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현상의 반영으로 나타난 행동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어떤 일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 괘씸하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나려면 알게 모르게 전조현상이 있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것은 주변에서 은근히 일어나기도 하고 제삼자의 행동이 개입되기도 한다. 그것은 즉시 행동으로 옮겨질 때도 있지만 다소 시차를 두고 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일관된 목적에 의해서 일어난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예전, 형님은 장이 서는 날을 따라 떠도는 신발 도붓장수를 했다. 그런 형님이 어느 날 갑짜기 물건을 도둑맞았다. 다음 장사를 위해 보관 해둔 신발 세 둥치 중에서 비교적 값이 나가는 것을 훔쳐간 것이다. 각종 장화와 운동화, 꽃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일을 겪으며 얼마나 형님은 황당하고 절망했을까. 열일곱 살 내가 보아도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그 현장을 보면서 사라진 물건이 되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고 계획적이며 누군가가 해코지를 했다는 강한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형님은 물건을 찾기 위해 지서에 신고를 했다.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한 것이었다. 나는 찾을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길을 가로 막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라도 가져야만, 참담한 마음을 다소라도 진정시킬 것 같아서였다.
그것을 가져가 신을 목적이라면 언제라도 신고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해코지를 한 것이라면 절대로 눈에 띄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의 죄악과 비양심이 드러나는데 어찌 버젖이 내 놓을 수 있겠는가.
물건은 하룻밤 사이에 감쪽같이 증발해 버린 것이었다. 상인들이 공동으로 물품을 보관한 창고에서 형님 물건만 귀신같이 훔쳐가 버렸다. 그것도 포장이 된 것을 기막히게 알아내어 가져간 것이었다. 그것은 사정을 잘 아는 자가 소행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즈음 형님은 근검절약과 타고난 친화력으로 상권을 넓혀갔다. 처음에는 5일장 중 보성과 득량, 그리고 예당 장에서 장사를 하다가 차츰 벌교와, 조성 장 까지 진출했다, 나머지 무싯날은 꼭두새벽에 부산으로 가서 새 물건을 받아왔다. 단 몇 푼이라도 이문을 남기려고 여러 제품을 취급했다. 그런 물건 중에는 왕자표와 신라표, 말표가 있었다.
열심히 뛴 형님은 몇 년 만에 시장 내의 점포를 장만했다. 길거리 장사로 나선지 4,5년 만이었다. 형님의 물건 진열방법은 독특했다. 종류의 크기에 따라 대.중.소로 나누고 손님에게 문수를 물어서 금방 찾아냈다.
시장에서는 경쟁관계인 터줏대감이 있었다. 그는 가끔 자기아내에게 가게를 맡기고 형님 가게를 기웃거리며 염탐했다. 어떤 제품을 파는지, 가격을 얼마나 받는지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 무렵 풍문이 들려왔다. 그가 부쩍 불평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경쟁가게가 생겨서 매출이 줄어 들었다며 형님을 원망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도난을 당하자 대번에 그를 의심했다. 그런데 신고를 받은 지서에서는 그를 조사하지 않았다. 아예 조사를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얼마 안가 그만 둬 버렸다. 매우 성의없는 행동을 보였다.
내가 그를 의심한 이유가 있다. 당시 상인들은 장사가 끝나면 한 장소에다 물건을 보관해 두고 각자 자기 물건에 표시를 해둔다. 그러면 마부가 달구지에 싣고서 다음날 장으로 물건을 이동시켜준다. 그러니 상호간 물건을 뻔히 아는 것이다.
사달은 고향인 득량 장에서 일어났다. 전날 예당 장을 보고나서 마부가 창고에 실어다 놓았다는데 거기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린 나의 생각에도 동종 업종의 장사를 하는 사람이 의심이 가는데, 전혀 불러서 조사도 하지 않아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하고도 봉급을 타먹고 사는가 싶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현상의 반영이다. 7,8년 후로, 군대를 제대하고 내가 경찰관이 되었다. 4개월여의 교육을 받고 지서에 배치가 되었다. 배치를 받자마자 나는 수첩하나를 준비했다. 옛날 그 일을 떠올리며 내가 신고를 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하여 해결을 해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었다.
그런 어느 날 하루는 지서에서 소내 근무를 하는데, 신고가 들어왔다. 충청도 말씨를 쓰는 남성으로 대천에서 백합조개를 양식을 하는데, 종업원이 다방 마담과 눈이 맞아 관리선을 훔쳐 타고 달아났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거문도에서 살림을 차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면서 잡아주기를 간청했다.
찾는 배는 제3 진양호. 명함을 받으면서 수첩에 적바림을 해두었다. 그 이후 나는 다른 업무를 처리하면서 인근의 배들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실상 무모한 일에 가까웠다. 거문도에서 본 사람이 있다고는 해도 이곳은 섬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비교적 큰 유인도만도 본도인 거문리, 그리고 서도와 동도, 상당히 떨어져있는 초도와 손죽도까지 있다.
먼저 비치한 기본대장을 뒤졌으나 동명의 배는 없었다. 1000 여척을 차례로 탐방하다보니 지쳐갈 즈음이었다. 한데 하루는 업무 수행 차 해안을 걸어가는데 언뜻 비슷한 선명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반가웠다. 그런데 선명은 ‘제3 진양호’가 아닌 그냥 ‘진양호’였다. 한데 느낌이 이상했다. 글씨가 옷깃에 잘못 달린 배지처럼 어울리지가 않았다. 좀 더 머리 앞쪽으로 당겨서 써져야 하는데 다소 쳐져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약간 의심을 품고서,
“선적부를 제시해 주세요!”
했다. 돌아온 대답이 분실해버리고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은 말로 재발급을 신청해놓았다고 했다. 일단 상당히 의심이 가서 집을 안내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정상적으로 가정을 꾸미고 사는지 여부를 확인을 하고 싶어서였다.
방문을 여니 고리짝 위에 결혼사진이 보였다. 얼굴을 대조하니 두 사람의 얼굴이 맞는데, 어쩐지 좀 이상했다. 얼굴과 몸통이 조화가 맞지 않았다. 뱃사람 특유의 건강미 넘치는 얼굴에 비해 몸매가 지나치게 날씬했다. 양해를 구하고가지고 나와서 사진관에 문의를 했다. 그랬더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얼굴을 남의 사진의 몸에 합성을 하여조작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확신을 가지고 다시 배를 확인해 보았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선명 일부가 페인트로 지워진 자국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범인을 특정하고 초임이지만 실로 엄청난 월척에 가까운 특수절도범을 검거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어떤 일을 가슴에 담고 있다가 쾌거를 이루게 된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도둑을 떠올리면 가슴에 남아있는 그 두 사건이 잊히지 않는다. (2020)
첫댓글 실제 드라마를 연상케하는 글과 끈질긴추적 1000여척의 배를 수소문하고 대단하시네요. 형사 기질이
다분하셨네요...
저는 집념이 좀 강한 편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 일을 생각하면 자랑같지만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신임직원으로서 요즘 직원들도 그리할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어떤 계기'에 대하여 생각하다가 문득 그 일이 떠올라 얼른 한편을 써봤습니다.
집념도 대단하지만 기억력은 더 대단하십니다. 거의 60년 전의 일을 이리도 생생하게 기억하시다니요. ^^
그것은 나에게는 가슴깊이 새겨진 일이어서 잊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들어와 읽어주시고 댓들을 달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종종 들려서 쉬었다 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문도열 샘 반갑습니다...수필카페 입문을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이 오시니 무척 반갑습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2021창작수필 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