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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
입센(Henrik Johan Ibsen)/홍건식 옮김 ------------------------- 나오는 사람들 ----------------------------------- 토르발트 헬머 - 노라의 남편 크로그시타트 - 남편의 친구 노라 - 헬머의 아내 하녀 랑크 - 의사 유모 린네 부인 - 노라의 친구 ───────────────────────────────────── 장소 : 헬머의 집 ───────────────────────────────────── <앞부분의 줄거리> (1∼2막)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 노라의 집에 노라의 옛 친구인 린데 부인이 찾아온다. 그녀는 남편도 죽고 아무 의지할 곳도 없어 노라에게 직장을 부탁하려고 온 것이다. 과거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노라는 여태껏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남편이 병으로 위독할 때 남편의 친구이자 같은 변호사인 크로그시타트에게 요양비를 꾸었던 사실을 얘기한다. 크로그시타트는 이듬해 남편이 새로 은행장이된 은행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지 않아 남편은 그를 해고하려 한다. 이 사실을 안 크로그시타트는, 노라의 남편이 자신을 해고할 경우, 전에 돈을 빌릴 때 쓴 차용 증서에 노라가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서명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노라를 위협한다. 아무런 대책이 없는 노라는 혼자 고민하다가 린데 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3막 처음) 린데 부인은 노라가 남편과 가장 무도회에 간 사이에 옛 애인이기도 했던 크로크시타트를 만나 이야기를 한다. 얘기는 잘 되어서 둘의 사이도 회복하고 노라의 문제도 없었던 것으로 처리하게 된다. 그러나 린데 부인은 노라와 남편 사이에 비밀이 있으면 부부 생활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노라의 남편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사실을 안 남편은 크게 화를 내나 곧 사건이 해결되자 다시 예전처럼 노라를 대하는데……. ───────────────────────────────────── 제 3막 <전략> 헬 머 : (탁자에 노라와 마주 보고 앉는다.) 무슨 일이오? 궁금하잖아, 노라.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요. 여보……. 노 라 : 자, 말씀드리지요. 당신은 저를 이해 못하고 계십니다. 저 역시 당신을 모르고 지내 왔지요, ……여태까지는, 제발 저의 말을 중단시키지 마세요. ……끝까지 들어 보세요. 청산을 하는 거니까요. 헬 머 : 아니 ……? 무슨 소리요? 노 라 : (잠깐 침묵한 다음) 이렇게 우리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으니까, …… 뭔가 느끼시는 점이 없으세요? 헬 머 : 느끼다니, ……뭘? 노 라 : 우리는 결혼한지 8년이나 되었어요. 우리……당신하고 나, 남편과 아내……가 서로 진지한 얘기를 하는 것은 오늘 밤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느끼시지 않으세요? 헬 머 : 진지한 얘기라니, ……뭐요, 그건? 노 라 : 8년 동안…… 아니, 좀더 되었지요, ……처음에 우리가 서로 알게 된 날부터 진지한 일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열어 젖히고 얘기를 해 본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 헬 머 : 뭐요, ……언제나 골치 아픈 일로 당신을 걱정거리 속에 끌어들이지 않은 것이 잘못되었다는 거요? 당신한테 그런 일을 터놓고 얘기해봤자 당신은 감당할 수도 없었을 것 아니오! 노 라 : 골치 아픈 일이 어떻다는 게 아니에요. 제가 말씀드리는 건, 무슨 일이든 사물을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기 위해 두 사람이 진지하게 마주 앉아 의논해 본 적이 아직 없다는 거예요. 헬 머 : 그렇지만 노라, 그런 일은 당신한테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소. 노 라 : 그래요, 그게 중요한 점이에요. 당신은 저라는 사람을 한 번도 이해해 본 적이 없어요. 당신, ……당신네들은 저한테 대해서 큰 잘못을 저지른 거에요. 처음엔 저의 아버지가, 그 다음엔 당신이 말에요. 헬 머 : 뭐라고, 우리 두 사람이……라고 했지? 당신한테 잘못을 저질렀다고? 당신을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사랑한, 두 사람이 말이오? 노 라 : (고개를 가로젓는다.) 당신네는 저를 사랑하고 계셨던 건 아닙니다. 저의 응석을 받아 주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으셨던 거예요. 헬 머 : 이봐, 이봐요. 노라,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요. 노 라 : 하지만, 그건 사실입니다. 제가 친정 아버지 곁에 있을 적에는 아버지가 저한테 여러 가지 자기 의견을 말씀하셨지요. 그러면 저도 역시 같은 의견을 가졌습니다. 혹시 제가 다른 의견을 가진 경우에도 저는 그것을 몰래 감춰 두었지요. 제 자신만의 의견은 아버지의 마음을 거스르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답니다. 아버지는 저를 자기의 인형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는 마치 제가 인형을 가지고 놀 듯이 저와 놀아 주셨어요. 그러다가 저는 당신 집에 오게 되었어요……. 헬 머 : 이봐요, 우리의 결혼을 그렇게 묘하게 표현할 것은 없지 않소? 노 라 : (기세가 꺾이지 않고) 아니에요, 전 아버지의 손에서 당신의 손으로 넘겨졌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당신의 취미에 맞춰서 여기 저기 방을 꾸미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당신하고 같은 취미를 지니게 되었답니다. 아니면 단지 그런 흉내를 내고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그 양쪽이 다 해당될지도 모르구요. 때로는 그런 취미를 갖는가 하면, 때로는 흉내를 내기도 하고…….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이 집에서 거지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냥 손에서 입으로 가져 가는 생활을 해 왔다는 느낌이 들어요. ……토르발트 씨, 저는 당신 앞에서 재주를 부리며 살아 온 거에요.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즐기셨지요. 당신과 아버지는 두 분 다 저에 대해서 깊은 잘못을 저지르신 거에요. 당신네 덕택에 저는 이처럼 공허한 여자가 되어 버렸답니다! 헬 머 : 말도 안 돼. 은혜를 모르는 소리야. 노라! 당신은 여기서 행복하게 살아 오지 않았소! 노 라 : 아녜요. 행복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 줄 알았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헬 머 : 그렇지 않았다고 ……행복하지 않았다고? 노 라 : 그럼요. 단지……마음이 들떠 있었지요. 당신은 제 응석을 받아 주셨어요. 우리 가정은 놀이하는 방 같은 거였답니다. 저는 친정에 있을 적엔 아버지의 아이 인형이었어요. 여기서는 당신의 여자 인형입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저 아이들이 제 인형이 되었지요. 당신이 저를 가지고 놀아 주셨을 때에 저는 단지 즐거워했답니다. 하지만, 그건 마치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놀아 주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어요. 이게 우리의 결혼이었지요, 토르발트 씨. 헬 머 : 그래, 당신의 말도 얼마쯤 맞는 것 같소 ……물론 많이 과장이 되고, 상식에서 벗어난 점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앞으로는 한번 방법을 바꿔 보도록 해요. 놀이를 하는 시기는 지났다. 이제는 교육을 하는 시기다라고 말이오. 노 라 : 누구를 교육시킨다는 건가요?……저를 교육시킨다는 거에요. 아니면 아이들 교육 말씀인가요? 헬 머 : 그건, 당신의 교육이기도 하고, 아이들의 교육이기도 하지. 알겠소. 노라? 노 라 : 어머, 여보. 당신은 저를 손색이 없는 자기의 아내로 교육시킬 수 있는 분은 못 돼요. 헬 머 : 너무 심한 말을 하는구려. 노 라 : 그리고 저도 그래요. ……저 역시 아이들을 교육시킨다는 중요한 일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일까요? 헬 머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노라! 노 라 : 아까 자신이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런데도 그 일을 저한테 맡기셔도 될까요? 헬 머 : 그건 흥분했을 적에 한 말이오! 그걸 그렇게 고깝게 여기지는 말고……. 노 라 : 아니에요. 그 말씀이 맞아요. 저한테는 그 일을 해 낼 만한 힘이 없답니다.그 이전에 제가 해야만 할 다른 일이 있지요. 저는 우선 자신을 교육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일에는 당신도 도움을 줄 분이 아니십니다. 저는 제 힘으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당신 곁을 떠나는 거에요. 헬 머 : (펄쩍 뛴다.) 뭐, 뭐라고? 노 라 : 저는,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주위를 잘 판단할 수 있도록 홀로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 이상, ……당신 곁에 있을 수가 없어요. 헬 머 : 노라! 노라! 노 라 : 지금 당장 이 집에서 나가겠어요. 오늘 밤엔 크리스티네가 있는 곳에서 묵기로 하겠습니다.……. 헬 머 : 당신은 제 정신이 아니오. 그런 일은 용서할 수 없어. 내가 못 하도록 하겠어! 노 라 : 이제부터는 저한테 무슨 일을 못 하게 한들 소용없답니다. 제 물건은 가지고 가겠어요. 당신 것은 아무것도 갖지 않겠습니다. ……지금도 또 앞으로도요. 헬 머 : 무슨 정신 나간 짓이오! 노 라 : 내일 친정으로 가겠어요.……지난날 제가 태어난 고향이니까 무슨 일을 시작하든 쉽지 않을까 생각해요. 헬 머 : 아무런 경험도 없는 당신이 그처럼 일시적으로 욱하는 마음에서 앞 뒤 분별도 없이……! 노 라 : 앞으로 경험을 얻도록 공부하겠어요. 헬 머 : 당신의 가정, 당신의 남편, 그리고 당신의 아이들을 버리고 나가다니! ……생각 좀 해 봐요, 대체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할 건지. 노 라 : 그런 건 개의치 않아요. 저로서는 이렇게 하는 것밖에 길이 없답니다. 헬 머 : 당치 않은 일, 참으로 당치 않은 일이야. 당신은 자기의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겠단 말이오? 노 라 : 저의 신성한 의무라니요? 헬 머 : 내가 꼭 일러 줘야 비로소 알겠단 말이오. 남편에 대한 의무, 아이들에 대한 의무가 있지 않소. 노 라 : 저한테는 그 밖에 그에 못지 않은 신성한 의무가 있답니다. 헬 머 : 없어. 그런 건 없단 말이오! 도대체 그게 뭐요, 어디 말해 봐요! 노 라 : 자기에 대한 의무입니다. 헬 머 : 무엇보다도 당신은 아내이자, 어머니란 말이오. 노 라 : 저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이렇게 믿고 있어요, ……저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인간입니다. 당신하고 똑같은 인간입니다. ……라고 말하기보다는 이제부터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겠어요. 토르발트씨, 당신이 말씀하시는 걸 세상 사람들이 옳다고 여긴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거나 책에 씌어 있는 것을 저는 표준으로 하지 않겠어요. 저는 제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래서 분명한 해결을 찾아 내도록 해야겠습니다. 헬 머 : 아직 당신은 가정에서의 자기 위치를 똑바로 알지 못하는 거요? 당신한테는 우선 이런 문제에 대해서, 나라고 하는 틀림없는 지도자가 딸려 있어요, 그리고 종교라는 것도 있단 말이오. 노 라 : 아아, 종교요. ……그게 무엇인지 저는 분명히는 모르겠어요. 헬 머 :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요? 노 라 : 옛날에 견진 성사 때에 한젠 신부님이 하신 말씀은 기억하고 있어요. 종교란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설교를 하셨지요. 제가 이제부터 이 환경을 빠져나가 혼자 있게 되면, 그 때 그 말씀도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젠 신부님의 말씀이 옳은 건지 어떤지, ……라기보다는 저한테 옳은 건지 어떤지 생각해 볼 거에요. 헬 머 : 아니, 아무래도 이건, ……젊은 여자의 말치고는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가령 종교가 당신을 이끌어 줄 힘이 없다면, 나는 당신의 양심을 흔들어 일깨워 주지 않을 수 없소. 도의심, 이것만은 당신도 지니고 있을 테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디 대답을 해 봐요, ……이미 그것마저 갖고 있지 않다는 거요? 노 라 : 글쎄요, 여보. 그 대답은 어려워요. 저는 전혀 모르겠어요, 그 일에 대해서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구요. 다만 알고 있는 것은, 그런 일에 대해서 저는 당신하고 전혀 다른 사고 방식을 가졌다는 것뿐이에요, 예를 들어서, 법률이라는 것이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이건 알았지요. 하지만, 그러한 법률이 옳은 건가, ……하는 문제는 아무래도 제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아요, 늙어서 곧 돌아가시게 된 아버지를 위로해 준다든지 남편의 생명을 구해 줄 권리는 여자에게는 없다. ……그런 거지요, 아무래도 저는 그런 일을 납득할 수가 없어요! 헬 머 : 당신은 마치 어린애 같은 소리를 하는군, 당신은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모르고 있어. 노 라 : 모르고 있어요. ……틀림없어요, 그건. 그러므로 이제부터 더 사회를 잘 알아야겠어요. 제가 옳은가, 사회가 옳은가, 밝혀 내야만 해요. 헬 머 : 이봐요, 당신 아무래도 병인가 봐, 노라. 열이 있어. 어쩌면 정신병이나 아닌지 모르겠어. 노 라 : 전 여태까지, 지금처럼 뚜렷이 자각하고 있었던 적은 없어요. 헬 머 : 그럼 당신, 뚜렷이 자각하고서 자기 남편과 자기 아이들을 버리고 나간다는 얘기요……? 노 라 : 네. 그렇답니다. 헬 머 : 그렇다면 이제 설명은 한 가지밖에 없지 ……. 노 라 : 무엇인데요? 헬 머 : 당신은 이미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거요. 노 라 : 네, 그래요. 헬 머 : 노라! ……그런 말까지 한단 말이오? 노 라 : 그 말을 한다는 건 저로서도 가슴 아픈 일이에요, 토르발트 씨. 당신은 저한테 정말로 잘 해 주셨어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답니다. 저는 이제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아요. 헬 머 : (간신히 자제하며) 그것도 역시 뚜렷한 확신이오? 노 라 : 그렇답니다. 어디까지나 뚜렷한 확신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순 없어요. 헬 머 : 그렇다면 또 한가지 설명을 해 줘야겠소. 어떻게 해서 내가 당신의 사랑을 잃게 된 거요? 노 라 : 네, 그 설명이라면 해 드릴 수 있어요. 오늘 밤의 일입니다. 기적이 끝내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은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그런 분은 아니었습니다. 헬 머 : 좀더 확실하게 말해요. 그것만 가지고는 무슨 얘긴지 모르겠어. 노 라 : 팔 년 동안 저는 참고 기다렸어요. 그건, 기적이라는 것이 흔히 나타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마침 파멸이 저에게 덮쳐 왔어요. 이번에야말로 기적이 나타나는구나 ……그렇게 저는 믿고서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크로그시타트의 편지가 저기 우편함 속에 들어 있을 적에는, ……설마 당신이 그 사람의 요구에 대해 양보를 하시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 사람에게 단호히, ……좋아, 세상 사람들한테 알리려거든 알려라! ……라고 대답하실 줄 믿었지요. 그래서 그 사실이 이 세상에 공개되는 날에는 ……. 헬 머 : 공개되는 날에는, 그래서 어쩌자는 얘기요……? 내가 자기 아내를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오욕 앞에 내세울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을 테지.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노 라 :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하고 저는 굳게 굳게 믿고 있었지요, ……당신이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서서 모든 책임을 떠맡아서 틀림없이 말씀하실 거다. '내가 죄인이오.' ……라고. 헬 머 : 하지만, 노라! 노 라 : 당신이 그처럼 희생이 되는 걸, 받아들일 셈이었느냐고 나더러 말씀하시려는 거지요? 물론 저는 받아들이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아무리 말려도 당신의 결심을 굽힐 수는 없을 거다, 틀림없이 그렇게 되겠지, ……라고 하는 것이 제가 말하는 기적입니다. 저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큰 일이라고, 두려워 떨고 있었지요. 그것을 만류하려고 저는 죽을 각오를 한 거에요. 헬 머 : 난 당신을 위해서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겠소, 노라. ……당신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고생이나 어려움도 견딜 수가 있소, 하지만, 난 남자란 말이오. 비록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 할지라도 명예를 희생시키는 짓은 할 수가 없는 거라오! 노 라 : 그렇지만, 몇천만이나 되는 여자는 그렇게 하고 있어요. 헬 머 : 아,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말하는 것은 모두가 철없는 어린애나 다름없소. 노 라 : 그럴는지 몰라요.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 말씀하는 것은 모두 제가 일생을 맡길 수 있는 남성이 보여 주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 일이 지나가고 나자 어떻게 되었지요. 당신의 염려……그건 저한테 덮치는 재난보다도 당신 자신의 괴로움을 염려한 것이지만……그 위험이 아무런 탈없이 수습되었을 적에 당신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대로 되돌아갔어요. 그리고 나는 또 전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자그마한 종달새, 당신의 인형이 되어야 했고요. 앞으론 더욱 조심조심 손바닥 위에 모시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지요. 이처럼 약하고 망가지기 쉬우니까, 라면서! (일어선다) 토르발트 씨, 전 이 순간에 분명히 깨달았어요. 전 이 집에서 팔 년 동안,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남과 더불어 살면서 남의 아이를 셋이나 낳았답니다 ……. 아,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게 됩니다. 아니! 제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어요! 헬 머 : (무거운 마음으로) 알겠소, 알겠어. 정말로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단애가 입을 벌리고 있었소. ……그러나 노라, 거기에 다리를 놓을 순 없겠소? 노 라 : 전, 지금으로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의 아내가 될 수는 없어요. 헬 머 : 나는 아주 딴 사람이 되어 줄 텐데……. 노 라 : 그러시겠지요. ……인형을 잃어 버리셨으니까요. 헬 머 : 헤어진다, ……당신과 헤어진다고? 안 돼, 안 돼, 노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도 견딜 수 없어! 노 라 : (오른편 방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더더구나 여기서 딱 잘라 단념하지 않 으면 안 돼요. 모자와 외투를 가지고 되돌아온다. 작은 여행 백을 들고 와서 탁자 곁에 있는 의자 위에 올려 놓는다. 헬 머 : 노라, 노라, 꼭 지금 갈 건 없잖아! ……내일까지 기다려요. 노 라 : (외투를 입는다.) 아니에요. 남의 남자 집에서 밤을 지낼 순 없어요. 헬 머 : 그렇다면 남매간처럼 지내면 되지 않겠소 ……. 노 라 : (모자를 쓴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오래 가지 못할 거에요. 그건 당신이 더 잘 아실 텐데요……. (숄로 몸을 감싼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토르발트 씨, 아이들은 보지 않겠어요. ……저보다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 딸려 있어 돌봐줄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저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헬 머 : 그렇지만 앞으로 언젠가는 노라,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겠지? 노 라 : 모르겠어요, 제가 어떻게 될는지 전혀 알 수 없답니다. 헬 머 : 하지만, 알겠소. 당신은 내 아내란 말이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노 라 : 이봐요, 토르발트 씨. ……지금 제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아내가 남편의 집을 버리고 가출한다면, 법률은 남편의 아내에 대한 모든 의무를 해제하게 되어 있잖아요? 그렇게 들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당신에게 아무런 의무도 바라지 않겠어요. 당신한테는 어떤 속박도 없습니다. 저 역시 그러길 바라겠어요. 양편이 모두 완전히 자유로워지도록 하십시다. 자, ……여기 반지를 돌려 드리겠어요. 제 것도 돌려 주세요. 헬 머 : 그것마저? 노 라 : 그래요. 헬 머 : 여기 있소. 노 라 : 자, 그럼 다 끝났어요. 열쇠는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집안일은 가정부가 잘 알고 있어요 ……저보다도, 내일 제가 떠나면, 크리스티네가 짐을 꾸리러 올 겁니다. 제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물건들 말입니다. 나중에 부쳐 주도록 해 주세요. 헬 머 : ……이것으로 끝장이오? 모든 일이 끝장이란 말이오? 노라, 앞으로 당신은 내 생각을 전혀 하지도 않을 거요? 노 라 : 당신과 아이들, 그리고 이 집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생각이 나겠지요. 헬 머 : 편지를 보내도 괜찮겠소, 노라? 노 라 : 아니에요, ……그러시면 안 됩니다. 헬 머 : 그래도 뭔가 물품을 보내 주는 정도라면……. 노 라 : 아닙니다. 아무것도 보낼 것 없어요. 헬 머 :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 주고 싶소. 노 라 : 아니에요. 남의 도움은 받지 않겠어요. 헬 머 : 이봐요. 노라, ……앞으로 당신한테는 내가 남 이상의 존재가 되는 일은 없는 걸까? 노 라 : (여행 백을 접어 든다.) 아, 토르발트 씨, 그러기 위해서는 기적 중의 기적이 일어나야 해요……. 헬 머 :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뭐요. 그게, 그걸 말해 봐요! 노 라 : 그땐 말이지요. 우리 두 사람, 당신하고 나한테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 아, 아녜요. 토르발트 씨, 전 더 이상 기적을 믿지 않기로 했어요. 헬 머 : 나는 믿고 있겠소. 어서 말해 봐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서, 그러고는……? 노 라 : 우리들의 공동 생활이 진실한 결혼이 되는 거지요. ……그럼 안녕히. 노라는 현관을 거쳐서 밖으로 나간다. 헬머는 문 곁에 있는 의자에 몸을 가라앉히듯이 해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헬 머 : 노라! 노라! (주위를 둘러보고, 벌떡 일어선다.) 없어, 가 버렸구나! (마음 속에 한 가닥 희망이 솟아오른다.) 그 기적이 ……? 아래에서 대문이 덜커덕 닫히고, 문이 잠겨지는 소리가 들린다. - 막 - |
첫댓글 헬머씨가 그 기적을 꼭 찾아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