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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수필】
구멍 난 양복바지
― ‘뒷모습’이 조심스러워지는 까닭
윤승원 수필가
■ 필자의 말 이른 아침 외출하려고 양말을 신는데, 뒤꿈치에 구멍이 났다. 아내가 말했다. “에구,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네요. 벗어놔요. 꿰매줄 테니…” 내가 말했다. “괜찮아요. 구두 속에 들어갈 양말인데 뭐, 누가 볼까?” 나는 이 말을 하면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과거 직장에 다닐 때 민망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1999년 대전북부경찰서(현 대덕경찰서)에 근무할 때니까, 어느덧 27년 전의 일이다. 사복부서 근무자로서 ‘구멍 난 양복바지’를 입고 다니다가 ‘눈썰미 예리한’ 동료 형사에게 그만 들키고 말았다. 이때 민망했던 상황을 수필로 썼다. ‘구멍 난 양복바지’ 제목의 졸고 수필은 바로 그해 월간 『隨筆文學』 (1999년 5월호)에 실렸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 글에 대한 문학평론가의 과분한 ‘작품 평’이 문예지에 실린 것을 보고, 또 한 번 얼굴이 붉어졌다. 돌이켜보면 40대 젊은 시절의 이야기가 조금은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70대 노년에 이르러 남모르는 ‘웃음거리’ 한 줌도 귀하기에 졸고 수필을 다시 불러온다. ♧ 2026.10.06. 윤승원, 숨길 수 없는 진실한 삶의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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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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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구멍 난 양복바지
윤승원
계단을 오르는데 뒤따라오던 동료 형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바지 히프 부분을 누비셨네요. 아직 멀쩡한 바진데…”
꿰매 입은 바지를 흔히 볼 수 없는 세상인지라, 동료의 눈에는 내 엉덩이 부분의 재봉틀 자국이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아, 네. 구멍 난 걸 집사람이 세탁소에 가서 누벼왔더군요. 이젠 그만 입어야 하는데…”
나는 그 말을 하면서 얼굴이 붉어져 옴을 느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평소에 겉으로는 말쑥한 차림으로 보았는데 뒤에서 자세히 관찰하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동료가 하게 되었을 거라는 민망함 때문이고,
또 하나는 외부활동이 빈번한 사람이 옷 하나 번듯이 챙겨 입고 다니지 못한다는 자책과 부끄러움이 들어서였다.
내가 평소에 절약을 잘하고, 가정에서부터 내핍생활이 몸에 밴 사람이라 그런 바지를 입고 다니며 궁색을 떠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사복의 경우 대개 윗도리는 멀쩡한데 바지는 세탁을 자주 하게 되니 쉽게 낡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은 구멍 난 바지를 기워 입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감쪽같이 짜깁기한다 해도 자세히 살펴보면 본바탕의 색상과 어딘지 모르게 표시가 나게 된다. 그렇다고 멀쩡한 신사복 바지를 버릴 수 없어 또다시 꺼내 입기 일쑤다.
어쨌거나 요즘 나는 거울을 보면서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나이가 되었다. 차츰 머리숱도 줄어들어, 아침에 머리를 빗을 때는 손거울로 뒷머리를 슬쩍 비춰보기도 한다.
옆머리를 끌어올려 숱이 적은 이마 부분으로 가져가려다 보니 뒷머리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새집을 지은 것처럼 볼썽사나운 꼴이 되어 한 번쯤 더 매만지게 되고, 그러고 나서도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헤어스프레이를 살짝 뿌리기도 한다.
자동차를 타게 되더라도 뒤에 앉은 사람이 내 뒤통수를 보게 될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더러는 어깨에 비듬이 떨어져 있는 중년 남자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결코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밤새워 근무한 사람일 수도 있고, 주어진 일에 열중하다 보니, 옷매무시조차 고쳐 입을 겨를 없이 거리에 나선 사람이려니 하고 이해하는 수밖에.
그뿐만 아니다. 회의실이나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 나란히 앉아 있으면 자연히 남의 뒤통수를 바라보게 된다.
이때 남의 뒷머리가 흐트러졌거나 어깨 위에 비듬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보는 사람이 괜스레 민망해진다. 지적해 줄까, 아니면 내가 털어 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상대가 민망해할까 봐 못 본 척 고개를 돌린 적도 있다.
그래서 외출할 때면 으레 습관처럼 뒷머리를 매만지는 등 소심하리 만치 뒷모습을 점검하게 되고, 아무것도 없는 어깨 위지만 괜스레 ‘톡 톡’ 털어 보기도 하는 부질없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은 아들이 머리를 깎고 왔는데, 거울 앞에서 손거울로 뒷머리를 여러 차례 확인하는 걸 보았다. 내가 보기엔 ‘깎아 놓은 밤’같이 유난히 뒤통수가 말끔해 보여 “머리 참 예쁘게도 깎았구나” 했더니, 녀석은 한사코 불만이다.
이발소 아저씨가 자기 맘에 안 들게 깎았다면서 투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가 말했다.
“사춘기의 네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들이 네 뒤통수를 보면 아주 예쁘다고 할 거다. 걱정하지 말지어다.”
그러면서 면도 자국이 산뜻한 녀석의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었더니, 녀석이 빙긋 웃는다.
뒤를 점검한다는 것. 또 다른 나의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다. 나의 앞모습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므로 당장 어찌해 볼 방도가 없다.
그러나 뒷모습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나에 대한 인상이 뒷모습으로 결정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왜 조물주는 인간의 뒤통수에다 눈을 두지 않으셨을까? 쉽게 볼 수 없는 곳이므로 갑절 신경을 쓰라는 뜻에서였을까?
아직도 나는 이 낡은 바지를 언제까지 입고 다녀야 할지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계단을 오르면서 내 엉덩이 부분을 자세히 관찰하고 솔직한 느낌을 말해 준 동료 형사가 새삼 임의롭고 고맙게 느껴질 따름이다. ■
― 月刊 『隨筆文學』 199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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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문학평론가의 【작품평】입니다.
▣ 작품평(한국문인협회 발행 『月刊文學』 1999년 6월호) 수필,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 윤승원의 「구멍 난 양복바지」에 대하여 하길남(문학평론가) 윤승원의 「구멍 난 양복바지」는 꿰매 입은 바지 뒷부분을 보고 동료 형사가 누빈 쪽을 지적하자, 앞모습보다 뒷모습에 더 신경이 쓰일 나이에 접어든 작가가 지나간 세월을 점검하면서 볼 수 없는 곳에 더 신경을 쓰면서 살아야 하겠다는 의지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네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작품의 전개과정이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재치가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요즘과 같은 세태에서 옷을 기워 입는 이가 있는가 하는 신선감이다. 세 번째는 그것도 다름 아닌 경찰관이라서 민중의 지팡이라는 선입감 등 독자들에게 여러 가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실로 하찮은 일상적 사실을 통하여 새로운 발견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뒤를 점검한다는 것, 또 다른 나의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다. 나의 앞모습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므로 당장 어찌해 볼 방도가 없다. 그러나 뒷모습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나에 대한 인상이 뒷모습으로 결정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왜 조물주는 인간의 뒤통수에다 눈을 두지 않으셨을까? 쉽게 볼 수 없는 곳이므로 갑절 신경을 쓰라는 뜻에서였을까?」 - 「구멍 난 양복바지」 중에서 - 우리는 누구나 남이 보는 앞에서는 잘 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고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 하지만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가 세상에 알려진 사실보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공개되었을 때, 그에 대한 보다 정확한 새로운 평가가 내려지기 마련이다. 살아있을 때보다 죽은 후에 위대한 인물로 평가된 예는 얼마나 많은가. 종교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살아서 남으로부터 핍박을 받더라도 그의 숨은 선행이 사후의 심판에서 표상되어, 천상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된다면 결국 그는 승리한 인생이 됐다 할 것이다. 그래서 윤승원 수필가는 ‘자동차를 타게 되더라도 뒤에 앉은 사람이 내 뒤통수를 보게 될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어깨에 비듬이 몇 점 떨어져 있는 것도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뒷모습’을 잘 챙겼기로 흠잡을 데 없는 산뜻한 수필이 되었다. ■ ― 『月刊文學』 1999년 5월호 「이달의 수필평」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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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 / 감상평
윤승원 수필가의 「구멍 난 양복바지」는 겉으로 보면 ‘낡은 양복바지와 구멍 난 부분’이라는 아주 사소한 생활의 에피소드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작품을 천천히 따라가면, 그것이 단순한 의복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은 보이는 앞모습보다 보이지 않는 뒷모습을 어떻게 가꾸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삶의 성찰로 깊어지는 작품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1999년 발표 당시의 작품과 2026년의 회고를 함께 읽으면, 이 수필은 40대의 젊은 작가가 쓴 생활수필이면서 동시에 70대의 원숙한 작가가 다시 읽어낸 자기 삶의 문학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1. ‘구멍 난 양복바지’는 부끄러움에서 문학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작품의 출발점은 아주 소박합니다.
동료 형사가 계단을 오르며 뒤따라오다가 “바지 히프 부분을 누비셨네요”라고 말합니다. 작가는 순간 얼굴이 붉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지에 구멍이 났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그 순간 작가는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생활 한 부분이 뜻밖에 드러났다는 데서 민망함을 느낍니다. 평소 말쑥하게 보였던 자신에게 ‘궁색한 뒷모습’이 있었다는 사실이 노출된 것입니다.
그런데 윤승원 수필가의 장점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창피했던 일”로 지나쳐 버릴 일을 작가는 그냥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부끄러움을 관찰하고, 관찰을 사유로 바꾸고, 사유를 문학으로 승화시킵니다.
그래서 양복바지의 구멍은 곧 인생의 구멍을 생각하게 하는 문학적 장치가 됩니다.
2. 이 작품의 핵심어는 단연 ‘뒷모습’입니다
작품의 중심에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된 하나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앞모습과 뒷모습.
앞모습은 내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거울을 보면 확인할 수 있고, 외출하기 전에 단정하게 손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뒷모습은 다릅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머리카락, 비듬, 어깨, 양복바지까지 자연스럽게 ‘뒷모습’으로 연결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의미 있는 문장에 도달합니다.
“뒤를 점검한다는 것. 또 다른 나의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 한 문장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중심축입니다.
처음에는 바지의 뒤가 문제였습니다.
그다음에는 뒤통수가 문제였습니다.
그다음에는 어깨 위의 비듬이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것이 인간의 삶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로 확장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생활수필이 문학이 됩니다.
3. ‘뒷모습’은 곧 ‘숨은 인격’의 은유입니다
하길남 평론가가 이 작품에서 발견한 핵심도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대체로 남에게 보이는 부분을 잘 가꾸려고 합니다.
옷의 앞부분, 얼굴, 말투, 사회적 명성, 직함,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같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람됨은 오히려 남이 잘 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뒷모습’은 단순한 신체의 뒷면이 아닙니다.
양심의 뒷모습, 인격의 뒷모습, 삶의 뒷모습입니다.
작가가 “조물주는 왜 인간의 뒤통수에 눈을 두지 않으셨을까?”라고 묻는 대목은 그래서 재미있는 유머이면서 동시에 깊은 철학적 질문입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역설입니다.
즉,
보이지 않는 곳을 잘 가꾸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을 가꾸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4. 작품의 미덕은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발견하는 힘’입니다
1999년 하길남 평론가가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멍 난 양복바지’는 얼마나 작은 소재입니까.
오늘날이라면 대부분 그냥 버리고 새 바지를 사면 끝날 일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그 작은 사건에서
양복바지 → 뒷모습 → 뒤통수 → 타인의 시선 → 자기 점검 → 인생의 뒷모습
이라는 생각의 사슬을 만들어냅니다.
좋은 수필은 거창한 사건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하루에서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의미 하나를 건져 올리는 것, 그것이 수필의 중요한 미덕입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원리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하길남 평론가가 “실로 하찮은 일상적 사실을 통하여 새로운 발견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5. 경찰관이라는 작가의 신분도 작품에 묘한 긴장감을 더합니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당시 경찰관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평소 말쑥한 사복 차림으로 외부활동이 많았던 경찰관이 낡은 양복바지를 꿰매 입고 다녔다는 사실은 독자에게 의외의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작품에는 ‘체면’과 ‘실제 생활’ 사이의 작은 간극이 생깁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을 감추거나 변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그 솔직함이 이 작품의 인간적인 매력입니다.
그리고 27년이 지난 지금 작가는 그때의 민망함을 다시 꺼내면서 오히려 웃음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젊은 날의 부끄러움을 노년의 유머로 되살려낸 것입니다.
이것이 2026년의 회고가 더해지면서 생기는 특별한 문학적 깊이입니다.
6. 아들의 ‘뒷통수’ 장면은 작품을 따뜻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매우 아름다운 장면은 아들의 머리를 바라보는 부분입니다.
아들은 머리를 마음에 들지 않게 깎았다며 투정을 부립니다.
아버지는 오히려 말합니다.
“그러나 남들이 네 뒤통수를 보면 아주 예쁘다고 할 거다.”
그리고 아들의 뒤통수를 쓰다듬어 줍니다.
이 장면은 앞부분의 ‘구멍 난 양복바지’와는 전혀 다른 정서를 만들어냅니다.
처음에는 남에게 보이는 것이 두려웠던 아버지가 나옵니다.
그러나 후반부에는 아들의 보이지 않는 뒷모습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아버지가 나옵니다.
여기서 작품은 단순한 자기반성을 넘어 부자간의 정과 사랑으로 확장됩니다.
특히 마지막의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었더니 녀석이 빙긋 웃는다’는 장면은 작품 전체의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따뜻한 결말부입니다.
7. 27년 후의 ‘필자의 말’은 이 작품을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2026년의 필자의 말에서 가장 반가운 것은 작가가 과거의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40대 젊은 시절의 이야기가 조금은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그러면서도
“70대 노년에 이르러 남모르는 ‘웃음거리’ 한 줌도 귀하기에 졸고 수필을 다시 불러온다.”
라고 합니다.
참 좋은 회고입니다.
젊은 날에는 창피했던 일이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됩니다.
더 긴 세월이 흐르면 그것이 문학이 됩니다.
그리고 노년에는 그 문학이 다시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됩니다.
그래서 이 글은 단순히 1999년의 수필을 재수록한 것이 아닙니다.
1999년의 윤승원과 2026년의 윤승원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나는 문학적 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8. 하길남 평론가의 당시 평가가 지금 읽어도 살아있는 이유
1999년의 작품평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평론가가 이 작품을 단순히 재미있는 생활담으로만 평가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제목부터가 수필 창작의 본질을 묻고 있습니다.
결국 좋은 수필의 소재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 가까이에 있습니다.
구멍 난 양복바지 하나, 흐트러진 뒤통수 하나, 어깨의 비듬 몇 점, 아들의 이발 모습 하나가 모두 문학의 소재가 됩니다.
그러나 소재만으로는 수필이 되지 않습니다.
그 소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윤승원 수필가는 바로 그 사소한 것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27년 전의 평론가가 “산뜻한 수필”이라고 평가한 것이 오늘 다시 읽어도 설득력을 갖습니다.
9. 2026년에 다시 읽는 「구멍 난 양복바지」의 새로운 의미
이 작품은 이제 조금 다른 의미도 갖게 되었습니다.
1999년에는 40대 경찰관의 생활수필이었습니다.
2026년에는 70대 수필가의 자기 문학 회고록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작가는 수많은 세월을 살아왔고, 문단에서 활동했으며, 수많은 수필을 썼습니다.
그런 작가가 자신의 오래된 작품 가운데 하나를 다시 꺼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독자는 구멍 난 양복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바지를 입고 계단을 오르던 40대의 윤승원과 그것을 웃으며 회상하는 70대의 윤승원을 동시에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회고 수필이 주는 특별한 감동입니다.
◆ 맺음말 —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돌아보는 작가
「구멍 난 양복바지」는 결국 옷에 관한 수필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수필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남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이 보지 않을 때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가?”를 묻는 수필입니다.
그래서 27년 전의 작품이 오늘도 낡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뒷모습’이라는 주제가 더 깊어집니다.
젊을 때는 앞모습을 가꾸는 데 마음을 씁니다.
나이가 들수록 뒷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이가 들면 내가 살아온 삶 전체가 결국 하나의 뒷모습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윤승원 수필가의 이 작품은 이렇게 읽을 수 있겠습니다.
구멍 난 양복바지를 꿰매 입었던 한 사내의 민망한 기억이, 세월을 건너 ‘인생의 뒷모습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라는 따뜻한 삶의 철학으로 자라난 작품이다.
그리고 2026년의 작가가 이 오래된 글을 다시 불러낸 것은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뒤돌아볼 날이 많아진 나이에, 자신의 ‘뒷모습’을 한 번 더 살펴보는 일.
그것이 바로 이 회고 수필이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가에게 드리는 말씀
이번 「구멍 난 양복바지」는 특히 27년 전의 젊은 윤승원 수필가와 70대의 오늘의 윤승원 수필가가 한 작품 안에서 만난다는 점이 참 아름답습니다.
젊은 날에는 ‘구멍 난 바지’가 부끄러움이었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는 그것이 웃음과 추억, 그리고 삶을 돌아보는 문학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는 ‘뒷모습’을 인생의 뒷모습으로 확장시킨 작가의 시선이 오래 남습니다.
“앞모습은 타고난 것이지만, 뒷모습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이 문장은 27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여전히 살아있는,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문학적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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