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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봉화를 찾는 사람들[봉찾사] 원문보기 글쓴이: 주실령
봉화군은 백두대간 태백산과 소백산 중앙에 위치한 영남의 최북단이다. 면적이 1201㎢로 서울의 두 배에 이르지만 인구는 3만4000여명으로 인구 밀도가 전국 최하위다. 그런 만큼 자연환경이 잘 보전돼 있다. 하늘을 가르는 울창한 춘양목과 열목어가 서식하는 맑은 계곡은 태고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전체 면적의 83%가 임야이고 이 가운데 30% 가량이 금강송으로도 불리는 춘양목 산지다. 수달과 반딧불이가 곳곳에 서식하고 있으며 세계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이기도 하다.
봉화는 전국에서 정자가 가장 많다. 그 만큼 경관이 수려하고 은은한 묵향과 지조높은 선비의 숨결이 곳곳에 배어 있는 곳이다. 마을마다 고색 창연한 정자와 향교, 서원, 비각 등 수많은 문화유산이 전통의 향기를 전한다. 조선시대 5대 사고 가운데 하나인 태백산 사고지(史庫址)가 있고, 김생·최치원·공민왕과 노국공주·퇴계 이황 선생 등의 체취가 배어 있다. 춘항전의 남자 주인공 이몽룡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조선 중기의 문신 성이성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가 하면 수많은 의병과 지사를 배출한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봉화에는 곧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봉화는 섣부른 개발 보다는 잘 보전해온 자연자원을 활용, 세계적인 산간휴양도시로 거듭날 ‘푸른 꿈’에 부풀어 있다.
봉화읍내 전경. 영남의 최북단에 위치한 봉화군은 면적이 서울의 두 배에 이르지만 인구는 3만4000여명으로, 인구 밀도가 전국 최하위다. 그런 만큼 자연 환경이 잘 보전돼 있다. | 봉화군 제공
안동시내에서 도산서원권역을 관통하는 도로를 계속 따라 가다 보면 낙동강 상류 이나리천을 끼고 우뚝 솟아 있는 산을 만나게 된다. 산세가 수려해 작은 금강산으로도 불리는 청량산이다. 봉화의 남쪽 관문이다. 봉화 명호면과 재산면에 위치해 있으며 산세가 안동 도산면과 예안면까지 뻗어 있다. 가장 높은 장인봉(해발 870m)을 비롯하여 12개의 봉우리가 한 폭의 수묵화 처럼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에 금강산·지리산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산행기를 낳은, ‘규모는 작으나 선경(仙境)의 명산’(주세붕)이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을 가보지 않고서는 선비노릇을 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로 청량산을 아꼈다. 12개의 빼어난 바위 봉우리가 절경을 이뤄 주왕산·월출산과 함께 한국의 3대 기악으로도 불린다. 1982년 경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청량산 전경. 12개의 빼어난 바위 봉우리가 절경을 이뤄 작은 금강산으로 불린다. 퇴계 이황 선생과 최치원, 김생 등 선현들의 자취가 곳곳에 배어있는, 봉화를 대표하는 명산이다. | 봉화군 제공
과거 20여개의 사찰과 암자가 있었으며, 지금은 청량사 유리보전과 응진전이 남아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이 공부한 곳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와 김생이 글공부하던 김생굴, 최치원이 수도한 풍혈대, 홍건적의 난을 피해 한 때 이 곳에 머문 공민왕을 모신 사당인 공민왕당, 청량산성 등 수많은 역사문화 유적이 있다. 청량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청량사다.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고,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는 고찰이다. 바위 봉우리 아래 가파른 비탈에 터를 잡았다. 중심전각인 유리보전(琉璃寶殿)의 현판은 공민왕 친필로 알려졌다.
해마다 가을 밤이면 산사음악회가 열려 전국에서 수천명의 인파가 몰린다. 선학봉(해발 826m)과 자란봉(해발 806m)의 해발 800m 지점에는 국내에서 가장 높고 긴 출렁다리가 설치돼 있다. 양 봉우리를 잇는 ‘하늘다리’로, 길이가 90m, 높이가 70m에 이른다. 강 건너 집단시설지구에는 청량산의 자연생태와 역사문화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청량산박물관과 농경문화전시관이 있다.
청량사 산사음악회 모습. 청량사에서는 해마다 가을 밤에 산사음악회가 열려 전국에서 수천 명의 관광객이 몰려 든다. | 봉화군 제공
원시 자연 살아 숨쉬는, 청량산·열목어·춘양목의 고장
봉화에는 해발 1000m 이상의 고봉이 10여개에 이르고 계곡은 더 없이 맑다. 석포면 쪽에 있는 청옥산(해발 1276.5m)은 기이한 모양의 바위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침엽수림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봉화~태백간 국도변에 위치한 청옥산자연휴양림은 소나무·잣나무·낙엽송 등이 울창해 산림욕을 하기에 더 없이 좋다. 청옥산 아래 백천계곡은 물이 맑고 수온이 낮은 청정수역으로, 빙하기 어족인 열목어가 산다. 한여름에도 물이 차가워 천연기념물 제74호 열목어 서식지로 지정된 곳이다. 오염되지 않은 세계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다.
문수산(해발 1205.6m)은 봉화의 진산으로 불린다. 물야면 개단리, 춘양면 서벽리, 봉성면 우곡리에 걸쳐 있다. 문수보살에 관련된 다양한 설화가 전해져 문수산이라 불린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축서사가 있고, 오전약수·두내약수·다덕약수 등 봉화를 대표하는 3대 청정약수가 주변에 있다. 춘양면 서벽리 일대는 춘양목 군락지다. 춘양목은 춘양에서 자라는 금강송을 말한다. 하늘을 찌를 듯 곧게 자라는데다 재질도 단단해 에로부터 궁궐을 지을 때 사용돼왔다. 일제시대 이 소나무를 운반할 목적으로 춘양면에 기차역을 세우면서 춘양목이라는 이름이 더 유명해졌다.
춘양면의 옥석산(해발 1242m)과 구룡산(해발 1345.7m), 물야면의 선달산(1236m), 석천계곡(봉화읍), 고선계곡(소천면), 사미정계곡(법전면) 등 봉화 곳곳에는 때묻지 않은 원시의 자연이 쉼쉬고 있다.
청옥산 아래 백천계곡. 물이 맑고 차가워 세계적인 희귀종인 열목어가 서식하는 청정계곡이다. | 봉화군 제공
‘남원은 춘향, 봉화는 이몽룡’, 영남 선비의 고고함에 이도령 체취도
수려한 경관과 함께 유서 깊은 문화유산도 산재해 있다. 봉화읍 유곡리의 닭실마을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충재 권벌 선생(1478~1548)이 벼슬에서 물러나 자리잡은 곳이다.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길지로 꼽힌다. 영남 선비의 고고함이 배어있는 마을이다. 주변 송림과 계곡이 아름답고 충재 선생이 지은 청암정과 선생의 아들 권동보가 석천계곡에 지은 석천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사적 및 명승 제3호다. 안동 권씨 집성촌인 이 곳의 ‘한과’는 ‘500년 내림 손맛’으로 지금도 권씨 집안 며느리들에 의해 이어져 오고 있다. 바로 ‘닭실 한과’다. 전국에서 으뜸가는 명품 한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물야면에는 ‘이도령’의 체취가 배어 있다. 춘향전의 남자 주인공 이몽룡의 실제 모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조선 중기의 문신 계서 성이성(1595~1664) 선생의 생가이자 후학을 양성하던 곳인 계서당(중요민속자료 제171호)이 가평리에 있다. 계서당에는 근검과 청빈으로 이름 높았던 성이성 선생을 기리는 사당과 임금이 내린 어사화 등이 있으며 500여m 가량 떨어진 곳에는 남원부사를 지낸 부친 성안의(1561~1629)를 기리는 부용당 사당이 있다.
물야면에 있는 계서당. 춘향전의 남자 주인공인 이몽룡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성이성의 생가다. | 봉화군 제공
태백산 아래 춘양에서 북쪽으로 8㎞ 가량 떨어진 각화산 중턱에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세운 각화사가 있다. 절 뒤쪽 산비탈을 올라가다 보면 태백산 사고(史庫) 터가 나온다. 조선 후기 5대 사고 가운데 하나로 조선 선조 39년(1606년)에 건립돼 1913년까지 300여년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곳이다. 이 곳에 보관되어오던 조선왕조실록은 848책으로,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로 이장됐다가 현재는 서울대 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다. 사고 건물은 해방 전후에 소실됐다.
각화산에 있던 태백산 사고의 옛 모습.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곳으로, 해방 전후해 소실되고 지금은 터만 남았다. | 봉화군 제공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정자, 독립운동의 산실 바래미마을
문수산 능선의 축서사(물야면 개단리)는 신라시대(문무왕 13년)에 의상대사가 영주 부석사 보다 3년 앞서 창건했다.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붙타 현재는 대웅전과 요사채만 남았으며 절에서 내려다 보는 전경이 아름답다. 대웅전에 봉안된 ‘석불좌상 부광배’는 석조 비로자나불상에 목조 광배가 배치되어 있으며 보물 제995호다. 물야면 북지리의 나즈막한 산 밑에 자리잡은 지림사도 신라시대 고찰로, 한때 승려가 500명이 넘는 대사찰이었던 것으로 전해온다. 암벽에 조성된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국보 제201호다.
문수산 능선에 있는 축서사. 의상대사가 영주 부석사 보다 3년 앞서 창건했다. 대웅전에 봉안된 ‘석불좌상부광배’는 보물 제995호다. | 봉화군 제공
춘양면 의양리의 한수정은 충재 권벌 선생의 2대손인 권래가 세운 정자로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라는 뜻에서 한수정(寒水亭)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봉화에는 이처럼 현존하는 정자가 100여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산이 깊고 물이 풍부해 선비들이 중앙정치에서 물러나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치기 좋았기 때문인 듯 하다.
봉화읍 해저리 바래미전통마을은 의성 김씨 집성촌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다.
이 마을 남호구택은 일제 강점기 때 명망높은 부호인 남호 김래식 선생이 살던 집이다. 남호 선생은 전 재산을 저당 잡히고 대부 받아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제공했다. 이웃한 만회고택은 3·1운동 직후 심산 김창숙 선생을 중심으로 유생들이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를 작성한 유서 깊은 곳이다.
겨울철이면 ‘환상선 눈꽃열차’가 운행되는 승부역. 태백준령 협곡에 위치해 소박한 산골의 정취를 느끼기에 좋다. | 봉화군 제공
워낭소리·솔향기에 깃든 느린 삶, 백두대간 산림휴양도시 푸른 꿈
봉화에서도 석포면 승부리는 오지중의 오지로 꼽히는 곳이다. 태백준령 산간 협곡에 있는 마을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차가 다니지 못해 주민들이 12㎞ 가량 떨어진 면 소재지까지 걸어다녀야 했다. 지금도 차량 교행이 안돼 초보 운전자들은 식은 땀을 흘린다. 이 오지마을에 겨울철이면 관광객들이 몰린다. 서울역을 출발, 강원 추전역 등을 도는 ‘환상선 눈꽃열차’가 운행되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이라는 승부역에 내려 역 앞 강변에서 썰매를 타거나 장터에서 시래기국밥과 손두부 등을 먹으며 소박한 산골의 정취를 만끽한다.
상운면 하눌리는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를 촬영했던 곳이다. 주인공 최 할아버지의 집 근처에는 소와 달구지를 탄 할아버지의 조형물이 있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부지런한 노인과 수십년간 주인에게 순종하고 살았던 늙은 일소의 이야기가 마을 여기저기에 배어 있다. 봉화에는 ‘외씨버선길’이 지난다. 외씨버선길은 청송 주왕산에서 강원도 영월 관풍헌까지 170㎞에 이르는 도보 여행길이다. 국내에서 오지로 꼽히는 경북 청송·영양·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이 뜻을 모아 다듬었다. 봉화 춘양면 코스는 사과꽃 향기, 솔 향기 따라 편안하게 걷는 길이다. 논밭, 사과나무밭, 옛 모습 그대로의 흙벽집들이 이어지는 정겨운 길이다.
관광객과 주민들이 한여름 밤에 봉화읍 내성천에서 은어를 잡고 있다. 봉화에서는 해마다 여름 휴가철이면 ‘봉화은어축제’가 열린다. | 봉화군 제공
봉화에는 사람을 숨쉬게 하는 ‘느린 삶’이 있고, 자연은 잘 보전돼 있다. 우리나라 외진 곳에 있어서 번잡하지 않다. 도회생활에 지친 도시민들이 발길 닿는대로 걸으며 평상심을 찾기 좋은 곳이다. 현재 봉화에는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이 조성되고 있다. 한반도의 핵심축인 백두대간에 서식하고 있는 식물종을 체계적으로 보존·연구, 자원화 하고 생태 교육 및 체험 시설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춘양면 서벽리 문수산과 옥석산 일대 5179㏊(중점시설지구 206㏊, 생태탐방지구 4973㏊)에 백두대간의 상징 동물인 호랑이가 서식할 수 있는 ‘호랑이숲’과 고산식물원·백두대간생태숲·종자저장시설·연구동 등을 조성한다. ‘호랑이숲’에는 울타리를 치고 실제로 호랑이가 살도록 한다.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은 산림청이 2515억원을 들여 지난 해 12월 공사에 들어가 2014~2015년쯤 완공할 예정이다. 그동안 봉화군에는 단일 국책사업 하나 없었다. 잘 보전해온 자연자산이 대규모 국책사업을 이끌어낸 것이다. 지금 봉화는 ‘산림생태휴양 메카’로 거듭날 꿈에 부풀어 있다.
청량산 바위 봉우리 아래 가파른 비탈에 자리잡은 청량사에서 내려다 본 풍경. 청량사의 중심전각인 유리보전의 현판은 공민왕의 친필로 알려졌다. | 봉화군 제공
청량산 선학봉과 자란봉을 잇는 출렁다리인 ‘하늘다리’. 길이가 90m에 이른다. | 봉화군 제공
닭실마을 주변 석천계곡의 석천정. 충재 권벌 선생의 아들인 권동보가 지었다. 닭실마을과 이 일대는 사적 및 명승 제3호다. | 봉화군 제공
청량산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 상류, 이나리천은 여름철 래프팅 장소로 인기가 높다. | 봉화군 제공
닭실마을 청암정.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충재 권벌 선생이 지었다. | 봉화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