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제1분에서는 부처님의 하루 일과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1250인과 함께 계시다가 공양 때가 되자 차례로 탁발을 하시고 돌아와 공양을 하시는 평범한 장면이지요.
가만히 그 광경을 그려보라. 1250인이라는 대식구가 저마다 보리수나무 아래 차분히 명상에 들어 있다. 공양 때가 되니 부처님을 위시하여 모든 비구스님들께서 가사를 수하고 발우를 들고는 차례로 줄지어 마을로 향한다.
1250인이라는 수많은 스님들이 걷고 있지만 그 걸음 걸음에는 한없는 고요와 침묵만이 향기롭게 대열을 감싸고 있다. 고요히 탁발을 하시고는 다시금 본래 자리로 돌아오셔서 저마다의 자리에 앉아 공양을 할 것이다.
부처님의 시자 아난은 항상 그림자처럼 부처님 옆에 서 있다. 부처님에 대한 지켜봄이 있었기에 우리가 보았을 때 시시콜콜해 보이는 이런 사소한 일상까지 아난존자는 경전에서 소중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하루를 돌아보면 어떠한가. 아침에 자명종 소리에 일어나자마자 정신없이 시계 보면서 씻고 화장하고 대충 밥 먹고, 후다닥 뛰쳐나가 회사로 학교로 출근을 한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저녁 때 동료들과 어울려 한 잔 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쓰러지듯 잠이 들곤 한다. 다 이렇지는 않겠지만 정신없이 마음 챙기지 못하고 사는 것은 이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반면에 부처님의 하루 일과는 모든 순간 순간이 그대로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가지 사소하고 덜 중요한 일이 없이 모든 일과가 그대로 소중한 깨어있음의 행이다.
밥 먹는 그 사소한 일상이, 밥 먹는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깨달음의 순간이 되는 것이다. 밥 빨리 먹고 나서 좌선에 들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오직 밥 먹는 그것이 그대로 목적이다. 밥 먹는 순간 온전히 밥만 먹는 것이다. 밥 먹으며 다른 생각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과거를 떠올리며 그렇게 번잡하지 않고, 오직 밥만 드실 뿐인 것이다.
매 순간 순간 몸과 마음이 온전히 거기에 있다. 매 순간 도착해 있다. 어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그러니 도착하려고 애쓸 것도 없고, 깨달으려고 애쓸 것도 없고, 이 괴로운 세상 잘 살아 보려고 애쓸 것도 없이 매 순간 순간 도착해 마친 것일 뿐이다. 그러니 더없이 평화롭고 향기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낱낱의 모든 움직임이 그대로 좌선이고 깨어있음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들이 그렇게 찾아 나서던 궁극의 순간인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라. 늘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려 하고, 무엇인가 목적 달성을 위해 애쓰고,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과 집착의 사슬에 빠져 한 시도 만족하지 못하며, 한 시도 도착의 평화로움을 맛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마조스님께서는 ‘평상심이 도’라는 하셨고, 많은 선사 스님들께서는 이러한 금강경 제 일분을 두고 깨달음 최고의 순간이며 최상의 설법이라 하셨다. 다시 말해 똑같은 일상이라도 그 일상이 깨달음의 순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중생들의 평범한 일과가 될 것인가 하는 데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똑같은 일상이라도 온전히 그 순간에 100% 존재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대로 깨달음의 순간과 같은 것이다.
바로 지금, 내 앞에 놓여있는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도착하고자, 성취하고자 했던 그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 최상의 순간이다.
차를 운전하고 있는 순간, 밥상을 차리는 순간, 라디오를 듣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을 별 볼 일 없이 시시하게 보낸다면 그 때 당신의 삶은 생기를 잃고 시들어 갈 것이다. 눈 앞에 피어난 이 평범하지만 비범한 이 순간에 발 딛고 서 있는 것이야말로 입처개진, 조고각하의 선을 실천하는 유일한 길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