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탐구(傳統探究)
종친화목(宗親和睦)의 방촌(傍村) 무기계( 無忮契)
魏麟煥(위인환 33세 훈도공 13대 종손, 도문회장)
1. 無忮契의 由來
방촌에는 無忮契라는 契 組織이 227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傍村 마을은 先史時代부터 마을이 形成된 곳으로 百濟 時代에는 烏次縣, 統一新羅 時代에는 烏兒縣, 高麗 時代에는 定安縣, 長興知事府, 懷州牧의 治所가 있었던 곳이다. 高麗末 1379년 倭寇의 잦은 침략으로 나주 철야현으로 치소를 옮기면서 마을은 폐촌이 되었다. 朝鮮의 建國과 함께 장흥부가 중령산에 설치되었다가, 1414년에 長興都護府가 수령현에 설치되면서 그 곳에 살던 장흥위씨들은 平和로 터를 옮겨 살게 되었다.
평화에서 살던 장흥위씨가 능주로, 冠山으로, 關北으로 分派되면서 위씨들은 지역을 넓혀가게 되었다. 蓉山을 거쳐 冠山에 이주해 온 위씨는 이웃 堂洞 마을에 거주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顔巷公 諱 德厚가 1578년경에 방촌에 이주하면서 처음으로 방촌에 入鄕하여, 이미 살고 있던 任氏, 朴氏, 白氏 등과 어울려 살다가 위씨의 勢力이 넓혀지면서 위씨 집성촌을 이루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무기계는 1791년(정조 15년) 傍村의 위씨 친족 30여 명이 道純을 중심으로 宗親間의 화목을 목적으로 契를 결성하자 存齋公 魏伯圭선생은 猜忮하지 말고, 서로 화목하라는 뜻으로 無忮契라 명명하고 意味를 부여했다. 존재공은 무기계 서문에서 ‘猜忮’의 字學적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猜’자는 ‘犭’변에 ‘情’자를 붙였으니 개의 마음이고, ‘忮’자는 ‘忄’변에 ‘枝’자를 붙였으니 남과 함께 하지 않는 갈라진 마음이라는 것이다. 정리해 보면 猜忮는 온갖 惡의 근원이고 온갖 善의 원수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존재공이 우려하는 점은 契에 財産이 있는데 財産이란 다툼의 창고라고 여겼다. 즉 재산으로 인해 알력이 생겨 兄弟間에 원수가 되고, 父子間에도 용서하지 않은데 촌수가 먼 일가 親族의 경우는 말할 나위 없다는 것이다. 이는 ‘忮’자 즉 남을 해치는 마음은 싸움을 일으키는 곳이다. 잘못되면 도리어 위씨 門中의 쇠망을 재촉한다고 걱정하면서 無忮契라 칭하였다.
당시 조직원은 道純, 道立, 道及, 守粱, 道運, 道佺, 道洽, 道峻, 道澗, 道玉, 道任, 道億, 道英, 道集, 道昕, 道約, 榮一, 道經, 道晃, 榮國, 榮夏, 道根, 道璘, 道晟, 道輯, 道珏, 道秀, 道植, 道勳, 廉宗揵으로 그 長孫이 承繼 하여 왔는데, 현재는 추입한 계원들이 있어 4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무기계는 옛 어른들이 활동했던 것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여름에는 中伏 날 煮伏을 통해 계원들의 화목을 도모하고, 陰曆 2월에는 좋은 날을 택해 天冠山下 계양산에 설치된 祭壇에서 새벽 한 시에 有司 집에서 준비한 祭物을 設饌하고 祭冠들과 契員들이 참석하여 山神祭를 모시며, 다음날 계원들이 모여 계 자금 運用에 대한 결산을 하고, 마을의 발전과 계원간의 화목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다.
본 내용은 錦峯 위인환 도문회장께서 장흥위씨 종보에 기고했던 것을 본 밴드에 4회 걸쳐 게재합니다.
존재공께서 무기계라고 칭하신 깊은 뜻을 오늘에야 깨달았습니다. 금봉도문회장님의 크신 뜻도 본받도록 하겠습니다.
문중 조상님들께서 만들어 실행하신 방촌의 무기계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군요. 세세한 설명글 잘보고 갑니다.
윗글 하단부 당시 조직원 인명에서...
특별하게 마지막 인명에 "염종건(廉宗揵)"이 있습니다..
이분은 방촌마을에 파주염씨 입향조가 됩니다. 입향 연유는 당대 보성군 문덕에서 거주 했던 입향조의 고모님이 방촌마을 위씨에게 시집(안항공 5대종손 伯元)와 고모님을 뒤따라서 방촌마을로 입촌하게 되었다고 傳합니다..
염종건의 증손은 학문이 뛰어나 장흥읍 덕제리 송산마을 탐진강변 독곡에 위치한 "독취정(獨醉亭)"과 용산 충렬사(鄭氏 소유) 등 여러 곳에 찬(撰)을 하여 편액과 <南谷遺稿>을 남긴 남곡(南谷) 염석진(廉錫珍 1855~ 1932)입니다.
염ㅇㅇ(1880~ ?)는 현손이고,
방촌 다산재를 중수한 대목수 염병일(廉炳日 1905~ ?)은 5대손 입니다.
염재환(1931~ ? 작고), 염두환(1940~ ? 작고), 재력가 염문환 (1943년, 서울 장위동 거주)이 6대손이고,
염규철(1954년), 염규태(1957년)등이 7대손 입니다.
200여년간 방촌에서 파주염씨가 거주하였습니다. 현재는 거주자 없습니다.^^
栢江 위성록/장흥위문 사랑 님
종보에 게재할 논문 부탁드립니다.
방촌마을 "無忮契"는 존재(위백규, 1727~ 1798)할아버님께서 연령 65세 때, 1791년 20~45세 가량 연령에 해당된 집안 조카(손자)들을 중심으로 상호간 시기하지 말고 화합하라는 큰 뜻으로 무기계를 조직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