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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현좌(裳懸座) - 결가부좌한 불상의 옷자락이 내려와 대좌를 덮은 형식을 말한다.
주로 삼국시대의 불상에서 나타나는 형식이다
※ 남산에는 삼화령으로 지칭되는 곳이 두 곳이다. 위에서 소개한 남장마을 뒷산과 그 곳에서 산등성이
를 계속 오르다보면 용장사지 가는 길목에 큰 연화대좌가 있고 삼화령의 미륵불이 있던 자리라고 하는
안내판이 있다.
부처골 감실불상
불곡 감실부처의 전경
높이 약 2m, 폭 5m의 그리 크지 않은 암석 덩어리에 인위적으로 파낸 작은 석굴이 있고 그 안에 작은 불상이 좌정하고 있다. 석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아 감실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석굴은 현재 남아 있는 우리나라 석굴 중에서 최초의 것이며 이 속에 있는 작은 불상은 우리나라 최초의 감실 불상이고 또한 최초의 선정인상(禪定印像)이다.
7세기 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감실불상은 파낸 석굴에 부처상을 따로 조상하여 안치한 것이 아니고 바위에 불상을 도드라지게 조상한 후 불상 주변을 높이 한 길, 깊이 세 뼘 가량 파내어 굴의 형태로 조성한 것이다.
반달모양의 육계 형상
불상의 머리에는 육계가 있으나 특이하게 반달모양이다
얼굴은 두뺨이 통통하고 눈망울이 커서 어린이 얼굴 같으며 수건을 쓴 듯한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소매 속에 두 손을 넣은 듯하다.
얼굴만 두드러지고
몸은 평평하며 양 어깨를 덮은 통견의 옷주름은 선각(線刻)으로 처리되어 있다. 옷은 수직으로 흘러내려 사각형 대좌를 덮고
있는데 드리워진 옷자락은 두 겹이다. 하나는 평상에 덮였던 것이고 그 위의 것은 가사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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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발이 반쯤 밖으로 드러나 있는데 부자연스럽다
좌불상의 높이는 1미터 30센티이며 대좌까지 합치면 1미터 50센티이고 무릎폭은 1미터 30센티의 등신불이다. 석굴 입구 높이가 1미터 60센티이니 굴 안에 가득히 앉은 셈이다.
이 불상의 알굴은 일년 내내 거의 햇및을 받지 못하는데 새해가 시작되는 동지가 되어야 온 얼굴이 햇살을 받아 환하게 웃으신다
감실의 바깥쪽 바위면에는 코끼리의 형상이 있다. 한번 찾아보는 것도 답사 길에서 또 하나의 재미......
보물 제 63호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慶州 拜洞 石造如來三尊立像)
배리(拜里) 삼존석불입상은 경주남산에서 삼국시대에 조성된 몇 안 되는 불상 중 하나로, 이 석불들은 기본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三尊佛)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 불상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삼존석불입상은 남산 동쪽 계곡의 절터에 파묻혀있던 것을 1923년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발굴되어 현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중앙의 여래상은 어린아이 표정의 네모난 얼굴이 전체적으로 풍만하며,
둥근 눈썹과 아래로 뜬 눈, 깊이 파인 보조개 등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佛性)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잔잔하게 퍼지는 미소가 일품이다
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중으로 되어 있다.
이 불상의 오른손은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약속의 뜻으로 다섯 손가락을 모두 위로 향해 치켜든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왼손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속의 뜻으로 팔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손바닥을 정면을 향하도록 편 여원인(與願印)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옷은 양어깨를 감싸고 흘러내린 ‘U’자형으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게 조각하였고 두 발은 가지런하게 대칭으로 조각하였다.
광배는 불상과 한 돌로 정면에서 보게 되면 얼굴과 어깨부분만 보이지만 뒤에서 보면 배모양의 광배이다.
여래상의 우측 대세지보살상(大勢至菩薩像) 역시 얼굴에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이중의 연화대 위에 서 있는데 삼존의 불상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아 있다.
목에서 다리까지 굵은 목걸이와 구슬장식의 긴 영락(瓔珞)을 드리웠으며 오른 손으로 그 영락을 감싸 쥐고 경책(徑冊)을 잡은 왼손은 어깨까지 치켜들고 있다.
여래상의 좌측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가는 허리를 뒤틀고 있어 입체감이 나타난다. 조각수법이 조금 둔탁하지만 몸을 위로 젖힌 우람함으로 우측보살의 여성스러움과 대비되는 남성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오른손은 펴서 가슴에 얹은 설법인을 하고 왼손은 내려서 보병(寶甁)을 잡고 있는데, 보관에 새겨진 작은 부처와 더불어 이 보살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이 삼존불의 특징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삼화령 미륵삼존불처럼 어린아이의 모습에 웃는 얼굴로 표현되었다라는 점, 신체비율에 있어서 얼굴이 크다는 점, 수인의 모습이나 옷 주름의 조각 등이 비슷하며
삼국시대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호각이 없을 때 본존의 미소.
원래 노출되어 있던 이 삼존불에 보호각을 설치한 이후
본존불은 특유의 천진한 미소를 잃어버렸다
1987년 11월 부터 약 3개월 동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삼존불 주변에 대해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불상을 보호하기 위하여 보호각과 담장을 설치하였으나 통풍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아 불상에 이끼류가 생기고 보호각으로 인해 햇볕이 차단되어 그 잔잔했던 미소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담장은 허물었지만 보호각은 아직 그대로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관련자료 : http://blog.daum.net/kinhj4801/15960368>
이렇게 7세기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불상들은 풍만하고 네모난 얼굴에 아기 같은 모습, 천진스로운 미소, 신체를 다 가린 두꺼운 옷, 시무외인·여원인의 수인, 4등신대의 비율 등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불교 유입 초창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라서 부처의 위엄을 강조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백제의 미소라 일컫는 서산마애불과 태안마애불, 김유신장군의 전설이 있는 단석산 신선사의 미륵불, 선도산 아미타삼존불 등이 삼국시대 불상의 양식을 잘 갖추고 있다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불상을 보면, 얼굴에서 보여주는 미소가 점점 없어지다가 경주 남산 보리사 불상을 마지막으로 이후 이땅에서 만들어진 불상에서는
전혀 미소를 찾아볼 수가 없게 된다
군위 석굴삼존불
삼국통일 뒤 가장 먼저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경북 군위의 ‘군위 석굴삼존석불’을 보면 아련한 미소를 짓던 삼국시대 불상의 미소는 사라지고 약간은 경직된 모습을 보아고 있다
이 후 100여년 동안 불상의 조성기법이 점차 세련되고 양식화되어 그 정점에 조성된 것이 경덕왕(재위 742~765) 때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본존불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불국사와 석가탑, 다보탑,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안압지 조성 등 신라불교문화의 최고품들이 모두 8세기인 경덕왕 때 만들어지며 경주 남산의 불상조성도 경덕왕 때부터 본격화된다.
이후 신라하대에 속하는 혜공왕때부터 조성되는 불상들에서는 긴장감이 빠지면서 불상의 조성 기법이 조잡해지고 예술성이 떨어지는 하향곡선을 이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