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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발을 담그라
남편이 급작스럽게 뇌졸중에 걸린 성도가 있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상태가 이상해 병원을 찾았고 별일 아니니 며칠 쉬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그사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급 격히 악화됐습니다.
큰 병원을 찾아가자 의사는 상태가 워낙 안 좋아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도 실명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을 소홀히 한 것도 아니었는데.... 하나님이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더욱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 니다. 매일 큐티를 할 때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남편이 병에서 깨끗해질 것이라는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눈앞의 절망적인 상황에 도 저히 그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날 성도는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주님, 믿음이 연약하여 평안 가운데 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을 건너는 이스라엘 제사장처럼 이제 저도 용기를 내어 발을 내딛겠습니다. 믿음에 발을 담그겠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믿음대로 수술 후 남편은 건강을 되찾았고 시력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인생 최대의 위기였던 이 일을 성도 부부는 전도용 간증으로 귀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해가 안될지라도 철저히 주님을 믿고 의뢰하면 주님이 책임져 주심을 믿으십시오. 아멘!!!
주님, 용기 내어 믿음에 발을 담그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합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우리의 슬로건
슬로건은 대중이나 집단의 주장을 간단히 집약시킨 표현으로 기업의 특징을 나타내는데, 몇몇 기업의 슬로건입니다.
1. 코카콜라 "인생을 맛나게" (Life tastes good)
2. 제너럴 일렉트릭 - "우린 인생의 좋은 것들을 드립니다" (We bring good things to life)
3. 노키아 - "사람들을 연결하라"(Connecting people)
4. 맥도날드 - "당신의 미소가 너무 좋습니다"(We love to see you smile)
5. HP - "발명하라"(Invent)
6. 메릴 린치 증권 - "메릴에게 물어보세요"(Ask Merrill)
7. 코닥 - "순간을 나누세요. 인생을 나누세요"(Share moments. Share life)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마지막 지상 명령을 슬로건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나침반은 세상이 아닌 천성을 향해 있습니다.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십시오.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 제자 삼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인생의 슬로건입니다.
빛 되신 진리를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전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하고, 가르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 게 하십시오. 제자를 삼으십시오. 아멘!!!
주님,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하고, 가르치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하고, 가르쳐 제자 삼을 사람을 찾아봅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끝이 아닌 시작
때로는 끝이 있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이 생겨나고, 죽음이 있는 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합니다. 한알의 씨앗이 땅에 묻혀 죽을 때 커다란 나무가 되어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온 인류가 구원을 받았고, 그 제자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세계로 퍼져나가 구원이 전해졌습니다.
미국에서의 성공이 보장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복음을 들고 한국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순교함으로 이 땅에 풍성한 복음의 열매가 맺히도록 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통해 이 사실을 목도한 제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위해 바쳤습니다.
5만 번의 기도 응답으로 알려진 고아들의 아버지 조지 뮬러(George Muller) 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의 능력은 사람의 능력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힘이 끝나는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오늘 하루가 허무하게 간다 해도, 올 한 해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해도 낙심하지 않고 다시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우리의 믿음의 여정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새로운 비전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주님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아멘!!!
주님, 지난 잘못을 자백하고 새롭게 다가을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올 한 해의 수고로움은 벗고 새로운 한 해물 기쁨으로 맞이합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가장 가까운 방법
서로가 옆집에 사는 친한 친구 두 명이 있었습니다. 두 친구가 서로의 집에 찾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집을 나서서 바로 옆에 있는 집을 찾아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쪽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찾아가는 방법입니다.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은 가장 가깝게 갈 수도 혹은 가장 멀게 갈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몇 분이면 갈 수 있는 옆집을 반대편으로 지구를 돌아가려는 사람은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집과 집 사이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막혀 있다면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가는 방법뿐입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사고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기만 하면 바로 구원받을 수 있는 옆집과 같은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가려고 합니다. '조금만 더 즐기고···, 나중에 때가 되면···, 완전히 믿어지면.... 기적을 보여주신다면···.'
예수님은 이미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있던 죄의 벽을 완전히 허무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가장 빠른 구원의 길입니다. 가장 가까운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인 예수님의 보혈로 완성된 구원을 영접하십시오. 아멘!!!
주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철저히 믿어 큰 복 받게 하소서,
세상에 예수님의 보혈로 완성된 구원을 전합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말씀이 말하는 나
미국 의회를 취재하던 한 신참 기자가 의원들의 행태에 크게 분노해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썼습니다.
'미국 국회의원들은 전부 모자란 사람이다.'
기자의 기사에는 충분히 타당한 근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사를 본 편집장이 한마디 했습니다.
"자네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렇게 제목을 썼다가는 의원들의 격렬한 항의를 마주하게 될 걸세. 그러나 내용은 아주 좋으니 제목을 조금만 수정하면 어떨까?"
편집장이 고친 기사를 본 신참 기자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리고 신문이 발간된 뒤에도 단 한 통의 항의 전화도 받지 않았습 니다.
편집장이 수정한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미국 국회의원들은 한 명을 빼고는 전부 모자란 사람이다.' 모든 의원들이 자신이 그 한 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으로 나아가야 할 바로 그 사람이 나입니다.
하나님보다 나를 높이려고 하는 그 순간, 남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이 바로 우리가 더욱 겸손해야 할 때입니다.
내가 아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말씀의 교훈으로 조금씩 성장해 나가십시오. 아멘!!!
주님, 저 자신보다 남을 높일 수 있는 겸손한 마음가짐을 갖게 하소서,
내가 아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말씀의 교훈으로 살아갑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부자가 된 걸인
영국에 줄리안 모리스(Julian Ellis Morris)라는 유명한 걸인이 있었습니다. 줄리안은 단순히 길에서 구걸을 하지 않고 거리에서 주운 물건을 집집마다 방문해 팔았습니다.
매일 수십 군데의 집을 방문했기 때문에 도시에서 줄리안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변호사가 줄리안을 찾아왔습니다.
"당신의 부모님이 당신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줄리안의 부모님은 어린 시절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모든 재산을 물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는데 변호사가 온갖 고생 끝에 찾아낸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도시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 줄리안은 한동안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돈을 펑펑 썼습니다. 대저택에서 리무진을 타고 다녔지만 그래도 일이 없는 날은 여전히 거리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주워서 팔았습니다.
도시에서 제일가는 부자였지만 거리를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은 영락 없이 걸인이었기에 줄리안 모리스는 한때 영국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자'라고 불렸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옛 습관을 좋는 옛사람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삶을 당당하게 영위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지금 나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는지 생각하게 하소서,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한걸음 전진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마음을 가꾸는 법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텔 체인점 「홀리데이 인_(Holiday Inn)의 창업자 케 몬스 윌슨(Kemmons Wilson)이 말한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정원으로 가꾸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사람을 섬긴 것이 제 성공의 비결입니다.
· 우리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원으로 가꾸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의 다섯 가지 씨앗을 심으십시오. '기도/준비/부지런함/인내/예의'
· 다음으로는 마음에 자라난 세 가지 잡초를 뽑으십시오. '험담/비난/무관심'
· 다음으로는 다섯 가지 거름을 주십시오. '사랑/신실/충성/양선/정직'
· 마지막으로 세 가지 벌레를 잡으면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열매로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이 될 것입니다.
'교회를 못 나가게 방해하는 벌레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이라는 벌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하겠지라고 떠넘기는 벌레'」
신앙의 성공이 곧 인생의 성공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성공의 기준도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이 가리키는 화살표가 아닌 말씀이 인도하는 좁은 길을 성공의 길로 삼으십시오.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의 마음 안에서 늘 함께 거하시는 주님을 위해 마음을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정원으로 가꾸십시오. 아멘!!!
주님, 제 안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정원을 꾸미게 하소서,
세상이 정한 성공이 아닌 신앙 안에서의 성공을 위해 기도합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만남이 성공이다
혼자서 1년에 9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 최고의 세일즈맨 나카 지마 카오루의 책 「단순한 성공 법칙」에 등장하는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필요한 요소로 세 가지를 꼽습니다. '재능, 노력, 운.' 그러나 저는 성공에 필요한 것은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1.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나'와의 만남.
2. 이루고 싶은 '꿈'과의 만남.
3. 그 '꿈'을 함께 할 '사람'과의 만남.
4. 사람을 통해 얻게 되는 꿈을 이룰 '기회'와의 만남.
이네가지 만남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만남은 정말로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만남은 날 구원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만남을 통해 아무리 성공을 이루고, 행복을 가꿔도 구세주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질 헛된 것입니다.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은 살 길을 찾기 위해 그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 습니다. 병을 낫게 할 약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도 전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이 이미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복음입니다.
인생에서 꼭 만나야 할 주님을 아직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서둘러 주님을 소개하십시오. 아멘!!!
주님, 인생에서 꼭 만나야 할 주님을 이웃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소서,
우리의 구원주 예수님을 소개하는 일에 전심을 다합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행하는 믿음
저명한 심리상담가이자 여론조사기관과 언론사에서도 훌륭한 경력을 쌓은 찰스 알렌(Charles L. Allen) 박사가 미국 전역의 크리스천들을 대상으로 「신앙생활에 대한 표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대상은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결과는 매우충격적이었습니다.
· 전체 성도의 20%는 주일 예배를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함.
· 30%는 기도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며, 배울 생각도 없다고 응답함.
· 35%는 성경을 한 장도 읽지 않음.
· 40%는 헌금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음.
· 60%는 신앙과 관련된 서적을 단한권도 사본 적이 없음.
· 75%는 교회 출석 외에 다른 직분이나 헌신, 봉사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함.
· 85%는 단 한번도 전도를 시도조차 하지 않음.
· 그러나 응답자의 100%가 자신은 천국에 갈 것이라 믿었고 축복을 받고 싶다고 말함.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하루 나가고, 말로만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한다고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믿는 대로 행하는 진실한 크리스천이 되십시오. 아멘!!!
주님, 진실한 크리스천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게 하소서. 행하는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지 지난 삶을 돌아봅시다.
<김장환 경건생활365/나침반출판>
나쁜 생각과 좋은 생각
할렐루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오늘도 늘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8월 23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이곳 김포는 구름이 약간 있으나 화창한 날씨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참으로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는 한자 숙어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한 가장(家長)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사람이 된 후에 가정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어쨌든 한 가정을 잘 이끌어가려면 자기 자신부터 온전해져야 합니다. 그 가장(家長)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가정이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그 식구를 인류 대홍수에서 구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랐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연인지 모르나, 한자 ‘선(船)’은 노아의 방주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니까 노아의 8식구(노아 포함해서)는 노아 덕분에 대홍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노아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어느 정도는 온전하였기에 그 가정의 나머지 일곱 식구를 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잘될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쓰는데도 자꾸 무너져요.”
취업에 또 실패했다며 찾아온 제자에게 차를 내주며 옛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미국 해군 제독이자 전투기 조종사인 제임스 스톡데일은 비행 중 적의 대공 미사일에 격추돼 낙하산으로 탈출했으나 곧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악명 높은 ‘호아로’ 수용소에 수감 되어 7년 반을 지냈습니다. 훗날 기자가 그에게 누가 끝내 살아남지 못 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나는 제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연히 비관주의자죠.”
“아니, 낙관주의자들이었어.”
내 말에 제자의 눈이 커졌습니다. 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은 성탄절이 지나면 무너지고, 다시 부활절을 기다리다 또 무너졌습니다. 그들은 희망이 꺾일 때마다 마음이 부서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스피노자는 말했습니다. “선과 악은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붙이는 이름뿐이다.”
“이 차는 좋은 차일까, 나쁜 차일까?” 나는 찻잔을 들어 보였습니다.
“목마른 이에게는 좋고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그저 그렇겠지. 차는 그대로인데 말이야!”
제자가 물었습니다. “그럼 좋은 생각은 없나요?”
“글쎄, 무조건 낙관을 좇기보다는 현실을 바로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면 낙관과 절망은 모두 상상일 뿐입니다. 당신은 어떤 생각을 ‘좋은 생각’이라 정해 두었습니까? 혹시 그 고정관념이 지금의 현실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 출처 ; 좋은생각 2026년 9월호에서, 김형철 철학자)
●나도 계속 여러분을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드리고, 가장 옳고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여러분에게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내가 만약 기도하기를 그친다면 스스로 죄짓는 일이 될 것입니다.(삼상12:23)
●우리 삶은 사소한 것들로 조금씩 깎여 나간다. 단순하게, 더 단순하게 살아라.(헨리 데이비드 소로)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한류가 세계에 건넨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 '우리'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여러분을 사랑할게요.”
지난달 영국 런던 BTS 콘서트에 온 관객들에게 나눠준 배너에 적힌 글귀입니다. 한글로 크게 쓰여 있고, 그 밑에 영어로 번역한 의미를 붙였습니다. BTS는 2026년 7월 6~7일 이틀 동안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월드투어 ‘ARIRANG IN LONDON’을 개최했고 13만 명이 다녀갔습니다. 나도 35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 이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전광판에는 수묵화와 함께 아리랑의 의미에 대한 한글 메시지가 연이어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아리랑 가사가 나왔고, 한국이라는 정서가 노래를 따라 퍼져나간다고 했습니다. 아리랑의 의미를 영어 번역 없이 100% 한글로만 보여주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면 “아리랑은 이별과 그리움, 사랑의 노래이며, 이 노래에는 떠남이 있고, 기다림이 있고, 사랑했던 임과의 시간, 지나간 시절의 흔적이 있다.”는 메시지가 한글로만 큰 전광판에 떴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팬들은 한글 문장을 함께 읽으며 공연의 시작을 기다렸습니다. 그중 “아리랑은 한국을 품고, 우리를 품은 노래”라는 마지막 문구에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아리랑은 “단지 불려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지고, 나눠지고, 다시 태어나는 노래”라는 문구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공연 중은 물론, 공연 후에도 팬들은 아리랑을 한국어로 같이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카메라가 공연 중간 객석을 비추자 “우리 할머니는 정국의 팬이셨어요” 혹은 “보고 싶다”라고 적힌 한글 플래카드를 든 영국인 팬들이 전광판에 보였습니다. 언어학자로서 나는 그날 세계인이 함께하는 한글 축제에 다녀온 기분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2026년은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1926년,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념해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제정했습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문화운동의 결실이었습니다. 100년 전, 한글이 우리가 지켜야 할 문자였다면, 오늘날 한글과 한국어는 세계인이 함께 배우고, 부르고, 나누며 서로를 이어주는 언어가 되고 있습니다. 한글은 이제 한반도를 넘어 세계인이 함께 쓰고 사랑하는 문자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고 있습니다.
콘서트를 갔다 온 후 BTS의 가장 큰 힘은 화려한 무대나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일곱 명이 오랜 시간 함께하고 성장하며 팬덤과 만들어간 우리의 힘, 연대의 힘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계는 지금 ‘솔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초연결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6명 중 1명은 깊은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더 멀어진 ‘초연결 시대의 고독’을 경험하는 셈입니다. 세계 곳곳에선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시대에 한류가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은 ‘우리’라고 생각합니다. 한류는 ‘우리’가 필요한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입니다. 몇 해 전, 영국 교육부와 함께 K팝 팬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중 우크라이나에서 온 학생은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뒤 K팝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팬덤 안에서 ‘우리’라는 소속감을 느낀 것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했습니다.
K드라마에는 늘 가족이 등장합니다. 그 가족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갈등하고, 상처를 주고받고, 때로는 실망시키기도 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만 봐도 이상적인 가족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불완전함을 안고 끝내 함께 살아갑니다. 한국 콘텐츠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완벽한 개인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들이 ‘우리’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팬덤 문화 역시 새로운 형태의 ‘우리’를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가수의 무대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상을 함께 응원하고, 어려움과 성장을 함께 지켜봅니다. 소셜미디어로 국경과 언어를 넘어 서로를 위로하며 친구가 됩니다.
우리말의 ‘우리’는 영어의 We와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다릅니다. ‘우리 집’ ‘우리 엄마’ ‘우리 아내/남편’처럼 한국인은 가장 소중한 것조차 ‘나/내’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합니다. 그 안에는 소유보다 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세계가 한류에서 발견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것인지 모릅니다.(출처 ; 조지은의 ‘K컬처 인사이드’에서, 조지은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부 교수)
(물맷돌)
히어로 목자
예수님은 별명이 많다. 유대인의 왕이면서 세리와 창녀의 친구이다. 스스로에게 별명을 붙이기도 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포도나무다, 나는 길이다…. 이 중에서 선한 목자라는 말을 무척 좋아한다. 혼자서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양이 무리에서 이탈했을 때 ‘매에’하고 우는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 양을 어깨에 턱 얹을 만한 어깨와 단단한 막대기를 든 목자. 그의 등 뒤에서 해가 역광으로 비친다. 마블 영화 시리즈의 새로운 히어로로 등장해도 손색이 없다.
해마다 8월 15일에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전통이 있다. 지난 주일 교회 주보에 그 기도문이 실렸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고 말씀하셨듯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두려움을 넘어 정의와 화해를 향해 나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문이었다. 그분은 배가 터지는 줄도 모르고 먹고 또 먹는 양들의 욕망을 다스려 줄 수 있는 분이다. 식식대며 박치기를 하는 양들, 제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는 줄도 모르는 양들을 떼어놓을 수 있는 분이다. 내 마음과 우리 공동체, 나아가 세계의 평화는 그분에게로 향할 때 열릴 것이다.
정혜덕 작가
마음의 눈
일본의 성자라 불리는 가가와 도요히코는 젊은 시절 빈민굴로 들어갔습니다. 거지와 부랑자, 병자들이 악취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나라조차 출입을 통제한 우범지대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그곳에 들어간 가가와는 빈민굴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러자 음산한 빈민굴에도 이웃 간 사랑과 우정이 있었고 내일 먹을 양식조차 없지만 꿋꿋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그는 생명의 존귀함을 발견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모두가 외면하던 빈민굴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로 여기게 됐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마음에 따라 보이는 대상이 달라집니다. 아름다운 것도 미움의 눈으로 보면 밉게 보이고 추한 것도 사랑의 눈으로 보면 아름답게 보입니다. 가장 좋은 환경과 높은 지위를 누리면서도 만족하지 못한 채 불평 속에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환경이 달라져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눈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시다. 비로소 이 세상도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김민철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장)
사촌이 땅을 사면
어느 초등학교 시험에 속담의 빈칸을 채우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이라는 질문에 한 학생이 ‘가본다’라고 답을 썼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거나 질투할 때 흔히 쓰는 속담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입니다. 그런데 어린 학생은 순수하게 ‘가본다’라고 답했습니다. 틀린 답이지만 마음은 백점을 주고 싶습니다.
어른이 돼가면서 다른 사람이 잘될 때 함께 기뻐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기뻐하기보다 비교하며 낙심하거나, 상대의 기쁨을 깎아내릴 때가 많습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 한구석에 올라오는 시기심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기심은 결국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을 갉아먹습니다.
성경은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잠 14:30)고 말합니다. 평온한 마음은 삶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힘이지만 시기하는 마음은 상대를 해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병들게 합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는 사이 정작 상하는 것은 내 안의 평안입니다. 나를 비하하지도 말고 상대를 깎아내리지도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함께 기뻐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조준철 목사(만리현교회)
쉬었다 가세요
삼복더위에 유독 기운이 빠진다면 그것은 몸만의 피로가 아닐지 모릅니다. 마음에 쌓인 오만가지 걱정이 어느새 몸으로 옮겨앉은 탓입니다. 사람은 하루에도 수만 가지 생각을 떠올린다지만 그 생각은 단지 생각일 뿐 내가 붙들지 않으면 스쳐 지나갑니다. 흐르는 물처럼 걱정을 흘려보내는 여백, 곧 생각과의 거리 두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내일이 아니라 오지도 않은 내일을 오늘 미리 살아내려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내일을 붙잡느라 오늘이라는 선물을 놓치곤 하지만 내일을 붙드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월요일 심장발작이 잦아진다는 통계처럼, 쉼 없이 달려온 마음은 몸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몸의 통증은 영혼이 보내는 정직한 언어입니다. 과열된 엔진을 길가에 세워 식히듯 우리 영혼도 멈추어 쉼을 얻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초대는 지금 걷는 이 길에서 들어야 할 음성입니다. 걱정은 기도의 자리에 내려놓고 잠시 주님 앞에 멈춰 쉬었다 가시기 바랍니다.
서호석 목사(광현교회)
중단하는 용기
내가 지도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후배 목사 한 명이 중도 하차했다. 한 달 뒤 발표할 프로젝트를 앞두고 잡은 준비 미팅 한 시간 전, 그가 괴롭다는 문자를 보냈다. 한 달 전에도 그는 교회와 가정에서 감당해야 하는 여러 사역이 힘들다고 호소했었다. 미팅 시간에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상황은 짐작대로였다. 약속한 발표 계획을 끝까지 책임지고 싶은 마음과 그럴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자신을 탓하며 갈등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는 프로젝트 발표를 중단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그에게 발표 중단을 권유했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보다 나를 돌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자 그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내가 아는 그는 게으르거나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다. 반대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신실한 사역자다. 나는 그에게 사역의 결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말고 즐겁게 일하라고 조언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신을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주신 소명에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때로는 중단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괜찮다.
이효재 목사 (일터신학연구소장)
무적의 여름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그의 산문집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한겨울의 깊은 곳에서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내 안에는 결코 꺾이지 않는 무적의 여름(invincible summer)이 있다는 것을.” 삶의 숱한 시련과 부조리 속에서도 우리 내면에는 결코 시들지 않는 생명력과 희망이 자리하고 있다는 깊은 통찰입니다.
연일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기승을 부립니다. 태양의 표면 온도는 6000도, 중심부는 무려 1500만도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뜨거운 태양의 에너지를 능가하는 사랑의 열기가 있습니다. 바로 결코 식지 않고 변하지 않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토록 뜨겁게 사랑하십니다. 그 강렬한 사랑으로 삶의 모든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여러분도 결코 꺾이지 않는, 빛나는 ‘무적의 여름’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인생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불행해지는 방법
할렐루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오늘도 늘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8월 16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꼭 읽어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곳 김포의 하늘에는 구름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날씨는 좋은 편입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참으로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초등 시절부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은 후에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느 중국인이 만리장성 돌벽에다 자기 이름을 새기려다가 붙잡혀서 철창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바벨탑 사건을 잘 아실 겁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자기 이름을 내려고 탑을 쌓다가 그 탑이 무너진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사람마다 그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게 되어서 서로 불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 무엇이 달라진다고, 사람들은 그토록 자기 이름을 내려고 그토록 안달일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의 이름만 높이며 찬양해야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불행해지는 방법 중에서 하나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가장 허망하게 보내는 방법 중에서 하나가 ‘바꿀 수 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격과 지능은 상당 부분 타고 납니다. 그러니 상수(常數)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성품과 지혜는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변수(變數)입니다. 그렇다면 상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변수를 가지고 무언가를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상수보다는 변수가 더 힘이 셉니다.
창의성은 상수처럼 보이지만 변수입니다. 타고나는 게 아니라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나의 창의성이 달라집니다. 타인과 적정한 거리를 두면서 잘 지내는 능력도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이 아니라 ‘상황’에 달려 있습니다.(출처 ; ‘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 생활’에서, 김경일 교수)
●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신32:29)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사람 모두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플라톤)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만 더 오르면 정상이라고 말해주자
숨이 턱 막히게 찌는 날,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릅니다. 나는 무슨 청승인지 혼자 있을 땐 에어컨을 틀지 못합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아껴야 잘 산다’는 말이 아직도 내 안에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너무 아껴도 궁상맞습니다. 하지만 좀 견디다 시원한 바람을 쐬면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당연하다 싶은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해 주고 인내력 점수도 올라가는 것 같아서 종종 훈련하듯 참아봅니다. 특히 산에 올라갈 때는 바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되는데 나뭇잎 사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 소리는 어느 오케스트라 연주의 도입부보다 설렙니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조용한 길을 따라 걷는데 그 고요함이 신비하여 나만 아는 숲속 요정의 별장으로 향하는 기분이 듭니다.
우리 학교 뒤에는 우스갯소리로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 올라가면 해소가 된다”는 부아산이 있는데 마음이 답답하고 몸이 좀 무거울 땐 등산화로 갈아신고 산에 오릅니다. 예전엔 부드러운 신발이 좋았는데 신발 안에서 많이 움직이는 발 때문에 걸음걸이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서 요즘엔 좀 딱딱한 걸 신습니다. 처음엔 좀 불편해도 며칠 익숙해지면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도와주어 걸음이 편해집니다.
이렇게 다 좋은데 한 가지 좀 불편한 것이 있습니다. 산을 오르내리다 마주치면 서로 인사하는 분들이 있고 그냥 지나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는 먼저 인사하는 걸 당연히 좋아하는데 한 번씩 안 받아주는 분들을 만날 때면 머쓱해져서 어느덧 먼저 인사하는 것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그래, 나도 올라가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그냥 가자’하고 건조하게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몇 명을 지나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나이가 좀 있으신 어머님과 따님을 정상 아래서 만났습니다. 두 분과 눈이 마주쳤지만 그냥 지나쳐 내려오는데 어머님 왈, “아, 여기가 끝이었으면 좋겠다” 하셨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내가 나도 모르게 “요기만 돌면 끝이에요. 조금만 더 힘내시면 이제 좋을 일만 남으셨어요” 말했더니, 두 모녀가 하하하 웃으셨습니다. 그 웃음소리를 듣고 나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육중한 몸도 발걸음이 가벼우니 날다람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따닥따닥 리듬을 맞추며 신나게 내려가는데 앞의 아저씨가 올라오고 계셨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내적 갈등. ‘아, 어쩌지? 내가 먼저 인사할까? 아님, 그냥 지나칠까?’ 고민하는데 아저씨가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해 주셨습니다. 나도 반갑게 화답하면서 속으로는 ‘아, 그냥 내가 먼저 할걸. 그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후회하며 내려가는데 또 다른 아저씨의 등장. 이번에도 아저씨가 먼저 인사해 주셨습니다. 나는 먼저 인사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을 담아 더 씩씩하게 인사했습니다. 살짝 미소를 보이고 나를 한 번 쳐다보시더니 “아가씨, 참 시원시원하네”라며 지나가셨습니다. 나는 아가씨란 말이 좋았던 건지, 시원시원하다는 말이 좋았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웃음이 났습니다. 최근에 병원과 아파트 관리실에서 만난 분들에게서 “어머니, 어떻게 오셨어요?”라는 소리를 들어서일까? 물론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나를 몰라보셔서 그랬겠지만 나만 모르고 있었던, 이제 내가 어머니로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는 현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기에 더 반가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씩씩하게 내려오며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 마음을 이렇게 훈훈하게 해 주는데 먼저 입을 떼기가 왜 망설여지는 걸까? 그때 ‘아, 난 늘 누가 먼저 해 주길 바라며 살았구나. 내가 먼저 해도 되는데 쑥스럽단 이유로 또는 굳이 뭘…’ 하면서 상대가 먼저 인사해 주고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렸구나. 산에서 우연히 만난, 모르는 아저씨가 해 주신 짧은 인사에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내 가족이나 친구, 동료에게 표현해 주면 얼마나 더 좋을까? 가까이에 있는 이들이 인생의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고 있을 때 내가 먼저 말을 걸고 물을 준비해 주고 땀을 닦으라고 손수건을 건네면 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물론 모른 척해 줘야 할 때도 있지만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출처 ; ‘장미란의 무게여 안녕]’에서, 장미란 역도선수)
(물맷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