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에 사용된 일러스트. 하완 작가 제공
지난 4월 출간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9만부 이상 찍어낼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으나 정작 저자 인터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출판사에 연락하니 “열심히 하는 분이 아니라…”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책을 쓴 일러스트레이터 하완씨(41)는 지난해 퇴사를 작정하고 ‘1년 대충 살기’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실천한 것은 언어생활에서 ‘열심히, 최선, 노력’을 빼기였다. 그림 의뢰를 받으면 ‘이번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를 늘 써왔던 터라 다른 말을 찾기 어려웠다. 고민 끝에 ‘이번 프로젝트 모쪼록 재밌게 해보겠습니다’라고 고쳐 썼다. 그랬더니 정말 재미를 찾게 됐고, 더 이상 일이 싫지 않았다.
“대충 살면 제 삶이 그만큼 망가질 줄 알았어요. 열심히 안 하면 어디까지 망가질까, 지켜보고 싶기도 했고요(웃음). 인생을 걸고 실험한 결과, 한쪽으로 치우쳤던 내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 남들 사는 대로 살 텐가
하완씨는 열심히 살겠다 마음먹었을 때는 자신의 삶이 한없이 부족해보이고 자책이 많았다고 했다. 대충 살면서 도리어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점은 작가 스스로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물론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죠. 하지만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가 달라지니 한결 여유로워졌어요.”
책 표지에는 흰 속옷 차림의 남성이 고양이를 등에 업고 나른하게 드러누워 있는 그림을 넣었다. 하씨는 “연세가 있는 분들이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도리어 젊은 세대의 반응이 좋더라”라고 했다. 물론 반작용도 있다. “책 제목만 보고 거부감을 표시하거나 아등바등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의 방식이 모욕받는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이 책은 열심히 사는 분들을 위로하려는 내용입니다. 옛날 같으면 이런 거 책으로 못 나와요(웃음).”
극과 극은 통한다 했던가. 지난 8월 공항에서 포착된 ‘열정의 아이콘’ 유노윤호의 손에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가 들려있었던 건 팬들 사이에서도 불가사의로 통한다.
하완씨는 40대 초반이다. 한창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거 별로야”를 입에 달고 살며 삶이 심드렁해질 나이다. 그는 열심히 살다가 도착한 권태기와 흐름에 맡기는 삶에서 오는 여유 중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되묻는다.
직장인 김현아씨(25) 역시 ‘대충 살자’ 북극곰을 본 순간을 기억한다. “때로는 북극곰처럼 걷지 않고 미끄러져 내려갈 줄도 알았어야 했는데….” 대충 사는 북극곰을 본 뒤 “ ‘피식’하면서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이후 블로그 포스팅에 ‘#대충 살자’를 걸고 ‘나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을까?’ 의문을 제기하며 스스로의 다짐을 적어두었다. 그 마지막은 ‘행복한 생각만 하기’였다.
“대충 살자 시리즈를 보고 ‘그래, 이래도 되잖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모든 일에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닌데, 왜 다들 한 길로 가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있을까요?”
올 초 라오스 근무를 시작한 김씨는 최근 선임 자리에 올랐다. 한창 일에 대한 의욕이 솟구칠 시기다. 반면 ‘취업은 언제 할 거냐’ 퀘스트는 넘었으니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아이는 안 낳을 거냐’ 등 생애주기에 따른 질문 공격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시선 밖에 나지 않으려고 맞춰가고 있는 이들에게 ‘대충 살자’가 호응을 얻은 것 같아요. 저 역시 그 시선을 신경 쓰며 맞춰가려 하고 있으니까요.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데도 스스로 그 굴레에서 못 벗어나고 말이죠.”
텃밭에서 채소를 키워 먹고 남은 것만 시장에 내다 팔면서 살아도 아무런 걱정이 없는 라오스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대충 살자의 선도 주자들”이라고 언급했다. 내려놓기의 지혜를 실천하게 된 데에 라오스의 여유로운 공기도 한몫했다. 김씨는 ‘대충 살자’ 유행은 대열의 이탈자 취급을 받던 1명이 공감의 그룹을 형성하는 움직임으로 받아들였다.
■ 소확행은 마케팅, ‘대충 살자’는 집단 정서
흔히 ‘대충 살자’는 욜로 혹은 소확행으로 대표되는 자족론에 가깝게 여겨진다. 어려운 현실에 안주하는 일본의 사토리세대, 대만의 벙스다이(崩世代)에 비교되기도 한다. 소확행은 어렵지만 행복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긍정의 당의정을 입고 활발하게 소비되며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다. 서점에서도, 광고에서도, SNS 프로필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이광석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워라밸, 소확행, 욜로 등은 현실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줄임말로 무력감을 드러내는 의미)에 대해 각기 다른 주체가 체념을 삭이는 방식입니다. ‘대충 살자’ 정서는 다릅니다. 넘사벽에 좌절해 강제적으로 체념된 집단 정서에 가깝습니다. 웃픈(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 자신과 또래의 상황에 헛헛한 기분을 나누면서 자족하는 정서죠.”
이 교수는 ‘대충 살자’ 놀이가 소확행보다 우리 청년의 현실을 보는 데 더 큰 진실값을 갖는다고 말한다. 적어도 소확행은 청년 스스로가 규정하는 용어가 아니라는 것. 시간을 쪼개어 아르바이트를 하고 과로사 걱정하는 청년들에게 워라밸 역시 남의 얘기다.
‘하마터면…’ 펴낸 하완 작가
퇴사하고 ‘1년 대충 살기’ 시작
“그만큼 망가질 줄 알았는데
치우쳤던 삶, 균형 잡힌 느낌”
자기계발 담론 따랐던 청년들
강요된 성실에 의문 제기하며
자신을 표출하는 놀이로 맞서
“기성세대, 특히 지식인들이야말로 소확행적인 삶을 살아왔잖아요. 그래서 열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워라밸, 소확행의 감성이 소비 정서와 만나니, 마케팅에 특히 좋잖아요. 그게 과대 포장되어 유행하는 측면이 있는데, 우려할 지점이라고 봅니다. 소확행은 스스로를 돌보고 개인에 집중하는 점에서는 좋지만, 또 다른 형태로 청년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거든요.”
이 교수는 특정 세대를 호명하는 방식은 사실 내려다보는 시각에서 빚어진다고 풀이한다. ‘열정세대’가 열정페이로 변질되며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을 합리화하고 과잉착취를 정당화하려는 담론으로 쓰였던 것을 그 예로 들었다.
“이른바 촛불세대, 4·16세대라 불리는 청년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정치적으로 의식화·각성화되고 생각이 열려 있습니다. 더 가능성을 가지는 세대죠. 결코 ‘무민’이 아닙니다.”

“대충 살기 실천하면서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게 돼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음은 한결 여유로워졌어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작가 하완씨.
■ 청년들의 자조적이고 저항적인 놀이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2017년 초 논문 ‘복학왕의 사회학: 지방대생의 이야기에 대한 서사 분석’을 통해 그동안 한국 사회가 등한시했던 지방대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청년 담론을 이끌어냈다. 지난 6월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의 부제는 ‘지방 청년들이 우짖는 소리’다. ‘대충 살자’는 최 교수에게 서울 청년‘마저’ 우짖는 소리로 들렸다.
한때 청년들은 자기계발 담론이 짜놓은 시스템을 충실히 따랐다. 자아를 기업가의 시선으로 보니 부실기업처럼 보였고, 혁신하면 더 나은 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성공은 소수에게만 허락됐다. 이어 청년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생존주의자가 됐다. 하지만 죽어라 노력해서 얻는 것이 고작 생존이라면 죽어라 할 필요가 있을까? 최 교수는 일련의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지방대생이라 보았다. 그가 발견한 지방대생들의 습속은 “경쟁 밖에 자신을 위치 짓고, 설사 경쟁에 뛰어든다 해도 느슨하게 하며, 성찰적 겸연쩍음으로 경쟁 과정과 결과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 것”으로 요약됐다.
“이 같은 적당주의가 지역만의 문제라 생각했는데 전반적으로 서울의 생존주의자들도 지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껏 해봐야 얻는 것이 생존이라면 ‘대충’하는 거죠. 그럼 과정도 즐겁고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 실패해도 상처받지 않잖아요. ‘대충 살자’는 생존주의자로 몰린 청년들의 자조적인 놀이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부모 세대도 생존을 위해 분투했다. 전쟁, 궁핍을 겪고 얻어낸 값진 생존이었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은 강요된 성실을 통해 얻는 것이 생존이라는 데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열심히 해야만 생존하는 사회는 어불성설이라고 받아친다. “남들 보란 듯이 좋은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당연히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모든 원흉은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경쟁을 통해 소수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그래서 대다수가 패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겠죠. ‘대충 살자’는 이 사회에 대한 청년들이 택한 저항의 한 방법입니다.”
최 교수는 10년 전부터 지방대생에 관한 연구를 이어왔다. 연구 논문에 따르면 “공부를 독하게 몰두해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이들은 노는 것에 심하게 몰두하면 인생이 망가진다는 것도 안다. 따라서 그 어떤 것도 독하게 몰두하지 않는다.” 최 교수는 원인 중 하나로 “살아가야 할 집단의 이야기가 없다”는 점을 지목했다. 적어도 과거에는 화목한 가족이라든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 같은 공동의 서사가 있었다. 액체화된 사회는 젊은 세대의 삶을 안정적으로 받쳐주지 못하고, 기성세대는 청년들을 의미 없이 사는 존재로 치부한다.
“청년들에게 어떻게 살 거냐고 물어보면 평범하게 살겠다고 합니다. 그게 뭐냐고 또 물으면 좋아하는 걸 하겠대요. 그게 뭐냐고 다시 물으면 ‘몰라요’라고 합니다. 사실은 그게 옳아요. 젊은이들이 그걸 알고 살아간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예요. 해보지도 않았는데 어찌 알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은 교육에 있다고 최 교수는 말했다. 스펙과 입시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학교 교육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의견이다.
이광석 교수는 ‘언론과 사회’ 2018년 여름호에서 청년대중서의 시발점이 된 2007년 <88만원 세대>부터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청년 힐링 서적,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같은 지배 담론에 대한 대항 서적, <잉여사회>처럼 청년의 다층적 면모를 드러낸 책들을 분석하고는, 지금 단계는 “청년 스스로 의미 있는 삶을 꾸리고 자립을 구상하려는 대항 담론적 논의가 형성되는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충 살자’는 청년의 정확한 현실을 바라보고 그들의 지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어떻게 그들의 고민을 개선할 수 있을지, 그들의 심리적 헛헛함을 어떻게 존재론적으로 바꿔줄 수 있는지 고민하라는 명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야흐로 ‘청년팔이’는 끝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