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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고 청량한 바람이 가슴을 스치는 듯한 영화다. 눈이 살포시 덮인 텃밭에서 방금 뽑아 온 싱싱한 배추로 전을 만들고 집 된장을 풀어 끓인 배춧국처럼 심심하지만 개운하다. 개다리 소반에 차린 단촐한 식사는 따스하고 정겹다. 맵고 짜거나 감칠맛 나는 식당음식에서 느낄 수 없는 아득한 편안함이 있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가 원작인 '리틀 포레스트'는 음식으로 치면 풍성하고 품격 있는 시골밥상이다. 거친 폭력이 난무하는 느와르, 눈물을 강요하는 신파, 현란한 SF가 점령한 스크린에서 시골의 사계와 음식, 애증이 교차된 모녀의 삶이라는 재료로 만든 '감성영화'는 의외로 흡입력이 있다. 누군가에겐 메마른 일상의 쉼표가 되고 누군가에겐 어린시절 향수(鄕愁)를 자극할 것이다.
이미 동명의 일본영화가 있다. 2015년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으로 나눠 제작된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는 케이블채널에서도 수차례 방영됐다. 여주인공의 일상적인 노동을 디테일하게 전개해 더 느리게 전개됐다. 하지만 사계(四季)를 한편에 압축한 임순례 감독의 한국판은 밭일은 줄였지만 좀 더 속도감 있고 영상은 산뜻하다. 문득문득 혜원(김태리)의 뇌리에 떠오르는 어린시절 엄마(문소리)와의 회상(回想)이 스토리의 횡축이라면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서 과수(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재하(류준열)와 단위농협에서 일하는 은숙(진기주)의 삼각 '케미스트리(성적을 끌리는 사람사이의 화학반응)'가 종축이다. 종횡으로 엮은 구조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스토리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취업은 만만치않고 연예는 심드렁하다. 심지어 편의점 '알바'도 편치못하다. 젊은이들이 공감하는 현실이다. 도시생활에 지친 혜원(김태리)은 추운겨울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엄마의 가출로 빈집만 달랑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잠시'라는 단서를 붙인 시골생활은 겨울, 봄, 여름, 가을을 거치면서 마음이 달라진다. 시골에서 다시 뿌리를 내릴만한 이유와 여유를 찾은 것이다. 기억속의 '엄마와 집밥'은 시골생활로 이끄는 힘이다.
사회초년생 혜원과 준열은 도시의 각박하고 삭막한 경쟁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다. 그래서 강을 거슬로 돌아가는 연어처럼 고향에 정착한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다르다. 자신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그들은 슬로라이프를 추구하는 시골에서 원하는 일을 찾았다. 하지만 시골은 때론 불편하다. 무엇을 사기도, 어른들의 관심과 참견도 거북스럽다. 모진 비바람이 피땀 흘려 일궈놓은 수확 철 논과 과수원을 휩쓸고 지나간 장면을 삽입한 것은 영리한 선택이다. 전원생활은 낭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침샘을 자극하거나 귀촌이라는 로망 속에 빠져들 수 있다. 혜리가 시골집 주방에서 제철 재료로 만든 막걸리, 떡케익, 콩국수, 떡볶이, 나물파스타, 오코노미야키, 꽃튀김을 만드는 과정은 식감을 건드린다. 허기진 관객은 괴로울 것이다. 혜원에게 요리는 엄마와의 행복한 시절을 반추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광고영상처럼 아름다운 사계절 풍광은 전원생활을 유혹한다. 삼총사가 별이 쏟아지는 개울에서 '족대'로 고기를 잡거나 혜원이 샛노란 산수유가 만발한 꽃길을 자전거타고 달리는 풍경은 무척 인상적이다. 여성감독의 섬세한 터치는 결말에 진한 여운을 남긴다. 시골과 도시라는 엇갈린 삶을 선택한 모녀는 과연 반갑게 해후할 수 있을까. 시골에 정착한 혜리는 먼 훗날 자신의 선택을 어떻게 볼까.
/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리뷰.
첫댓글 멋진 영화 소개 고맙습니다
햇살 가득한 창가에 앉아
지긋이 눈감고
바람을 맞이해야 할듯하네요
손가락 사이로 싱그러움이 만져질듯
전원이 가까이 다가선듯
정겹고 따뜻한 글 잘 읽고갑니다
영화를 보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듯 하죠.
더군다나 요즘처럼 혼탁한 세상에선 좋은 영화 한편이 작은 위로가 되죠.
우리나라의 사계절이 잔잔하고 서정적인 모습으로 담겨진 영화~^^
따뜻한 엄마가 그립고
옛 친구들이 그리운 영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볼수있는 영화였어요^^
보셨군요.
영화에 나온것 처럼 멋진 시골이 있다면
집한채 장만하고 싶은 생각도 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