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매일신문 2024년 10월18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사랑해
함순례
이 둥근 말을 이 다정한 말을 왜 누르고 살아야 하지? 말없이도 알아듣고 말없어도 통하면 얼마나 좋아 모르겠는 걸 도통 모르겠는 걸 어떡하냔 말이지 쑥스럽다거나 헤퍼 보인다는 것도 다 꼰대들의 철벽이지 사랑해사랑해사랑해, 호접란에 물 줄 때마다 속삭였더니 윤기가 도는 이파리 좀 봐 피어나는 꽃잎을 봐 그냥 미소가 번지잖아 웃음이 툭툭 터지잖아 온몸에 향기가 돌잖아 사랑해, 말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말이 아무것이 되어 마술을 부리지 역병의 그늘도 환해지는 이 말랑말랑한 말을 이 뜨거운 말을 왜 아끼고 살지? 우연히도 인간이라 불리며 이곳에 있는 너는, 나는
♦ ㅡㅡㅡㅡㅡ 이 둥글고 다정한 말을 왜 누르고 살까? 말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말이 아무것이 되어 마술을 부리는 사랑한다는 말, 화초에게 물을 줄때도, 악기나 가구를 닦을 때도, 밤하늘의 별에게도 ‘사랑해사랑해사랑해’ 말하면 반짝반짝 윤이 나고, 까다롭고 냉정한 사람도 부드러워지고, ‘역병의 그늘도 환해지는’는 말을 왜 아끼고 살까? 사람이든 사물이든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면, 나도 주변도 행복해지고, 모두가 환하게 밝아지는데, 사람들은 왜 이 말랑말랑하고 뜨거운 말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누르고 살까?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