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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감으로 인도하고 본을 보임
천 영 대
성경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13:21, 22)」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19~21)」
앞서 행함으로 인도하심
사람들은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어려운 사람들을 무시하지 말고 도우며,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며, 또 그렇게 살 것을 요구하는데, 실제로 어떻게 살지에 대한 구체적인 모본은 보여주지 못한다. 그것은 그렇게 말하고 요구하는 자,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살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살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지만물의 창조주이며, 주관자이시며, 구속주이신 우리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먼저 그렇게 함으로, 앞서가고 행함으로 그러한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 민수기 14장 13, 14절에서는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이 땅 거민에게 고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가운데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서 그들 앞에서 행하시는 것이니이다”라고 했다. 주의 구름이 이스라엘 자손들 위에 섰고 주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 가운데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서 그들 앞에서 행하시고 인도하셨다고 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그 땅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어 들이기 위해 그들 앞서서 낮에는 구름기둥 가운데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서 행하심으로 그들을 인도했다고 했다. 이렇게 인도하는 것은 뒤에서 명령하는 것이 아니고 앞에서 역사하여 목적한 곳으로, 목적한 바를 이루도록 계속해서 이끄는 것이다. 장애물이 있다면 그러한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부족한 것을 채우면서 위험하다면 안전하게 하여 목적한 데로 이끄는 것이다. 이것은 뒤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앞서서 행하는 것이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한 번도 가보지 아니한 곳으로 가라고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고 애굽에 있을 때부터 놀라운 이적으로 재앙을 애굽에 내리신 주님, 그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너게 하시고 만나와 반석수로 먹이신 주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앞서가사 인도하심으로 이스라엘 자손들로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게 하셨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도록, 주님께서 앞서가며 행하심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앞서감으로 인도하심
주님께서는 애굽에서 이끌어 낸 이스라엘 자손들 앞서 행하심으로 그들을 인도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앞서감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다. 출애굽기 13장 21, 22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말한 ‘그들 앞에 행하사’에 대해 다른 번역, NIV에서는 ‘그들 앞에 가사’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그들 앞에 가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했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 앞서 가심으로 그들로 따르게 하사 인도하셨다. 소위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무리들 앞서 나아감으로 인도하지 않고 뒤에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한다. 이때에 무리들은 어디로 가야 될지도 모르고 가보지 아니한 길이라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여 제대로 전진하지 못한다. 그러나 강력한 힘을 가졌고, 또 믿을 만한 인도자가 앞서갈 때에는 쉽게 그를 따라간다. 이때에는 두려운 것이나, 힘든 것이 없이 한 무리가 되어 기대감을 가지고 힘차게 인도자를 따라간다. 마태복음 2장 9∼11절에서는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고 했다. 이 내용은 동방에서 별을 보고 온 박사들이 그 별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왕궁으로 들어갔으나 그곳에서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길을 갈 때에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다고 했다. 동방에서부터 앞서 인도했던 별의 인도로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만나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다고 했다. 그 별이 동방에서부터 박사들을 앞서 인도했던 것은 주님께서 하신 것이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앞서가시며 인도하신다. 요한복음 10장 2∼4절에서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오되”라고 했다. 진정한 목자는 양들 뒤에서 채찍을 가지고 앞으로 빨리 가라고 마구 후려치는 자가 아니고 양을 우리에서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가는 자라고 했다. 목자가 양을 이렇게 인도하는 것은 아주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강제로 이끌거나, 채찍으로 양을 이끌려고 하면 힘이들뿐만 아니라 정상적으로 이끌지도 못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 양들이 다른 방향으로 도망을 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인이 양을 우리에서 내어 놓은 후에 양들 앞서가면 그 양들은 목자, 곧 주인의 음성을 아는 고로 쉽게 따라간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고 신뢰하기 때문에 앞서가는 목자를 쉽게 따라 간다.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 또한 주님의 양으로서(요 10:14, 겔 34:15),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님께서 앞서가면 우리는 그의 양으로서 그를 알고 따라간다. 이것은 억지로,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사랑함으로, 믿음으로 이뤄진다. 인도하는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고 앞서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자가 앞서가면 기꺼이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목자의 양이 아닌 자들은 목자를 따라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자신의 목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목자와 그의 음성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0장 26, 27절에서는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했다. 그 목자의 양이 아닌 자들은 그 목자를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목자의 양은 그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는 그의 양들을 알고, 그 양들은 목자를 따른다.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은 목자이신 주님을 알고 그 음성을 듣고 따라간다. 이렇게 하여 목자이신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신다.
인도하시고 함께 하심
신명기 10장 14, 15절에서는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라고 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기뻐하고 좋아하사 그들을 택했다. 이것은 그들이 특별한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그렇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그가 기뻐하고 사랑하며 택한 자를 아무렇게도 버려두지 아니하고 참으로 선대하는 가운데서 그가 원하는 최상의 목적지까지 함께 하여 인도하신다. 에스겔 36장 22∼27절에서는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찌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그가 택한 자들이 그를 거역하고 불순종하며 우상을 섬기고 범죄하여 열국 중에서 그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을지라도 그들을 변화시켜 그의 율례를 행하게 하고 그의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여 종국에는 그들을 인하여 그의 더럽혀진 이름을 거룩하게 하신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그가 기뻐하고 사랑하여 택한 자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여 그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서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여 종국에는 복을 받게 하신다. 신명기 8장 15, 16절에서는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했다. 주님께서 그의 택한 자들을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시고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시고 만나를 광야에서 먹이신 것은 그들을 낮추시고 시험하여 종국에는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자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항하고 위하사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고 다루어 그들을 영화롭게 할 뿐만아니라 그들 안에서 주님 또한 영광을 얻으신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12절에서는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주님은 그의 목적한 바를 종국에는 이루신다. 이것은 주님 자신이나 그의 택한 자들이 함께 영광을 얻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계속 역사하신다.
출애굽기 13장 21, 22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앞서 행하사(가심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실 뿐만아니라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함께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가 택한 자들을 사랑하고 위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떠나지 않고 늘 함께 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이다. 신명기 31장 7, 8절에서는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했다. 모세가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하라고 하면서 주님께서 함께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얻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씀과 함께 주님께서 여호수아 앞서 행하시며(가시며) 여호수아와 함께하사 그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할 것이므로 두려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말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서가며 행하실 뿐아니라 그들과 계속해서 함께 할 것을 말하면서 두려워하거나 놀지 말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앞서 가심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장애물을 해결하실 뿐만아니라, 그들을 떠나거나 버리지않고 그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28장 19, 20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그가 택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그들과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주님을 따름과 섬김
주님께서 앞서가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 앞서가심으로 그를 따르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 임의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주님께서 가시는 그 길만 따라가게 하시는 것이다. 곧, 주님과 같은 삶을 살게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 앞서 가심으로 그들을 인도하신 것은 그들로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오늘날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로 자기 자신의 길을 가지 않고 주님이 인도하는 주님의 길로 가게 하시는 것을 뜻한다.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생명 주는 영이 되셔서(고전 15:45) 믿는 자들 속에서 역사하사 그를 믿고 거듭난 자들로 그들 임의로 생활하지 않고 주님의 삶을 살게함으로 그의 뜻을 이루고, 그를 풍성히 누리게 하사 그와 같은 자들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12장 26절에서는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을 따르는 자만이 주님을 섬길 수 있고, 그를 따르고 섬기는 자는 주님과 함께 있다고 했다. 이 내용을 보면 주님을 따르며 그를 섬기는 자는 주님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섬기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4, 5절에서는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예수님에 대해 보배로운 살아 있는 돌이라고 했고, 주님을 믿는 자들 또한 살아있는 돌로서 주님과 함께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고 했고, 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령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사장의 임무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 자들은 산돌로서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믿는 자들과 주님이 분리된 것이 아니고 하나가 되는 가운데서 주님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서는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그의 종돌이 그를 섬기며’라고 한 것은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 받고 거듭난 자들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그를 섬기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그를 섬기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힘들고 고달프고 저주 받은 삶이 아니고 복을 받은 삶이다. 천지만물의 창조주이며, 구속주이신 주님을 영원히 누리며 섬기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럽고 복된 것이다. 주님은 그를 믿고 구속함을 받은 자들로 그러한 복을 받아 누리도록 앞서가며 인도하시며 함께 하신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 곧 그를 믿는 자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주님이 있는 곳에 그를 믿는 자들도 함께 있게 하겠다고 했다. 이렇게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위하는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고, 또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 하신다. 할렐루야!
앞서감으로 본을 보임
주님은 그의 택한 자들보다 앞서감으로 그들을 인도할 뿐만아니라 본을 보이기도 한다. 앞서가는 것은 그가 가는 길이나, 행동이나 모든 것을 보여주고 따르게 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19∼21절에서는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구속 받은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그들에게 본을 보여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다고 했다. 억울하게 욕을 당하여도 복수하지 않고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슬픔을 참는 본을 보여주사 우리 또한 그러한 길을 가게 하셨다. 요한복음 13장 14, 15절에서는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선생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줌으로 그들 또한 주님을 본받게 하셨다. 곧, 겸손함과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다. 요한복음 13장 34, 35절에서는“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제자들을 사랑한 것과 같이 제자들 또한 서로 사랑하라고 했다. 이것은 주님께서 사랑하는 본을 보여준 것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주님게서는 사랑하는 본을 보여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랑하라고 하지 않고 먼저 사랑의 본을 보여주시고 그를 따라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서는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했다. 이것은 주님께서 먼저 용서하셨음으로 우리도 그를 본받아 용서하라는 것이다. 에베소서 5장 1, 2절에서는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사랑을 입은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 또한 사랑 안에서 행하라고 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그를 본받아 행할 때에 함께 역사하여 그의 뜻을 이루신다. 우리 임의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먼저 행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따를 때 주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는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그 영)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우리 안에서 생명으로 역사하는 그 영을 따를 때에 그 주님의 삶을 살게 된다. 우리 앞서 가시고 행하시는 주님의 인도를 받고 그를 따를 때에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이신 주님 안에서 그의 모든 풍성을 누리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