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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년을 위한 메시지와 문화공간 스크랩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의 사랑
朴大山 牧者 추천 0 조회 23 13.09.14 18: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통영에 비친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의 사랑 /솔새,김남식

 

 

                                                                                                                                 

 

                                                                                                                                         * photo by 은향

 

            

 

 

 

 * 파도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통영 앞바다에서 바위를 때리고 있는 청마의 시 "그리움"은 "뭍같이 까딱않는" 정운에게 바친 사랑의 절규였다.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는 정운이기에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고 청마의 사랑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았다.

청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쓰고 시를 썼다.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청마의 사랑 시편들에 마침내 빙산처럼

까딱않던 정운의 마음이 어느날 부턴가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여류 시조시인 이영도에 대한 청마의 사랑은

     현실적으로 이룰 수없는 울림이였기에 퍽이나 고통스러운 사랑이였다

     미모와 재색을 고루 갖춘 규수로 21살에 출가해서 딸 하나를 낳고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아가던 정운 이영도는

     해방되던 그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교사로 부임하면서 그 사람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 되였다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통영여중 국어교사가 된

     청마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요조숙녀의 자태에 청마의 첫눈에

     깊은 물그림자로 자리 잡기 시작 했다.

 

     일제하의 방황과 고독으로 지쳐 돌아온 남보다 피가 뜨거운

     서른 여덟살의 청마는 스물 아홉의 청상 과부 정운을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불길이 치솟았다.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그러기를 3년, 마침내 이영도의 마음도 움직여 이들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시작됐으나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었고

   청마가 기혼자여서 이들의 만남은 거북하고 안타깝기만 하였다.

 

   처자가 있는 청마로써는 그녀와의 사랑은 애초부터 이루어 질 수 없는 숙명 일수 밖에 없었다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인연 이기에 청마의 가슴 속에 자리한

                                                    연정의 조각은 가슴 저미는 쓰라림으로 남아 있곤 하였다

 

 

 

 

 

 

 

 

 -유치환의 `행복`중에서-

 

 

 

 

 

 

 

 

 

 

 

 

 

 

 

 

 

 

 

 

 

 

 

 

*사진설명 / 행복의 詩무대인 통영 중앙우체국앞 길 우체통옆에 '행복' 시비가 보인다

  목욕탕건물이 청마부인이 운영하던 유치원자리, 금강제화 맞은편이 정운의 집이었다 한다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가

  아니고 정운의 집을 바라보며 청마는 편지를 썼을 것이다. 요즈음 친일행적의 논란에서

  청마가 다행히 면죄부를 받자 중앙우체국을 청마우체국으로 개명할 움직임이라니...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현실의 사랑을 한단계 초월하여 받는니 보다 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던...

그의 사랑은 외로움이였다.  아마 한계가 있는 사랑이기에 오히려 감동을 더욱 진하게 안겨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청마가 정운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두 그대로 시였다.

 

 

"내가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던?
그러나 얼굴을 부벼 들고만 싶은 알뜰함이
아아 병인양 오슬오슬 드는지고".

"덧없는 목숨이여 소망일랑 아예 갖지 않으매
요지경같이 요지경 같이 높게 낮게 불타는
나의 -노래여, 뉘우침이여".

"나의 구원인 정향! 절망인 정향!  

나의 영혼의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 날이 나의 낙명(落命)의 날이 된다 할지라도 아깝지 않을 정향 "

 

- 52년 6월2일 당신의 마(馬)- 

 

 

 

아무튼 청마는 생전에 5000여통의 편지를 그녀에게 보내면서 장년기의 제2청춘을 아름답게 엮어 나갔다

이영도의 시를 보면 그녀도 매몰차게 청마를 거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유치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을 거둘 때까지 숱한 세월의 격랑 속에서 안타까운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며

긴 세월 동안 이루어질 수없는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무제 (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窓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정운 이영도 청저집 중에서-

 

 

위시 무제는 정운 이영도가 청마 유치환과의 연정을 한창 싹틔우고 있을 무렵의 심경을 토로한 작품으로 이영도는

사랑에 대해선 퍽 용감하고 솔직했다. 정운과 청마의 사랑은 청마가 정운에게 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란

책에 절절히 기록되어 있듯이 뜨겁고 열렬했던 그들의 사랑은 찬탄할 만하다.

 

이영도는 유치환을 잃은 마음을 시로 남겼다.

 

 

탑(塔-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愛慕)는 사리(舍利)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위 시를 읊을 때마다 그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 눈물겨운 것은 시인 청마 유치환과

            이영도의 20여년에 걸친 플라토닉 사랑이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전설과도 같았고

            사랑은 미완성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애타는 심정을 시로 서로 화답하고 당신이 주신 시를 수 놓은 그 병풍 아래 누워야 잠이 들고

            하루에 한 장씩의 편지를 주고 받아야만 진정이 되는 두사람의 사랑은 참으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였다.

            들판에 홀로 서서 배달부가 오기를 마냥 기다리거나, 5~6시간 버스를 타고 부산에 와서 단지 수십분만

            얼굴을 마주보고 돌아갔던 적도 있는 그런 순진한 청마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스무해동안 청마는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다.

              끝이 보이지 않던 유치환의 사랑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이 났다.

              부산여상 교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1967년 2월 13일 저녁 예총일로 문인들과

              어울렸  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시내버스에 치여 59세의 나이에 붓을 영영 놓게 된다

 

              청마가 보낸편지 중에 6·25전쟁 이전 것은 불타 버리고 청마가 사망했을때

              남은 편지는 5,000여 통이었다. 그 당시 <주간한국>이 이들의

              '아프고도 애틋한 관계'를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으로

              실은 것이 계기가 되어 당시 신출내기 출판사 편집장이던 이근배 시인에게 넘기고

              청마의 편지중 200여통을 추려서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으로 출간해서 세상에 나오게 된다 

 

              연서를 상품화한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정운 이영도가 서간집을 펴낸 것은

              청마의 이미지 훼손을 막고 그를 진정으로 사랑한 이는 자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했다고 하는데 뜻밖에 이 책은 2만 5천부가 팔리자

              마땅히 서한집의 인세는 청마의 유족에게 돌아 가야 할 것이나 현대시학에

                                                                              '작품상'기금으로 기탁 운영해 오다 끝을 맺지 못하고 정운이 갑자기 죽자

              수익금은 뒷날 ‘정운시조상(丁芸時調賞)’의 기금으로 적립되었다고 한다

 

 

 

청마는 1908년 거제에서 출생해서 통영에서 자랐다. 23세인 1931년 문예 월간에 '정적'시를 발표 하면서 문단에 등단했고 

그는 문학 청년들과 어울려 술 마시기에 골몰하자 그의 아내는 신학 공부를 권유 했으나 거절하고 시작에만 전념했다.

가족을 이끌고 평양으로 이주해서 사진관을 경영하다가 다시 부산에서 화신연쇄점에 근무하기도 했으나 통영 협성상업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육자의 길을 걷는다. 일제의 검속 대상에 몰리면서 잠시 만주로 나가 형의 농장일을 돕다가 1945년 37세 되던해

통영으로 돌아와서 부인은 유치원을 경영하고 윤이상.김춘수와 통영문화협회를 조직하고 통영여자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는다.

6·25전쟁 때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하여 당시의 체험을 '보병과 더불어'라는 종군시집으로 펴냈다. 청마는 한국시인협회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통영 남망공원.경주 불국사 부산 에덴공원에 시비가 있으며 영 정양동에 청마 문학관이 있다.

 

 

이영도는 1916년 경북 청도에서 군수를 지낸 부유한 가정에서 개인교사를 두고 공부를 했다. 1945년 시월간지 죽순에 '제야'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오빠 호우도 시조시인이며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에 생가가 있으며 그녀는 한국 여류문인협회와

한국 시조작가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이영도는 남편의 죽음 뒤에 정신적 기둥이였던 청마의 돌연사로 큰좌절을 겪은뒤 불교에서

그녀의 작품은 기독교의 안식을 받았다 하는데.... 정운은 청마가 세상을 세상을 떠나자 부산에서 서울로 옮겨 살았고 1976년 

뇌출혈로 삶을 마감 하는데 이상하게도 청마가 이생에서 누린 나이와 똑 같이 59세 이다

  

 

 

에필로그 ~

 

 

이영도가 일찍이 혼자가 되어 오직 시를 쓰는 일과 딸 하나를 키우는 일에 전념할 무렵에 많은 남성 문우들로부터

선망을 받고 있던 상당한 미인이였지만 혼자의 몸으로 그렇게 꿋꿋하게 그의 시와 딸을 지키면서 살 수있었던 것은

청마 유치환과의 애정에 크게 힘을 입었던 것으로 그들의 사랑은 이영도로 하여금 외로움과 여러가지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받쳐 주는 든든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것 같다 

청마를 향한 그리움은 그의 시를 시들지 않게 해준 충분한 자양이 되었던 것이다

유치환이 이영도에게 보낸 절절한 편지 하나를 더 소개해본다.

 

 

 

사랑하는 정향!
바람은 그칠 생각  없이 나의 밖에서 울고만 있습니다.
나의  방 창문들을 와서 흔들곤 합니다.
어쩌면 어두운 저 나무가, 바람이, 나의 마음 같기도 하고 
유리창을 와서 흔드는 이가 정향, 당신인가도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이리다.
주께 애통히 간구하는 당신의 마음이 저렇게 정작 내게까지 와서는 들리는 것일 것입니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는 하느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고 눈 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리길입니까?
끝내 만리길의 세상입니까? 

정향!
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죄값으로 사망에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아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 여사에게-

 

 

 


감각적인 사랑, 피부적인 사랑, 한계가 있는 사랑이 넘치고 있는 현실속에서,

생명도 들여 밀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황폐된 사랑의 불모지 속에서

청마는 이미 감동적인 사랑, 불멸적인 사랑으로 조용히 그의 애정을 키워 놓았다.
소중하고도 행복한 사랑
즉 주는 사랑을 불붙여 놓은 것이다.

  

 

흔히 나의 이야기는 '로맨스'고, 남의 이야기는 '불륜'이라지만, 이 두 분의 사랑은 불륜이라 이름하기엔 너무 아름답기에.
후세 사람들은 그들에 사랑을 기억하고 있으며 이루지 못할 사랑인 줄 알면서도 20년 간 지켜간 그네들의 사랑은
불륜이라 치부하기엔 진정한 사랑과 고통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지가 않을까 한다 .  

 

3년만에 청마에게 마음을 연 이영도.. 이렇게 그들은 20년 동안 사랑을 키워왔으며 인스턴트 사랑이 판치는 현대에서 분명

이들의 사랑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써 아마 유치환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지만 않았다면 더 긴 세월을 사랑했을 것이다.

유치환에게서 받은 편지를 한통도 버리지 않고 모아둔 이영도.. 그것은 그를 받아드렸다는 증거였고 사랑이였다 
나도 만약 이영도를 사랑한 만큼의 유치환처럼 좋은 사람이 있었다면 나역시 한 통의 편지도 버리지 않고 모을 것같다


한편 청마는 몇몇 여류 시인들과도 많은 편지 교류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아마도 그것은 골육지책이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특히 50대에 인연을 맺은 자신의 시 독자인 반희정에게도 편지를 보냈는데 반희정이 청마 사후에 펴낸

<청마와 사색의 그림자들/ 1970년 현암사발행>에도 유치환의 편지가 들어있다

 

 

 

 

 

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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