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寂滅) / 김신영
돌이켜보면,
나를 흔들어대던 바람은
한밤의 먼지에 불과했습니다
멀리서 손사래를 치며
우리를 맞이하던 몸짓은
태양같은 강렬로 가슴을 후벼 내었지만
그도 불볕에 사라지는 물기에 불과했습니다.
잊고자 누워 있던 바위에서 싹이 틉니다.
삶을 끊고자 버린 불모지에도 번뇌가 싹이 틉니다
내내 한 생각도 하지 않고자
오래 걸어온 길에
진을 친 거미줄이
아침마다 눈앞을 가립니다
떨쳐내고자 하여,
한 생각도 일어남이 없이
지극에 이를 수 있다던
경전의 말씀은
모든 것이 헛되다고 노래한
긍휼로 남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청천같은 당신의 말씀은
하늘이 북새가 될 때에야
자취를 드러내었습니다.
덧없이 한 사람이 떠나고 나자
바람이 몹시 불었던 게지요
적멸에 들고자 하였던
멀리가지 못한 한 생각도
큰 바위 끝에 불콰한 빛깔로 남았습니다
<시인시각> 2010년 여름호
김신영 시인
충북 중원 출생
94년 《동서문학》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문학과지성사, 1996)
시집 『불혹의 묵시록』(천년의시작, 2007)
평론집 『현대시, 그 오래된 미래』(한국학술정보, 2007)
중앙대 국문과 문학박사, 홍익대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