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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을 표준말로 바꾸니 재미없제? 그라믄 그기 번역문이지, 어디 소설이가! |
| 요산 김정한은 고통받는 민중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민족의 과제를 양심적으로 그려낸 작가이다. 전통에 대한 관심, 농촌생활과 밀착한 지역·토박이말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이런 작가정신으로부터 비롯한다. 그런데 학교나 방송 등을 통해 표준말이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면, 작가의 뜻과 어긋나게 원래 표현이 훼손되거나 지역·토박이말을 이해하는 독자가 점점 줄어든다.
예를 들어 '고동바'로 허리춤을 졸라맨 김영감은 '탱고리' 수염을 떨며 '제비손'을 넣으려고 하였으나 박영감에게 '물매'만 맞았다고 해보자. 이 말들은 모두 '사하촌'에 나온다. '고동바'는 '고동'과 '바'를 합친 말이다.
여기서 바는 줄이나 끈을 뜻한다. 고동은 논을 맬 때 대나무를 통으로 비스듬히 잘라 손가락에 끼우는 것이다. 그래서 대고동이라고도 한다. 논을 매지 않을 경우 여러 토막의 대고동을 보관하기 위해 한 줄에 끼워 허리에 차기도 했다. 현재 50~60대 이상의 연령층은 이 말을 사용했고 그 뜻도 알고 있을 것이다.
'탱고리'는 올챙이의 경남 방언이다. 사전에 올라있지 않은 '제비손'은 그 뜻을 명확하게 하기 어렵지만 제비처럼 날렵한 손놀림을 뜻한다고 보면 크게 틀림이 없다. '물매'는 몰매나 뭇매와 다르다. 물매는 한 사람이 많이 때리는 매이고, 뭇매는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덤비며 때리는 매로 몰매라고도 한다. 이런 식으로 풀이하면, 고동바를 허리에 찬 김영감이 올챙이 모양의 보잘것없는 수염을 부르르 떨면서 재빠른 손놀림으로 박영감을 넘어뜨리려 하다가 오히려 크게 두들겨 맞았다는 뜻이다. 정확할 뿐 아니라, 농민의 생활에 밀착한 작가만이 능히 쓸 수 있는 표현이라 하겠다.
요산이 사물의 명칭을 얼마나 정확하게 사용하였는가는 쉽게 확인된다. '항진기'에서 굵직하고 거세게 퍼붓는 비는 '작달비'라 했다. 또 '미친 날씨는 이따금 개 오줌 싸듯 산돌림을 질끔거렸다'고 했는데, '산돌림'은 산기슭을 따라 여기저기 옮기면서 한 줄기씩 오는 소나기를 뜻한다. '사하촌'의 경우, 일제시대 발표작에서 '궁둥춤'이라 한 것을 해방 후 요산은 '엉덩춤'으로 교체하였다. 앉으면 바닥에 닿는 부분인 궁둥이와 골반에 이어져 있는 볼기의 윗부분인 엉덩이를 명확하게 분별한 것이다.
그런데 '모래톱 이야기'를 읽다 보면, '칠팔월 긴 장마가 아니라' 하루 이틀, 그러나 사흘째부터 억수로 변하더니 광풍까지 겹쳐 폭풍우로 바뀌었다는 진술이 나온다. 1966년 발표 당시의 표기를 보면 '진장마'로 되어 있다. '진장마'는 '긴' 장마라기보다 맑은 날 없이 강우량이 많은 장마를 뜻하며, 이는 강우량이 적거나 맑은 날이 계속되는 마른장마 혹은 건장마에 상대되는 말이다. 따라서 훗날 새로운 판본에서 '긴 장마'로 고친 것은 편집자가 원본의 의미를 오해한 탓이다.
요산은 등장인물의 입말을 최대한 살리고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서술자의 지문에도 지역말이 스며있다. 이는 요산 소설의 문체적 특성인데, 새롭게 조판된 작품집에서 그 원형이 틀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모래톱 이야기'의 경우, 원래 '아압니더'인 것을 '아입니더'로 고치거나 '아아 아베'를 '아이 아배'로 바꾸었다. 또 '수라도'의 경우, '키운 아아가 아잉기요!'를 '키운 아이가 아잉기요!'라고 고쳤다. 이는 '아아'보다 '아이'라 함으로써 그 뜻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겠지만, 부산·경상도말의 장음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와 더불어, '이림'을 '이름'으로, '할아부지'를 '할아버지'로, '꼽다시'를 '곱다시'로 고친다면, 살아가는 장소와 관련된 작중인물의 성격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지역말의 음감을 최대로 살려내고자 애쓴 작가의 보람도 사라질 것이다.
순 우리말에 대한 요산의 깊은 애정은 생리적이면서 의식적인 것이다. 오늘날 '모꼬지'라 하면 놀이나 잔치 그 밖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인다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수라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말이다. 주로 시골여자가 나들이 할 때 머리에 쓰던 쓰개인 '처네', 아래가 강가나 바닷가로 통하는 벼랑길을 뜻하는 '벼룻길', 거의 중송아지 만 한 큰 송아지를 뜻하는 '어스럭송아지', 오금까지 찰 만큼 자란 풀이나 나무를 지칭하는 '오금드리 잡목', 날이 샐 무렵에 밥을 짓는 일을 뜻하는 '새벽동자' 등은 점차 그 쓰임새가 줄고 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지명으로, '냉거랑'의 '거랑'은 경상말로 시내를 뜻한다. '대밭각단'에서 '각단'은 뜸, 즉 동네, 마을의 뜻이다.
'모래톱 이야기'에서 담임교사가 생업에 대해 물었을 때, 건우 어머니는 '물 빠질 땐 개발이싸 늘 안 나가는기요'라고 답한다. 여기서 '개발'은 작은 종류의 조개의 통칭하기도 하고, 썰물 뒤 갯가에서 조개 미역 파래 게 낙지 등을 채취하는 행위를 일컫는 지역말이다. '인간단지'에 보면 문둥이들이 '남은 손가락 사이에 술총을 끼워' 밥을 먹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술총'은 숟가락총, 곧 숟가락 자루를 뜻한다.
이외에도, 언제나 찬물이 솟아 괴거나 들어오는 논배미를 뜻하는 '찬물내기'라든지, 못자리에 거름으로 넣을 풀을 얹는 지게로 '모풀바지게',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기 좋아하는 수다스러운 사람을 뜻하는 '가납사니', 심성이 굳고 억척스러운 사람을 뜻하는 '억척보두', 배꼽 언저리를 뜻하는 '배꼽노리', 천수답을 뜻하는 '별똥지기' 등은 생활 속에서 곱씹어 보아도 좋을 토박이말이다.
지역·토박이말 때문에 작품을 대중적으로 보급하는 데 손해가 있을 수 있다. 또 생활이 바뀌면 말도 바뀌게 마련이다. 그러나 작가의 언어는 태생지로부터 영향을 받고 또 언어는 생각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앞의 이익만 좇을 일은 아니다. 쓰임새가 줄어 그 뜻을 쉽게 알 수 없는 경우라도, 우리의 몫은 지역·토박이말이 어렵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새기고 부려쓰는 일이다.
인제대 국문학과 교수
#원본 사하촌-고동바로 허리춤을 졸라맨 김영감은 탱고리 수염을 떨며 제비손을 넣으려고 하였으나 박영감에게 물매만 맞았다.
#표준어 사하촌-고동바를 허리에 찬 김영감이 올챙이 모양의 보잘것없는 수염을 부르르 떨면서 재빠른 손놀림으로 박영감을 넘어뜨리려 하다가 오히려 크게 두들겨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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