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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대구시민의 자존심을 엿보다.
100년 전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대구시민은 단결해 민족의 자존심을 지켰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입구>
입추가 지났는데도 폭염이 연일 지속되고 있습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대구, 울산 지역은 38도까지 올라가는 날이 많았는데요. 한적한 공원에 홀로 앉아 있으면 어느새 땀에 흠뻑젖기도 했습니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해 대구 도심에 위치한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한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장소인데요. 국채보상운동은 아시다시피 일제시대 국란을 극복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인 모금활동을 벌여 국채를 갚자는 운동입니다. 대구 지역에서 처음 제의되었고 지역 시민들이 주축이 된 민중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 사진 모음집>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지하 1층을 비롯해 지상 1층, 2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층은 내부수리중이라 현재 운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1층에는 이처럼 국채보상운동 당시 대구 시민들의 활동모습과 각종 간행물들이 전시되어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의 전개와 의의 그리고 결과에 대해 쉽고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1층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활동을 하며 태극기를 흔드는 사진이었는데요. 국란을 극복하기 위한 선조들의 모습이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의연금을 기탁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시장 상인들>
지하 1층에는 국채보상운동 당시 시대적 배경과 시민들의 활동모습들을 꾸며놓은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사진이 그러한 것들 중 하나인데요. 이 인형은 운동 당시의 대구지역 시장 상인들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국채보상운동이 처음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참여한 계층은 바로 일반 시민들, 그리고 시장 상인들이었다고 합니다. 가난한 짚신장수로부터 콩나물장수, 떡장수 등 영세상인들과 마부, 노비 등에 이르렀으며 이들은 하루 수입인 50~60전을 아낌없이 의연금으로 내놓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힘없고 가난한 대구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일제시대의 국가위기 때도 지역의 자존심을 지켰던 셈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을 위한 회의 모습>
국채보상운동의 결과
1907년 2월 시작되어 온 국민이 참여한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의 탄압으로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1909년 11월에 조직된 국채보상처리협회에서는 대구 시민들이 납부하고 남은 의연금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민립대학을 건립하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통감부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경술국치 이후 일제에게 강탈당하였습니다.
경상북도 성주군 같은 곳에서는 모금한 의연금을 일제에 넘길 수 없다며, 의연금으로 성명학교를 세워 애국교육을 실시하는 등, 전국 각지에서 남은 의연금으로 애국교육을 하는데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당시 1,300만원의 국채를 갚아 경제국권회복을 이루겠다는 목표는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민족적 결집에 의한 민족의식의 함양과 독립사상을 고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신분, 계급, 성별, 연령, 종교와 국적까지도 초월해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의 온갖 방해로 좌절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형성된 국민의 결집된 힘과 애국정신은 1919년의 3·1독립만세운동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끊임없이 지속할 수 있었던 민족의 저력이 되었습니다.
<퀴즈를 풀고 있는 대구시민들>
1층 사진 모음집 출구에는 이렇게 퀴즈를 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최신식 기자재들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는데요. 지루하고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한국현대사를 조금이나마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지역 역사에 대해 더욱 깊게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퀴즈 프로그램>
광복절이 지난 주말이지만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국란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모았던 대구 시민들의 열기는 아직도 그치지 않은 모양입니다. 쉽게 잊혀지기 쉬운 지역의 현대사를 이곳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좀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고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국란을 극복하는 시민들의 열기는 특정지역,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지켜야할 우리의 자존심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취재:청춘예찬 최종환 대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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