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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오씨 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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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댁 손자 글방 스크랩 천마도(天馬圖)
오대댁(병연) 추천 0 조회 140 09.10.13 11:5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국립 중앙박물관 100주년 기념전에 나온 천마도(天馬圖) 앞에 사람이 몰린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진열장에 주렁주렁 열린 사람들

머리통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을 정도다.

 

천마도(天馬圖)는 1973년 천마총(天馬塚) 발굴하면서 나온 그림-

더 정확하게 말하면 출토 유물 중 하나인 장니(障泥)에 그려진 그림이다.

 

 

장니(障泥) ?

 

잘 들어보지 못하던 단어다. 한자로 막힐 장(障)과 진흙 니(泥)를 쓰니,

말 탈 때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에 달아서 늘어뜨리는 마구(馬具)다.

말다래 라고도 하고, 영어로 saddle flap 이다.

 

 

 

사진: 경주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형 토기에 보이는 장니.  글씨는 필자가 써 넣었다.

 

 

천마총(天馬塚)

 

이름에 말이 들어갔지만 말무덤은 아니다.

사람 그것도 신라 임금의 무덤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 주인이 과연 누구인지?

특정(特定)- specfy 할 수 없었다.

 

천마총 뿐 아니라 삼국시대 왕릉 중 피장자(被葬者)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공주 무령왕릉 밖에 없다. 나머지는 다 그렇지 않겠나 하는 추측일 뿐이다.

 

묘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때는 대표적인 유물로 이름을 정해 왔다.

금관이 나왔다고 금관총, 금 귀걸이 나왔으니 금령총, 서전(瑞典-스웨덴)

황태자가 발굴에 입회했다고 서봉총, 이런 식으로 지었던 것이다.

아니면 번호를 붙이는데 천마총은 155호 고분이었다.

 

155호 고분의 대표적 유물이 천마도라서 천마총으로 이름 붙이고 나니,

경주 김씨들은 우리가 말(馬)의 자손이냐 ?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불쾌한 정도로 그치지 않고 1981년 984명 연명으로 국회에 청원을 넣는다.

 

사람 무덤이 분명한데, 말 무덤인 양 천마총 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니

‘천마도 왕릉’으로 고쳐달라 는 것이었다.

 

청원이 들어 갔으니 문화재위원들이 국회에 불려나가 질의에 답해야 했다.

 

그리하여 재심(再審) 했지만 묻힌 주인공이 왕임을 확정할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으므로 그냥 천마총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

는 결론이 나서 아직 천마총(天馬塚)이라고 부른다.

 

 

천마도(天馬圖)

 

천마총이라 이름 짓게 된 유물은 장니-말다래에 그려진 천마도였다.

 

발굴 때 부장품 궤짝에서 말다래가 1쌍 나오는데 말이 그려져 있었다.

당시 이를 본 사람들은 마치 하늘을 나는 천마가 환생하여

후다닥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증언한다.

 

 

 

 

사진: 천마도. 가로 75㎝, 세로 53㎝, 두께는 약 6㎜

 

천마는 혀를 내밀고 꼬리는 세웠는데, 테두리에 덩굴무늬-인동당초문

(忍冬唐草文)을 둘렀다. 재료는 자작나무껍질을 여러 겹 겹치고 맨 위에

고운 껍질로 누빈 후, 가장자리에 가죽을 대었다.

 

자작나무가 아니라, 거제수나 사스레나무 라는 말도 있지만,

거제수, 사스레, 둘 다 무슨 나무인지 잘 모르겠다.

 

신라시대 그림으로 현재까지 남아있기로는 이 천마도가 유일하다.

천마도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재료인 나무껍질에 큐틴이라는 물질이

많이 들어 있는데, 그 큐틴이 방부제 노릇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림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누구나 하늘을 나는 천마라고 생각했다.

생긴 것 보면 말같이 생기지 않았나?

 

 

실은 기린(麒麟)이라고..

 

그렇게 모두 천마라고 알던 그림이 실은 기린(麒麟)이라는 주장이

1990년대부터 나왔으나, 그 동안은 그럴 가능성도 있다 정도로만 여겨왔다.

 

대구 영남대학의 학교 상징 마스코트는 천마다.

"입에서 내뿜는 신기와 창공으로 상승하는 듯한 모습,

뒤로 힘차게 뻗은 말갈기로 불굴의 기백" 운운 해 가면서.

 

그러다 기린이라는 주장이 나오자 영남대 간판을 천마 대신 기린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가 돌았다고 한다. 그 우스개가 현실화

되려는지, 적외선 촬영을 하니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던 뿔이 나타났다.

 

 

 

 

사진: 천마도 적외선 사진

 

그냥 사진에서는 험상궂게 생겼던 천마가,

적외선 사진에서는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고 있다.

그리고는 정수리에 막대기 같은 것이 붙어있다.

무엇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뿔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기린(麒麟)

 

기린은 고대 중국인들의 상상 속 동물이다.

어진 짐승으로 훌륭한 임금이 올바른 정치를 행하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획린(獲麟)

 

공자가 쓴 역사책 춘추(春秋)는 서수획린(西狩獲麟)에서 끝이 난다.

공자 나이 일흔 한 살 때, 노(魯)나라 애공(哀公) 14년 (B. C 481년)

노나라 서쪽에서 기린이 잡혔다.

 

공자는 난세에 잘못 나와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잡힌 기린을

자신의 처지와 비추어 보고 슬퍼한 것이다.

이후 획린(獲麟)은 붓을 끊는다-절필(絶筆)유식하게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이렇게 중국인들은 기린을 아득한 옛날부터 상상해 왔고

그것은 세월이 흐를수록 디테일이 자꾸만 붙는다.

 

원래 전설이란 가지를 쳐서 진화하는 법이다.

우리 단군신화도 이야기의 원형(原型)은 아주 오래되었지만

시대가 내려올수록 세부사항이 덧붙여지곤 했다.

 

초기의 기린은 몸이 사슴 같고, 꼬리는 소와 같으며,

발굽과 갈기는 말과 같으며, 빛깔은 5색이라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한대(漢代) 이후 이마에 뿔이 하나 돋기 시작하더니

더 지나면서 용의 얼굴을 하고 용의 비늘이 덮인 기린도 등장하게 된다.

 

 

 

사진: 기린. 인터넷에서 펐기 때문에 어디인지 모르지만 중국임은 확실하다.

이렇게 기린은 세월이 흐르며 용의 얼굴을 가지게 된다.

 

 

중국인들의 기린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자애심이 가득하여 살아있는 것은 동물은 물론 식물이라도 먹지 않고

벌레와 풀을 밟지 않고 걷는다. 울음소리는 음악의 음계와 일치한다.

이마의 뿔은 끝부분이 살갗으로 감싸져 있어 남을 해칠 수 없다.

수명은 1000년이며, 기린을 보면 길조요, 시체를 보면 흉조다.

천리 길도 단숨에 달리고 심지어는 하늘을 날아가기도 한다.

우주 운행 질서의 중심이요, 오행사상(五行)에서 동서남북 중 중앙이며,

사후 세계의 수호자, 360종류의 털 있는 동물들의 우두머리.

 

 

이런 상상의 동물 기린을 중국인들이 실제로 보는 일이 생긴다.

 

 

서기 1400년 대 초 명(明)나라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 1402-1424)

는 환관 정화(鄭和)에게 명하여 대함대를 이끌고 남양으로 가게 한다.

 

성조(成祖)는 죽어서 받은 묘호(廟號)고, 영락(永樂)은 살아 다스릴 때

햇수를 나타내던 연호(年號)다.

 

영락제가 왜 그런 일을 시켰는지는 잘 모른다.

우리나라 수양대군(首陽大君)처럼 영락제(永樂帝)는 조카인 건문제(建文帝)를

쫓아내고 제위를 찬탈했다. 우리 단종(端宗)은 영월에서 교살당하지만,

중국 건문제(建文帝)는 생사(生死)가 명확치 않았다.

 

남경성이 반군(叛軍)에게 함락될 때 변장하고 빠져나가 남양으로 도망갔다는

설이 있어 그걸 잡으러 정화(鄭和)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추측일 뿐이다.

 

기업, 산업현장에 있다 보면 의욕적으로 출시한 주제품은 시원치 않은데

그걸로 생긴 부산물(副産物)-바이프로덕트가 효자 노릇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사진: 정화의 보선(寶船) 상상도. 아래 작은 배는 크리스토퍼 컬럼버스가

1492년 신대륙 발견 시 탔던, 산타마리아 호를 비교하기 위해 넣은 것이다.

 

정화의 원정(遠征)도 원 목적은 잘 모르지만, 그 자체로 일대 로망스다.

오늘 날 중국인들에게는 아쉽기 짝이 없게도, 영락제 사후 중지될 뿐 아니라,

그 보고서도 모조리 불 태워 없애버리지만.

 

 

 

사진: 정화의 원정 항로

 

 

1415년 11월

 

정화는 배에 기린을 싣고 중국으로 귀환한다.

두 말 할 필요 없이 아프리카 지라프(giraffe)다.

 

 

 

사진: 정화의 원정과 기린

 

아프리카 동부 케냐나 탄자니아 근처에 있던 마린국에서 바쳤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이를 전설 상의 동물 기린이라고 여기고 열광한다.

 

 

1415년 11월 19일 기린이 중국에 들어 오는 날

 

 

기린이 들어오는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황성(皇城)에는 문무백관이 도열하고, 어림군(御臨軍-근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황제-영락제가 친림(親臨)하였는데, 기린이 들어오자 신하들은 일제히

황제폐하의 성덕을 찬양하였다.

 

기린은 훌륭한 임금이 올바른 정치를 행하면 나타난다는 동물이니

황제로서는 마음껏 뽐내고 싶었을 것이고, 신하들로서는 아부할

절호의 기회가 아니었겠는가?

 

 

 

사진: 기린-아프리카. 현재 중국에서 실제 동물-아프리카 지라프(giraffe)는

기린 대신 장경록 (長頸鹿)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천마도에 그려진 동물이 천마가 아니라 기린이라고 하더라도

천마총을 기린총으로 바꾸는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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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1.03 09:44

    첫댓글 좋은공부하고 기린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말보다 기린이 읽다보니 기린이 더 좋을듯하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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