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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약초산책 82>
외상출혈 · 위출혈 · 장출혈 · 해혈 - 자란(白芨)
사람의 혈액은 기능적으로 응고와 항응고를 통해 또는 인체 음양오행의 평형을 유지하면서 혈관 속을 유통한다. 만일 혈관이 손상되어 몸 안팎에 출혈이 발생하면 혈소판이 혈액 응고인자를 방출하여 상처 난 국소혈관벽을 보호한다. 반대로 혈전이 다량 발생하면 이번엔 혈장에 존재하는 플라스민이라는 물질이 항응고 과정에 참여하여 국부의 혈류소통을 회복시킴으로써 출혈과 응고 사이의 양방향성 평형을 유지한다.
해혈(咳血), 혈담은 주로 후두, 기관, 기관지, 폐포 등 호흡기관의 손상으로 출혈이 발생하여 기침을 할 때 담에 섞여 나오거나 객출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기침, 가슴통증, 어지럼, 호흡곤란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관련 병으로 폐부종, 폐결핵, 폐렴, 폐암, 폐색전증, 폐동맥류, 폐동맥고혈압, 규폐증, 기관지염 등이 있다. 또한 구토 시 피가 섞여 나오는 상부위장관 출혈은 위염, 소화성 궤양, 식도정맥류출혈, 위점막출혈 등이 원인이고, 하부위장관에서의 출혈은 점막이 손상되어 대변을 통해 발견되는데 궤양성대장염, 대장용종, 대장게실, 대장암, 치루 등에서 나타난다. 병원에서는 병증에 따라 수술적인 접근으로 막아주거나, 혈액응고제, 산소요법, 이뇨제, 항생제, 혈관확장제 등으로 치료한다.
한방의 지혈 역시 체내의 혈액 응고력을 증강시키거나 항혈액응고효소를 억제하여 지혈을 촉진하는 기전이다. 외감발열, 혈압, 치루, 외상, 부정출혈, 허약 외에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 토혈, 육혈, 해혈, 뇨혈, 변혈, 붕루 및 질타손상으로 인한 외상출혈 등 각종 출혈에 대응하는 약초들을 이용한다. 예컨대 ‘수렴(收斂)지혈약’은 몸이 허해서 혈액이 혈관 밖으로 삼출되거나(자반증) 외상으로 인한 출혈에 응용되는데 백급(자란), 우절(연 뿌리의 마디), 선학초(짚신나물)를 쓰고, ‘양혈(凉血)지혈약’은 혈열(血熱)이 상박하여 넘치는 것을 서늘한 성질의 지혈약초 대계(엉겅퀴), 소계(조뱅이), 측백엽, 지유(오이풀), 백모근(띠 뿌리)으로 거둔다. 삼칠근이나 포황(부들 화분) 같은 ‘화어(化瘀)지혈약’은 타박상 등에서 어혈을 겸한 출혈에 사용하는데 이 약은 지혈함으로써 발생되는 어혈의 유체(留滯)를 방지할 수 있다. 애엽(쑥)은 ‘온경(溫經)지혈약’으로, 따뜻한 성질을 이용하여 몸이 차거나 허해서 섭혈(攝血)하지 못하여 나타나는 증상(변혈, 붕루 및 월경과다)을 치료한다.
약초 백급은 난초과에 속한 다년생초본 자란(紫蘭)의 괴경을 건조한 것이다. ‘백급’이란 난형의 흰 색 뿌리줄기가 연이어 생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8~11월에 채취하여 수염뿌리와 줄기를 제거하고 쪄서 반쯤 말린 다음 외피를 벗겨 햇볕에 다시 말린다, 성미는 쓰고 달고 차고 삽(澁)하며 간, 위, 폐경으로 들어가 수렴하여 지혈하고 종기를 없애 새 살을 돋게 하며(生肌) 특히 외상으로 인한 상처를 잘 치료한다. 백급의 지혈작용은 점성과 지질이 많은 교상(膠狀)성분과 관계가 있다. 백급의 높은 점성은 토끼의 대퇴근육을 횡으로 절단한 후 백급 물 추출물을 벤 부분에 바르면 저절로 점착되어 출혈이 정지되며, 마취한 개의 위와 십이지장에 각각 인공으로 직경 1cm의 구멍을 뚫은 후 백급 분말 9g을 주입했을 때 15초 후에 구멍이 막히고 40초 후에는 십이지장의 구멍이 막히게 된다는 연구가 있다. 이는 장 내에 두꺼운 교상막을 형성하여 구멍을 막음으로써 장의 내용물이 새지 않게 된 것을 확인한 연구이다. 이로써 백급은 폐 손상으로 인한 해혈 외에,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으로 인한 토혈이나 변혈을 치료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요컨대 폐출혈, 기관지확장증에 의한 각혈 또는 혈담에 <생건지황 3, 작약 2, 백급, 비파엽, 우절, 백합, 당귀, 패모, 목단피, 맥문동, 길경, 아교, 감초 각 1>로 배합하고, 위 십이지 대장궤양에 의한 출혈에는 <삼칠근, 선학초, 우방자 각 2, 백급, 진피, 복령, 반하, 아교, 감초 각 1>로 한다. 자상출혈, 피부궤양, 화상, 손발의 피부균열 등의 외부 출혈에는 백급 분말을 도포하거나 오배자 분말을 가미한다.
한편 백급 액을 개구리의 정맥에 주사하면 말초혈관 내의 적혈구가 응집하여 혈전을 형성하는데 비교적 큰 혈관 내의 혈액소통을 방해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백급의 지혈작용이 아교와 같은 교상질로 인한 물리적인 원리라 할 수 있다. 당나귀의 가죽을 끓여서 농축한 고체상의 아교를 보혈약으로도 사용하는 것, 아교가 골수에서 적혈구 및 헤모글로빈의 생성을 촉진한다고 알려져 있는 것 등은 출혈성 빈혈에 아교의 사용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백급의 혈전 형성이 출혈을 방지하면서 혈액소통을 방해하지 않는 수위의 약리작용임을 알 수 있다. 비 절제 간암의 혈관색전요법에서 백급을 함께 투여함으로써 간암세포의 위축이 더욱 분명하였음도 보고된 바 있는데 이것은 백급의 또 다른 맛의 떫고 껄끄러운(澁) 물질성의 작용에 기인한 것.
열감기로 인해 진액이 소모되고 기침을 하며 숨이 찬 경우나 어혈이 많은 사람, 옹저(종창)가 넓고 깊은 초기 환자에는 복용을 삼간다.
자란
자란(흰꽃)
괴경
백급(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