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투폴레프 Tu-160 블랙잭(Black Jack) 폭격기

[한국남자]

공중급유중인 Tu-160

실제로 싸워서 이길 수 있냐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지만 지금 지구상에서 미국에 군사적으로 그나마 맞설 수 있는 나라라면 러시아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냉전시기였던 1990년 이전의 소련보다 약체로 평가되지만 현재 러시아가 보유한 무력은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수준이다. 무지막지한 핵전력이 그러한 자신감의 가장 큰 원천이지만, 재래식 군비로만 따져도 무시무시한 수준인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일부 무기의 경우는 질적으로 뒤진다는 평가도 있지만 현재 러시아는 자국에서 개발한 무기로 자국군을 완전히 무장시키고 지속적으로 보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총알 같은 소모품부터 전략 무기인 대륙간탄도탄까지 현재 사용되는 거의 모든 종류의 무기를 개발, 생산 보유하고 있다. 최근 G2의 위치에 오른 중국의 군비 증가가 두드러지지만 객관적으로 아직 러시아에는 뒤진다.

하지만 아무리 팔방미인이라도 다 잘 할 수 없는 것처럼 러시아도 모든 무기를 다 잘 만들거나 충분히 보유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기술적, 경제적, 전략적 등의 여러 이유 때문인데, 대표적으로 해군의 항공모함과 공군의 전략폭격기 분야가 그렇다. 하지만 이 또한 미국과 비교하였을 때나 그렇다는 것이지 과거 소련이나 현재의 러시아가 이 분야에서 보유한 전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육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안이 작다 보니 해군력이 미국에 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으나 소련 당시부터 전략폭격기 분야는 여타 항공 전력과 비교하면 유독 뒤졌다. 미국에 비해 뛰어난 폭격기가 부족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는데 당연히 이런 차이를 극복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 결과 현재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초음속 전략폭격기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Tu-160 블랙잭(Black Jack)이다.

어느 날 등장한 소련의 야심작

1981년 11월, 모스크바 인근의 주코프스키 공항에 주기되어 있던 소련의 미확인 기체가 첩보위성에 촬영되었다. 일설에는 비행장에 있던 승객에게 우연히 찍힌 사진이 유출되며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도 하지만, 해당 공항이 냉전 당시 미국의 에드워드 공군기지처럼 군용기 실험 기지로 사용되었던 점을 고려할 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쨌든 아직 실험 중에 있는 기체였지만 이렇게 서방 세계에 Tu-160은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소련의 신예기는 미국의 최신 전략폭격기인 B-1을 연상시킬 만큼 모습이 상당히 유사하였다. B-1은 한때 양산을 포기하였지만 1981년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B-1B라는 이름으로 생산 재개가 결정된 미국의 최신예 전략폭격기인데, 지금도 미 전략공군의 중추다. 물론 외관이 비슷하다고 성능도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련의 기술력을 고려한다면 Tu-160은 결코 예사롭게 생각할 수 없는 비행체가 틀림없었다.

그 동안 소련은 Tu-95처럼 다양한 전략폭격기를 운용 하였지만 미국은 그다지 위협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소련 최초의 전략폭격기 임무를 담당한 Tu-4도 얼떨결에 얻은 B-29를 무단 복제한 것일 만큼 기술적 격차가 컸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항속거리가 짧은 소련의 폭격기들이 방공망을 뚫고 미국 본토까지 날아오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목격 된 신예기는 분명히 그런 막연한 자신감을 흔들어 버렸다.

Tu-160과 Su-27의 편대 비행

만일 B-1처럼 고속으로 저공비행이 가능하다면 상당히 위협적일 것은 틀림없었다. 게다가 B-1보다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폭장 능력이 앞설 것으로 판단되었다. 비록 대륙 간을 넘나들며 상대의 머리 위에 직접 핵폭탄을 날릴 수 있는 각종 장거리 미사일이 전략폭격기의 많은 영역을 대신하고 있었지만 그 동안 미국의 전략폭격기에 전전긍긍하였던 소련의 고민을 이제는 미국도 겪어야 했다. 사실 핵 투발 수단은 다양화될수록 전략적 작전 구사 능력이 배가된다.

Tu-160 평면도

다른 듯, 비슷한 듯

냉전 기간 동안 미국이 새로운 폭격기를 만들어 배치하면 소련은 일단 요격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응수하였다. 소련 전투기들이 공대공 전투 능력이 부족하지만 고속으로 고고도로 치고 올라와 즉각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났던 이유도 순전히 폭격기 전력이 강했던 미국을 의식한 결과였다. 이처럼 수세적으로 대항했던 소련에게 Tu-160의 등장은 같은 방법으로 미국을 위협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소련이 이러한 신예 전략폭격기를 구상하였던 것은 1960년대 후반이었다. 개념 연구 결과 새로운 폭격기에 공중 발사 장거리 핵미사일을 장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 파악하였다. 1972년 군 당국은 여러 설계국에 35톤 이상의 무장을 장착하고 최대 마하 2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호위기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대륙 간을 횡단하여 적진에 침투도 가능하여야 한다는 구체적 조건을 내세워 개발을 독려하였다.

당시 미국은 고고도 고속 비행만으로 폭격기의 안전을 더 이상 확보하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XB-70의 개발을 포기하고 방공망을 피해 저고도로 침투가 가능한 새로운 폭격기 개발에 나선 상황이었다. 소련의 설계국 중에서 대형기 제작에 일가견이 있고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인 Tu-144을 만들어 내기도 한 투폴레프(Tupolev) 설계국은 미국이 한창 개발 중이던 B-1을 벤치마킹 하여 Tu-160을 개발하였다.

소련에서는 자력으로 개발하였다고 주장하나 고도에 따라 비행 능력을 최적화할 수 있는 가변익 구조, 엔진의 배치 형태 등을 고려한다면 B-1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점은 틀림없다. 하지만 정보 교류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개발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단순 카피로 보기 어려운 점이기도 하다. 시기적으로 B-1이 5년 정도 먼저 세상에 나왔지만 단지 모양만 보고 완벽히 복제하기에 이는 결코 충분한 시간차라 하기 어렵다.

아날로그 식으로 이루어진 조종석의 모습

소련의 자존심

이는 한편으로 소련의 항공 기술력이 얼마나 대단하지 알려주는 뚜렷한 반증이기도 하다. Tu-160 같은 전략폭격기는 단지 눈에 보이는 외형을 참조하였다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설령 첩보 활동을 통해 상대의 설계도를 완벽히 입수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구현할 기술이나 인프라가 없다면 제작이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단지 외형만 유사할 뿐이라는 소련의 주장도 타당성은 있다.

Tu-160은 처음 목격된 지 한 달 후인 1981년 12월에 초도 비행에 성공하였고 이후 여러 실험과 개선을 거치면서 개발 당시 군에서 요구한 목표를 초과 달성하였다. 우선 소련 폭격기 최초로 본토에서 발진하여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을 만큼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였다. 거기에다가 최고 마하 2.05의 속도로 낼 수 있는데 이는 현재 실전 배치된 폭격기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고속 비행하는 Tu-160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사거리 3,000km의 Kh-55 장거리 순항 미사일 6발과 사거리 300km의 Kh-15 단거리 미사일 12발을 비롯하여 약 40톤의 무장을 장착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현재까지 제식화 된 폭격기 중 최대의 무장 능력이다. 이런 능력을 발판으로 전략 핵 폭격 작전은 물론 목표물을 원거리에서 정밀 타격하는 전술 임무에도 투입이 가능하다. 당연히 군부의 많은 기대 속에 1984년 본격 양산이 개시되었는데 이는 우여곡절 끝에 양산이 재개된 B-1B보다 조금 빨랐다.

당시는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가 힘의 우위를 통해 전 방위로 소련을 압박하던 냉전의 마지막 절정기라서 소련의 입장은 상당히 다급하였다. 자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1990년까지 100기를 도입할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철저히 B-1B를 의식한 숫자라 할 수 있다. 1987년 제184폭격연대에 초도 물량이 배치되면서 실전 배치가 이루어졌고 1988년부터는 대외 언론에 공개되기 시작하였다. 일종의 선전 효과이자 자신감의 발로였다.

6발을 장착할 수 있는 Kh-55 장거리 순항 미사일.
2,500km가 넘는 사거리를 자랑하며 핵탄두도 탑재할 수 있다.

12발 장착이 가능한 Kh-15 단거리 미사일. 핵탄두도 탑재 가능하다.

궁금해지는 미래

하지만 미국을 의식하여 너무 서둘러 배치가 이루어지다 보니 운용상에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고 이 과정에서 생산이 지연되곤 했다. 제작과 동시에 계속 보수가 이루어질 지경이었는데 사실 이는 새로운 무기의 도입과정에서 흔하게 발생되는 일이라 그다지 큰 문제로 삼기는 어려웠다. 특히 폭격기나 군함처럼 소량만 생산되는 고가의 무기는 드러난 문제점을 수시로 개선하며 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1991년에 있었던 소련의 붕괴는 Tu-160의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개량은커녕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유지보수마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고 당연히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거기에다가 우크라이나에 주둔하던 19기의 귀속 문제를 놓고 심각한 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엄밀히 말해 이는 냉전종식과 세계 질서 재편 속에서 자칫 관리가 위태로울 수 있는 핵 무기와 관련된 문제였다.

1993년 주코프스키 공항에서 실험 비행 중인 모습

결국 우여곡절 끝에 폴타바 박물관에 전시할 1기를 제외한 전부를 1999년 러시아가 인수하였고 이중 상태가 좋은 기체를 골라 재배치했으나 여전히 의미 있는 역할을 맡지 못하였다. 이후 러시아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2005년부터 대대적인 개량이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Tu-160은 총 36기가 생산되었는데 2008년 기준으로 16대가 운용 중으로 모든 기체에 대한 업그레이드가 진행되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강력한 주먹으로 삼고자 하는 러시아의 단호한 의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가 밝을 것으로 판단되지는 않는다. 우선 강대국 간의 전면전 가능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전술 작전기로도 정밀유도무기에 의한 폭격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여러 요격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갈수록 대형 폭격기의 생존성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는 현재 사용 중인 전략폭격기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라 할 수 있다. 냉전시대 소련의 마지막 자랑이자 현재 러시아의 자존심인 Tu-160의 미래가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2011년 모스크바 에어쇼(MAKS) 당시 공개 전시 된 Tu-160

제원
전장 54.1m / 전폭 55.7m / 전고 13.10m / 최대이륙중량 267,600kg / 최대속도 마하 2.05 / 항속거리 12,300km / 작전고도 15,006m / 무장 40,000kg 폭장 또는 6개 Kh-55SM 순항미사일, 12개 Kh-15 미사일

글 / 남도현[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자료제공 / 유용원의 군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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