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염전 사업에 뛰어들어… 처음엔 어려움 겪어 서울 한 본당과 인연으로 전국 120여개 본당에 판매 소금 생산을 하느님 섭리에 맡겨… 공소회장 봉사도
"여보~ 소금꽃이 피었어요!"
질 좋은 천일염이 생산되는 6월 중순. 전남 신안군 지도읍 사옥도의 넓은 염전에서 최광호(프란치스코, 71, 광주대교구 망운본당)ㆍ이영례(글라라, 61)씨 부부가 "이번 소금은 참 굵게 왔다"며 마주보고 웃는다.
소금 한 움큼을 쥐어 코에 갖다대자 반투명한 육각형의 소금에서 짭쪼름한 바다냄새가 풍긴다. 이들은 9000여 평의 염전에서 나온 새하얀 소금을 고무래로 긁어다 소금창고에 쏟아 붓는다.
"우리에겐 하느님이 동업자예요. 생산뿐 아니라 판매도 맡아 해 주세요."
바닷물이 염판 위에서 잘 증발하는지 보느라 같이 햇별에 그을린 최씨의 까무잡잡한 얼굴이 웃는다.
이들이 하느님과 동업한다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검은 결정판에 눈처럼 내린 소금을 만나려면 15일 동안 태양과 바람이 바닷물을 볶고 달래야 하기 때문. 그 사이 바닷물은 수분을 빼앗기고 농도가 높아지면서 비로소 알갱이가 된다. 이때 바람이 세면 결정이 작고, 기온이 낮으면 쓴 맛이 난다. 일조량이 많고 바람이 적어야 깨끗한 왕소금을 얻을 수 있다.
1년 중 염전을 가동하는 때는 4~8월로, 질 좋은 천일염을 생산할 수 있는 날은 장마철을 제외한 6~8월이다. 특히 이곳 청정해역인 신안 앞바다의 바닷물이 흘러드는 일출염전의 천일염은 미네랄이 풍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금은 하늘이 내는 농사의 결정체에요. 하느님이 햇빛과 바람의 양을 직접 조절하시죠."(아내) 그러나 하느님이 주신 재물을 잘못쓰면 '이놈 안되겠다'며 다시 거둬가신다. 소금으로 돈을 벌 욕심을 내면, 소금이 굵게 나온 때에도 하느님은 예고 없이 소낙비로 소금을 다 녹여 버리신다. 그러면 다시 바닷물을 끌어다 15일 동안 증발시켜야 한다.
15년째 염전 일을 해온 이들에게 '소금이 나고 안나고'는 모두 하느님 섭리다. 다시 거두실 땐 참을만한 고통의 길로 인도하시는 데 그 고통을 잘 이겨내면 더 좋은 길을 보여주신다고 한다.
사옥도에서 염전을 하기 전, 이들은 강원도 원주에서 광산을 하며 큰 돈을 벌었다.
"당시 물질적 행복에 빠져 먹고 즐기는 데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어느날 하느님이 돈을 거둬 가시더라구요."
힘든 시간을 보내며 큰 빚을 진 이들은 지인의 소개로 염전을 하게 됐다. 염전의 '염'자도 몰랐던 이들은 간수가 채 빠지지 않은 무거운 소금을 옮기며 땀을 뻘뻘 흘렸다. 하루 25㎞ 거리를 수레를 끌고 걸어다녔지만 소금은 제대로 팔지 못했다. 겨우 생산한 소금은 상인들에게 사정하다시피 팔았고 제 값을 받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몇 년 후 친척인 수도자가 염전을 방문하면서 서울의 한 성당에 처음 소금을 납품하게 됐다. 일출염전의 천일염은 총구역장들 입을 통해 소문이 퍼졌다. 결국 이들이 해마다 생산하는 3만여 가마의 천일염은 전국 교구의 120개 본당에 판매하고 있다.
최씨는 라틴어로 '그리스도'를 뜻하는 익뚜스를 물고기 모양에 넣어 자루에 새겼다. 소금이 형제애를 나누는 이들에게 좋은 재료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천일염은 각 본당으로 배달돼 성전 건립 기금으로도 팔린다. 또 김장철에는 신자들이 함께 해 먹는 김치 양념에도 뿌려진다.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3%의 소금 때문이듯, 삶에도 3%의 영성 소금을 뿌려 죄와 악에 썩지 않는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야죠."(남편)
이들은 이 나이가 되도록 정년퇴직도 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다. 감사한 마음을 갚으려 최씨는 3년째 지도공소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이들은 "하느님이 주신 빛으로 소금을 만들어,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판다는 건 큰 기쁨이다"고 했다. 부부는 소금을 거두며 기도한다.
'이제는 하느님이 주시는 재물, 하느님 뜻대로 잘 쓰겠습니다.' 희미한 별빛 아래 하얀 소금을 거두는 새벽녘, 이때야말로 세상의 '빛과 소금'을 한 자루에 담는 시간이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 하느님과 동업해 천일염을 생산하는 최광호 이영례씨 부부가 소금 창고에서 환희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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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 자루에 새겨진 '익뚜스'(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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