐습니다. 국내 은행 중 세계 100대 은행(총자산 기준)에 끼는 은행이 외환위기 이전에는 전혀 없었으나 지금은 국민·신한·우리은행 및 농협 등이 포함됐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은행들은 금융지주사로 전환하거나 자회사로 비은행 금융기관을 설립 또는 인수하는 방식으로 금융그룹화를 추진해왔습니다. 2005년 12월 하나은행이 지주사를 설립함에 따라 4대 시중은행 가운데 국민을 제외한 3개 은행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됐습니다. 또 신한지주의 LG카드 인수에서 보듯 자산운용사와 방카슈랑스 전용 보험사 설립이나 증권사 및 카드사 인수 등 대형화를 위한 추세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겸업화도 직접 겸업, 자회사, 금융지주회사, 업무제휴 등의 형태로 활발히 전개됐습니다. 펀드판매와 방카슈랑스는 은행의 시장점유율 급신장에 일조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은행의 대형화와 겸업화로 말미암은 부작용도 속출했습니다. 지주사 내 은행과 비은행 계열사 간의 과도한 불균형은 시너지 창출을 제약했고, 은행의 자금중개기능도 현저히 약화됐습니다. 은행의 기업자금중개기능인 기업대출비중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것입니다. 사업 포트폴리오가 비슷해 각 은행이 취급하는 금융상품에 특성이 사라졌고, 따라서 경쟁도 과열됐습니다. 아울러 은행들의 지나친 수익 위주의 경영으로 공익성을 외면했다는 지적도 받게 됐습니다.
2. 토종-외국께 자본 ‘끝없는 전쟁’
1997년의 외환위기는 그전까지 정부의 치마폭에 싸여 있던 국내 은행들에 엄청난 시련이자 도전이었고, 외국계 은행에는 곧 기회였습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토종은행들은 일대 변환기를 맞게 됩니다. 부실금융기관이 대거 퇴출되는 과정에서 은행간 합종·연횡으로 대형화가 빨라졌습니다. 이 틈을 타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국내에 속속 입성했습니다. 제일(現 SC제일은행), 한미(現 한국씨티은행), 외환(HSBC은행 예정) 등 국내 유수 은행들이 줄줄이 외국계 자본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외국계와 토종은행간 치열한 경쟁구도가 형성되면서 ‘금융대전’의 서곡이 울린 셈입니다. 외구계 자본의 국내진출은 국부유출논란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국내 금융산업의 선진화를 앞당긴 계기였습니다.
외국계와 토종은행의 병존
지난 1997년 이전 5% 이하에 불과하던 외국계 은행(외국인이 지배주주로 승인받은 은행)의 시장점유율은 2003년 이후 급증, 2006년 9월 말 현재 14.02%에 달합니다.
국내 은행에 대한 외국자본의 영향력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증시에 상장된 9개 국내 은행 가운데 국민은행과 하나금융지주 등의 외국인 지분율이 80%를 넘어섰으며 신한은행도 재일교포 지분을 포함하면 외국인 지분이 80%에 육박합니다.
외환위기로 촉발된 외국자본의 시장확대로 말미암아 국내 은행산업의 경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보호와 통제 아래 비약적인 성장은 이뤘으나 경쟁력은 갖추지 못한 국내 금융산업은 IMF를 계기로 대형화와 종합금융화가 급진전됐습니다. 아울러 국내 은행들은 자금조달력과 글로벌 네트워크 등을 무기로 한 외국계 은행의 파상공세에 맞서 선진 금융서비스 개발과 효율성 제고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외국계 진출은 금융정책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우물 안’에서 벗어나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눈뜨기 시작한 셈입니다. 이는 국제 글로벌 무대에서의 국내 금융산업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발판이 됐습니다.
국제 경쟁력은 아직 걸음마 수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은행들의 수익성과 건전성은 큰 폭으로 개선됐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총자산이익률(ROA)은 지난 2005년 기준 1.2%로,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크게 호전됐습니다. 미국 은행들과도 어깨를 견줄 만한 수준입니다. 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2.98%로, 미국과 일본 은행보다 높고, 무수익여신비율도 미국 은행과 더불어 1% 미만입니다.
그러나 우리 은행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IT투자나 금융전문인력, 리스크 관리 등 인프라는 물론 수익원 창출력이 뒤떨어집니다. 국내 은행들은 주 수익원이던 대기업 대출시장이 외환위기 이후 크게 경색되자 새 수익원을 찾아나섰고, 그 결과로 신용카드, 소호대출, 가계신용대출 및 주택담보대출 등의 비중을 크게 늘렸습니다. 특히 5년 전부터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하자 주택담보대출에 매달렸으나 최근 정부 규제와 가격거품론 등으로 은행 여신의 부실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안으로 방카슈랑스 및 펀드 판매 등 수수료 수입 비중을 늘리려고 하지만 경쟁이 심화돼 여의치 않은 상황입니다.
3. 간접금융 축소되고 직접금융시대 만개
외환위기 이후 10년의 세월은 우리 기업들엔 홀로서기의 시간이었습니다. 정부가 계획하고 국민들의 예금을 통해 은행이 밀어주던 시대에서,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의 실력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는 혹독한 경쟁의 시대로 패러다임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실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은 시장에서 도태된 반면, 실력을 갖춘 기업들은 ‘자본시장’에서 인정받음으로써 자력갱생의 길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국내 자본시장은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되고, 외국계 자본의 진출로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게 진행됩니다.
자본시장 급팽창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리는 주식시장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비약적인 성장을 한 곳입니다. 1996년 117조원에 불과했던 상장주식시가총액은 1997년 한 때 71조원 대로 주저앉았지만 1998년 138조원으로 늘어나더니 20047년 400조원을 넘어섰고 2005년에는 655조원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 11월 700조원을 넘어섬으로써 10년 만에 5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자본시장의 성장은 그동안 부채에 의존했던 기업들의 자본 강화와, 외국인들의 시장참여로 인한 기업가치 증가에 기인한 바가 큽니다. 1996년 상장사 평균 566억원에 불과했던 자본금은 1999년 1,000억원을 넘어섰고, 2002년에는 한 때 1,600억원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외국인들의 가세로 주식시장이 성장하면서 상장사 평균시가총액도 크게 늘어나 1996년 1,544억원에 불과하던 것이 1999년 4,800억원을 넘어서고, 2003년에는 5,000억원, 2005년에는 9,300억원을 넘어서며 1조원 시대에 바짝 다가서고 있습니다.
자본시장의 이 같은 성장세는 지난 2005년부터 불기 시작한 간접투자 열풍,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퇴직연금시장의 성장 등으로 인해 앞으로 그 기울기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자금조달도 실력
정부 주도의 대출중심정책이 사라지면서 기업들의 자금조달도 실력에 따라 판가름나게 됐습니다. 부실대출로 은행들이 잇따라 넘어져 대출 문턱은 더욱 높아졌고, 이에 따라 실력있는 기업들은 은행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시장에서 자금을 모으게 됩니다.
외환위기 이전 두 자리 수를 넘지 못했던 기업공개 건수는 1999년 147건을 시작으로 IT분이 일어난 2000년에는 무려 268건에 달했습니다. IT버블 붕괴 이후인 2001년에도 208건을 유지하는 등 2004년을 제외하고는 최근 10년간 줄곧 100조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조달액도 1996년에는 37조원에 미치지 못했지만 1998년 136조원, 1999년 358조원, 2000년 103조원으로 폭증했습니다. IT버블이 붕괴되면서 유상증자 규모는 다소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도 주요한 변화입니다.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 299조원 수준이던 회사채 발행액은 1998년 306억원, 2001년에는 872조원으로 세 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비약적인 성장세를 기록했습니다. 이 때문에 주식과 채권을 통한 기업들의 증시자금조달 총액은 1996년 352조원 수준에서 2001년 994조원으로 폭증했고, 최근 회사채 시장이 부진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500조원 안팎의 실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부채비율은 1997년 340.1%에서 2005년 84.85%로, 차입금의존도는 53.91%에서 20.17%로 크게 줄었고, 자기자본비율은 22.67%에서 54.1%로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왜 자본시장인가?
기업들이 자본시장에 더 큰 비붕을 두게 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정착된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장경제 체제’ 때문입니다. 정부의 계획에 의해, 은행의 평가에 따라 듬성듬성 배분된 자금은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면서 기업에 부담이 됐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자본시장의 철저한 평가 없이는 자본을 끌어들일 수도 없게 됐고, 불필요한 자금은 오히려 부담 요인이 됐습니다.
삼성증권
4. 외환자유화 10년 현주소
지난 1997년 국가부도 위기까지 몰고 갔던 직접적인 원인은 외환 부족이었습니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가 39~40억 달러 수준까지 급감하면서 해외에서 상품을 구입한 후 결제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몰릴 처지가 됐던 것입니다. IMF 등 국제금융기관들이 돈을 빌려줘 가까스로 이를 넘겼던 대한민국은 2007년 1월말 현재 2,403억3,000만 달러를 확보한 세계 5위의 외환보유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0년 새 외환보유고가 60배로 늘어난 것입니다.
9년 연속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의 직·간접 투자자금 유입이 나라 곳간을 살찌웠습니다. 그 덕분에 외환위기 당시 2,000원 가까이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최근 급등에도 불구하고 930원 대까지 떨어졌습니다.
또 외환위기는 외환, 증권, 부동산 등 규제 위주의 국제 자본거래를 자유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시장평균환율제도로 운영되던 환율제도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환율방어에 한계를 느낀 정부가 1999년 4월 기존 ‘외국환관리법’을 ‘외국환거래법’으로 개정한 뒤 은행간 시장에서 외환수급에 따라 자유로이 환율이 결정되는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됐습니다.
정부는 국내 외환시장을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3대 시장에 버금가는 동아시아 국제금융의 허브로 육성하기 위해 2011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외환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외환시장 중장기 발전방향’도 추진 중입니다. 제도 개선 후 은행간 대고객 시장의 일평균 외환거래량은 1998년 40억 달러까지 급감했다가 2006년 상반기 290억 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는 거래량 기준 세계 15위 수준으로 대만, 멕시코, 스페인, 뉴질랜드보다 상위입니다.
2004년 하반기부터 기업들의 선물환을 통한 환헤지 거래도 본격화돼 2004년 318억 달러, 2005년 292억 달러에 이어 2006년에는 493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이에 힘입어 원화는 현재 전세계 NDF(차액결제선물환)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통화로 자리잡았습니다. 1999년 4월 국내 외국환은행의 역외 NDF 거래가 허용된 뒤 대규모 외국인 투식투자와 헤지수요가 몰리면서 2000년 일평균 4억 달러였던 것이 2002년 7억 달러, 2004년 17억 달러, 2005년 26억 달러에 이어 2006년에는 9월말 현재 42억 달러를 기록하며 거래량 세계 1위를 차지했습니다.
또 외국인의 주식투자 규제 폐지로 외국인 소유 시가총액은 1999년 87조원에서 2005년 270조원으로 3배 이상 급증했고, 1990년대 초까지 외환유출우려로 금지됐던 해외 부동산 취득도 2003년 30만 달러 한도에서 올 들어 300만 달러로 대폭 확대됐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 직전 도덕적 해이로 지적받을 만큼 심각했던 은행들의 무분별한 단기 외화차입은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05년 10억 달러에 불과했던 해외차입금이 2006년 434억 달러로 급증했고 이 중 단기차입금은 422억 달러로 전체의 97%를 차지했습니다. 2006년 은행들은 27조원 증가한 주택담보대출과 43조원 급증한 중소기업대출의 재원마련을 위해 해외차입을 경쟁적으로 늘려 외환위기 이전으로 돌아간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5. 금융기관에서 금융회사로
외환위기 직후 은행과 거래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높디높은 은행 문턱에 혀를 내둘렀을 것입니다. 살인적인 고금리 탓도 있었지만 가계자금줄을 인위적으로 묶어놔 웬만한 담보나 신용으로는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은행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초저금리 기조를 바탕으로 금리경쟁을 벌여 서로 돈을 빌려주려고 안달입니다. 재무건전성을 강화한 기업들이 은행 돈을 쓰지 않으면서 은행들이 자금 운용할 데가 없어 고객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IMF는 은행의 거래관행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과거 ‘官’ 냄새가 물씬 나던 ‘기관’이라는 이름으로 고객 위에 군림하던 은행은 이제 철저히 고객과 주주 위주의 ‘회사’로 변신했습니다. 여·수신 업무가 절대적이던 은행창구는 상품이 잘 구비된 ‘금융백화점’으로 변모했고 고객들은 은행창구에서 증권, 보험, 카드까지 원스톱 쇼핑이 가능해졌습니다.
‘官’ 마인드에서 ‘고객과 주주’ 마인드로
금융산업의 구조적인 변화에 따라 은행 등 금융사들은 과거 공적인 역할이 강했던 ‘금융기관’에서 고객과 주주 이익을 우선시하는 ‘금융회사’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관치금융이 외환위기를 불러온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은행에 대한 각종 외압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결정했던 업무 프로세스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도록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부서장 책임 하에 이루어져 은행장의 입김도 끼어들 틈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은행들이 겉으로는 친절해졌지만 ‘속 차별’은 더욱 심해진 것은 아이러니컬합니다. 수익 중심의 경영을 펼치다 보니 우량 고객은 더욱 우대하고 신용도가 낮은 개인과 기업은 은행 문턱을 넘을 길이 아예 차단된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가계에서 발생한 대출 대부분이 주택 등 담보대출이었고 마이너스 통장을 제외한 신용대출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중소기업 대출이 늘고는 있지만 이에 대한 대출심사는 아직도 초보 수준입니다.
수익위주경영은 저축은행 등 2금융권도 마찬가지입니다. 2000년대 초반
‘금융상품 백화점’에서 원스톱 쇼핑
2년 여전부터 금융지주사들을 중심으로 ‘금융백화점’으로 불리는 복합점포들이 우후죽순으로 탄생했습니다. 고객들은 은행이나 증권사 등을 여기저기 옮겨다녀야 하는 불편이 크게 줄었고, 은행 입장에서도 다양한 상품을 교차판매할 수 있게 돼 고객유치 측면에서 매우 유리해졌습니다. 은행점포에서 취급하는 상품은 카드, 펀드, 보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상품을 망라합니다. 은행의 대형화와 겸업화가 고객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금융지주가 하나은행과 하나대투증권을 묶은 ‘하나금융프라자’를 전국에 55개나 열었고, 우리금융지주도 서울과 부산 등에 ‘복합금융센터’를 운영 중입니다. 신한금융지주는 전국에 29개의 ‘BIB(Branch in Branch)’ 점포를 운영 중이며 국민은행은 전국 1,100여 개 영업점을 활용해 증권·보험업무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삼성그룹 금융계열사도 보험과 증권, 카드 등을 한 곳에 모아 취급하는 ‘삼성금융프라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복합점포는 비단 은행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대한생명도 한화손해보험, 한화증권 등 한화그룹 금융계열사와 함께 통합금융점포인 ‘한화금융프라자’를 개설했고, 미래에셋생명도 전국에 금융플라자를 계속 늘리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금융산업의 지형도 급격히 변했습니다. 신용카드산업의 경우 LG카드와 삼성카드 등 전업계 카드사가 장악했던 시장이 이제는 은행계 카드사로 완전히 주도권이 넘어갔고 LG카드마저 신한지주에 인수되면서 그 갭은 더욱 벌어지게 됐습니다.
펀드자금도 은행창구로 밀물처럼 유입됐습니다. 2006년 11월말 현재 은행의 펀드판매비중은 전체의 37%로 2003년말 17%, 2004년말 27%, 2005년말 32%에서 계속 늘고 있습니다. 방카슈랑스(은행의 보험상품 판매)의 본격 시행으로 보험사에 대해서도 은행이 ‘Buying Power’를 갖게 됐고 은행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이는 곧 은행으로 금융산업 집중도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저금리 기조로 금융상품도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단순 예금금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고객들을 위해 지수연동예금(ELD) 등 주식 등과 연계한 퓨전형 상품이 봇물처럼 쏟아졌습니다.
6. 펀드 자본주의 시대 본격화
1961년 1차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된 이후 1997년까지 우리 기업들의 핵심가치는 오로지 ‘성장’이었습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에서 ‘결실’과 ‘분배’라는 개념은 사치에 불과했고 오로지 자본을 축적해 또 다른 성장동력을 만드는데 모든 경영의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인해 자본주의의 원칙에 충실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기업들이 노출되면서 그동안 소외돼 온 주주가치가 새로운 경영의 핵심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동안 창업자 또는 오너(Owner)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경영권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하나의 ‘옵션(Option)’이 됐고, 주주이익제고에 가치를 무시한 기업들은 호된 시련을 겪으면서 주주자본주의가 자리를 잡아가게 됩니다.
특히 2005년부터 불어닥친 간접투자 바람은 외국계 투자자 일변도의 주주행동주의를 일반투자자들에게까지 확산시키면서 주주자본주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외국계 자본 대공세, 흔들리는 경영권
1998년 2월, 외환위기의 충격이 여전할 때 글로벌 헤지펀드인 타이거펀드는 국내 초우량기업인 SK텔레콤 지분 6.66% 확보를 발표했습니다. 이어 오펜하이머펀드 등과 연대해 사외이사 선임에 성공하고, 이듬해인 1999년에는 액면분할과 이사해임까지 요청하며 경영진을 압박합니다. 법정소송까지 간 경영진과 타이거펀드의 대결에서 결국 경영진이 승리를 거뒀으나, SK텔레콤 측은 막대한 자금을 들여 타이거펀드의 보유지분을 되사들이는 ‘출혈’을 경험했습니다.
2003년 4월, 5대 재벌의 하나인 SK그룹은 4년 여 만에 또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립니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로
2006년 2월, 외국계 투자자본인 칼 아이칸은 민간기업을 전환한 국내 간판 공기업인 KT&G 지분 6.59% 보유공시를 냈습니다. 이어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을 요구하는 등 경영진을 전방위로 압박했습니다. 또 공개매수와 다른 외국계와의 연대 등을 내세우며 공세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당황한 KT&G 경영진은 국내 기관투자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파상공세를 일단 막아냈지만 사외이사 자리 1석과 주주가치증대를 위한 마스터플랜이라는 선물로 칼 아이칸을 달래야 했습니다. 회사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만이 최선인 줄 알았던 국내 경영자들로서는 SK-소버린 사태 이후 또 다시 주주가치제고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주주를 배부르게 하라
타이거펀드와 소버린, 칼 아이칸을 겪으면서 기업들이 깨달은 교훈은 ‘결코 주주를 배고프게 하지 말라’입니다. 이익을 내고, 주가를 끌어올림으로써 끊임없이 주주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현재의 경영권을 지킬 수 없다는 위협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그동안 흩어졌던 개인들의 자금이 국내 주식형펀드를 통해 집단세력화되면서 더더욱 주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실제 1996년 각각 11.58%, 5.77%에 불과했던 외국인과 투신의 국내 상장사 지분율은 2005년 16.87%와 5.69%로 늘어난 반면 일반법인의 지분율은 꾸준한 자사주매입에도 불구하고 1996년 15.52%에서 2003년 한 때 20%를 넘어섰지만 2005년 17.52%로 다시 줄어 10년 새 불과 2% 포인트 늘어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2001년 이후 상장사들의 배당수익률은 꾸준히 상승, 2003년과 2004년에는 2%를 넘어섰고, 이후에는 자사주매입이 새로운 주주이익배분방법으로 선호되면서 배당수익률은 다소 줄어듭니다.
기업들이 배당보다 자사주매입을 선호하게 된 것은 현금배당과는 달리 회사의 현금을 외부로 유출시키지 않으면서 유통물량을 줄여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유사시 우호세력을 통해 現 경영진의 경영권을 옹호하는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해마다 2조원 가량의 자사주매입에 나서는 것도 이 같은 이유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입니다.
삼성증권
7. 제2금융권도 금융시장 주역으로
국내 보험사들에 1998년은 보험역사를 통틀어 가장 잔인한 해였습니다. IMF는 과도한 사업비 집행으로 손익구조가 취약하던 보험사들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1998년 6월 셩명보험사에 대해 지급여력 부족비율에 따른 제재조치가 내려지면서 구조조정이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이름도 낯선 고려, 국제, 태양, BYC 등 4개 생보사의 보험계약이 제일, 삼성, 흥국, 교보생명으로 넘어가면서 첫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이어 동아, 국민, 태평양, 한덕, 한국, 조선, 두원 등 7개 생보사가 매각됐습니다.
한국과 조선생명을 인수한 현대그룹은 2000년 현대생명을 출범시켰지만 경영상황이 악화되면서 결국 대한생명으로 보험게약이 이전됐고, 삼신올스테이트생명 역시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대한생명으로 넘어갔습니다. 대한생명도 자체 경영정상화가 불가능해져 예금보험공사가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2002년 한화그룹이 인수하게 됩니다. 2001년에는 대신생명이 녹십자로 넘어갔고, 2004년에는 한일생명이 KB생명으로 계약이전되면서 생보사 구조조정은 일단락됐습니다.
손해보험사에 대한 구조조정은 회사채보증으로 부실화된 보증보험사부터 시작됐습니다. 한국 및 대한보증보험이 1998년 서울보증보험으로 합병됐는데, IMF이후 기업의 연쇄부도로 동반 부실, 1999년에 1조2,5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습니다. 서울보증은 이후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신청과 대우그룹 워크아웃 결정 등으로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9조원의 우선주 출자방식으로 지원받았고 최근에야 경영정상화를 이루면서 공적자금을 갚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 보험가격자유화가 시행되면서 그동안 풀 형태의 보험인수로 균등성장을 해 온 손보업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2001년 대한화재가 대한시멘트에, 2002년 국제화재가 근화제약에 각각 매각됐고, 리젠트화재는 5개 손보사가 계약을 나눠 가졌습니다. 1997년 당시 50개 보험사 중 21개사가 간판을 내리게 됐습니다.
지난 10년간 보험산업에는 구조조정 못지 않게 시장개방과 이에 따른 외국사 진출이 국내 보험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외국계 보험사들이 국내 생보시장을 중심으로 본격 진출, 시장점유율이 2006년 11월말 현재 20.4%까지 치솟았습니다.
저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최대수익원인 자산운용 패턴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보험사는 기업대출을 축소하는 안정성 중시의 자산운용전략을 구사했고 저금리 기조로 자산운용수익률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한편에서는 과거 고금리 보장상품의 금리 역마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고령화 사회의 급속한 진전은 보험상품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고령화에따른 노후보장 수요가 증가하면서 생존보험(연금, 변액보험 등) 시장점유율이 꾸준히 증가했고, 질병관련 보험시장이 급속히 확대됐습니다. 특히 변액보험은 보험상품에 일대 혁신을 몰고 왔습니다. 보험에다 투자기능까지 겸비한 변액보험이 최근 몇 년간 성장을 거듭했고 최근 들어서는 불완전판매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판매가 주춤한 상태입니다.
근로자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제도변화도 눈에 띕니다. 근로자 복지 차원에서 지원되는 단체보험시장은 주로 퇴직 후 보장을 담보하는 퇴직단체보험이 주도했습니다. 최근에는 자연재해나 인위재난 등 대재해 리스크가 보험산업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3년 8월 도입된 방카슈랑스(은행의 보험상품 판매)는 보험산업의 주요 판매채널로 부각됐고 2008년 4월 보장성보험과 자동차보험 등 3단계가 시행되면 방카슈랑스는 완전 개방됩니다.
온라인 자동차보험시장도 급팽창했는데 가격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부작용으로 나타났습니다. 보험개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