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인간은 ‘폴리아모리’?
책 ‘여하튼 철학을 팝니다’에서 전 세계
16퍼센트의 국가만이 일부일처제를 시행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는 말은 전세계 84퍼센트의 국가는 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부다처제는 들어 봤는데 어째 일처다부제는 별로 귀에 익지가 않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다부다처제를 시행한다는 84퍼센트의 국가들 중 대부분은
일부다처제를 시행하고 극히 일부분만이 일처다부제를 채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머독의 비교문화연구의 자료로 사용된 565개의 사회 중 1%도 못 되는
4개 만이 일처다부제를 시행했다.
많은 국가에서 다부다처제를 실행한다는 것을 이유로 폴리아모리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취급하려면
최소한 일부다처제를 시행하는 국가와 일처다부제를 시행하는 국가의 비율의 수치가 비슷해야한다. 그리고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 많은 국가들에서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구분 없이 정말로 다부다처제가 시행되고
있어야 한다. 인류학자들은 저마다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가
생겨난 이유에 대해 적당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데, 일부다처제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이 하나의 재산처럼
여겨졌기에 발생한 제도이고, 일처다부제는 주로 여성의 수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답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중요한 것은
최소한 그들이 이 제도들의 발생 원인에 대해 폴리아모리를 염두해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1남2녀(일부다처), 혹은 2남1녀(일처다부)가 되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데 이 말의 뉘앙스는 원래 ‘1남1녀(1부1처)가 자연스러웠는데’라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재미있게도 다부다처제를 시행하는 국가들의 모습은 일부일처제가 자연스러움을 반증한다. 만약 2남2녀(다부다처)국가가 대부분이었다면 그 원인을 폴리아모리 자체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폴리아모리가 자연스럽다는 말은 어디에 근거한 주장일까? 이는 철저히 진화론적 관점에 기반한 주장인데, 지금의 발전된 인간사회에서
최대한 원초적이어 보이지 않는 제도들을 제거했을 때를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상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폴리아모리를 심층적으로 다루다 보면 ‘난혼’이라는
단어를 배우게 되는데, 이는 결혼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어떤 제도에 의해 제한 받지 않는 남녀의 사랑을
말하는 단어이다. “결혼은 비원초적인, 인위적인 제도에 불과하며, 원시사회의 인간은 난혼을 했다.” 이것이 폴리아모리에 대한 근거이다.
그러나 윗 문단에서 이야기했다싶이 현대사회에서
난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결혼제도는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인위적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동물들의
사회를 관찰해보면 대부분은 암, 수 하나씩 짝을 지어 가족을 이루는데,
동물을 포함한 자연과 인간의 유사성을 고려했을 때 이는 폴리아모리를 비판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 아니고 생물학자들은 이런 동물들의 케이스를 가지고 인류학자들의 폴리아모리에 대한 주장에 비판한다. 물론 침팬지 등의 일부 동물들은 난혼을 한다고 알려져있지만 역시 일부일 뿐이다.(혹시나 침팬지가 인류의 조상이기 때문에 난혼에 대한 근거가 된다고 할까봐 하는 말인데, 진화론에서는 침팬지를 포한한 유인원들을 인간의 조상으로 인정하지 않은지 꽤 됐다)
그럼에도 폴리아모리를 포기할 수 없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폴리아모리를 갈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사람이 비독점적으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엔 동의한다. 사랑을 ‘아가페적 사랑’으로 해석한다면 폴리아모리가 세상을 희망차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생각은 인간이 비독점적사랑을 한다고 해서 1남1녀의 결혼관계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이건 딱히 근거는 없는 생각인데 결혼은 가족이란 공동체를 이루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