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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역사] 발표자료 왜 우리는 실학에 주목해야 하는가? - 꼬까신
윤교 06 조성희 추천 0 조회 439 06.10.25 17:29 댓글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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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11.01 23:50

    실학은 현실지향적이었으며 우리 현실에 대해서 연구한 학문이기 때문에 애국의 학문이라고 합니다. 유학자들의 개화 반대와는 달리 실학은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받아들이자 하는 학문이었기에 실학이 우리나라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면 일제 강점기와 같은 상황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학은 집권 세력에 의해 모진 탄압을 받았는데요. 이 때문에 실학이 위축되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한 학문이 집권층의 입맛에 맞지 않아 사장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교사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여야 합니다.

  • 06.11.01 15:22

    1) 우리 나라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면 -> 우리나라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면 2) 지배세력들에게 -> 집권 세력에 의해 3) 지도자들의 눈에 -> 집권층의 입맛에 4) 교사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해야하는 인물들 중 하나입니다. -> 특히 교사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여야 합니다.

  • 06.11.01 23:50

    실학의 사장을 선례로 삼아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하여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수양과 시대를 제대로 바라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삶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 06.11.01 15:24

    5) 잡아내야 겠지요. -> 파악하여야겠지요. 6) 가져야 합니다. -> 길러야 합니다. 7) 그럼으로써 -> 그래야만 8) 제공해야겠습니다. ->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 06.11.01 23:51

    댓글 2개 수정하였습니다.^^

  • 06.10.31 20:57

    윤리교육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물음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는 윤리교육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데 있어서 항상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실학자들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체성의 확립, 변화와 발전의 추구, 끊임없는 노력 등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힘있는 사람들에게 막혀 그 뜻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였습니다. 또한 민중과 같은 다른 구성원들의 호응을 얻어내지도 못했죠. 그리고 자신들의 사고가 기존의 틀 안에 갇혀있었던 것은 가장 커다란 문제였습니다. 저는 이 실학이 열매 맺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으로 협동, 상호성, 용서를 들고 싶습니다. 싸우기보다는 협동을 하고,

  • 06.11.01 17:04

    1) 윤리교육 뿐만 아니라 -> 윤리교육에서뿐만 아니라 2) 그리고 자신들의 사고가 기존의 틀 안에 갇혀있었던 것은 가장 커다란 문제였습니다. -> 무엇보다 그들의 사고가 기존의 틀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 가장 커다란 문제였습니다. 3) 이 실학이 열매 맺기 위해서 -> 이러한 실학이 열매맺기 위해

  • 06.10.31 21:04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용서해주는 태도를 가졌더라면! 근본적인 문제를 볼 수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도 살아갈 때 협동, 상호성, 용서를 잊지 않고, 근본적인 것들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06.11.01 17:23

    4) 용서해주는 -> 용서해 주는 5) 살아갈 때 -> 살아가면서

  • 06.10.31 22:02

    발표 잘 들었습니다. 실학은 조선 후기 분명 새롭고 참신하며 당시 낡고 부패했던 사회를 개혁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상이었지만 조선 사회를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실학은 현실에 대한 자각과 선진 문물의 전래를 통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실학을 주장했던 실학자들은 대부분 소외된 잔반 출신이었고 그들은 봉건적인 시대 의식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실학 사상이 비록 주체적이고 창조적이며 비판적인 의식이었지만 실학자들은 단순히 이론적인 논리로서 실학을 주장하였고 이는 수박 겉핥기식 표면적 접근이었습니다. 실학자들의 이러한 상황은 유교적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고 사회를 개혁할만한 의식 형성이 불가능했고 근본적으

  • 06.10.31 22:00

    힘, 권력을 잡지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아무리 좋은 의식과 사상이 있더라도 힘이 없으면 사회 개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혁명적, 개혁적 의식과 함께 강력한 힘의 형성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 06.10.31 23:05

    실학은 기존의 조선의 학문적 풍토를 바꾼 일종의 학문적 개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전이나 이념적으로 치우진 학풍에서 벗어나 보다 과학적이고 실제적인 실용적인 학문에 대해서 연구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개혁적입니다. 특히 민본적 민주 평등사상을 다진 것은 조선의 신분제가 붕괴되는데 중요한 이념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등주의적 사상이 농민뿐 아니라, 노비의 신분, 또한 지식층과 개혁층에게 전파되어서 후에 노비제가 폐지되고 신분제를 모호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 06.10.31 23:05

    그러나 이러한 실학은 봉건적 사상에 철저하게 물들어 있는 시대적 한계에 부딪혀서 커다란 파장을 주지 못하는 한계점을 갖습니다. 또한 실학자의 대부분이 정권의 소외 계층일 뿐만 아니라 정권을 주도하는 주도적 세력들이 실학을 탄압하려고 했기 때문에 과학적이고 실제적인 실용적 학문인 실학은 흘러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주체적이고 개방적이며 창조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개혁을 위한 실천적 자세가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 06.11.01 00:13

    발표 잘 들었습니다. 실학 연구를 통해 현실적이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학문 연구가 전개되어 근대화의 발판이 마련되었으며 현실에 대한 비판과 그것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를 일깨움으로서 비판의식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해줍니다. 또한 생활에 필요한 것을 연구하는 실용적인 학문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어 간학문적 경향을 띱니다. 이런 실학이 국가적으로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면 조선 후기에서부터의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 06.11.01 17:30

    그러면 실학의 역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하는가요?(이러한 물음이 공동 삶의 원리에 관한 물음입니다.)

  • 06.11.01 04:36

    물이 많아야 물길이 수월히 뚫리는 법입니다. 인간성 회복과 평등사상, 실용성 등 개혁적이고 타당한 가치를 표방하던 실학이었지만, 당시에는 뿌리깊게 박혀 득세하던 성리학의 위세를 꺾을 만큼 많은 물이 모이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담론을 활용, 대중화시키기 위한 사회적 동의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노력이 부족했지요. 당시 실학은 특별히 자립적이고 독보적이었다기보단 새롭게 떠오르는 신학풍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전개되면서 조선 말의 분위기를 인간 중심, 이념적이기 보다는 실질적이고 실용적으로 바꾸어 놓았지요. 이는 실학이 담고있는 가치가 보편타당하기 때문에,

  • 06.11.01 23:55

    특별한 노력 없이도 민중들에게 수용되었을 것입니다. 더불어 이를 통해 우리 민족들의 전근대성을 확인할 수 있겠지요. 어느 시대에든 인류애를 지향하는 이념은 환영받으며, 그것이 보편적 진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 06.11.01 17:32

    1)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 06.11.01 23:55

    수정하였습니다.

  • 06.11.01 10:36

    실학은 유교가 주요 이념으로 신봉되던 조선 시대에 분명 새로운 흐름이었습니다. 토지의 공동 분배를 주장하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도구와 기계를 만들었던 실학자들은 중국에 들어온 서양의 과학 서적 등을 참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했던 실학이 제대로 정착했다면 조선 후기는 서양의 근대와 같이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봉건제도까지 없앨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실학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정책에 반영시키는 데 실패했습니다. 아무리 좋고 국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생각이 있더라도 그것을 정책에 반영시킬 힘이 없다면 헛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 06.11.01 10:36

    정치와 권력의 세계는 힘이 있는 자가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실학자들에게 그러한 힘이 없었다면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들을 정계에 진출시킬 수 있는 또 다른 권력자가 존재했어야 합니다. 그런 인물이 바로 ‘정조’입니다. 정조는 서자 출신의 뛰어난 인재들을 규장각 검거관으로 채용했고, 정도전을 총애하여 그가 만든 ‘거중기’로 수원 화성을 단기간에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조의 갑작스런 돌연사는 그와 실학자들이 꿈꾸었던 이상 사회 건설을 좌절시키고 말았습니다.

  • 06.11.01 10:37

    하늘이 내린 인재를 저버리는 것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주장을 했던 허균의 ‘유재론’이 생각납니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결코 많지 않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바탕으로 하여 이렇게 발전해왔습니다. 힘을 가지지 못했고 자신들의 뜻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실학자들의 꿈이 좌절된 것이라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혹시 인재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 06.11.01 12:14

    조성희 학우의 발표 잘 들었습니다. 실학에 대해 발표를 해주셨는데요.^^ 발표 자료가 매우 풍성하네요. 실학은 관리들이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고 싸웠으며 실용적이지 않은 유교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만 주장하고 서양문물의 도입으로 학문적 반성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백성들의 삶이 더욱 가난하게 되어서 현실을 깨닫고 실용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은 연구하면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실학은 백성들의 실생활에서의 쓰임과 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중국 중심에서 탈피하여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농사기술과 상공업에 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 06.11.01 20:45

    또한 학문 연구에 확실한 사실과 증거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지만, 정권을 잡고 있는 세력의 반대로 적극적으로 나라에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실학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점은 사회의 주도적인 학문으로 당연시 여겨졌던 성리학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였던 점, 그리고 그 비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실용적이고 필요한 학문을 발달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개혁 의지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실학을 주창했던 세력들의 대부분은 정권에서 소외된 인물들이어서, 그 개혁적이고 실용적인 실학이었지만 나라의 정책에 적극 반영되지 못하였습니다.

  • 06.11.01 17:36

    1) 중요 하다고 -> 중요하다고 2) 좀 더 실용적이고 -> 좀더 실용적이고

  • 06.11.01 20:46

    수정했습니다.^^

  • 06.11.01 20:46

    아무리 머릿속의 좋은 생각이라도 그것을 밖으로 분출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無用之物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은 중요한 것입니다. 21C. 좀 더 참신하고, 좀 더 유연한 자신의 의견을 분출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우리들은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精進해야겠습니다.

  • 06.11.01 17:42

    3) 아무리 머릿속에 좋은 생각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밖으로 분출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머릿속에 있는 좋은 생각은 無用之物에 불과합니다. -> 아무리 머릿속의 좋은 생각이라도 그것을 밖으로 분출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無用之物에 불과합니다. 4) 자신이 서있는 현재의 위치에서 안주하지 말고 남들보다 더욱 앞서 나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精進해야겠습니다. ->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精進해야겠습니다.

  • 06.11.01 20:46

    수정했습니다.^^

  • 06.11.04 01:25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그만큼 새로운 정신이 따라가 주어야 합니다. 컴퓨터는 386, 486에서 펜티엄급으로 바뀌고 있는데 아직도 도스를 쓰고 있을 수는 없지요. 실학은 수많은 폐단을 낳고 있던 조선 유교에 따끔한 일침을 놓아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한 학문입니다. 지금까지 소홀하게 다루어졌던 일상생활에서의 학문의 도입과 개혁, 백성 삶의 질 향상 등에 말이지요.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닌 직접적, 적극적(일상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의미로서의 적극성을 말하자면) 학문이었기에 후대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실학은 백성이 아닌 양반 스스로에게서 일어난 것이기에 중하다고 하겠습니다. 타인이

  • 06.11.02 10:12

    1) 일침을 놓으면 -> 일침을 놓아

  • 06.11.04 01:25

    수정하였습니다. ^^

  • 06.11.04 01:24

    나 다른 문화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쉬워도 자신이 속한 계층에 대한 비판은 왠만한 용기가 있지 않고는 힘든 것인데 그들은 비난을 각오하고 자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올곧은 선비의 정신이고 그렇기 때문에 실학이 유교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다는 말이 나온 것이라 봅니다. 다만 , 아쉬운 점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사회 주도 세력에서 밀린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쪽에서의 활동이었던 점입니다. 저는 이것을 기득권에 대한 이해 부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한번 잡은 기득권은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점을 인지했다면 기득권세력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공존하는 방향에서도 접근을 해서 그것이 실질적인 개혁으로 이

  • 06.11.02 10:16

    2) 잘 알려져있다시피 사회 주도권에서 ->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회 주도 세력에서

  • 06.11.04 01:25

    수정하였습니다~.

  • 06.11.04 01:25

    어지도록 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설득 작업을 위해선 먼저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힘을 길렀어야 했고요. 자신에(자신의 계층) 대해 스스로 나서서 반성할 수 있는 용기와 실천적 자세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덧붙여 우리도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런 자세들과 더불어 힘(실력)역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표도 발표지만 알차고 이해가 쉬운 발표문이 참 좋았습니다. 고생하셨어요^^

  • 06.11.02 10:13

    코멘트, 좋군요.

  • 06.11.02 16:29

    발표 잘 들었습니다. 실학은 사대주의와 봉건주의로 대표되는 조선시대에 나타난 가장 뚜렸한 근대적인 움직임 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사회, 기술, 문학, 정치적인 여러가지 측면에서 한민족 중심의 실질적인 학문을 지향하게 된 시초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구요. 그러한 움직임이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정약전의 자산어보 등과 같은 실질적인 업적을 남기기도 했고, 기존의 성리학에서는 볼수 없었던 실용적인 학문의 성과가 나타나는 결과를 낳게 하지만, 문제는 실학파의 대부분이 조정의 붕당정치에서 세력을 잃은 사람에 의한 것이었다는데에 있지요.

  • 06.11.06 18:04

    1) 것이었다는데에 있지요. -> 것이었다는 데에 있지요.

  • 06.11.02 16:31

    현대의 모습을 봐도 그렇지만 힘이 있으면 틀린 것도 옳은게 되고, 힘이 없으면 옳은 것도 인정 받지 못하는 현실이 엿보이네요.

  • 06.11.06 18:07

    교훈적 측면의 내용이 미흡합니다. 보완하도록 하세요.

  • 06.11.05 16:26

    실학은 실학자들에게서 민중으로 퍼져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실학자들 사이에서만 맴돌았던 것이죠. 실학자들 대부분이 정권소외계층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실학자들 자체가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만큼 힘이 없는 그들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민중들 개개인을 깨닫게 하여 민중들의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민중들의 깨달음은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바꾸는 힘이 되고 이는 실학을 통해 근대로의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06.11.06 18:09

    교훈적 측면의 내용을 좀더 보완하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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