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의 구원자인 그의 기념관이 없다는 것은 역사의 수치다.)
* 작년에 올렸던 글을 박 대통령 서거일을 맞이하여 다시 올립니다.
몇달 전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장례를 치르고
얼마 안돼 또 한 분의 장례를 치르면서
박 대통령이 보고 싶은 건 왜 일까요?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5천년의 운명적인 절대빈곤을 해결하고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공산주의와 전선(戰線)을 맞댄
동족이면서 원수인 저 북한의 위협을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막아낸
위대한 우리 아버지.
그는 우리보다 가난했습니다.
대통령이면서
해묵은 세이코 손목시계와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
낡은 혁대를 찬 가난뱅이였습니다
.
대통령이면서
양복바지를 수선집에 맡겨 고쳐 입고
집무실 에어콘은 항상 꺼져 있었으며
그것은 중요한 손님이 왔을 때만 켰답니다
.
어느 추운 겨울날.
그가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시절
초등학생 큰 딸 근혜가 의장 찝차를 타고
학교를 갔습니다.
그것을 안 박 대통령
근혜에게 한 말
그 차가 네 차냐? 그 차가 애비 차냐?
그 차는 나라 차다.
하면서 야단을 쳤답니다.
고향 선산에 사시는 그의 형님 박동희가
지역 유지의 부탁을 받고 대통령인 동생에게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며 그를 추천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잘 알았습니다 해 놓고는
선산 경찰서장에 명하여
형님댁에 경찰 보초를 배치해
외부 인사를 감시케 했답니다
.
어느 해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와
물난리가 났을 때
박 대통령은 잠 못이루고
비 오는 창 밖을 바라보며 날을 꼬박 세웠더랍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회고담입니다
.
미국으로부터 M16 자동소총을 구입 후
그쪽 담당자가 사례비를 들고 박 대통령을 찾아와
돈 봉투를 전하자 박 대통령은 그것을 돌려주며
이것으로 총을 더 주시오 했더랍니다
.
나라는 가난하고 있는 건 사람 뿐.
공장을 짓고 도로를 내고 댐을 건설하려 해도 돈이 없어
독일에 차관을 얻는 댓가로 광부와 간호사를 파송했습니다
.
광부는 막장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간호사는 시체를 닦는 일을 마다 않고
밤 낮을 모르고 일을 해 조국에 돈을 보내 왔습니다.
박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 했을 때
대통령과 그들은 부둥켜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합니다
.
혹자는 그를 독재자라고 합니다.
독재자가 남긴 무슨 재물이 있습니까?
독재자가 남긴 집 한 칸이 있습니까?
민주화도 좋지만 우선 먹을 것이 더 급했던 것 아닙니까?
민주화 된 지금은 살기가 편해졌고
햇볕정책으로 북한 동포의 삶은 나아졌으며
그들이 만든 핵폭탄은 지금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나를 밟고 지나가라며 길바닥에 드러누어
반대하던 사람이 오늘 국장(國葬)의 주인공이랍니다.
그는 저 세상에서
그 때의 일을 잘 했다고 자부할런지요?
그는 컨벤션센타다 도서관이다 평화재단이다 하여
그를 기리는 기념물과 재단 그리고 동상이 많은데
나라를 절대빈곤에서 구원하고
국가의 안보를 지켜 낸
민족 영도자의 기념관이 하나 없는 우리 나라가
과연 국가가 맞습니까?
30년 전 박 대통령의 장례식을
오늘 인터넷 동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연도의 시민들이 한결같이 우는 모습에
저도 그만 그들과 함께 울고 또 울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
그동안 30년을 참았다 터진 울음이었습니다.
다부진 얼굴에 카랑카랑 하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가 넘쳐
그의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이 경이롭습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나는 왜 박 대통령이 그리워 지는 걸까요?
박정희 대통령님!
보고싶습니다.
글 쓴 이
최 성 령
첫댓글 나도 보고 싶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