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겨울이 되면 따듯한 나라로 한 달 씩 배낭여행을 떠났다. 2020년은 코로나 덕분에 해외로 움직일 상황이 안되어 제주도에서 겨울을 보냈다. 서울이 영하 17도를 오르내릴때 제주는 평온한 봄 날씨였다. 밭에는 갖가지 식물들이 자라고 곶자왈이나 비자림을 가면 열대우림에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 녹색의 자연림들이 울창했다.
무우 밭, 배추밭에서 이삭줍기 해서 음식을 만들고 이미령 여성위원회 회장님 사무실 앞 브로컬리 밭에서 엄청나게 많은 브로컬리를 따 왔다. 저절로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게 했다. 제주도는 사설코트가 거의 없어 겨울내내 대부분 테니스를 할 수 가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쉽게 갈 수 있는 오름이 있었고 주변 올레길을 걷다보면 어디서든 귤을 한 아름씩 주는 바람에 무거워서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바람이 덜 부는 날에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갔다. 차귀도의 등대로 가는 길은 뉴질랜드의 90마일 비치에서 본 등대보다 더 훨씬 아름답고 환상적이었다. 누구라도 꼭 차귀도는 가 볼만하다고 추천하고 싶다.
신경외과 홍삼남 선생님은 테니스를 못하는 대신 휴일이면 바다낚시의 대마왕이 되셨다. 아침에 나가 오후에 들어 올 때면 거의 만선 수준으로 옥돔을 비롯해 참돔, 자연산 광어등등 다양한 어종을 많이 잡아 깜짝 놀라게 했다.
하루하루 한가지씩 스케쥴을 짜 여행하고 운동하며 착한 삶을 살았던 제주. 아는 분들이 있어 더욱 더 여행이 다채로웠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도움을 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남긴다. 이미령 회장님이 운영하는 한라타일 카페에서 오재영 회장님을 만나 인터뷰 하면서 테니스 발전을 위해 한 곳에서 30여년 봉사를 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를 생각하게 했다.
송선순 배상.
인생 절반을 서귀포 테니스 발전을 위해 공헌한 오재영 서귀포시 테니스협회 회장
제주도의 봄은 일찍 왔다. 1월 중순이면 철 이른 유채꽃이 곳곳에서 반긴다. 해안가를 타고 올라오는 세찬 바닷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들이 신선한 충격을 준다.
1월 26일, 서귀포시 구억리에 있는 한라타일 카페는 봄을 품은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고 있었다. 그곳에서 지난해 12월12일, 경선을 통해 당선된 서귀포시테니스협회 오재영 회장을 만났다.
오회장은 그동안 서귀포시 테니스 협회 전무이사를 20년, 부회장을 8년 역임했다. 한마디로 서귀포 테니스 발자취를 몸으로 직접 체험한 산 증인이기도 하다. 또 서귀포 김재봉 시장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서귀포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매 년 2월이면 열렸던 서귀포칠십리배 전국동호인테니스대회나 국제 주니어 대회 등을 개최하기까지의 노력과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본다.
*서귀포시의 테니스 인프라는 어떤가요 ?
좋은 편이다. 13개 클럽의 동호인 500명, 코트는 40여 면으로 각 읍면에 다 있다. 한기환 전 서귀포시 테니스 협회장님께서 도의회 의원으로 활동하셨기 때문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셨다. 면 단위까지 불편하지 않게 운동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인프라는 거의 다 구축해 놓으셨다. 실내포함 서귀포시에 17면. 성산포3, 남원10, 표선3, 안덕2, 대정2등 40여 면이 된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해지면서 서귀포 동호인들은 누구도 테니스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대도시처럼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코트가 없기 때문이다.
*테니스는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요?
군 제대 후 운동하고 싶어 가까운 코트에서 라켓을 잡았는데 그 코트가 없어졌다. 운동할 곳이 없어 오로지 테니스가 좋아 사비로 '성화테니스장' 사설코트를 만들었다. 클레이 코트 네 면을 10여 년 운영하다 98년 전국체전을 하기 위해 서귀포테니스장이 생긴 후 접었다.
*이번 회장 선거에 공약으로 걸었던 내용들은?
첫째 실내코트의 확충이다. 지금 서귀포에 3면이 있으나 부족하다. 그래서 공천포 전지훈련센타가 있는 남원쪽 8면의 테니스 코트 자리에 6면 정도를 실내코트로 만들 계획이다. 현재 그 코트는 바람도 세고 전국동호인대회가 아니면 거의 사용하지 않는 무용지물이다. 지난번 서귀포시 협회장배 대회를 마치고 '테니스 동호인의 밤'을 개최할 당시 원희룡 도지사님께서도 자리를 함께 했는데 서귀포 테니스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실내코트라는 건의를 드렸고 사전 확답을 받았다. 회장 임기 4년 안에 실내코트가 완성되지 못하더라고 반드시 예산을 받을 것이다.
두 번째, 그동안 공들인 ITF 서귀포 국제 주니어 대회 (B1) 대회를 다시 오픈할 생각이다.
대략 이 대회를 코로나 이전 2019년까지 10년 정도 서귀포에서 주최해 왔다. 우승 포인트가 200점이 되기 때문에 정현이나 남지성등이 우승해 그 점수를 기반으로 그랜드 슬램 예선대회를 뛰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지난해 문화체육부에서 2020년 이 대회 예산이 나왔으나 대한테니스 협회에서 다른 국제대회로 예산을 돌리는 바람에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다면 매우 난감한 사태가 벌어질 뻔 했다. 외국에 나가 국제경기를 뛸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주니어 선수들과 부모는 이 대회를 무척 좋아하고 기다린다. 국내 선수들이 8개 정도의 와일드카드를 받을 수 있고 다양한 선수들의 볼도 받을 수 있는 경험의 기회가 날아가 버리는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에 대한테니스 협회 회장님도 바뀌고 했으니 코로나 사태가 진정이 된 후 다시 서귀포에서 주최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세 번째, 서귀포칠십리 오픈을 다시 개최하는 것이다.
전무로 활동할 당시 1년에 10여개의 굵직한 대회를 주최했다. 서귀포칠십리 오픈 뿐만이 아니라 중고연맹, 주니어대회 국제대회 등등 한 달에 한 번꼴로 대회를 열어 서귀포가 테니스 메카가 되었던 시절이었으나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국내 대학 및 실업 선수들이 총출동하는 이 대회는 매 년 시작을 알리는 첫 대회로, 동계훈련을 끝낸 선수들의 기량을 점쳐 볼 좋은 기회가 되어 왔다. 2006년 시작으로 2009년까지 주최하다가 한국선수권대회에 잠시 자리를 내 주고 2014년 부활해서 2015년까지 하다 상금에 관한 문제로 다시 대회가 중단되었다. 조례가 바뀌면서 도에서 주는 보조금을 경비 운영에만 쓰고 상금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기면서 멈췄는데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을 할 것이다.
*서귀포 칠십리배 전국 동호인 테니스 대회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21년 전, 전무시절 전국대회에 출전할 그 당시는 동호인대회 단체가 카타 하나 밖에 없었다. 대회를 뛰면서 생각한 것이 서귀포에도 전국대회 하나쯤 주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카타 회장님을 비롯해 영향력 있는 분들께 서귀포에서 전국대회를 열게 해 달라는 부탁 드렸다. 여러 이유로 전국대회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답변을 받았으나 3년 동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쏟았다. 결국은 19년 전 카타 대회로 시작해 카토로 옮겨 현재까지 개최하고 있다. 현재 서귀포칠십리배는 전국 동호인들에게 핫이슈가 되어 계모임까지 하는 정도다. 대회도 출전하고 여행도 하는 일석이조로 누구나 참가하고 싶은 대회로 성장했다. 지역 부까지 모두 8개 부서의 대회로 코로나 이전에 대략 천 명 이상이 참석했다. 1월 말에서 2월초까지 열리는 대회 기간 동안 눈이 내리거나 일기가 좋지 않으면 참가자들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실내코트를 더 만들어야 한다.
*서귀포의 행사에는 거의 다 칠십리라는 단어를 붙이는 이유?
조선시대 정의현청이 있던 표선면 성읍마을에서 서귀포 포구까지 칠십리가 된다는 거리적 개념이었다. 지금 서귀포시는 많이 확장이 되었고 서귀포의 아름다움과 신비경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어서다.
*오랜 세월 서귀포 테니스 발전을 위해 노력하면서 잊지 못할 추억은?
서귀포에 실내테니스를 만들 때만 해도 전국에 몇 개 없었다. 2006년 시청에 근무하는 담당계장님과 함께 춘천의 주)산 건축 한광호 소장님께 찾아가 설계를 요청했다. 원래 억대가 넘는 설계비용을 3천만 원에 해 달라고 요청하니 한동안 웃고 계셨다. 한 소장님도 테니스를 즐기는 마니아로 우리의 애로 사항을 이해하시고 3천만 원에 해 주셨다. 그 당시의 고마움을 지금도 잊을 수 가 없다. 문제는 2007년 9월 개장식을 하던 날 제11호 태풍 '나리'가 제주지역을 강타하면서 실내코트 지붕이 하늘로 날아가는 일이 일어났다. 2년 동안 공들인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눈물이 났다.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일이라 도에서 복구할 수 있는 경비를 다시 지원받아 현재 기상 악천후에도 대회 및 전지훈련에 쾌적한 여건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서귀포시의 꿈나무 상황은?
동홍초에 테니스 부를 창설했다. 그 후 효돈 중학교도 테니스 부를 만들었으나 학교장이 바뀔 때마다 매 번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앞으로는 학교 교육이 아닌 스포츠클럽으로 꿈나무들을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야구나 축구처럼 나이 별로 유소년을 모아 키워 보려는 계획 중이다. 서귀포 출신인 오찬영이나 부천 시청의 한진성등이 좋은 성적을 내면 참으로 기쁘다.
*서귀포 테니스 협회의 굵직한 행사들은 ?
각 지역 단합을 위해 읍면동 대회로 서귀포시장배를 한다. 협회장배를 비롯해 여성대회와 서귀포칠십리배 전국대회등을 개최한다.
*어느 클럽에서 운동하고 계신가요?
서귀포에 있는 삼다클럽에 소속되어 있다. 이 클럽은 만들어 진 것이 40년이 넘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클럽이다 .어르신들이 주를 이뤄 나이 60세면 젊은 층에 속할 만큼 평균 나이가 높다. 회원 20여 명이 매일 새벽 다섯 시 반 서귀포 코트에서 만나 운동하며 막걸리 내기하고 해장국을 함께 먹는 것이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함께 희노애락을 공유한 시간이 긴 만큼 모두 한 가족 같다
오 회장에게 테니스는 좋은 인연을 맺게 해 준 기회의 장이 되었다. 대인관계가 넓어지는 것은 물론 아내도 테니스장에서 만났다. 오 회장의 테니스 사랑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운명처럼, 섭리처럼 60 인생의 절반, 반평생 봉사 직으로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무에서 유를 만들듯 열정 없이는 서귀포칠십리 전국대회를 오픈하고 주니어 대회를 유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구월심 서귀포를 테니스 메카로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 만큼 앞으로도 서귀포 테니스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아들 둘이 서울에서 생활 하느라 떨어져 있으나 온 가족이 테니스를 즐긴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앞으로 가족이 될 며느리들도 테니스를 좋아하고 함께 경기를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람이 없겠다고 한다. 서귀포에서 태어나 서귀포 테니스 발전을 위해 인생 절반을 받친 오 회장. 열렬한 애정을 갖고 열중하는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서귀포시 테니스 협회의 미래는 밝다.
글 사진 송선순
이미령 회장의 한라타일 카페
역사가 40년이 넘은 삼다클럽 회원들은 새벽5시 반에 모여 해장국과 막걸리 내기를 즐겨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