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산책(古歌散策) 16〕
왜적을 물리친 호국護國의 노래
-혜성가彗星歌
이남천
시인, 수필가(문학바탕)
국제문학바탕문인협회장(역)
혜성(彗星)이라는 별이 있다. 긴 타원형 궤도를 가지며, 매우 긴 공전주기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천체의 하나이다. 그 공전주기는 가장 짧은 핼리혜성의 76년으로부터 시작하여 수천 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긴 꼬리가 특징이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혜성을 가리켜 ‘빗자루별’로 일컫기도 한다.
아직 인지가 덜 발달하고 과학문명이 어두웠던 시절에는 혜성의 출현이 범국가적 흉조(凶兆)를 상징하였었다. 혜성이 나타나면, 왕에게 변고가 생기거나 역병(疫病)이 온 나라를 휩쓸거나 혹은 외적의 침입으로 전란에 휩싸인다고 모든 사람들은 믿었다. 그러니 혜성이야말로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을 줄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신라 진평왕 6년인 6세기 후반이다.
당대의 유명한 화랑 중에 거열랑, 실처랑 그리고 보동랑이라는 세 화랑이 있었다. 세 화랑은 친 동기 간보다도 더 우애가 좋아 주변으로부터 언제나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들은 무예 수련을 할 때나 정신 수련을 할 때나 한 몸처럼 행동하곤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면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었지만, 마음가짐 또한 단정하여 모든 화랑들의 모범이 되었다.
어느 날이다. 그들은 정신수련의 일환으로 풍악산(楓嶽山, 단풍이 아름다워 붙여진 금강산의 가을 이름) 유람을 하기로 작정을 한다. 그런데 그들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이 임박했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 혜성이 나타더니 심대성을 범하는 것이 아닌가? 심대성은 전갈자리의 일등별인 안탈레스로서, 예로부터 한 나라의 수도를 상징하는 별이다. 따라서 이것은 당시의 신라 서울이었던 동경(경주)에 변고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사건이다. 충성심이 남다른 세 화랑은 풍악산 유람을 포기한다. 그런데 그와 함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해안에는 수많은 왜적이 쳐들어왔다. 두 시진(時辰)이 멀다하고 전황을 알리는 파발마가 이어진다. 서라벌 안은 혜성의 출현과 왜적의 침입으로 뒤숭숭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무렵의 신라에는 융천사(融天師)라는 스님이 있었다. 융천사는 이름 그대로 천리(天理)에 밝아 하늘의 이치를 궁구(窮究)한 호국(護國)법사였다. 왜적이 침입했다는 소식에 접한 그는 잠시의 참선(參禪)에 들어간다. 참선을 마친 융천사가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한 수의 사뇌가를 읊어내니, 그것이 이른 바 혜성가(彗星歌)이다.
그런데 융천사의 노래가 끝났을 때, 실로 귀신도 놀랄 일이 일어난다. 싸리 빗자루처럼 하늘에 걸려 심대성을 범하던 성귀(星鬼)가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그뿐이 아니다. 동해안에 침입했던 왜적들도 시나브로 퇴각하고 말았다. 이에 세 화랑은 혜성가를 부르면서 다시 풍악산 유람 길에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