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예술품으로 봐라… 전공은 중요치 않아"
패션큐레이터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생소함에 고개가 갸웃한다. 하지만 유럽과 뉴욕등지에서는 이미 '뜨는 문화 직업군'로 꼽히고 있다. 국내 패션큐레이터 1호 김홍기씨를 만나 패션큐레이터란 어떤 사람인지, 패션큐레이터가 되는 법과 패션큐레이터의 영역에 대해 들어봤다.
◆패션으로 삶의 화두까지 풀어내라
국내 패션큐레이터 1호 김홍기(http://blog.daum.net/film-art/)씨는 패션큐레이터에 대해 "패션과 미술로 정치, 문학, 심리학, 인간의 모든 생활을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국내에는 아직 패션큐레이터 양성기관이 없지만 영국이나 뉴욕에는 생각보다 많은 수의 패션큐레이터들이 활동하고 있다.
"큐레이터하면 대부분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들이 미술관 등에서 활동하는 것을 생각하죠. 패션큐레이터는 패션과 연관된 미술과 인문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울러 전시·기획하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패션큐레이터는 미술뿐 아니라 패션과 건축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꼭 집어서 이런 전공을 해라라고 말하긴 어렵죠. 저 역시도 경영학을 전공했으니까요. 대신 미술과 패션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면 좋겠죠."
경영학을 전공한 김씨는 패션바이어로 일하면서 전 세계 명품 브랜드들을 접할 기회가 잦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명품이 갖는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옷이 갖는 편리성은 물론, 예술성과 문화, 역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미술관에 전시되는 유명미술·사진작품이 아닌 '옷만을 특화해 전시해보면 어떨까' 하는 고민이 패션큐레이터로의 길로 안내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1호 패션큐레이터로서 전시와 기획에 주력하기 보다는 패션큐레이터라는 직업 자체를 알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때문에 다양한 자료집과 의상들을 수집하고 관련 의상에 관한 글을 쓰는데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패션쇼는 있지만 패션 전시는 없죠. 이런 패션전시는 패션에 대한 삐뚤어진 우리의 시각을 바로 잡고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또한 이 시대를 후대에 알리는 역사적 의미로도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명품을 예로 들면 명품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봉이 아닌 명품이 지닌 역사성, 옷 자체의 본질, 인간의 독특한 내면을 그려낸 철학 등을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또 그는 "패션큐레이터는 패션 자체를 예술품으로 보는 시각이 있어야 한다. 옷이 가진 삶의 의미가 패션 전시의 가장 큰 테마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복식큐레이터와 패션큐레이터는 달라
박물관에는 복식큐레이터가 있다. 복식큐레이터는 역사 속에 존재했던 모든 의상, 계급별 의상들을 복원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패션큐레이터는 미래, 현재, 과거의 모든 의상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전달하는 사람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종종 어떻게 하면 패션큐레이터가 되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가장 어렵고도 말문이 막히는 질문이죠. 의상, 미술사 전공이어야 하냐는 질문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공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공은 경영학이 되어도 수학이 되어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을 이해 할 수 있는 인문학쪽이었으면 합니다만, 이런 특정 전공에 얽매이지 말고 패션과 인간의 삶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그는 경영학 전공 후 패션유통 관련 일을 하면서 패션의 흐름과 역사를 알게 됐다고 한다. 때문에 원하는 일이라면 스스로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찾아서하는 공부만큼 100% 내 것이 되는 공부는 없다. 신생 직업군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패션에 관한 자료는 무궁무진하다. 미술, 영화, 서양역사, 동양역사에도 존재한다. 학과가 없어서 포기할래하는 말 보다는 한번 개척해보자는 도전정신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큐레이터의 꿈을 지닌 청소년이라면 다양한 전시를 통해 편견 없이 문화를 접하고 패션관련 서적들을 읽어보며 조금씩 관심도를 키워가는 것이 좋다. 물론 패션관련 서적들이 어렵기 때문에 전문적인 서적을 권하진 않는다. 다만 소설 속 패션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나 소품, 색감에 대한 묘사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다독도 큰 도움이 된다.
"스트리트 패션을 통해서도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어요. 청소년기부터 '어떤 공부를 해서 이런 학과를 가라'고 조언하고 싶진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패션을 보며 생각하고 과거의 복식사를 통해 그 시대를 이해하고 다양한 전시를 보며 패션으로 연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다보면 패션큐레이터로의 기본적 자질을 갖춰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패션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삶입니다. 삶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관찰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