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s '경전의 숲을 거닐다(251-252)' 동국대학교 이필원 교수 /bbs]
이 경은 부처님 열반 이후의 이야기. 부처님 출가시 마부였던 찬나
'내가 없으면 부처님 출가도 불가능, 불교교단도 없었을 것이다' 자만심으로 거만하고 무례
그래서 다른 비구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승단 내에서 여러 문제 야기
부처님 훈계에도 불구하고 효과 없어. 열반시 묵빈대처 말씀을 남기실 정도
(부처님은 자비심으로 찬나비구를 위해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
▒ 쌍윳따니까야 '찬나의 경'(Channa sutta)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많은 장로 비구들이 바라나시 이씨빠따나의 미가다야에 머물렀다.
그때 찬나 존자는 홀로 고요히 명상하다가 저녁 무렵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자는 열쇠를 가지고 승원에서 승원으로 찾아다니며 비구들에게 말했다.
"장로이신 존자들께서는 제게 훈계를 베풀어 주십시오.
장로이신 존자들께서는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장로이신 존자들께서는 제가 법을 볼 수 있도록 법을 설해 주십시오."
그러자 장로 비구들이 찬나 존자에게 말했다.
"벗이여, 찬나여. 물질은 무상한 것입니다.
느낌도 인식도 형성도 의식도 모두 무상한 것입니다.
벗이여, 찬나여. 물질은 무아입니다.
느낌도 인식도 형성도 의식도 모두 무아입니다.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고 모든 법들은 무아입니다."
장로 비구들의 설법을 듣고 찬나 존자가 생각했다.
'장로이신 존자들의 가르침은 나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의 마음은 모든 형성의 멈춤, 집착의 버림, 갈애의 파괴
탐욕으로부터의 떠남, 소멸, 열반에 뛰어들지 못하고
확신하지도 안주하지도 결정하지도 못하고 있다.
오히려 동요와 집착이 일어나 나의 마음은 퇴전하였고
나의 자아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법을 보는 자에게는 이러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법을 볼 수 있도록 누가 내게 법을 설해줄 것인가?'
찬나 존자는 거듭 생각했다.
'지금 아난다 존자가 꼬삼비의 고시따 승원에 머물고 계신다.
스승께서 칭찬하셨고, 지혜로운 동료 수행자들에게 존경받는 그 분이야말로
내가 법을 볼 수 있도록 법을 설해주실 것이다.
또한 나는 아난다 존자에 대한 깊은 신뢰를 지니고 있으니
지금 당장 존자를 찾아뵈어야겠다.'
이론적으로는, 머리로는 알겠는데 생활 속에서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무아에 대한 법문을 듣고 오히려 무아에 대한 불안감? '수행이 잘된 사람은 이렇지 않을 텐데..')
(잘못을 뉘우치고) 이젠 좀 분명히 알고 싶다.. 찬나의 이것이 바로 발심이다
찬나 존자는 먼저 처소를 잘 정리한 다음, 발우와 가사를 들고 꼬삼비의 고시따 승원으로 아난다 존자를 찾아갔다.
찬나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 이렇게 말했다.
"벗이여, 아난다여. 저는 한때 바라나시 이씨빠따나의 미가다야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장로이신 비구들에게 법을 청하였는데
그분들은 저를 위해 무상과 무아의 법문을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벗이여, 아난다여. 장로이신 존자들의 가르침은 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마음은 모든 형성의 멈춤, 집착의 버림, 갈애의 파괴
탐욕으로부터의 떠남, 소멸, 열반에 뛰어들지 못하고
확신하지도 안주하지도 결정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동요와 집착이 일어나 저의 마음은 퇴전하였고
나의 자아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부디 제게 훈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제가 법을 볼 수 있도록 법을 설해 주십시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대답했다.
"벗이여, 찬나여. 존자가 하신 말만으로도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찬나 존자는 스스로를 활짝 열고 마음의 황무지를 부수었습니다.
벗이여, 찬나여. 지금부터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대는 충분히 법을 알고 증득할 것입니다."
아난다 존자의 말을 듣자 찬나 존자의 마음에
'이제 나도 법을 알게 되리라'는 커다란 기쁨과 환희가 생겼다.
아난다존자는 부처님보다 20세 정도 아래 (찬나존자는 지금 80정도, 아난다는 60정도)
그동안 기고만장했던 찬나가 마음을 고쳐먹고 머리 숙여 법을 청하고 있다
- 법을 청하는 데는 세속 나이 소용없다
▶황무지(khila 킬라) 라는 표현: 부처님도 여러 번 사용, 수타니파타에도 몇 군데 등장하는 표현
- 탐진치 삼독에 의해서 그 마음에 어떤 진리도 자라지 못하는 상태
(새 사람이 되어 법을 청하는 비구를 보고 크게 기뻐하는 또 한 분의 비구스님의 모습)
믿음 - 삼보에 대한 믿음+자기확신(나도 깨달을 수 있다) 중요
아난다 존자가 찬나 존자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벗이여, 찬나여. 저는 세존께서 직접 깟찌야나 비구께 설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길 '깟짜야나여,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가지에 의존하고 있나니
그것은 있다고 하는 관념과 없다고 하는 관념이다.
깟짜야나여, 있는 그대로 통찰력 깊은 올바른 지혜로써 세상을 관찰하는 자에게는
세상에 대해 없다고 하는 관념이 사라지느니라.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 통찰력 깊은 올바른 지혜로써 세상을 관찰하는 자에게는
세상에 대해 있다고 하는 관념도 사라지느니라.
깟짜야나여,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집착과 취착과 천착에 묶여 있지만
그는 집착과 취착과 마음의 독단과 천착에 접근하지 않고 묶이지 않기에
자아라고 하는 독단을 취하지 않으며 단지 괴로움이 일어날 뿐이고
단지 괴로움이 소멸할 뿐이라는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다.
여기에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그의 지혜가 있으며
그러므로 그는 바른 견해를 지니는 것이다.
깟짜야나여, 모든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극단이다.
모든 것이 없다고 하는 것도 하나의 극단이다.
여래는 그러한 양극단을 떠나서 중도로써 법을 설하느니라.
깟짜야나여,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난다.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가지 감각영역이
여섯가지 감각영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며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난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 고통과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렇게 생겨나는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천착 - 집착을 계속 몰고 가는 것
깟짜야나 - 가전연존자 말고 다른 비구
▶중도 - 초전법륜경에서는 팔정도, 여기에서는 12연기 (둘은 서로 밀접 연계)
부처님 말씀 "연기를 보는 자는 여래를 볼 것이요. 여래를 보는 자는 연기를 볼 것이다."
아난다 존자가 말을 이었다.
"또한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깟짜야나여,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한다.
형성이 소멸하면 의식이, 의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명색이 소멸하면 여섯가지 감각영역이
여섯가지 감각영역이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며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이,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한다.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 고통과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렇게 소멸하는 것이니라'
벗이여, 찬나여. 저는 세존께서 이와 같이
깟짜야나 비구에게 설하시는 것을 직접 들었습니다."
아난다 존자가 말을 마치자 찬나 존자가 말했다.
"벗이여, 아난다여. 참으로 그러합니다.
참으로 청정한 삶을 사는 존자들께서는 이처럼 동료 수행자를 연민하고
그의 이로움을 원하여 이익을 베풀고 훈계하고 가르침을 베푸는 그런 분들이십니다.
저는 아난다 존자가 저를 위해 베푸신 설법을 듣고 참으로 법을 꿰뚫었습니다."
괴로움 생성의 방향 - 유전문(流轉門)
괴로움 소멸의 방향 - 환멸문(還滅門)
괴로움은 생겨날 뿐이고 소멸할 뿐이다, 여기에는 '있다, 없다' 양극단의 사유방식은 바른 것이 아니다
괴로움이 생겨나면 '생겨났구나' 알 뿐이고
괴로움이 소멸하면 '소멸했구나' 알 뿐이다.
▶정말 지금 괴롭고 고통스럽다면.. '아유, 난 왜 이렇게 고통스럽지~' 이렇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지금 괴로움이라는 현상이 생겨나 있구나~ 이 괴로움은 무엇을 조건으로 생겨났을까?' 관찰해야 한다.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 삶 속에서 기쁨이든 슬픔이든 거기에 마음을 딱 집착하여 묶어두지 않고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나 자신을 지켜본다.. 나의 문제를 한 발작 떨어져서 보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처럼 동료 수행자를 연민하고 그의 이로움을 원하여 이익을 베풀고 훈계하고 가르침을 베푸는'
-- 보살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